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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씨와 도둑>은 최용우 개인 책방의 이름입니다. 이곳은 최용우가 읽은 책의 기록을 남기는 공간입니다. 최용우 책방 구경하기 클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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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모악산 기슭에 사는 박남준 시인의 산방일기. 박남준 시인은 적게 벌어 적게 쓴다는 생각으로 텃밭을 일구고 글을 쓰며 그곳에서 12년째 혼자 살고 있다. 산속에서 일궈가는 소박한 삶이 맑고 순수한 저자의 마음도 그대로 지켜준 듯 책은 온통 꽃지고 꽃피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작은 벌레도 대접받는 생명의 소중함으로 가득하다.
"혼자 사니까 참 좋겠어요. 더구나 산골 외딴지이니까 얼마나 좋겠어요. 속 모르는 사람들은 어쩌다 그런 저런 말을 하며 부러운 눈치를 내보이기도 하지만 내가 집 주변을 알짱거리며 돌아다니는 뭇짐승들에게 얼마나 눈치를 보고 사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지."
때로는 추운 곳에서 떨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가슴 아파하기도 하지만, 저자가 고즈넉하고 따뜻한 산방에 누워 읽은 책들의 주옥같은 글귀를 귀동냥할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또 다른 묘미이다. 아예 '푸른 종소리가 들렸다'라는 한 장은 저자가 인상깊게 읽은 책들의 감상을 기록하는 데 바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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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 홀로사는 시인의 山房일기 읽다보면 저절로 마음 맑아져
산속에서 최소한의 양식만으로 세 끼를 해결하고, 빗소리 함박눈 봄꽃 낙엽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악산 시인 박남준(45). 그는 결혼한 적도 없고 결혼할 생각도 없는 만년 노총각이다. 홀몸으로 홀로 산속에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아간다. 물론 그이라고 대처 나들이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시집을 4권씩이나 상재한 유명 시인이다 보니 여기저기 부르는 곳도 많다.
그러나 산에서 내려가 술 한잔 밥 몇 끼 먹고 나면 그는 어김없이 다시 산속 오두막으로 돌아온다. 갈 곳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달리 가고 싶은 곳도 없기 때문이다. 그가 이 산속에서의 일상과 주변의 자연환경에 대한 단상을 담은 산방(山房)일기 '꽃이 진다 꽃이 핀다'(호미)를 펴냈다.
꽃 한 송이, 벌레 한 마리에도 마음을 쓰는 시인의 삶이 손에 잡힐 듯 그려져 있다. 추운 겨울에 시인은 따뜻한 방안으로 창호지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거미를 발견하고 속삭인다. 이 겨울에 네 먹잇감이 될 만한 날벌레도 있을 리 없고 먹을 것도 없는데 겨울잠이나 자지 않고 왜 깨어나 추위에 떠는 것이냐고.
시인은 쓸어 담아서 밖으로 쫓아낼까 생각하다가 "그래 너도 따뜻한 방이 그리웠겠지"라고 되뇌이며 그냥 눈을 돌린다. 제비가 찾아온다는 삼월 삼짇날 무렵 마당 눈속에서 피어나는 노란 복수초꽃이 절정을 이룰 때, 꽃잎을 치마처럼 뒤집어 쓰고 피어나는 얼레지꽃을 보면 시인은 행복해진다.
봄비가 내리면 메마른 마음을 서로 적시며 나누지 못한 지난 일들과, 서릿발 같은 찬바람으로 대하던 만남의 인연들을 떠올리기도 한다. 떠오르는 일마다 다 마음에 걸리는 것들이 많아서 "어찌도 그렇게 마음의 분별을 가리며 금을 그어댔는지, 언제쯤이나 지난 일들이 이처럼 씁쓸하게 마음에 매이지 않을 것인지" 후회한다.
이렇게 여린 마음의 시인이 산속에서 홀로 살아간다고 부러워 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는 속 모르는 소리라고 투덜거린다. 집 주변을 알짱거리며 돌아다니는 뭇 짐승들에게 얼마나 눈치를 보고 사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그가 산속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담은 이 산방일기를 넘기다 보면 읽는이들의 마음도 저절로 맑아진다.
그리하여 잠시라도 저 시인처럼 살고 싶다는 갈망을 가질 법하다. 그러나 정작 모악산 그의 오두막에 가보면 다부지게 마음을 비우지 않고서는 누구나 흉내낼 수 없는 삶임을 금방 직감하게 된다. 쓰러져가는 누옥(陋屋)에서 고독을 견디며 하루치의 양식만으로 버티어가는 삶이란, 세속 도시의 욕망에 찌든 이들에겐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 조용호 기자(2002-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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