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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곁에 서서 .....

사도행전 이정원 목사............... 조회 수 2357 추천 수 0 2011.07.14 23:5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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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행23:1-11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2011·06·25

우리가 예배하는 이 시간 하나님께서는 이곳에 임재하시어 우리의 예배를 받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잘 준비된 마음을 가지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릴 때, 우리는 예배 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됩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일상생활에서도 하나님 만나는 일이 가능해집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찾아오시며 만나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 뵙고 있습니까?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 뵙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성도는 마땅히 이러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바울에게서 이러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공회 앞에 세워진 바울

 

천부장은 무슨 이유로 유대인들이 바울을 붙잡아 죽이려 했는지 알고자 했으나 흥분한 군중들에게서는 아무 것도 알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고문하여 자백을 받아 내려고 했으나 바울이 로마 시민이었으므로 그것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천부장은 세 번째 방법을 선택했는데, 그것은 산헤드린 공회로 하여금 바울을 심문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산헤드린 공회는 유대 최고의 권력기관이었습니다. 일찍이 예수님께서도 이 자리에서 심문을 당하셨으며, 여기서 사형선고를 받으셨습니다. 스데반도 이 자리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그 때는 바울도 이 공회의 일원으로서 스데반의 사형에 찬성표를 던졌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바울이 그 자리에서 심문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기 위해 이 산헤드린 공회의 공문을 받아 가지고 간 이후 처음으로 다시 그들과 상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의 변명
  

바울은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먼저 자신에 대하여 변명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 공회 앞에서 바울은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1절)
  

이 말은 바울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이 성전을 모독했다고 했으며, 율법을 어길 뿐만 아니라 지킬 필요가 없다고 가르쳤으며, 할례를 행하지 말도록 가르쳤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 같은 사람은 죽여야 한다고 소동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고 주장했습니다.

대제사장의 분노
  

이러한 바울의 말을 들은 대제사장은 크게 분노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가 지금 바울을 죄인으로 여겨 심문하고 있는데, 바울이 자기는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고 하면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바울의 말이 사실이라면 산헤드린 공회가 불법을 행하고 있는 셈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이 하나님의 이름을 들어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으므로 유대인들은 바울이 신성모독의 죄를 범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바울의 입을 치라고 명했습니다.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그 입을 치라 명하니”(2절)
  

참고로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사람인지 살펴봅시다. 이 사람은 헤롯 아그립바의 동생인 Chalice(칼리스)의 후원을 얻어 대제사장이 되었으며, 12년 동안 그 직위에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친로마파였으므로 유대인들의 미움을 받았습니다. 주후 66년 유대인들이 로마에 대하여 전쟁을 일으켰을 때 하수도 속에 숨어 있다가 발각되어 죽임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당시의 대제사장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대제사장직을 수행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바울의 항의와 사과
  

대제사장이 바울의 입을 치라고 명하자, 바울은 즉시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라고 응수했습니다. “바울이 이르되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심판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 하니”(3절) 당시 팔레스틴에서는 낡은 담을 마치 새 것처럼 보이게 하거나 튼튼한 것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 회를 칠했습니다. 그러므로 회칠한 담은 겉으로 볼 때 튼튼하고 깨끗해 보이지만, 결국 오래지 않아 무너지고 맙니다. 바울의 이 말은 결국 아나니아의 비극적인 종말을 예언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왜 대제사장을 이런 말로 비난했을까요?
  

