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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잘 쓰는 비결

시인일기09-11 최용우............... 조회 수 1684 추천 수 0 2011.07.21 06: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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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우글방696】글을 잘 쓰는 비결

 

"전도사님 글은 참 쉬우면서도 읽고 나면 머릿속에 남는 게 있어요. 어떻게 그렇게 글을 재미있고 감질맛나게 잘 쓰세요. 무슨 비결이라도..."
어떤 분이 그렇게 말씀하셔서 몸둘 바를 모르고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좀 더 분발하라는 격려의 말씀으로 받겠습니다." 했더니...
"아이고... 거기다 겸손까지..."  으악!(총알맞은 것처럼...)
저도 글을 잘 쓰는 비결이라는 게 따로 있어서 좀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비결은 따로 없는 것 같습니다. 부모에게 우월한 유전자를 물려받아서 자판기만 보면 그냥 다다다다다다다닥 글이 나오는 축복받은 사람이 있는 반면, 저같은 사람은 쉬지 않고 책, 신문, 인터넷을 통해 글을 읽고 끊임없이 글을 써보고, 좋은 글을 베껴 보고, 입으로 중얼거려 보는 지독한 노력파입니다.
한가지 작은 팁(tip)이라면, 글을 쓰는 내내 글의 중심이 되는 한 단어를 생각합니다. 그러면 글이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어떤 글을 써야되겠다고 생각할 때, 스토리를 먼저 생각하면 글 쓰기가 힘들어집니다. 무엇에 대해서 써야겠다 하는 그 '무엇'에 해당하는 단어 하나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멋진 단어 하나가 전광석화와 같이 머릿속에 반짝! 하는 순간 글 한편이 써지는 것이지요.^^ ⓒ최용우 2011.7.20

 

글을 잘 쓰는 비결

선배로부터 들은 말이고 후배에게 자주 해주는 말이 있는데

바로 글을 잘 쓰는 비결에 대한 것이다

그 비결은 아주 간단해서 '자기가 쓴 작품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자기 작품을 남의 작품 보듯이만 할 수 있으면

무엇이 모자라고 넘치는지가 보이고 그러면 고칠 수가 있다

 

그런데 이 간단한 것이 그렇게 쉽지가 않다

누군가 자기가 써놓은 작품에 대해서 비판을 하려고 하면

중언 부언 토를 달아가며 해명하기 바쁘거나

심지어는 정색을 해서 싸우려 들기가 십상이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그 다음 발전이란 것은 없다

 

가장 나쁜 것은 오히려 상대방을 설득시키려 드는 자센데

비평을 해주겠다는 사람에게

'당신이 얘기하는 이러저러한 부분은 사실 이러저러하 의도에서 쓰여진 것이다 그걸 이해 못하겠느냐'

는 식으로 강변을 하다보면 어느 덧 스스로도 그걸 믿게 되어버린다

'아 그렇구나 내 작품에는 이런 훌륭한 의미가 내포돼 있었구나

남들이 몰라줘도 상관없다. 나는 예술을 하고 있으니까' 하는 식으로 정리가 된다

자기 발전을 못하는 것은 고사하고

이상한 방향으로 후퇴를 하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사람 사는 것도 마찬가지인 듯 싶다

내가 남을 보듯이 내가 나를 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남이 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한심한 것도 보이고 간교하거나 더러운 부분도 잘 보인다

그런데 나의 그러한 부분은 도통 보이지가 않는다

설령 보인다 하더라도 잽싸게 합리화를 시킨다

'내가 나빠서가 아니라 저쪽에서 그런 식으로 나오니까 낸들 별 수 있겠어

그런 때 그만큼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심지어는 자신의 언행에 훌륭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마찬가지 얘기지만 이렇게 되면 자기발전이란 것은 없다

 

글을 쓸 때는 더 좋은 작품을 쓰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 된다

돈도 좋고 명예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지난번보다 더 나은 작품을 쓰기 위해서 작가는 존재한다

우리 살아가는 것에도 목적이 있을 것이다

어제보다는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것이 우리 사는 목적이 아닐까

 

예술이든 정치든 단순근로이든 하는 일이라는 것은

단지 그 목적을 위해 연마하는 도구일 뿐이다

그런데 목적은 상실하고 도구에만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아래의 글은 언젠가 신문에 실었던 칼럼을 베껴 온 것입니다

왜 갑자기 하드를 뒤져서 케케묵은 예전 글을 가져 왔는가하면...

