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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8:16-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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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
인생에 꼭 있어야 할 2가지 (누가복음 8장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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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목사님이 고등학교 3학년 때 경험한 일입니다. 하루는 늦게 일어나 지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짜증을 냈습니다. 그 전날 밤늦게까지 공부하면서 자기 전에 잠깐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때까지 무슨 문제로 심각히 고민하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밤늦게까지 기도하다가 깜빡 잠들었을 것이란 사실을 알면서도 늦게 일어나고 아침도 준비되지 않은 것을 보고 그는 벌컥 화를 냈습니다.
어머니는 미안해하면서 급히 아들 도시락을 쌌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도 그는 그냥 집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버스를 타려고 정거장에 서 있는데 어머니가 정거장까지 따라오셨습니다. 급히 나오느라 어머니의 머리도 엉망이고 옷차림도 엉망이었습니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그 모습을 남에게 보이기 싫어서 그는 어머니가 주는 도시락을 뿌리치며 차에 올라탔습니다.
얼마 후, 어머니는 이혼동의서에 서명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때 어머니가 밤늦게 기도했던 것은 바로 그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철없는 아들은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기분 때문에 어머니의 마음에 대못을 박은 것입니다. 그래도 홀로 되신 어머니는 못된 철부지 자식을 끝까지 사랑해주셨습니다. 그 어머니의 사랑을 배워 이제는 자신이 사랑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살면서 특히 3가지를 잘하십시오. 첫째는 ‘아는 것’이고 둘째는 ‘이해하는 것’이고 셋째는 ‘사랑하는 것’입니다. 대개 보면 알지 못해서 오해가 생깁니다. 그래서 알려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알려고 해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이해하려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혹시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있어도 사랑하려고 해야 합니다. 사랑하면 사랑 받는 사람도 좋지만 사랑하는 자신의 영혼도 풍성해집니다. 본문은 이 사실을 역설적으로 잘 보여줍니다.
< 사랑으로 세우는 정의 >
본문 16절 말씀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은 빛과 진리를 감추지 말고 드러내라는 말씀입니다. 계속해서 본문 17절 말씀을 보십시오.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이 말씀은 진리는 반드시 드러난다는 말씀입니다.
살면서 선한 일이 드러나지 않아도 너무 낙심하지 마십시오. 선과 진실과 땀은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요새 사람들은 진실하면 손해 보고 망할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국 진실은 승리합니다. 그러나 진실하게 살기를 힘쓸 때 아주 주의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진실하게 산다는 것에 대한 강한 프라이드가 남에 대한 습관성 비판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이 없게 해야 합니다.
본문 18절 말씀 전반부를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무슨 말입니까? 이 말씀과 똑같은 문맥인 마가복음 4장 24절 말씀을 보십시오. “또 가라사대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여기까지는 같습니다. 그러나 뒷부분에 이런 말씀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요 또 더 받으리니.” 이 말씀은 “판단하면 판단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결국 판단을 조심하라는 말씀입니다.
요새 교회의 문제가 많습니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래도 비판이 너무 지나치면 안 됩니다. 또한 비판할 때도 항상 자기 성찰부터 먼저 해야 합니다. 이 시대에 정말로 필요한 사람은 문제를 잘 나열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실 문제를 못 찾고 비판을 못해서 망하는 것이 아니라 대안을 찾고 그것을 위해 땀 흘리는 사람이 없기에 망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좋고 진리를 안다는 것을 말로만 과시하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나라가 잘되려면 무실역행(務實力行)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책무를 다하면서(무), 실속 있게(실), 힘써서(역), 행하라(행).” 그것이 바로 무실역행입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술자리에서 한을 품고 일본의 만행을 고발하며 탁상공론만 했습니다. 그처럼 원수를 욕하는데 너무 시간을 쓰지 말고 힘써 자신을 준비시키자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파헤치고 분노하는 것보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실질적인 노력입니다.
