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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행16:6-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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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신학 공부를 하던 시절, 학교를 졸업하면 젊었을 때 시골에 가서 목회를 하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실 시골에서 목회하는 것은 인기 없고 힘든 일입니다. 시골에서 7년을 목회하는 동안 마흔 살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내가 할 일을 못하고 있다’라는 아쉬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사는 말씀으로 사람을 양육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민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그곳에서의 목회를 마감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면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지금까지 진로를 놓고 크게 고민하거나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기로 해왔기 때문에, 이번에도 사람에게 부탁하거나 인위적인 방법은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원주로 이사 가신 집사님 한 가정이 주일마다 두 시간이나 걸리는 먼 길을 달려와서 봉사하고 계셨습니다. 그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한 번은 그 분을 불러 의논했습니다. “이제 내가 이곳을 떠나야겠는데, 집사님에게 한 번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집사님과 헤어지는 것도 아쉬운데 원주에서 함께 교회를 개척해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랬더니 그분이 정색을 하고 반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원주로 이사 가신 집사님 몇 가정이 함께 개척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서 한창 준비하고 있을 때 안산에서 청빙을 받게 되었습니다. 나름대로 준비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말이 귀에 들어 올 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잘 될 것 같던 원주의 일을 막으시고 안산 쪽에서는 계속해서 와달라는 부탁을 받게 하셨습니다. 결국 기도하는 가운데 내가 선택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쪽을 선택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내 계획과는 완전히 달라졌지만 하나님께서 인도하셨음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특히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는 깊이 기도하는 가운데 정말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좋은 예가 나옵니다. 사도 바울은 아시아에 복음을 전하려 했지만, 성령께서 그 길을 막으시고 그를 유럽 쪽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세계의 역사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역사의 전환점
바울은 제2차 전도여행을 떠나 1차 전도여행 때 복음 전했던 지역들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아시아 쪽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길이 막혀서 아시아 쪽으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마게도냐로 방향을 바꾸어 전도여행을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아시아 지역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는데, 성령께서 아시아로 가는 길을 막으시고 유럽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세계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놓은 엄청나게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아시아로 향하던 복음이 먼저 유럽에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유럽에 복음이 전해지자 유럽은 일찍 개화되고 변화되고 발전하고 부유해졌습니다. 지금의 세계 판도는 사실상 바울이 전도 여행의 방향을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돌렸을 때 이미 결정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바울이 선교의 진로를 바꾼 것은 세계 역사를 바꾸어 놓은 엄청난 사건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유럽에 전파된 복음은 전 유럽을 석권하였고, 유럽은 세계 최초의 기독교 대륙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럽에서 왕성해진 복음은 그곳으로부터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되었습니다.
선교의 비전을 갖는다는 것
그런데 바울은 어떻게 해서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선교의 방향을 돌리게 되었을까요? 그 결정적인 계기는 본문에 나오는 마게도냐의 환상이었습니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9절) 그 환상을 본 후 바울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선교의 방향을 유럽 쪽으로 돌리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세계 역사는 크게 달라졌습니다. 이 사건은 선교가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교의 비전을 품는 것이 얼마나 중대한 일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우리의 가장 큰 기도제목 중의 하나가 선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 즉 우리에게 주신 지상명령을 감당하기 위해 선교의 비전을 품고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가 선교에 헌신하는 것은 세계의 역사를 변화시키는 엄청난 일이 되며, 우리를 세계 역사의 주역이 되게 만듭니다. 선교를 하지 않는 교회는 참다운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선교의 비전을 갖지 못하고 선교에 헌신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를 상실하게 됩니다. 우리의 존재 목적은 복음을 전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선교의 비전을 품고 이 일에 헌신하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문을 닫으신 하나님
바울은 제2차 선교 여행을 시작하여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으로 다니면서 교회들을 굳게 하고 더베와 루스드라에 도착했습니다. 루스드라에서 바울은 디모데를 만나 동역자로 삼아 더욱 힘 있게 복음 사역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는 교회가 날마다 양적, 질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보고 기쁨을 금치 못했으며, 자신감을 얻어 더욱 열심히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모든 일이 다 잘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선교의 문이 그들 앞에 활짝 열려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깐이었고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본문 6절은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그들은 더 이상 계획했던 대로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성령께서 어떻게 그들의 길을 막으셨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하여 아마도 바울의 질병이 문제가 되지 않았겠는가 하고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질병으로 많이 시달리며 고생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병을 낫게 해주시기를 세 번이나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끝가지 병으로 고생을 해야 했습니다. 아마도 바울이 아시아 지역을 향하여 전도 여행을 떠나기로 작정한 날이 될 때마다 바울의 질병이 심해져서 움직일 수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이 추측을 뒷받침해주는 것이 9절부터 나오는 ‘우리’라는 단어입니다. 사도행전은 누가가 기록했는데, ‘우리’라는 단어는 바로 이 시점부터 누가가 바울 일행과 동행하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누가는 의사였습니다. 의사였던 누가가 바울과 동행하게 된 것은 바울의 병이 심해졌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길이 막히자 바울은 아시아로 가지 못하고 갈라디아로 갔다가 무시아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도 길이 막혔습니다. 그래서 비두니아로 가려 했는데 그것도 불가능해졌습니다. 그들은 어떻게든 선교의 기회를 얻고자 몸부림을 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교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본문은 이것을 가리켜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7절)
바울 일행은 매우 당황하고 난감했을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데 길이 막혔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명하신 일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헌신하고자 하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것을 성령께서 하신 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살고자 헌신하고 충성할 때도 난감한 상황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럴 때도 여전히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줍니다.