 

이따금 이곳에서 여러분들의 의견에 답을 해주다보면 쓸쓸한 일을 겪기 때문이지오

사이버 공간이란 곳은 신기하기도 하고 여러가지 좋은 점도 많지만

세상 일은 언제나 동전의 앞 뒤를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이라...

얼굴을 몰라도 얼굴 아는 것보다 더 친밀하게 내밀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는가하면

얼굴을 모르기 때문에 서로 더 쉽게 상처를 줄 수도 있는 듯 해요

 

그러나 그 어떤 상처라도 잘만 조리를 하면 더 나은 성장의 거름이 될 수 있다고

낙천적으로 믿고 있기 때문에 괜히 한 자 정리를 해보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이 글을 올리고 그 평을 바랄 때 저는 몹시 부담스럽습니다

일고 평하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라

과연 평을 한다고 해서 어떤 도움이 될 지를 모르겠기 때문입니다

 

평이라는 것이 도움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듣는 분이 들으려는 귀를 열어주어야 합니다

물론 세상에는 무책임하게 평이랍시고 해대는 헛소리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 헛소리에도 뭔가 들을만한 것이 있지 않을까... 하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 작가에게는 도움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사실 그렇게 열어놓은 사람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심지어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만나는 강의실에서도

주어진 평을 진심으로 수용하기란 어려운 겁니다

 

그러니 안면도 없는 이가 안면도 모르는 이에게 주는 평이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 지 두려운 겁니다

도움은 커냥 오히려 해가 되는 건 아닐까...

 

그러나 글에 대한 평은 오히려 쉽습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글에 대한 것이고... 글이란 어느 정도 연륜을 인정 받는 전문성을 가지기 때문에

연륜이 많은 이로서 어떤 것을 지적해 줄 수도 있고...

또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지기도 하겠지요

 

정말 어려운 것은 사람에 대한 평입니다

그런데 저는 글에 대한 비평을 할 때에 작가 자신에 대해 질문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결혼을 하셨나요? 시어머니와 사이가 좋은 편인가요?'

이런 식으로 질문은 작품을 평하는데 아주 좋은  자료가 됩니다

작가의 약점을 찾아내는데도 도움이 되고요

 

그리고 어느 정도 친해졌다고 생각되는 이들...

특히 뭔가 아끼고 싶어지는 이들에게는 질문을 넘어서 인간성에 대한 간섭을 하기 시작합니다

저와 오래 얘기를 나눠오 분들은 그 이유를 아실 겁니다

 

작가의 인간성이 곧 작품의 레벨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내 영혼의 깊이가 10cm밖에 안 되면 제아무리 현란한 글을 써봤자

그 글은 깊이 10cm짜리 글 밖에는 안됩니다

 

인간에 대해서... 사회에 대해서...

작가가 가지고 있는 시각이 곧 작품의 시각이 됩닌다

이건 아무리 작가가 사기를 쳐보려고 해도 안됩니다

 

방송글의 경우에는 그 폐해가 특히 심합니다

얕은 영혼의 작가가 그릇된 시각으로 만들어낸 작품이 직방으로 시청자들에게 전달되고

암암리에 이 사회의 모델을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깊이만큼 (결국 그 이상은 몰라서 못합니다만)

남의 깊이에 대해 간섭을 합니다

그것은 내 병이라서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경우에는 나의 간섭에 부르르 떨며 화를 내기도 하고

어처구니 없어하며 돌아서기도 하고

아주 소수의 경우 나의 얘기에 핵심을 잡아내어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렇게 해서 때로 누군가는 나보다 앞서 나가기도 합니다

그 소수의 경우가 내게는 소중합니다

그래서 이 골치아픈 간섭병을 고치고 싶지 않습니다

 

무슨 얘기를 하고 있냐구요?

