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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행19: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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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당신은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경험이 있습니까? 성령 충만을 체험한 적이 있습니까? 아니 지금 성령으로 충만하십니까?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교회만 다닌다고 해서 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들 가운데는 별 생각 없이 가족이나 친구를 따라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기는 믿지만 극히 형식적으로 교회에 나옵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과거에 굉장한 체험과 믿음을 가졌으나 지금은 다 식어진 채로 교회만 겨우 나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반면에 성령이 충만하여 날마다 주님과의 인격적인 뜨거운 만남을 통하여 늘 새로운 은혜와 능력을 힘입어 충성을 다하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당신은 이 중에서 어디에 해당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 자신의 모습을 신중하게 진단해보고, 과연 우리에게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도록 합시다.
바울과 아볼로
바울은 고린도에 상당히 오랜 기간을 머물며 복음을 전하다가 에베소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예루살렘을 거쳐 안디옥으로 돌아감으로써 제2차 전도여행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다시 안디옥을 출발하여 제3차 전도여행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1,2차 전도여행 때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던 지역들을 순회하면서 그들을 믿음에 굳게 세워나갔습니다.
그 동안에 아볼로라는 사람이 에베소에 왔다가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에게서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배워 더욱 능력 있는 복음 사역자가 되었습니다. 그 후 아볼로는 고린도로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 고린도는 바울이 오랫동안 복음을 전하던 곳이었습니다. 아볼로는 고린도에서 매우 능력 있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결과 고린도에서 아볼로의 영향력은 바울 못지않게 커졌던 것 같습니다.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고전3:4)
그러나 바울은 아볼로가 그가 복음을 위해 수고한 지역에 들어와 그가 세운 기초 위에 건물 세우는 것을 시기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했습니다. 자기가 씨를 뿌린 고린도에서 아볼로가 물을 주는 것을 조금도 개의치 않았으며, 많은 사람들이 아볼로를 그렇게 추종하는 것까지도 시기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기의 귀한 동역자로 여겼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동역자된 자들이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만난 사람들
이볼로가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하며 물을 주고 있을 때(목회하고 있을 때), 바울은 제3차 전도여행을 계속하여 다시 에베소를 방문했습니다. 다시 에베소에 돌아 온 바울은 거기서 어떤 제자들을 만났습니다.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 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1-2절) 이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었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1절에서 이들을 ‘제자’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이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정말 그리스도인들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심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바울은 이들에게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바울의 질문에 이들은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했다”고 대답했습니다. 바울은 이들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그들은 “요한의 세례’를 받았노라”고 대답했습니다. 결국 이들은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었지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아닌 셈이었습니다. 그들은 성령을 체험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성령에 대해서 들어보지도 못한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아볼로가 처음 에베소에 왔을 때와 비슷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세례 요한이 전파한 내용 밖에는 몰랐습니다. 회개가 필요하다는 것과, 예수께서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것은 알았으나,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신 일에 대해서는 몰랐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그리스도인들이라 부르기는 좀 곤란합니다. 굳이 말한다면 ‘불완전한 그리스도인’, 또는 ‘예비적인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바울은 이 사람들에게 요한의 가르침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요한이 요단강에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는데, 그가 오시면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리라”고 말한 것을 상기시키면서, 요한이 소개하고 믿으라고 말한 분이 곧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4-7절)
이 사람들은 바울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자 곧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자 곧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고 방언과 예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비로소 성령을 충만하게 받았으며,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었습니다. 에베소는 안디옥을 이어서 이방 선교의 중심지가 되었는데, 많은 학자들은 이 열 두 명의 제자들이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령 세례
사람이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3장에서 중생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중생은 성령으로 다시 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는 것은 성령께서 이미 그 사람의 마음속에 오셔서 새 생명을 주신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것과 성령을 받는 것은 동시에 이루어지는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하).
바울이 에베소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너희가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물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게 되는 것은 성령으로 되는 것이며, 믿은 사람은 누구나 성령을 받은 사람입니다. 당신은 예수를 진정 당신의 구주로 믿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성령을 받은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신 것을 가리켜서 “성령 세례”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누구나 이미 성령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성령 세례를 받아 예수를 주라 시인한 사람은 물 세례를 받음으로 성령 세례 받은 것을 표시하며 확인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
이와 같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해 있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고 난 후 반드시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그리스도인이 성령님께 온전히 지배를 받는 상태를 말합니다. 성령 세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받은 것이지만, 성령 충만은 모든 그리스도들이 다 받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 세례는 한 번 받으면 반복될 수 없고 상실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은 반복될 수 있고, 항상 유지되어야만 합니다. 성령 충만은 상실될 수도 있고, 다시 회복될 수도 있습니다.
성령 충만은 헌신된 그리스도인의 기준이기도 합니다. 누구도 성령 충만하지 않고서는 헌신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성령 충만하지 않고서는 변화될 수 없고, 죄를 이길 수도 없으며, 성숙된 신앙인이 될 수 없습니다. 성령 충만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분별할 수 없으며,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능력 있게 감당할 수 없습니다. 성령 충만하지 않고서는 참된 예배를 드릴 수도 없습니다. 성령 충만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며, 주님께서 기뻐하시며 맘껏 사용하실 만한 성도가 되는 관건입니다.