문을 열어 주심
우리의 문을 닫으시는 분도 주님이시며, 우리의 문을 열어 주시는 분도 주님이십니다. 계시록3:7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빌라델비아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주님께서는 바울이 작정한 선교의 길을 다 막으신 후에 바울을 구체적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드로아에서 바울은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야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9절)
성령께서는 바울이 아시아에서 복음 전하는 것을 막으시고, 계속해서 그를 강권적으로 인도하셔서 드로아에 이르게 하셨으며, 거기서 마게도냐 쪽으로 길을 열어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려는 바울의 생각과는 달리 유럽에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방향을 바꾸자 마게도냐의 첫 성 빌립보에서부터 복음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빌립보, 베뢰아, 아덴, 고린도 등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계속되는 사도행전의 기록들은 바울이 이 지역들에서 전도한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
누가는 본문에서 바울이 이처럼 극심한 곤경에 빠진 것을 기록하면서, 그 모든 것을 성령께서 인도하고 계셨음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랍고 귀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우리에게 큰 위안과 소망을 주는 말씀입니다. 만일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하고 있다면, 일이 잘 될 때만이 아니라 곤경에 처해 있을 때도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깨닫고 인정한다는 것은 우리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는 대개 자기가 기대하고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때만 하나님께서 도우신 것이고 인도하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순종하는데도 일이 틀어지고 기대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일이 내 생각대로 되고 있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순종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그것이 성령의 인도하심이라면 기꺼이 따를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그렇다면 일이 어떻게도 되더라도 당황하거나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려면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성령께 순종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는 한 우리는 그 어떤 경우에도 안심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은 내 생각과 계획보다 훨씬 선하고 아름답고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아시아에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는 유럽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그것이 세계 복음화에 보다 효과적인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그 어떤 경우에 처해 있든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만 있다면 잘못될 염려는 없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매일 순간마다 주님과의 교제 가운데서 살아가야 합니다. 날마다 말씀묵상과 기도생활을 통하여 주님과 교제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생각을 버리고 주님 생각으로 내 속에 채우기를 열망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성령께서는 나를 온전히 인도하십니다. 이처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온전히 순종하면 우리는 가장 온전하고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거기에 온전히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기 바랍니다.
선교의 비전
오늘 우리가 선교의 비전을 갖는다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상명령을 준행하기 위한 열망을 갖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누구보다 주님께서 이 비전으로 가슴이 뜨거우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복음을 땅 끝까지, 모든 민족에게 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세상을 복음으로 정복할 것을 바라보시면서 그들을 양육하는데 심혈을 기울이셨습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통하여 보고 있는 바와 같이 주님의 이 비전을 공유하게 된 사도들은 목숨을 바쳐서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제자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으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주님의 종들이 생명과 재산을 바쳐 이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선교에 대한 뜨겁고 원대한 비전을 가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들로 인하여 세상이 변화되었고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복음 전파의 사역은 마치 릴레이 경주와 같습니다. 처음 주님께서 시작하시고 제자들에게 물려주신 선교의 사명이 계속 이어져 오늘 우리에게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통을 이어 받아 힘을 다해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 차례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마지막 주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최후 목표에 골인하는 영광의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회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당신은 선교의 비전을 뜨겁게 품고 있습니까? 우리 이웃에 있는 수십억의 영혼들이 “이리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부르는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들 중에서 상당수의 사람들은 이미 우리 곁에까지 와서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욱 열심을 가지고 담대히 이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만 합니다. 이 일을 위하여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드려야 합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선하고 본이 되는 삶의 모습도 보여야 합니다. 동네 사람들이 한결같이 참사랑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다르다고 인정하게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 지역을 복음으로 정복하고 변화시켜야만 합니다. 이 지역이 참사랑교회 때문에 큰 복을 받아야 합니다. 세계선교를 힘차게 감당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일들을 생각할 때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져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 일을 감당할 것인지 늘 고심하며 기도하고 힘써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최대의 관심사이며 최후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선교에 대한 뜨겁고 원대한 비전을 가지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세상을 변화시키며 주님께 충성을 다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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