당시 피고의 권리는 율법에 의하여 엄격하게 지켜졌으며, 피고는 확실한 죄가 드러나기 전까지는 무죄로 인정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심문을 받기도 전에, 그리고 죄상이 드러나지도 않았는데 대제사장이 바울을 치라고 한 것은 불법이었습니다. 율법과 공의로 재판한다고 앉아 있는 사람이 이렇게 불법을 행하려 했기 때문에 바울은 흥분하여 항의를 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곁에 서 있던 사람이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네가 욕하느냐고 나무랐습니다. 이 말을 들은 바울은 즉시 자신은 그가 대제사장인 줄 몰랐다고 사과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바울이 대제사장을 알아보지 못했겠는가 하는 문제로 논란이 있어왔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의 의장은 대제사장이었으며, 보통의 경우에는 대제사장이 가운을 입고 의장석에 앉아서 회의를 진행했기 때문에 누가 보아도 그가 대제사장인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가 대제사장인 것을 알지 못했다니 말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부장이 소집한 이 집회는 정규집회가 아니었습니다. 그런 경우에 대제사장은 보통 자기가 앉는 자리에 앉지 않고, 관복을 입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20년 동안이나 예루살렘을 떠나 있었기 때문에 대제사장의 얼굴을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아나니아가 대제사장인 줄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나니아가 대제사장인 것을 알게 되자 바울은 즉시 자기의 입장을 바꾸어 정중하게 사과했습니다. 비록 대제사장이 잘못된 사람이었을지라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에 순복하고자 했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당시 산헤드린 공회는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이라는 두 부류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이 두 파는 신학과 사상이 많이 달랐습니다.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8절) 사두개인들은 부활과 내세, 영혼불멸과 천사의 존재를 부인했습니다. 성경도 모세 오경만 정경으로 인정했고 나머지는 다 부인했습니다. 그들은 극히 인본주의자들이었으며 정치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제사장 계급이었으며, 수적으로는 바리새인들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이들은 도덕적으로 타락해 있었으므로 백성들의 지탄을 받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바리새인들은 엄격한 율법주의자들로서 부활과 내세, 영혼불멸과 천사의 존재 등을 믿었습니다. 구약 전체를 정경으로 인정했으며 율법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도덕적으로도 엄격했으므로 백성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는 바로 이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두 파간의 싸움
  

바울은 이 산헤드린 공회가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알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울이 그 중 일부는 사두개인이요 다른 일부는 바리새인인 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6절)
  

바울이 이 말을 하자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 사이에 큰 다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바울을 대적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서로 대적하여 큰 소리를 지르게 되었다. “크게 떠들새 바리새인 편에서 몇 서기관이 일어나 다투어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니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으면 어찌 하겠느냐 하여”(9절) 바리새인들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바울에게 잘못이 없다고 옹호했을 뿐만 아니라, 만일 영이나 혹 천사가 바울에게 말했다면 바울을 심문하고 대적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이겠느냐고 말했습니다.
  

거기 모인 유대인들, 즉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이 모두 무섭게 흥분했기 때문에 산헤드린 공회는 갑자기 수라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큰 분쟁이 생기니 천부장은 바울이 그들에게 찢겨질까 하여 군인을 명하여 내려가 무리 가운데서 빼앗아 가지고 영내로 들어가라 하니라”(10절) 바리새인들은 바울을 옹호하고 보호했으며, 사두개인들은 더욱 흥분하여 바울을 잡아 죽여야 한다고 달려들었습니다. 만일 그대로 둔다면 바울이 찢겨 죽을 지경이었기 때문에 천부장은 군사들에게 바울을 영문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라고 명령했습니다. 결국 천부장은 산헤드린 공회를 통해서도 사건의 진상과 바울의 죄상을 밝혀낼 수 없었습니다.

어찌하든 복음 전하기를 힘쓰자.
  

어떤 사람들은 산헤드린 공회가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보고, 바울이 위기를 면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들이 민감하게 대립되어 있는 부활 문제를 꺼내어 싸움을 붙였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어디서나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밖에는 몰랐습니다. 바리새인들을 보자 그들이 부활을 믿고 있는 것을 생각하고 부활에 대하여 전함으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런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어떤 계기가 생기면 그것을 기회로 삼아 어떻게 해서든지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복음을 전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특히 남편이나 가족 중 안 믿는 분들이 있을 때, 꼭 전도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마땅히 접근할 핑계거리가 없을 때, 우리는 아주 작은 건수만 생겨도 그것을 핑계 삼아 복음 전하는 기회를 만들어야 합니다(누가 아프다든지, 좋은 일이 있다든지, 생일이라든지 …).