자녀들이 싸울 때 부모가 그 이유를 물으면 서로 책임을 떠넘깁니다. 서로 상대방이 먼저 잘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때 부모는 무엇을 원합니까? “책임의 소재가 누구에게 있느냐?”를 아는 것보다 “누가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미느냐?”를 더 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도 책임소재를 잘 밝히는 사람보다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을 더 원하십니다. 진짜 정의는 ‘파멸시키는 정의’가 아니라 ‘사랑으로 세우는 정의’입니다.
영화 미션을 보면 가브리엘과 멘도사란 두 명의 선교사가 나옵니다. 그들은 오지의 과라니 족에게 예수님의 사랑과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자 그 종족이 모두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때 포르트갈 군인들이 그곳까지 쳐들어옵니다. 어떻게 대응할까를 고민할 때 두 선교사의 의견이 갈렸습니다. 멘도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의의 이름으로 맞서 싸웁시다!” 그때 가브리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맡깁시다! 만약 힘이 정의를 실현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있을 자리는 어디입니까?”
힘을 기르십시오. 그러나 그저 원수를 갚으려고 기르지 말고 원수를 죽일 충분한 힘이 있어도 용서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기르십시오. 그처럼 항상 사랑이 있을 자리를 마련하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역사를 체험할 것입니다. 이제 누군가를 너무 비판하지 마십시오. 앞으로 하나님이 그를 어떻게 쓸지 그 미래의 가능성은 누구도 모릅니다. 남을 비판하기보다 내가 먼저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 율법주의자들은 ‘옳은 것’에 지나치게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옳은 것(what is right)’이 반드시 ‘선한 것(what is good)’은 아닙니다. 바리새인들은 문둥병자가 마을에 들어오면 율법대로 돌을 던져 쫓아냈습니다. 그것은 마을 사람들의 건강을 위한다는 명목으로는 일종의 옳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 옳은 일은 한 가련한 영혼을 파괴하는 악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옳은 일에만 관심을 가지면 악한 일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 인생에 꼭 있어야 할 2가지 >
옳은 행동만 가지고 판단하면 누가 바리새인들을 따르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그 옳은 행동으로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결국 옳은 일에 사랑이 뒤따르지 않으면 불행을 낳습니다. 본문 18절 후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주님 말씀은 ‘목적어’가 없습니다. 그 목적어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인생에서 꼭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 시간에 2가지만 살펴볼까요?
1. 사랑
본문 18절 후반부 말씀의 목적어를 ‘사랑’이라고 하면 이 구절은 이런 말씀이 됩니다. “누구든지 사랑이 있는 자는 풍성하게 받겠고 사랑이 없는 자는 더 가난해지고 비참해진다.” 얼마나 맞는 진리입니까?
어느 날, 한 분이 오른쪽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2달 동안 기브스를 한 후 기브스를 풀었습니다. 그러자 오른쪽 다리가 왼쪽 다리의 절반 만해졌습니다. 그리고 오른쪽 다리를 구부리려고 하자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습니다. 반면에 그 동안 왼쪽 다리는 더 튼튼해졌습니다. 오른쪽 다리의 일까지 맡았기 때문입니다. 어디에 가든지 부러져 허약해진 다리가 되지 말고 섬기며 튼튼해진 다리가 되십시오. 성도의 주된 관심사는 항상 십자가의 사랑에 있어야 합니다.
살다 보면 꼴 보기 싫은 사람을 만납니다. 그러면 같이 있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사랑을 가지고 나가면 충분히 같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몇 년 동안 잘 지내다가 나중에는 “그 사람과는 절대 못살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사단과는 짝해서 잘 사는 경우를 봅니다. 그처럼 ‘사단’과는 잘 살면서 왜 ‘사람’과는 절대 못삽니까? 자기감정으로는 못 살아도 십자가의 사랑을 앞세우면 누구와도 잘 살 수 있습니다.
