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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행20:28-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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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교회는 어머니의 품과 같습니다. 어머니는 어린 아기를 그 품에 안고 양육합니다. 우리는 어머니가 어린아이를 양육할 때 어떻게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젖을 먹이고, 시시때때로 기저귀를 갈아주고, 심지어는 대변까지 뒤적이면서 살펴봅니다. 어머니의 그 지극한 정성과 헌신을 통해 어린아이는 건강하게 자랍니다. 어린아이는 어머니의 품을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바로 어머니의 품과 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예수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고 구원받은 직후 그 사람은 영적으로 갓난아기와 같습니다. 이 갓난아기는 어머니의 품과 같은 교회를 떠나면 살 수 없습니다. 교회 안에 있어야 안전하고, 교회를 통해 양육을 받아야 믿음이 성장합니다. 만일 교회 밖으로 나가면 죽습니다. 신앙이 자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칼빈은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교회는 이렇게 소중합니다. 교회가 이렇게 소중하기 때문에 우리는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 안에서 양육을 받으며, 봉사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교회가 이렇게 소중하기 때문에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떠나면서, 에베소 교회의 지도자들을 불러다 놓고 교회를 돌보는 것에 대하여 마지막 유언과 같은 설교를 남겼습니다. 이 교훈은 오늘 교회를 돌보는 모든 지도자들과 성도들에게 주어진 교훈이기도 합니다.
교회의 중요성
바울은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교훈을 주면서 교회가 얼마나 귀하며, 그들이 교회를 위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사명이 얼마나 막중한가 하는 것을 28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이 말씀에는 교회와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관계가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성부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그리고 성자 예수님의 피로 이 교회를 사셨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이 교회를 위해 친히 목회자들을 세워 그들로 하여금 교회를 돌보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주인 행세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아무리 자기가 교회를 개척했다고 해도 교회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아무리 헌금을 많이 했다 해도 그것 가지고 교회를 좌지우지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를 위해 아무리 봉사를 많이 했어도, 교회를 아무리 사랑하고 아낀다 해도, 교회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교회의 주인 노릇을 하려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것이 됩니다. 교회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은, 특히 직분자들은 이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자, 곧 하나님 자신의 피로 교회를 사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엿새 동안에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위해서는 성자의 피, 곧 자신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국가와 사회, 우리의 직장도 교회보다 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위해 당신의 생명을 주신 적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이렇게 귀합니다.
교회가 이렇게 귀하기 때문에 성령께서 친히 교회의 지도자들을 택하여 그들에게 교회를 돌보도록 직무를 맡기셨습니다. 교회의 직분은 성령께서 택하여 세우신 것임을 명심하십시오. 그러므로 이 소중한 교회를 돌보며 섬기는 직분이 얼마나 귀합니까? 바울은 이 직분이 그토록 귀하기 때문에 이 직분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본문에서 교훈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잘 이해하고 명심하여 하나님께서 자기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를 충성되게 섬기는 성도들이 되기 바랍니다.
양과 같은 신자
28절에서 바울은 교회를 ‘양떼’라는 말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양에 대하여 생각해 보면 우리는 교회에 대해서 좀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양은 자신을 보호할 천부적인 방어능력을 전혀 갖지 못한 동물입니다. 맹수가 공격해 올 때 빨리 도망가지도 못하며, 싸울 때 사용할만한 날카로운 이빨이나 뿔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맹수가 물어도 끄떡없는 두꺼운 가죽을 가지고 있지도 못합니다. 게다가 눈은 지독한 근시여서 멀리 있는 것은 보지도 못하며, 방향감각이 둔하여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잘 모릅니다. 보기에는 순하고 인상이 좋은 것 같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더럽고 해충이 끼기 쉬워서 정기적으로 소독을 해줘야만 합니다. 뿐만 아니라 양은 제멋대로이고 고집이 셉니다. 그래서 양은 자력으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양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는데, 그것은 양떼를 떠나지 않고 목자의 보살핌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처럼 폭력을 쓸 수도 없고, 그들이 속인다고 같이 속이고 사기를 쳐서도 안 됩니다. 그들처럼 온갖 것들을 다 즐길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특별한 권력이나 배경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재산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연약하고 볼품이 없는 존재들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늘 불순종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6) 이런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길은 교회 안에 있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교회를 주셨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험하고 악해도 우리가 교회 안에 있기만 하면 안전합니다. 교회는 마귀가 우리를 해치지 못하도록 지켜주며, 세상의 죄악이 우리를 더럽히지 못하도록 막아줍니다. 교회는 특별히 지도자들을 통하여 우리가 이단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해줍니다. 교회는 우리가 천국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인도합니다. 세상에서 높은 권력과 명예를 누렸고, 많은 재물을 소유했으며, 쾌락과 풍요를 마음껏 누렸다 해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그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구원받지 못한다면 우리의 모든 것은 아무런 의미와 가치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교회 안에 있으면 안전합니다. 교회 안에만 있으면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교회는 이와 같이 우리의 영혼을 보호해줍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얼마나 귀하고 중요합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를 사랑하고 아끼는 것입니다.