그날 밤
  

전날 바울은 큰 소동을 겪었으며 무참하게 폭행을 당했었습니다. 그러나 죽기 일보 직전에 로마군에 의하여 구출되었습니다. 그 다음 날 바울은 심문을 받기 위해 산헤드린 공회 앞에 세워졌습니다. 그날도 바울은 혼란스럽고 힘겨운 일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다시 감옥으로 돌아왔으며 밤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육체적으로는 상처를 입었고, 정신적으로는 낮에 있었던 일로 인하여 평안치 못했으며, 영적으로는 동족에게 복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 것 때문에 낙심이 되어 있었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완전히 실패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방 교회들의 선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왔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가 그렇게 안타까워하며 복음 전하기를 원했던 동족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2차 전도여행 때부터 바울은 로마에 가서 복음 전하기를 원하는 열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내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으로서는 로마로 갈 수 있는 가능성도 희박했습니다. 그는 여러 가지로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의 사역 중에서 그날 밤만큼 절망스럽고 암울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바울 곁에 서서 말씀하심
  

그런데 그날 밤에 주님께서 바울을 찾아오셨습니다.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11절) 이 얼마나 아름답고 은혜로운 장면입니까? 주님께서는 일찍이 고난을 당하셨고 바울이 당한 것과 같은 일들을 다 체험하신 분이십니다. 고통과 실의에 빠진 바울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께서 바울을 찾아와 곁에 서서 말씀하셨습니다. “담대하라” 주님의 이 말씀은 바울의 모든 고통과 실의와 불안을 일소시키는 말씀이었습니다.  
  

바울은 지금 예루살렘에서의 실패 때문에 패배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주님을 증거했다고 인정해주셨습니다.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주님께서는 일의 성취보다 우리의 마음을 보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연약하고 무능하여 이루어 낸 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가 주님을 향하여 충성된 열심을 가지고 살아온 것을 주님께서는 크게 인정해 주십니다.
  

바울은 로마에서 복음 전하기를 그토록 열망했는데, 이제는 로마로 가기는커녕 예루살렘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 조차 알 수 없는 암담한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네가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주님께서는 바울로 하여금 로마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해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받은 은혜와 위로를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그날 밤 극심한 패배감에 빠져 있던 바울은 주님께서 그에게 찾아와 곁에 서서 말씀해주심으로 큰 위로를 받았으며 놀라운 감격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암담하고 처참했던 그날 밤이 영광과 환희가 넘치는 밤이 되었습니다. 바울의 일생에 있어서 가장 불행했던 그 밤이 주님을 만남으로 가장 행복한 밤이 되었습니다. 이 후로도 바울은 3번의 재판을 더 받게 되며, 2년 동안이나 감옥에 갇혀 있게 됩니다. 그리고 배를 타고 로마로 가면서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경우에 바울은 주님의 이 은혜와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고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주님의 임재
  

주님의 임재는 단지 환상적이거나 상징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극히 실제적이며 인격적인 만남입니다. 이보다 더 복되고 귀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처럼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가장 귀한 일이며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주님을 이렇게 만난 경험이 있습니까? 그런데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는 예배시간입니다. 그리고 예배시간에 하나님을 만나 뵙게 되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특히 바울처럼 가장 어려운 순간에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예배시간에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사람이 어디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 뵙도록 힘써야 합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려면 우리 자신에게 준비가 필요합니다. 정성을 다하여 준비하는 자세, 그리고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 이 두 가지만 있으면 됩니다. 그리고 예배시간에 나와서 힘을 다하여, 마음을 다하여, 온 정성을 다하여 예배를 드리면 틀림없이 하나님을 만나 뵙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감격은 경험해 본 사람만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예배시간에 하나님을 만난 성도는 일상생활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어떤 문제와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만 만나면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예배시간에 하나님을 만나 뵙는 성도들이 되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서 필요할 때마다 주님께서 찾아와 곁에 서서 위로해주시고 격려해주시는 은혜를 힘입어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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