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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고후8: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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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
고린도후서(31) 은혜 받은 자, 은혜 받을 자 (고후 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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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몽골에서 선교사역을 하시는 임병철 선교사님은 저의 신학교 동기 목사님입니다. 1993년, 그분은 선교의 열정을 가지고 괌 아래의 축(Chuuk)이란 섬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독일의 리벤젤 선교회에서 세운 신학교에서 원주민 신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냉장고도 없는 그곳에서 더위와 싸우며 3년 동안 선교할 때, 다른 가족도 고생했지만 선교사님의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습니다. 의사들은 얼마 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결국 1996년에 임병철 목사님은 자신이 살던 뉴욕으로 돌아와 요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요양 중에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점차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교회는 많이 부흥하지 못했지만 그 작은 교회가 많은 선교를 하고 많은 이웃을 도왔습니다. 제가 분당에서 처음 개척교회를 할 때 임 목사님의 교회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선교에 구제에 뜻을 세우고 그 거룩한 일에 힘쓰자 하나님이 그 교회에 선교할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특별히 교회에 속한 많은 가정들을 크게 축복했습니다. 그래서 임 목사님이 건강을 회복하고 다시 몽골 선교사로 떠나기 직전에 그 교회의 각 가정 당 매년 평균 헌금이 5만 불(5천 5백만 원)이었습니다. 한 가정 당 일 년 평균 수입이 50만 불이었다는 말입니다.
당시 교회를 섬길 때 임병철 목사님은 거의 매일 성도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에 단순한 밀리어네어(백만장자)가 아닌 멀티-밀리어네어가 많이 나오게 하소서! 그래서 지혜롭고 멋지게 이웃을 위해 쓸 줄 아는 본보기의 교회와 성도가 되게 하소서.” 그렇게 목사님이 기도하며 선교를 강조하자 모든 성도들이 선교의 꿈을 가지고 열심히 벌었고 하나님은 그들의 거룩한 꿈이 이뤄지도록 확실히 밀어주셨습니다.
당시 목사님이 섬기는 교회의 교인 숫자는 몇 십 명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작았지만 그 작은 교회가 어떤 교회보다 선교와 구제를 많이 했습니다. 그렇게 후방에서 열심히 선교후원을 하다가 건강을 회복한 후에는 선교의 열정을 참지 못하고 섬기던 교회를 사임하고 2002년 몽골 선교사로 가게 된 것입니다. 그처럼 선교의 열정을 가진 심령을 하나님은 축복 대열의 주인공으로 삼아주실 것입니다.
< 은혜 받은 자, 은혜 받을 자 >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남을 힘써 돕는 한 교회를 소개합니다. 그 교회는 바로 마게도냐 교회입니다.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사도 바울은 마게도냐 교회들에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고린도교회에 소개합니다. 마게도냐 교회들에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입니까?
본문 2절 말씀을 보십시오.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이 구절에서 ‘연보’란 뜻을 가진 헬라어 ‘하플로데스’는 ‘보상을 바라지 않는 사랑의 선교헌금’을 뜻합니다. 즉 마게도냐 교회들이 어려움 중에도 기쁨으로 큰 선교헌금을 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말입니다. 이 말의 의미를 보다 잘 이해하려면 당시의 배경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 큰 흉년이 들어 이스라엘 교회가 큰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마게도냐 교회들은 자신들도 어렵지만 막대한 헌금을 거두어 이스라엘 교회로 보냈습니다. 반면에 그리스 최대의 항구도시로 부자들이 많았던 고린도교회는 잠잠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시골의 작은 교회가 열심히 선교하는데 분당의 큰 교회가 잠잠했다는 말입니다. 그 얘기를 하면서 사도 바울은 마게도냐 교인들의 행위가 바로 ‘은혜’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은혜의 참 의미를 깨닫습니다. 사람들은 ‘은혜’라고 하면 ‘받는 것’을 연상하지만 본문에서는 ‘주는 것’이 은혜라고 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은혜는 ‘물질 유무’와는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물질이 없어도 열심히 주는 삶을 실천하면 그것이 바로 은혜 받은 삶입니다. 어떤 분은 “나는 줄 것이 없어요!”라고 하면서 주는 삶에 나서지 않지만 사실 그것은 ‘줄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은혜가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받을 것이 없을 만큼의 부자’도 없지만 ‘줄 것이 없을 만큼의 가난한 자’도 없습니다. 줄 것이 부족할 때 주는 삶에 나서면 몸은 힘들지만 영혼은 더 맑아지고 행복해집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믿고 천국을 믿는 삶입니다. 만약 ‘주는 은혜’를 외면하면서 천국을 소망한다면 누가 그 믿음을 참된 믿음으로 보겠습니까? ‘삶의 전도’를 ‘말의 전도’보다 앞세우십시오. 어떤 분은 가진 것이 적어도 열심히 남을 돕습니다. 얼마나 매력적인 모습입니까? 그 모습이 바로 ‘은혜 받은 자’의 모습이고 ‘은혜 받을 자’의 모습입니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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