글 잘 쓰는 법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저는

드라마 대본이나 영화 시나리오의 기술적인 면은 배우고 연습하면 누구나 잘 쓸 수 있습니다

솔직히 요즘에는 공부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에

웬만한 이들은 대본 정도는 아주 깔끔하게 잘 써냅니다

 

프롤로그, 발달, 전개, 바전, 클라이막스...

갈등에 복서

교과서에 나오는대로 순서도 틀리지 않게 잘 씁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글을 잘 썼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게 잘 쓰는 글이라면

십년 너머 글을 써온 저는 아주 잘 써야 할 겁니다

나사 돌리는 단순 기술자도 십년을 넘어 같은 일을 계속하면

나사 돌리는 것에는 거의 도사가 될 겁니다

눈감고 꿈꾸면서도 나사를 정확하게 돌려대겠지요

 

그러나 글은 도대체 그런 기술적인 것과는 상관이 없어서

매번 쓰기 시작할 때마다 막막하고 쓰면 쓸수록 어려워집니다

 

왜냐구요

글은 한석봉의 글씨쓰기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전에보다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어야 되고

전에보다 더 깊은 인간 속을 볼 수 있어야 되는데...

 

그렇게 성장하지 못한 내 자신으로서는 글을 잘 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성장이 뭡니까.. 세월이 가면서 깊어지기는 커녕

더욱 얄팍해지는 거 같고... 요령주의가 되고 혼탁해지고...

그런 영혼으로는 좋은 글이 나올 리가 없다는 걸 스스로 압니다

 

그래서 오늘 새삼스럽게

생뚱맞게 간곡한 부탁을 드립니다

 

글 쓰는 기술자가 되기 전에

스스로를 갈고 닦는 것을 더 중히 여겨주십시오

그 훈련은 맨 먼저 남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에서 시작하면 좋을 것입니다

내 눈에 비치는 나는 알게 모르게 온갖 합리화와 변명으로 떡칠을 하고 있답니다

 

남의 눈에 비치는 내가 사실은 더 정확하 법입니다

그러니 남이 아픈 말을 할 때 으음 고맙군 하고 생각할 수 있으면 아주 좋지요

상대가 좋은 뜻으로 얘기하건 나쁜 뜻으로 얘기하건

무조건 비난을 할 때에도 으음... 나에게 비료를 주는군.. 하고 생각해보자는 겁니다

 

저는 그렇게 하려고 애를 씁니다

(애를 쓴다는 건 잘 안된다는 얘기입니다만...)

그것이 글을 잘 쓸 수 있느 첫번째 수련법입니다

 

송지나입니다.

[출처] 방송글 쓰기 7 - 글을 잘 쓰는 비결|작성자 모띠

글을 잘쓰는 비결

저 역시 글을 좀 더 잘 써보려고 늘 노력하는 사람 중 하나이면서 글을 잘 쓰는 비결 운운 하는 것이 민망스럽기는 합니다. 제가 얻었던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해 두는 것 정도로 생각하고 편안하고 담담하게 적어보겠습니다.
 
사람들은 글쓰기 공부는 맞춤법을 틀리지 않고, 유려한 표현을 쓰고, 올바른 단어를 쓰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서점에 나가 보아도 대다수의 글쓰기 책들이 맞춤법 책입니다. 그런 책들은 "어떻게 글을 쓸 것인가?"라는 본질적 문제에는 전혀 답을 주지 못합니다. 어휘력이나 맞춤법 같은 것은 중요하긴 하지만, 이제부터 소개할 원칙들과 비교해 볼 때 상대적으로 부차적입니다.
 
제 일 법칙 -- 다상량
 
저의 글쓰기 실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던 시기가 몇번 있습니다. 가만히 잘 생각해 보면 제가 관심을 갖고 많이 고민해 봤던(예를 들어 최소 6개월 이상 고민해 봤던) 주제에 대해 글을 쓰고 다른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던 시기라고 기억이 됩니다. 1주일 고민하고 쓰는 글에는 딱 고만한 힘이 실리기 마련이고, 아무리 향수로 도배를 해도 한번 읽어보면 속알맹이가 여실히 드러납니다. 그 글을 아무리 조물락 거려도 큰 개선이 없습니다. 글의 질을 결정하는 기본은 필자의 고민의 양입니다.
 