세상을 움직이기 전에 자기를 먼저 움직이십시오! 남을 움직이기 전에 자신을 먼저 움직이십시오. 누구 때문에 못살겠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부터 극복하십시오. 자세히 보면 자신 때문에 힘들어질 때도 상당히 많습니다. 사실 남을 잘 고치는 사람이 성공과 행복을 얻기보다는 자신을 잘 고치는 사람이 성공과 행복을 얻습니다. 남을 고치겠다는 마음이 강하면 대개 상처와 고통만 커집니다.
옛날에 한 똑똑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송아지 한 마리를 샀습니다. 대개 소는 소뿔에 의해 품질이 좌우되는데 이 송아지가 뿔이 잘 안 났습니다. 그래서 송아지를 붙들어 매고 매일 그 뿔을 때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송아지가 잔매에 지쳐서 결국 죽었습니다. 소뿔을 바로 잡으려다가 소를 잡은 것입니다. 그처럼 소뿔을 바로 잡겠다고 하다가 죽은 교회나 죽은 가정이 얼마나 많습니까?
옛날에 각 집마다 빈대가 많았습니다. 불을 갑자기 키면 빈대가 벽을 타고 쭉 올라갑니다. 그런 장면을 보면 보기만 해도 몸이 가렵고 약이 오릅니다. 그때 성격이 급한 어떤 사람이 빈대와의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빈대를 기필코 말살하고야 말겠다고 홧김에 초가집에 불을 질렀습니다. 그때 생겨난 속담이 이런 속담입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 사자성어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소탐대실(小貪大失).”
살다 보면 우리를 약 올리는 빈대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 빈대를 잡겠다고 집에 불을 내지 마십시오. 이 세상에 100% 불행한 사람도 없고 100% 행복한 사람도 없습니다. 또한 100% 장점만 가진 사람도 없고 100% 단점만 가진 사람도 없습니다. 이제 소뿔을 잡으려다가 소를 잡지 마십시오. 지나치게 소뿔을 잡으려고 하면 결국은 자신이 그 소뿔에 받쳐 죽게 됩니다. 반면에 사랑으로 섬겨주면 그 사랑의 열매와 축복이 자신에게도 주어집니다.
항상 영적 부메랑의 법칙을 잊지 마십시오. 사랑을 주면 다른 많은 축복들이 따라옵니다. 최고의 치료약은 사랑약입니다. 사랑은 영혼의 병도 치료하고, 정신의 병도 치료하고, 육신의 병도 치료합니다. 일본의 한 유명한 정신병원의 현판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말은 하지 말고 따뜻한 눈빛을 주세요.” 백 마디의 말보다 따뜻한 사랑의 눈빛이 더 소중합니다. 사랑할 줄 알고 사랑 때문에 대가를 치를 줄 아는 태도가 자신을 위대하게 만드는 분수령입니다.
마태복음 7장 12절 말씀을 보면 황금률이란 별명이 붙은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높임을 받으려면 높여주십시오. 칭찬을 받으려면 칭찬해주십시오. 사랑을 받으려면 사랑해주십시오. 사랑스런 사람을 만나면 사랑으로 섬겨주고 원수 같은 사람을 만나면 사랑으로 복수하십시오. 그러면 행복과 축복은 결코 그의 곁을 결코 비껴가지 않을 것입니다.
2. 비전
본문 18절 후반부 말씀의 목적어를 ‘비전’이라고 하면 그 말씀은 이런 말씀이 됩니다. “누구든지 비전이 있는 자는 풍성하게 받겠고 비전이 없는 자는 더 가난해지고 비참해진다.” 이 진리도 얼마나 맞는 진리입니까?
하나님은 작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몇 십 년 동안 한 곳에 머물러 있는 것을 결코 기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전진과 발전에 대해 대단히 관심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의 계획보다 훨씬 크고 이제까지 주신 것보다 훨씬 더 큰 것을 주시려고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거룩한 꿈과 비전을 가질 때 하나님은 성공을 위한 기회도 주시고 인맥도 주실 것입니다. 더 나아가 지혜와 리더십과 통찰력과 번뜩이는 아이디어도 주실 것입니다.
