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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라, 그리고 내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

시편 이정수 목사............... 조회 수 2859 추천 수 0 2011.07.20 17:32:03
.........
성경본문 : 시46:1-10 
설교자 : 이정수 목사 
참고 : 말씀의샘물교회 http://www.wordspring.net 

멈추라, 그리고 내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1)
본문/ 시46:1-10

1. 들어가는 이야기

   2010년 11월 23일, 靑天白日(청천백일) 대낮에 북한군의 무차별 기습 폭격으로 연평도의 민간인-해병대 병사-주택-군사 시설-전기-통신-공공시설이 파괴되는 참사가 발생하였습니다. 연평도 포격이 있던 그 시간에 나는 양평 정배리 집에서 백유용-임병근-백한철 목사님들과 차를 마시고 있었는데, 임병근 목사님의 손녀가 전화로 “할아버지, 어디 있어? 전쟁났어! 할아버지, 우리랑 못 마나면 어떻게 해! 빨리 와!” 라고 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순간, “실제 상황일는지 모른다!” 하는 긴장과 두려움이 우리들 온 몸을 날카롭게 훑고 지나갔습니다!  

대통령은 국방장관을 전격 경질하고 민심 수습에 나서고 있지만, 한반도에서 언제 어디서 북한군의 산발적 국지전 도발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가능성에 우리 모두 불안을 떨쳐 버릴 수 없는 상황입니다.

2. 본문 시편46편의 상황
본문은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을 거론 하고 있지 않으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주변의 가나안의 여러 족속, 아람, 다메섹, 앗시리아, 바벨론 등의 나라들과 치룬 수많은 전쟁 상황 중 하나였으리라 생각됩니다. 본문은 크나 작으나 일단 “전쟁!”을 만난 사람들의 극심한 공포-두려움-불안한 마음을 “땅이 변하고, 산이 흔들려 바다에 빠지고, 바닷물이 흉용하여 뛰놀며,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 하는 것과 같다!” 고 하신 것입니다(시46:1-3).

이번 북한군의 무차별 기습 포격을 당한 연평도 민간인-군인의 마음은 말 할 것도 없고, 이 소식을 들은 대한민국 모든 국민의 마음도 땅이 변하고 바닷물이 흉용하여 넘치는 듯한 공포와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할아버지, 어디 있어? 전쟁 났어! 할아버지, 우리랑 못 만나면 어떻게 해, 빨리 와!” 라고 한 5살 먹은 어린아이의 공포가 곧 우리들의 공포였습니다. 아니 그러합니까?

이 처럼 무시무시한 전쟁에 맞닥뜨린 사람들에게 시편 기자는 단 한 마디 시편46편 10절 말씀을 선포합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개역성경)
너희는 멈추라, 내가 하느님인 줄 알아라(공동번역)
爾當休息  當知惟我爲上帝(이당휴식 당지유아위상제)
Let be then:learn that I am God, high over the nations, high above earth.
Be still, and know that I am God(NIV)

3. “멈추라, 그리고 내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 무슨 뜻입니까?

첫째. 땅이 흔들리고 바닷물이 흉용하여 그 물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하는 것과 같은 실제 전쟁 상황이면 누구나 극심한 공포와 두려움에 공황 상태가 되는 것이 당연 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 너희는 “멈추라=가만히 있으라=爾當休息(이당휴식-마땅히 숨을 천천히 쉬어라)=Let be then(평상심으로 그대로 있으라)=Be still(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요하라-침묵하라)하라. 그리고 내가 하나님 됨을 알라는 것입니다.

(1) 전쟁으로 백성의 마음이 삼림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 같이 되었을 때 이사야는 “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정녕히 굳게 저지 못하리라(사7:1-9)” 하셨습니다.

(2) 엘리야가 호렙산에서 “크고 강한 바람-큰 지진-큰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시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더라(왕상19:12)”.

(3) 예수님이 “광풍에게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 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막           4:35-41)” 하셨습니다. 이 모든 말씀과 궤를 같이 하는 말씀입니다.