따라서 제가 소개하는 글을 잘 쓰는 첫번째 원칙은 자신이 많이 생각해 본 것에 대해 써라
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블로그에 올리는 글들이 모두 6개월 이상의 고민을 통해 나온 것들은 아니고, 현재진행형인 것들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조금 뒤에서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영법칙 -- 에너지
 
하지만 이 원칙에 앞서는 영번째 원칙이 있습니다.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하겠습니다.
 
자신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것에 대해 써라
 
많이 고민해 본 것이건 아니건 뭔가 자신의 내면에서 에너지가 느껴지는 소재에 대해서 글을 써야합니다.
그런 글을 읽으면 문장력이 어떻건 간에 그 에너지가, 그 힘이 느껴집니다.이 원칙에는 따름 원칙이 있습니다.
에너지를 느끼지 못하는 것에 대해 쓰면 독자를 죽일 뿐만 아니라 작가를 죽인다.
마지막 부분이 더 중요합니다. 작가를 죽입니다.
 
영법칙의 일반성
 
이 글쓰기의 영번째 원칙은 강연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강연자 스스로 강연 내용을 재미있게 느끼지 않으면 강의를 듣는 사람도 재미를 느끼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 강연의 모토는 "일단 우리 스스로 재미있자!"(저는 여러명이 같이 강의를 하곤 합니다)입니다.
 
따름 원칙도 고스란히 적용됩니다. 예를 들어보죠. 강연자 중에는 자신의 강연 몇가지를 포트폴리오식으로 준비해두고 강연시 그 내용을 비디오테이프 복사하듯이 재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선 강연자 자신이 재미가 없습니다. 그 느낌이 언젠가는 청중에게도 전해지기 마련입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평소 늘 말해왔던 주제를 똑같이 글로 옮기려면 이상하게 진도가 안나가고 힘아리가 없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저는 같은 내용의 강연을 반복해야 한다면 항상 뭔가 개선을 하고 중간에 약간의 즉흥적 부분을 추가합니다.
제품이나 서비스 개발에도 비슷하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만드는 서비스에서 유용함을 느끼고 그 서비스를 좋아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안되면 개발자 같은 경우 개발자 자신만 만족하는 더 작은 울타리 속에서 일을 하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XXX 기술을 썼다, YYY 언어를 사용했다, 퍼포먼스를 5% 높혔다 등등)
 
쓰기 싫은 주제로 꼭 써야한다면?
 
만약 별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는 주제에 대해 꼭 글을 써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그 주제의 우산 아래에서 자기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걸 찾아야 합니다. 혹은 그 바깥 연결고리에서 찾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못찾으면? 쓰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흥어시 입어례 성어악(興於詩 立於禮 成於樂) --공자, 논어 泰伯篇
The stage of romance, the stage of precision and the stage of generalisation --Alfred North Whitehead, The Aims of Education 중 2장 The Rhythm of Education에서
(공자의 이야기를 교육의 단계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교육은 처음에 시적, 감정적 흥기가 우선이고 다음에는 예, 즉 규율과 규칙에 의한 훈련이 필요하고 그 후에는 음악에서 정확성과 예술적 감성의 통합이 이루어 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이 이론은 화이트헤드의 교육 철학과 거의 그대로 대응된다. 화이트헤드는 교육의 리듬이라는 에세이에서 교육 단계를 로망스의 단계, 정확성의 단계, 통합/일반화의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김창준)
 
에너지 고갈자
 
공감은 하지만, 만약 주변에 에너지를 느낄만한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이 든다면?
 