삼가라
교회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피로 값을 치르고 사셨습니다. 교회가 이처럼 소중하기 때문에, 그리고 성령께서 친히 세우신 교회를 돌보는 이 직무가 그토록 막중하기 때문에 목회자들은 양떼를 위해 삼가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지도자들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목사를 닮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시비를 걸고 싸우기 위해서 지도자의 일거일동을 주시하기도 합니다. 목사만큼 수준 높은 도덕성과 영성을 요구받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목회자가 얼마나 삼가야 하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교회의 지도자들은 양떼를 위해 삼가야 합니다. 성도들 중 누구도 우리를 떠나 방황하거나 맹수들(이단)의 먹이가 되지 않도록 삼가 돌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적들
바울은 자기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들어와서 양떼를 아끼지 않고 해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29) 고대 근동에서 이리는 양을 공격하는 주된 적이었습니다. 때로는 혼자서, 때로는 무리를 지어 사냥하는 이리들은 양떼를 끊임없이 공격해왔습니다. 그러므로 목자들은 경계를 늦출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서 이리는 유혹하는 자들이나 거짓 교사들을 가리킵니다. 특히 바울은 할례주의자들, 즉 율법주의자들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는 그들을 “개들”이라고 불렀다.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빌3:2) 그들은 바울이 떠난 후 가만히 들어와서 바울이 뿌린 복음 위에다 가라지를 뿌릴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분별력 없는 양들은 거짓된 교훈에 빠져 멸망을 당할 위험이 커집니다. 그래서 바울은 교회의 장로들에게 “양떼를 지키라. 그리고 최선을 다하여 진리 안에 굳게 서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이리가 외부의 적인 반면에, 교회 내부에서 일어나는 적도 있습니다.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30절) 그것은 교회 내에서 일어나는 이단을 가리킵니다. 교회에서 일어난 이단들로는 통일교나 전도관(천부교), 구원파, 몰몬교, 안식교, 여호와의 증인, 이초석의 예루살렘 교회, 시한부 종말론, 다락방, 이재록의 만민교회 등이 있으며,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것들로는 하나님의 교회, 신천지 등이 있습니다. 일반 성도들은 이러한 이단들을 잘 분별하지 못하여 별 생각 없이 따라가기 쉽습니다. 그러다보면 이단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게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이단으로부터 성도들을 철저하게 보호해야 합니다. 성도들이 이런 것들에 미혹당하는 것을 보고도 가만히 있는 목회자야말로 가장 나쁜 삯군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한편 성도들은 목자의 경고를 잘 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단에 빠지기 쉽습니다. 때때로 어떤 성도들은 목회자가 이런 것들에 대하여 경고하는 것을 못 마땅히 여기고 불평을 하기도 하는데, 그것처럼 무모한 일도 없습니다. 전에 어떤 장로님이 이초석씨의 비디오 테잎을 보고 있기에, 그 사람 이단이라는 것 아시느냐고 했더니, 이 분을 이단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이단이라고 불끈대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목사는 진리에 관한 것이 아니면 웬만큼 양보할 수 있습니다. 정 의견이 맞지 않으면 각자 다른 길을 찾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진리와 이단에 관한 것이라면 절대로 물러설 수 없습니다. 목숨을 걸고라도 끝까지 싸워 교회를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성령께서 주신 가장 중요한 직무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도 이런 문제에 관한 한 목사의 지도에 충실히 따라야만 합니다. 그래야 안전합니다.