둘째. 극심한 공황 상태에서 벗어나 살 수 있는 길은 우선 “멈추어, 숨을 천천히 쉬면서, 고요한 가운데 침묵하여야” 상황을 직시하고, 지금 맞닥뜨린 죽음의 위협을 극복 할 수 있는 길을 하나님께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 구원이든, 물리적 구원이든, 구원은 하나님의 일방 통행적 기적이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과 사람의 쌍방 통행의 결과입니다.

공포와 두려움에 질려 “사람 살려!” 하는 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덫에 걸린 짐승의  斷末魔(단말마)의 부르짖음일 뿐입니다. 기도는 비록 두려운 감정이 있지마는 분명한 자신의 의지적 의식으로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과 대화 하는 것입니다. 즉, 사람이 하나님께 간절히 구원을 구하고, 하나님은 사람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 하시어 하나님의 권능-지혜-생기-능력-은혜를 부어주심으로 죽음의 자리에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하기 위하여, 먼저 피눈물을 흘리면서라도-억지로라도-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 주소서 라고 부르짖으며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에 맞서야 합니다. 그 맞섬이 바로 멈춤이며, 고요함이며, 평상심을 되찾는 것이며, 침묵이며,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셋째. 어찌 북한군의 연평도 무차별 기습 폭격 뿐이겠습니까? 우리 각 사람의 실존적 살림살이 역시 그러합니다. 폭격 맞아 죽은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서 땅이 흔들리고 바닷물이 흉용하여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하는 것과 같은 삶의 질곡으로, 방황-고통-우울증-자포자기-자살-심지어 집단 자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먼저, 멈추어, 하나님의 하나님 됨을 알아야 합니다.

멈추라, 그리고 내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2)
본문/ 시46:1-10

1. 들어가는 이야기
   오늘 우리는 “멈추라, 그리고 내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시46:10)” 라고 하신 말씀 가운데 “하나님 됨을 앎(know that I am God)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묵상하는 가운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2.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느끼고-체험하고-아는 것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사람은 十人十色-백인백색-천인천색-만인만색입니다. 사람마다 성격-감정-사상적 경향-국가관-가치관-인생관-역사관-종교관-관심-음식-취미-건강 상태-사회적 경제적 환경이 다릅니다. 사람마다 四端七情(사단칠정-불쌍히 여기는 마음, 수치를 느끼는 마음,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마음, 양보하는 마음, 기쁨, 노여움, 슬픔, 미움, 두려움, 사랑, 욕망)을 느끼는 강도와 표현 방법도 다 다릅니다.

성경을 보면 도처에서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출3:6, 4:5, 마22:32, 막12:26, 행3:13)” 하신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왜,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에서 끝나지 않고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삭의 하나님-야곱의 하나님” 이라 하셨는가? 여기의 말씀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다르고, 이삭의 하나님 다르고, 야곱의 하나님이 달랐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한 분 하나님이시로되, 그 하나님을 만나고-느끼고-체험하고-아는 것이 각 사람마다 조금씩 달랐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즉,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나의 방패 되신 분-the Shield of Abraham(창15:1)”으로, 이삭은 하나님을 “크고 두려우신 분-the Fear of Isaac(창31:42)”으로, 야곱은 하나님을 “나의 전능하신 분-the Mighty One of Jacob(창49:24)”으로 느끼고, 체험하였다는 말입니다.

또한 성경에는 각 사람(혹은 신앙 공동체)이 자기 자신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과 하나님의 현존을 보고-느끼고-체험하고-깨닫고-알게 된 것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엘 솨다이(El Shaddai, 높은 산 위에 계신 하나님, 창17:1)
엘 벧엘(El Bethel, 벧엘의 하나님, 창31:12)
엘 엘리욘(El Elyon,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창14:18-20)
엘 올람(El Olam, 영원하신 하나님, 창21:33)
엘 로이(El Roi, 감찰하시는 하나님, 창16:13)
여호와 이레(창22:14)
여호와 라파(출15:26)
여호와 닛시(출17:15)
여호와 샬롬(삿6:26)
여호와 로에(시23:1)
여호아 치드케누(우리의 義 되신 하나님 렘23:6)
여호와  삼마(우리의 현실과 위기 속에 함께 가시는 하나님 겔48:35)
하나님 나라(막1:15)
아빠 아버지(롬8:15) 등.