어느 날, 한 경찰에게 갑자기 어떤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시민들의 안전을 지켜줄 수 있는 안전장치에 대한 아이디어였습니다. 그는 전문 기술자도 아니었는데 그런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전장치의 저작권을 보안회사에 팔아 8백만 불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번뜩이는 아이디어 하나로 엄청난 돈을 번 것입니다. 거룩한 비전만 잃지 않으면 하나님이 그런 번뜩이는 아이디어도 주실 것입니다.
지금 현재의 위치나 모습에 그냥 머물러 있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한 훨씬 큰 축복의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믿으십시오. 자신에게 신기한 축복의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에게도 그런 신기한 축복의 길이 없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생각을 키우고 비전을 키우십시오.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기대하고 큰 꿈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 이루지 못할 꿈은 없습니다.
지난 세월을 보십시오.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까? 어떻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리에 있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같이 부족한 사람을 여기까지 이끄셨습니다. 그 은혜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생각과 상상을 초월한 큰 축복의 장으로 우리를 이끄실 것입니다.
성경 인물 중에 축복기도의 대명사와 같은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야베스입니다. 그는 너무 어렵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그는 하나님이 한 번만 터치하시면 얼마든지 과거의 무수한 상처와 고통이 씻길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담대하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의 지경을 넓혀주시고 저를 축복하소서!” 그때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이제 야베스처럼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지난 힘든 세월로 인해 제가 꿈과 비전을 잃지 않게 하소서! 지금까지도 은혜로 살려주시고 살펴주시고 필요한 것을 채워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이 모습에서 머물기를 원치 않습니다. 제게 큰 꿈과 비전을 새롭게 주시고 큰 생각을 하게 하시고 큰 은혜를 베풀어주소서!”
우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축복을 구하십시오. 그리고 축복을 구할 때 이렇게 작게 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손님 몇 명을 더 보내주세요. 하나님! 주일에 몇 사람을 더 보내주세요. 하나님! 월급을 조금 더 받게 해주세요.” 그런 소심한 기도제목만 계속 나열하면 마치 하나님까지 작아지는 느낌입니다.
물론 작은 것에 만족하며 감사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구할 때는 크게 구하십시오. “하나님! 저희 사업체가 크게 번성해 전국 각지에 소문나게 하소서! 하나님! 저희 제단이 한국 사회에 큰 영향력을 끼치는 제단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 5600여명의 온라인 새벽기도 성도들 중에서도 저희의 선교비전에 동참하는 거룩한 큰손들이 많이 일어나게 하소서! 하나님! 성경 66권 전체 설교파일을 완성하고 그것을 영어로까지 번역 출간하는 기독교사의 역사적인 대업을 이루기 위한 거룩한 후원자들을 붙여주소서!”
저는 하루 새벽설교 한 편을 준비하려면 평균 6시간이 걸립니다. 주일설교 한 편을 준비하려면 평균 20시간이 걸립니다. 그렇게 꾸준히 준비하면서 지금까지 33개의 설교파일을 완성했습니다. 이제는 성경 66권 전체 설교파일 완성이란 역사적인 대업의 순간이 그렇게 멀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비록 설교는 제가 작성해도 출판, 보급, 영문 번역, 영문 번역 출판, 관리 등을 위해서는 많은 인력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 원대한 비전을 주신 하나님이 후원자도 이미 예비하시고 조만간 만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얼마나 가슴 벅찬 비전입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길 원하면 크게 믿고, 크게 생각하고, 크게 기대하고, 크게 구하고, 크게 행동하십시오.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께 놀라운 창조력을 구하십시오. 그리고 매일 아침 일어나서 이렇게 선포하며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게 큰일을 허락하소서! 제게 누구도 생각지 못한 기발하고 번뜩이는 지혜를 주시고 축복을 나눠주는 축복의 근원이 되게 하소서! 그래서 보다 많이 선교하게 하소서!”