십중팔구는 없어서가 아니고 있는데 그걸 갈무리를 못해서 그렇습니다. 에너지의 흐름이 중요합니다. 제가 회고를 할 때 강조하는 것이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에너지의 흐름입니다. 예를 들어서 워크샵을 합니다. 끝나자 마자 여러가지 생각이 머리속을 뛰어다닙니다. 잡아서 캔 속에 넣지 않으면 다 도망가 버릴 겁니다. 에너지의 흐름이 끊어지는 것이죠. 하루만 지나도 수십 마리를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저는 끝나고 한 시간 안에 회고를 합니다. 회고 한 내용은 종이나 위키에 옮겨서 기록합니다. 과거를 "언제나 현재"로 끌어올리는 것이죠. 다음에는 어떻게 새롭게 하면 좋을지 계획을 짭니다. 미래로까지 에너지가 연결되도록 하는 겁니다. 다들 워크샵을 하나 끝내고 나면 에너지를 느낍니다. 아, 이거 정말 실수했군, 그건 정말 잘 한 것 같아!! 등등. 이 에너지를 살려가야 합니다.
 
간단한 메모장과 조그만 펜을 휴대해 다니세요. (제가 정말 여러가지 메모장과 펜을 실험해 봤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벤치마크 테스트 결과를 알려드리지요.) 뭔가 내 속에서 감정의 변화가, 에너지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하는 낌새가 있으면 바로 메모를 하세요. 지하철이건 침실이건. 나중에는 이렇게 메모했던 것들이 전혀 예상 못했던 방식으로 서로 연결되어서 새로운 글감이 됩니다.
 
갈무리도 문제가 아니라는 분들은? 두가지가 가능합니다. 자기를 바꾸거나 환경을 바꿉니다.
 
환경 바꾸기는 의외로 쉽습니다. 새로운 공연을 보거나 오랫 동안 안만났던 사람을 만나거나 새 옷을 입어보거나, 길 고양이를 따라가 보거나, 해당 주제에 대해 나에게 가장 도움을 못줄 것 같은 사람과 대화해 보거나 등등.
 
자기 바꾸기는 의지가 더 필요합니다. 하지만 돈은 덜 듭니다. 늘 경험했던 것이지만 속도를 늦추거나 혹은 더 빠르게 해봅니다. 더 집중하거나 덜 집중해서 해봅니다. 예를 들어 아무 의미 없는 선을 그리는 낙서(전화할 때 한손으로 찍찍 긋듯이)를 아주 천천히 그리고 매우 집중해서 꽤 오랜 시간 동안(예컨대 한 시간) 해본 적이 있으세요? 저는 해봤습니다. 머리 근육이 비틀어지는 경험을 합니다. 아침에 출근할 때 매일 정신없이 빨리 걸어가던 길을 휴일 오후 한적할 때에 천천히 한 번 걸어가 보세요. 길바닥에 벌레가 기어가면 쪼그리고 앉아서 한참 구경도 하고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잘 살펴보면서.
 
지금 당장 하나 실험해 봅시다. 한 손에 노트를 다른 손에 펜을 듭니다.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자기가 있는 곳(방이건 사무실이건)을 천천히 둘러봅니다. 각도를 아주 조금씩 이동하면서 그 각도에 무엇이 있나 찬찬히 살펴봅니다. 그걸 보면 뭔가 내 속에서 움직임이 느껴지는 대상을 포착합니다. 그 느낌을 간단하게 종이에 적습니다. 생각보다 글감이 많다는 데에 놀라실 겁니다. 그 중에는 분명 느낌이 미약하고 에너지가 충분하지 못한 것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놈들을 잘 갈무리하고 가끔 물도 주고 접붙이기도 하면서 재배해 보세요. 혹시 모르잖습니까, 그중 거목이 나올는지도.
 
다작
 
여기까지 제 글을 읽으신 분 중에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6개월 이상 고민하고 글을 써야 하고, 에너지가 느껴지는 글감을 찾아야 하려면 글 쓰는 기회가 줄 것 같은데, 그러면 훈련이 되나?' 적절한 지적입니다. 글을 잘 쓰는 방법 중 제가 언급하지 않은 것이 "자주" 글쓰기 입니다. 앞서의 원칙들과 충돌하지는 않냐구요? 아닙니다.
 