참고: Understand The Old Testment, B. W. Anderson, 41-45.  

3. 사람은 어떻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아는가?

첫째. 사람은 천지만물을 보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알 수 있습니다. 廣漠(광막)한 우주의 巨視世界(거시세계-천체의 오묘한 운행-초록별 지구가 연출하는 천지자연의 아름다움)과 玄妙(현묘)한 微視世界(미시세계-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미생물의 세계-원자, 양자, 중성자의 비밀한 세계), 그리고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신비를 볼 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둘째. 사람은 생물학적으로 生老病死(생로병사)-심리적으로 갖가지 고통과 스트레스-사회적, 경제적으로 사상 갈등, 계급투쟁, 전쟁, 무한 경쟁-영적으로 말 할 수 없이 많은 죄를 짓고 사는 제한 된 존재입니다.

苦竹林邊邊蘆葦(고죽림변변노위: 대숲 우거지고 갈대 무성한 곳)
停舟一望思無窮(정주일망사무궁: 배를 멈추고 바라보니 많은 생각이 일어난다)
靑苔撲地連春雨(청태박지연춘우: 며칠 내린 봄비로 땅 위엔 푸른 이끼 가득하고)
白浪掀天盡日風(백랑흔천진일풍: 하늘을 뒤집는 흰 파도, 종일 부는 바람!)
忽忽百年行欲半(홀홀백년행욕반: 인생 백년, 그 중 반이 어느새 흘러갔고)
茫茫萬事坐成空(망망만사좌성공: 이룬 것 하나 없이, 인생 만사 망망하기만 한데)
此生飄蕩何時定(차생표탕하시정: 정처 없는 내 인생, 안정 얻을 때는 언제인가?)
一縷鴻毛天地中(일루홍모천지중: 인생은 천지간에 저 홀로 떠도는 깃털 같구나)

천만고 영웅호걸-왕후장상-부귀문장-천하기재라도 사람은 본질적으로 천지간에 저  홀로 떠도는 기러기 깃털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셋째. 사람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부분적으로만 알 수 있을 뿐, 하나님 그 분 자체를 전부 알 수 없습니다. 우리 사람이 “하나님-스스로 있는 자-야훼-여호와” 라 이름 하여 부르는 그 이름은 하나님 자체의 이름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의 기념 칭호(호12:5)이며-여호와는 그 이름이 여호와시며(출15:3, 암4:13, 5:8)-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시는 분입니다(렘33:1).  

*모세가 하나님이 계신 암흑(the thick darkness)으로 가까이 가니라(출20:20) *하나님이 흑암으로 그 숨는 곳을 삼으사 장막같이 자기를 두르게 하심이여 곧 물의 흑암과 공중의 빽빽한 구름으로 그리하시도다(시18:11) *그 때에 솔로몬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캄캄한 데 계시겠다 말씀 하셨사오나 내가 여기 주께서 영원히 거하실 처소를 건축하였나이다(대상8:12, 대하6:1)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사45:15).

무슨 뜻인가? 부분적으로나마 하나님 그 분 자체를 만날 수 있는 길은 오직 믿음뿐임을 선언한 것입니다(롬1:17, 히11:6).

 

멈추라, 그리고 내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3)
본문/ 시46:1-10

1. 들어가는 이야기
   오늘 우리는 “멈추라, 그리고 내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시46:10)” 라고 하신 말씀 가운데 “멈추라” 하신 말씀을 좀 더 깊이 穿鑿(천착)하는 가운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멈추라!” 무슨 뜻인가? 동서고금-남녀노소-빈부귀천을 무론하고 인생을 사는 우리 모두는 개인적-가정적-사회적 역경(전쟁, 치명적 질병, 사업 실패, 인간관계의 파괴, 삶의 무의미, 경제 파탄, 등)을 만나면 두려움-고통-좌절-낙심-불안-절망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 우리는 絶體絶命(절체절명)-進退兩難(진퇴양난)으로 自暴自棄(자포자기)하기 전에, 무엇보다 우선 할 일은 “멈추라-잠잠하라-가만히 있으라-휴식하라-고요하라-침묵하라-休息(휴식)하라-Be still-Let be then-vacate-vacation” 하라는 말씀입니다.