세상은 자꾸 우리를 후퇴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꾸 우리를 전진시키려고 합니다. 육적인 생각은 우리의 선한 발걸음을 더디게 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생각은 우리의 선한 발걸음을 재촉하게 합니다. 사단은 어떻게든 우리의 전진을 봉쇄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떻게든 우리의 지경을 확장시키려고 합니다. 그런 전진과 확장과 새로운 축복의 장으로 이끌려고 하나님이 이 시간에도 이 말씀을 듣게 하신 줄 믿습니다.
< 천 배의 축복을 꿈꾸십시오 >
이제 생각 단계부터 작아지지 마십시오. 사람이 패배하는 첫 단계는 생각에서 패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각할 때부터 패배하지 마십시오. “나는 성공할 수 없다. 여기까지가 내 한계다. 나는 빚을 청산할 수 없다. 나는 인물이 될 수 없다.” 그런 불행한 생각들을 버리십시오. 대신 이런 행복한 생각을 하십시오. “조만간 내게는 최고의 인맥이 형성될 것이다. 나는 월가를 움직이는 최고의 사업가가 될 수 있다. 나는 UN을 비롯한 세계기구를 넘나드는 최고의 국제통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폭발적인 축복을 주기를 원하십니다. 그 폭발적인 축복을 구하십시오. 어떤 사람은 인생이 그저 잘 지탱되기만을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인생이 최고로 행복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가계의 한 달 생활에 적자가 없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풍성한 물질적인 축복을 받고 그 축복이 이웃으로 넘쳐흐르기를 원합니다. 이 시간에 하나님께 천 배의 기쁨, 천배의 행복, 천 배의 지혜를 구하십시오. 그리고 천 배의 축복을 얻는 축복을 새롭게 꿈꾸십시오.
아프리카 콩고에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가 사는 마을은 너무 가난했습니다. 인근 병원으로 가려면 150킬로미터 이상을 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쉽게 나을 수 있는 병도 응급조치를 못해서 죽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렇게 죽는 모습을 보면서 그 소년은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마음을 보시고 하나님은 그 소년에게 큰 현대식 병원을 세우는 비전을 주셨습니다.
그 비전은 성취가 거의 불가능한 비전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너무나 가난했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그 소년에게는 한 가지 남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을 축복의 하나님으로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축복의 하나님께 담대하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곳에 큰 병원을 세우게 도와주세요!”
그렇게 기도하면서부터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꿈이 커지면서 키까지 커졌습니다. 그때부터 그의 키가 사정없이 마구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190센티가 넘고, 200센티가 넘고, 210센티가 넘고, 마침내 216센티미터까지 자랐습니다.
어느 날, 그는 하나님의 신기한 도우심으로 미국 조지타운 대학 프리메디컬(Pre-Medical) 스쿨에 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의 꿈은 의사가 되어 귀국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대학교 2학년 때 그 대학의 농구코치가 캠퍼스에서 그를 보고 농구 팀에 들어오라고 권고했습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농구에 입문해서 마침내 미국 프로 농구의 최고의 스타플레이어가 되었습니다. 그가 디켐베 무톰보(Dikembe Mutombo)란 선수입니다.
나중에 그가 자기 고향 마을에 병원을 세우는데 1500만 달러를 기증합니다. 그의 동료들도 그 일에 함께 동참했습니다. 그렇게 마련한 3천만 달러로 그가 살던 마을에 큰 현대식 병원을 세웠습니다. 마침내 그의 거룩한 비전이 이뤄진 것입니다.
그런 비전성취의 역사가 여러분에게도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축복된 삶을 위해서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마십시오. 거룩한 꿈과 비전은 반드시 이뤄집니다. 정말 그렇다면 이제 큰 꿈과 비전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예수 믿고 인물 되는 역사의 주인공을 꿈꾸십시오. 그래서 큰 축복을 받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전해주는 복의 근원이 되십시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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