주와 및 은혜의 말씀에 부탁함
바울은 이제 에베소 교회를 떠나지만 주님과 그 분의 말씀은 그들과 함께 계십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주님과 그 말씀에 그들을 부탁합니다.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서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32절) 먼저 바울은 그들을 주님께 맡깁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고 그들을 돌보아 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보아 주시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그들의 모든 염려를 그 분께 맡기라고 격려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께서 우리 가까이 계시기만 하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바울은 또 그들을 은혜의 말씀에 부탁했는데, 이 말씀은 살아 역사하는 말씀입니다. 역사가 Richard Green은 “영국에 가장 큰 도덕적 변화가 일어난 때는 영국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속한 때였다.”라고 말했습니다. Hellen Keller는 “나는 4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여 왔는데, 그것은 나의 걸음을 인도하는 지팡이와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은혜의 말씀은 사람들이 그것을 들을 때 믿음이 생기게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이 자라게 합니다.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2:2) 말씀에 굳게 서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가르치며 배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말씀 배우기를 힘쓰는 성도들이 되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보호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주님 의지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특히 주님의 말씀은 우리를 자라게 하고 강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기를 힘써야 합니다. 말씀을 부지런히 배우는 성도는 믿음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물질에 대한 태도
주의 종이 주의해야 할 또 한 가지는 재물을 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사가 재물을 탐하면 은혜와 영력이 약화되기 마련입니다. 성도들도 목사가 재물 탐하는 것을 매우 싫어합니다. 그러므로 목사가 재물을 탐하면 성도들의 존경을 받을 수 없고, 그렇게 되면 교회를 제대로 돌볼 수 없게 됩니다.
그렇다고 목회자들의 사례를 인색하게 지급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은 목사로 하여금 돈에 신경을 쓰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뿐 아니라, 목회를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듭니다. 목회자가 재물을 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주님께서 목회자들에게 주신 교훈이지, 교회로 하여금 목회자들을 인색하게 대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목사가 돈에 신경 쓰지 않고 목회에 전념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해야 합니다. 반면에 목사는 돈을 탐할 것이 아니라 나눠주기를 힘써야 합니다. 내가 쓰는 것보다 어려운 성도에게 주는 것이 큰 기쁨인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재물에 대한 교회와 목사의 바람직한 태도입니다.
물질에 대한 일반적인 원리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35하) 주는 일은 하나님이 전문가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우리에게 주기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독생자까지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예수님께서도 주기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은 우리에게 자신의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고 따르는 성도들도 당연히 주기를 힘써야 합니다. 당신은 주기를 힘쓰고 있습니까? 이것은 세상의 원리나 인간의 본성과는 반대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백성이 되었고, 주님께로부터 무한한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이제 주기를 배운 자들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주기를 좋아하고 줄 줄 아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를 위하여
교회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합니까? 교회는 하나님의 것이며, 그 분의 피로 사신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이 교회를 위해 친히 교회의 일군들을 세우셔서 그들로 하여금 교회를 돌보게 하셨습니다. 교회는 우리의 어머니와 같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통해 보호를 받고 양육을 받습니다. 교회 안에 있으면 우리는 안전합니다. 교회 안에서 잘 양육을 받음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충성되고 강한 일군들이 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우리의 생명이요, 우리의 꿈입니다.
그런데 교회를 해롭게 하려는 자들이 간혹 있습니다. 그보다 무모하고 두려운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안다면, 주님께서 이 교회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시는지를 안다면, 이 교회에 우리의 영혼이, 우리의 생명과 운명이 달려 있다는 것을 안다면, 도저히 그럴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소중히 여기고, 언제나 이 교회 안에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교회를 위하여 우리의 가장 귀한 것을 아낌없이 바칠 수 있고, 나의 인생을 걸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를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은 가장 행복하고 보람 있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 안에서 떠나지 않으며, 교회를 통하여 성숙한 주님의 일군으로 양육을 받으며, 교회를 위하여 헌신과 충성을 다하는 성도들이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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