2. 우리는 왜 멈추어야 하는가?
이 세상 모든 사람, 천하의 그 어느 누구도 人生流轉(인생유전: 인생의 끊임없는 변천)에서 “나는 예외!” 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하나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天有不側風雨 人有朝夕禍福(천유불측풍우 인유조석화복: 하늘의 비바람은 예측할 수 없고, 사람의 생사화복도 아침저녁으로 달라진다)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람은 크고 작은 역경을 만났을 때, 이게 웬 날벼락이야(놀람)-이 일을 어떻게 하나?(두려움)-왜, 하필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야?(원망)-나는 이제 再起不能(재기불능)이야!(좌절)하여, 茫然自失(망연자실)-輕擧妄動(경거망동)하다가, 더욱 악한 지경에 빠져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의 졸가리를 세우지 않고 일을 하니-일이 풀리지 않고-일이 풀리지 않으니 괴롭고 속상하여-알콜, 마약, 도박에 의지 하고-가정은 점점 더 乏絶(핍절)해가고-그러자니 날이 갈수록 “Que sera sera-케 세라 세라-Whatever will be-될 대로 되라!” 하는 악순환이 계속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런 현상을 경계하여 이르시기를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들은 나아가다가 해를 받느니라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잠22:3-4)” 하신 것입니다. 즉, 인생의 역경과 재앙을 만나거든 두렵고 불안한 마음 상태에서 자기 깜냥대로 허둥지둥 할 것이 아니라, 멈추고-숨고-침묵하고-고요하고-잠잠하여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함으로 응답을 받고 움직이라는 말씀입니다.

3. 멈추라! 그리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무엇을 기도하여야 하는가?
첫째.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잠4:19)”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 나의 죄가 무엇입니까? 내가 만난 이 역경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묻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疑今者察之古 不知來者視之往 萬事之生也 異趣理同歸 古今一也(의금자찰지고 부지래자시이왕 만사지생야 이취이동귀 고금일야: 오늘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알 수 없다면 너의 과거를 돌아보라, 내일 일을 알 수 없다면 지금 네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라. 삶의 모양은 다양하나 비롯한 곳은 모두 같으니, 옛날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다를 바 없다. 菅子)

둘째. 역경을 극복하느냐? 역경에 매몰되느냐? 하는 문제는 부모형제-친구-애인-국가 그 누구도 하나님도 대신하여 줄 수 없습니다. 결국, 나 자신 오로지! 나 자신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하나님의 은혜와 지혜를 받아...).  

사업 실패-자연 재해-인간관계의 단절(이혼, 절교, 배신,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등)-치명적 질병 등 엄청난 역경을 만나면 그 누구라도 의지-에너지-희망의 힘이 고갈되어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생물학적 힘이 없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영적-정신적 허탈-의욕상실로 말미암아 모든 의지가 마비되어 무기력에 이르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믿는 사람들은 내가 만난 역경이 아무리 가혹한 역경이라 할찌라도 눈물-피-땀-부르짖는 기도와 믿음으로 극복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막14:36)” 하심으로 십자가라는 만고의 역경을 극복하신 것입니다.

셋째. 우리가 멈추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역경을 극복하는 실마리가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성경에 보면, 엘리야가 외적으로 이세벨과 아합의 핍박-내적으로 자신의 영적 피폐함으로 인하여 로뎀나무 아래 엎드려 죽기를 간구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일어나 먹으라!” 하셨고, 엘리야가 음식을 먹고 기운을 얻어, 40주야를 걸어 호렙산에 이르러,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마지막 큰 사명을 감당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왕상19:1-18). 이것이 실마리입니다.  

(1) 매일 규칙적으로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자라.
(2) 매일 규칙적으로 운동 하라.
(3) 매일 규칙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읽고, 찬양하고, 기도 하라.

너무 쉽고, 당연하여, 우습게 들립니까?

No!, 이것이 역경 극복의 첩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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