성령 충만은 명령이다.
성령 충만은 명령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5:18) 성령 충만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과목이 아니라 필수과목입니다. 이 명령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외 없이 주신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며, 심지어는 죄악이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한 것은 주님의 명령을 거역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이 명령이라는 사실은, 우리가 받고자 하면 누구나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진정 간절히 사모하면 우리에게 충만하게 임하십니다. 그러나 사모하지 않는 사람은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 충만을 위하여 언제나 간절히 기도해야만 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죄를 품으면 깊이 탄식하시고 책망하십니다. 우리가 회개하지 않을 때, 우리는 성령 충만을 상실하게 됩니다. 성령께서는 죄가 있는 곳에 충만하게 임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애통하며 회개하면 다시금 우리에게 충만하게 임하십니다.
우리가 성령님의 뜻과 인도하심을 거부할 때도 성령 충만이 상실됩니다. 성경은 그래서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살전5:19),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엡4:30)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나를 쳐 복종시키며, 죄를 버리고 철저히 회개하며, 늘 간절히 사모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모든 성도들이 성령 충만을 받기 바랍니다.
성령 충만의 경험들
성령을 충만하게 받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성령이 충만하게 될 때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확고하게 보증하시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 성령의 내적 증거가 너무나도 확고하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의심과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져 버립니다.
또 어떤 때는 성령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심으로 우리가 성경을 깨닫게 되고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우리의 가슴이 뜨거워지고 하나님과 형제에 대한 사랑이 불타오르며, 평강과 기쁨과 만족과 행복감이 물밀 듯이 밀려오는 것을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예배 시간에나 기도 시간에, 또는 찬양을 부를 때나 성도의 교제 모임에서 나를 압도해 오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기도 합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으면 마음이 새로워져서 말씀을 순종하게 되고, 그 결과 인격과 삶이 변화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나를 강하게 사로잡으시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당신은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 성령 충만한 성도는 늘 이런 놀라운 축복을 누리며 삽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날마다 이러한 은혜를 체험하며 사는 성도들이 되기 바랍니다.
성령 충만의 증거
그러면 성령 충만의 결과로 나타나는 증거는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성령 충만의 증거는 방언이나 신유와 같은 은사뿐인 줄 압니다. 그러나 은사보다 훨씬 중요하고 확실한 성령 충만의 증거는 바로 성령의 열매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
이 성령의 열매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결국 성령 충만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게 되는 것입니다. 은사의 체험은 있으나 사랑, 희락, 화평, 자비, 절제 등이 결여되어 있는 사람을 어떻게 성령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큰 소리로 기도하고, 늘 눈에 띄는 곳에서 열심히 봉사한다고 해서 성령 충만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실력이 있고, 여러 가지 은사가 많아서 능력을 행한다고 해도, 그의 인격이 그리스도를 닮지 못했다면 그 사람은 성령 충만한 성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한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성령 충만한 성도가 아닙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고전13:1) 지금 당신에게는 성령의 열매가 얼마나 나타나고 있습니까? 당신은 우리 주님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습니까?
은사
가장 중요한 성령 충만의 증거는 성령의 열매이며, 그것은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에게서 주님의 성품을 닮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성령의 은사도 성령 충만의 결과로 주어집니다. 그런데 은사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없어서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나는데, 그런 경우에는 은사를 받은 사람에게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기도 합니다.
한 성령께서 모든 성도들에게 다양한 은사를 주시는데, 은사를 주신 목적은 교회를 섬기며 덕을 세우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은사 받은 성도들 중에는 교회를 섬기기보다는 교만해져서 자신을 과시함으로 오히려 교회를 해롭게 하는 경우를 간혹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과 교회에 다 같이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든 은사가 다 귀합니다. 그 중에서도 성도를 세우는 은사가 가장 가치 있는 은사입니다. 성도를 세우지 못하는 은사는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되, 은사를 받은 성도들은 이 원리를 명심하여 그 은사를 성도를 섬기며 교회를 온전케 하는 데 사용하기 바랍니다.
교회에는 여러 가지 신자가 섞여 있습니다. 마치 본문에 나오는 에베소 사람들처럼 아직 신앙의 도리를 제대로 알지 못한 어린 신자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분들이 속히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도와야 합니다. 그리고 본인들도 힘써야 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구주되심을 확실히 믿지만, 아직도 그분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하고 성령의 체험이 없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아마도 이런 사람이 가장 많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신앙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으며, 성도다운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과거에 성령 충만했던 경험이 있으나 지금은 다 식어지고 침체된 성도들도 꽤 많습니다. 속히 회복하지 않으면 주님께서 징계하실 것입니다.
가장 바람직한 신자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날마다 주님을 인격으로 뜨겁게 만나 교제를 누리며, 주님의 아름다운 인격을 닮아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며,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를 가지고 충성되고 능력 있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더욱 더 성령 충만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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