사고의 도구로서의 프로그래밍에서 말했듯이 글을 쓰는 과정 자체가 고민을 숙성시키기도 합니다. 글쓰기는 고민을 진행시키고 결정화하고 정리하며 견고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머리 속에서는 이 주제는 내가 잘 아는 것이지 싶지만 막상 글로 옮기려고 하면 쉽지가 않고, 쓰는 과정 중에 자신이 이해한 개념이 명료하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 통상 어떤 개념을 글로 표현하기 어렵다면 자신이 그 개념을 깊이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이런 자각을 통해 자신의 고민을 좀 더 체계화하게 되죠. 한가지 첨언한다면, 고민을 숙성시키기 위해 글을 쓸 때에는 남들에게 어떻게 멋지게 보여줄까에 신경쓰지 말고, 최대한 쉽고 명료하게 그리고 진솔하게 쓰는 것이 좋습니다.
 
작가의 걸림돌(Writer's Block)을 해결하는 한 가지 방법은 쓰는 겁니다. 쓰는 행위 자체가 에너지를 불러 일으키기도 합니다. 또 에너지를 불러일으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수준 유지시켜주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로 글을 자주 쓰면 선순환이 됩니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무 글이나 그냥 자주 쓴다고 훈련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냥 매일 블로깅한다고 절대 글쓰기 실력이 늘지 않습니다. 자기가 에너지를 느끼는 대상, 자기가 할 말이 많은 대상에 대해 한 가지 아이디어를 온전히 드러내는, 그 자체로 완결성 있는 글을 자주 써봐야 합니다. 한 가지 아이디어가 온전히 드러난다는 이야기는, "그래서 네가 이 글에서 하고자 하는 말이 뭔데?"라는 질문에 한 문장으로 답을 할 수 있어야 하고, 그 글은 자신의 '한 문장'을 온전히 그리고 충분히 설명해주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아이디어가 너무 크다면 글이 지나치게 길어질 수 있습니다. 우선은 큰 아이디어보다 작은 아이디어를 고르는 것이 좋습니다.
 
자연석 글쓰기
 
마지막으로 책 추천을 한 권 해드리겠습니다. 앞에서 "글을 도대체 어떻게 써야하는가?"라는 질문에 생성적(generative)인 답을 해줄 수 있는 책입니다.
Weinberg on Writing이라는 글쓰기 책이 있습니다. "압권"입니다. 말 그대로 다른 글쓰기 책 위에 이 책을 놓습니다.
이 책의 부제는 자연석 방법(Fieldstone Method)입니다. 제가 추천하는 원칙들과 연결됩니다.
 
돌멩이로 집 주변에 자연석 벽을 만들려고 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먼저 만들 벽의 설계도를 그리고 필요한 돌들을 정한 다음, 당장 채석장이나 산에 가서 필요한 돌을 모두 가져와서 쌓기 시작하면 될까요? 저자인 제랄드 와인버그(Gerald Weinberg)는 그런 식으로는 벽을 쌓을 수 없다고 합니다. 대신 자연석 방법을 써야 한다고 말합니다.
 
자연석 방법이란 이러합니다. 옆 집에 놀러가다가 길가에서 우연히 맘이 끌리는 돌을 발견하면 집에 가지고 옵니다. 등산 갔다가 예쁜 돌을 보면 또 들고 옵니다. 집 한켠에 그런 돌들을 쌓아 놓습니다. 그러다가 아 요놈이랑 저놈이 궁합이 잘 맞겠네 싶으면 그 돌들을 사용해서 벽을 조금 쌓아 올립니다.
 
그래서 저자는 평소에 자연석들을 많이 모아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합니다. 이 방법의 가장 큰 장점은 글쓰기가 훨씬 즐겁고 수월해진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천재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는지도 모릅니다(자연석 방법은 물리학자 리차드 파인만의 학습법과 유사성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자연석을 얼마나 모아 놓으셨나요?
 
--김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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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잘 쓰는 비결

 

중국 북송시대의 시인이자 정치가인 소동파(蘇東坡)는 문장과 서예에 모두 능했다고 합니다. 그는 명문 ‘적벽부(赤壁賦)’에서 자유분방한 심정을 절묘한 비유로 표현하면서 그저 손이 가는대로 적었지 고심하여 꾸미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소동파는 자신이 쓴 ‘남행전집서(南行前集敍)’에서 ‘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파한 바 있습니다.


