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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혜령의 <아름다움은 빛날 뿐> 를 읽다.

매일 한편씩 읽을 수 있도록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 편집된 오혜령 전도사의 영성 기도 묵상집 <강여울 풀씨처럼> 세번째 책을 읽었다.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기 전 먼저 기도하는 마음으로 매일 한편씩 묵상하면서 읽었다.
차 한잔 마시고 일과를 시작하면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처럼, 이 한편의 기도문을 읽고 일과를 시작하니 마치 영혼이 차를 마신 것처럼 차분해지고 밝아져서 참 좋다.
1년 12권 시리이즈로 되어 있고 한 달에 한 권씩 읽게 되어 있는 책이다.
3월 31일 날짜의 기도문 한편을 쳤다. ⓒ최용우

□ 네 아우, 아벨은 어디에

당신께서 자주 물으시는 말씀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이것은 언제나 저의 화두가 됩니다. 하나님
저는 가인처럼 아우를 사랑하지 못하여,
저는 가인처럼 샘이 많아서,
저는 가인처럼 화를 잘 내기 때문에,
이 말씀만 들려오면 몸이 벌벌 떨립니다.
형제에 대한 인간적 책임을 물으시는
당신의 절박한 질문에
저는 유구무언입니다.
“네 형제가 어디 있느냐?” 이 물음은
“너와 함께 네 형제 있느냐?” 라는 뜻이죠?
어디를 가든지 함께 갈 수 있고
무엇을 하든지 함께 협력할 수 있느냐고
물으시는 것이죠?
사람은 혼자 살수가 없으므로
언제나 형제의 도움을 필요로 하며
항상 형제를 도와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불목하지 않고 화목하냐고 물으실 때는
마음 속에 증오나 원한이
도사리고 있지 않느냐고 꼬집으시는 것 같습니다.
형제와 함께 일할 때
겉뿐만 아니라 속으로도 서로 형제임을
나타내라 시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될까요?
하나님,
이제부터 형제와
함께 있으려고 애쓰겠습니다.

“네 형제가 어디 있느냐?” 물으실 때는
“네 형제의 선을 기뻐하느냐?”는 의미로
이해하면 되나요?
형제의 선을 기뻐하며
형제의 장점을 먼저 보고
그가 잘 되기만을 바라고 싶습니다.
당신께서 아벨을 칭찬하시면
그것을 기뻐하며
당신께서 반기시는 예물을
어떻게 드렸는지 물어보고
자기도 그렇게 해야 하겠다고
생각했어야 하지요
기본적인 형제애마저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을 나무라시는 말씀을
명심하겠습니다.
형제의 악을 기뻐하는
악한 성향에서 벗어나
형제의 선을 기뻐하려고 힘쓰겠습니다.

“네 형제가 어디 있느냐?” 물으신 것은
‘너’와 ‘나’의 분리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지요?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와
언제나 탓을 너에게 돌리는 것이
바로 죄의 핵심임을 일깨워주십니다.
만일 가인이 ‘너’와 ‘나’를
분리하지만 않았더라도
또 ‘나’에게서 ‘너’에게로 조금만 건너갔더라도
그런 비극은 생기지 않았겠지요.
공동체의식을 가지고
공동운명을 느끼라시는 말씀으로도 해석됩니다.
먼저 공감대가 형성되며
형제가 하는 일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해 주십시오
무심하거나 무정한 사람은
전혀 공동체성이 없는 사람이니까요
남의 일을 상관하지 않는 것은
사랑이 없다는 증거임을
지적해주고 계십니다.
이제 저는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
라고 물으시면
“예, 하나님 바로 제 옆에 있습니다.”
라고 대답할 수 있도록
사랑을 연습하겠습니다.
사랑을 배우겠습니다.
사랑을 실천하려고
온갖 힘을 다 기울이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