“대체로 옛날에 지은 글들은 글을 짓는 능력이 뛰어나서 훌륭하게 된 것이 아니라 글을 짓지 않을 수 없게 된 다음에 지어서 훌륭하게 된 것이다. 산천에 구름과 안개가 있고 초목에 꽃과 열매가 있는 것은 그 속이 꽉 들어차서 그것이 자연스럽게 밖으로 드러난 것이다.”


그러니까 머리와 가슴에 꽉 들어찬 성숙한 내면이 자연스럽게 문장으로 흘러나와야 훌륭한 글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소동파가 명문장가로 소문이 자자하자 그러한 소문을 듣고 멀리서 한 선비가 찾아왔습니다.


“소동파 선생께서는 어찌하여 그렇게 글을 잘 쓰십니까?”


“일필휘지! 나는 붓을 잡으면 단숨에 써내려가지요. 마음만 먹으면 앉은 자리에서 한 편의 글을 끝내 버립니다.”


글 쓰는 비법을 한 수 배우려고 찾아왔던 그 선비는 소동파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도저히 소동파와 같은 소질이 없다고 판단하여 실망을 안고 돌아갔습니다. 몇 년 후, 그 선비는 소동파가 ‘적벽부’를 지었다는 소문을 듣고 다시 찾아왔습니다. 이번에는 한 수 배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축하를 해주기 위해 온 것이었습니다.


마침 소동파가 출타 중일 때 찾아온 선비는 빈방에서 기다리다가 문득 소동파의 책상 밑에 쌓여있는 구겨진 종이더미들을 발견했습니다. 궁금증에 하나하나 펼쳐보던 선비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일필휘지로 글을 쓴다던 소동파도 수많은 파지를 내며 문장을 가다듬고 있었던 겁니다. 갑자기 부끄러운 마음이 든 선비는 소동파가 들어올까 무서워 얼른 방에서 나와 도망쳐버렸다고 합니다.

 

블로그 산책을 하다보면 글을 잘 쓰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주옥같은 명문들을 책으로 엮어서 내시는 분들도 계시구요. 이곳저곳에서 좋은 글들을 읽다보면 ‘나도 저렇게 쓰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생각뿐, 막상 써보면 도무지 써지지가 않습니다. 그럴 때마다 글을 잘 쓰는 비결이 따로 있는 것인지, 아니면 선천적인 재능인지 부러워지곤 합니다.


제가 블로그에 새글을 쓰는 까닭은 앞서 써놓은 글이 부끄러워 그 글을 가리기 위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새글을 쓰면 또 그 새글이 부끄러워 감추고 싶어지고… 그런 것이 이제껏 저의 블로그 글쓰기였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매일 하루에도 몇 편씩 새글로 이전 글의 부끄러움을 덮고 싶지만 그리하지 못하는 이유를 바쁜 일과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글 쓰는 능력의 부재가 너무 큽니다.


‘코멘트력’, ‘원고지 10장을 쓰는 힘’ 등으로 잘 알려진 일본작가 사이토 다카시는 말하는 것을 걷기에, 글 쓰는 것을 달리기에 비유한 바 있습니다. 거리를 조금씩 늘려가며 훈련하다보면 누구나 1㎞는 거뜬히 달릴 수 있게 되는 것처럼 글쓰기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당대의 문장가였던 소동파조차도 수많은 파지를 내며 피나는 노력으로 문장을 가다듬었다는데 하물며 보통사람들이야 오죽하려구요. 감추고 싶은 이전 글을 덮기 위한 글이라도 계속 쓰고 가다듬다보면 언젠가는 좋은 글을 쉽게 잘 쓰게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오늘도 이 글로 지난 글을 가려봅니다.


댓글 '1'

류경옥

2011.07.23 06:46:12

글 잘쓰는 비결! 잘 알았습니다. 무척 부럽습니다. 여기서도 많이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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