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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 일기장

김필곤 목사............... 조회 수 2520 추천 수 0 2011.07.22 23: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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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 일기장

 

중학교 때 일기를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쓰는 일기였습니다. 매일 일기를 쓰지 않으면 선생님에게 혼이 났습니다. 3년 내내 선생님들께서는 일기 검사를 빠짐없이 했습니다. 그래서 일기 쓰는 습관이 들었고 그 습관은 군대에 가서도 여전했습니다. 당시 군대에서는 사병들이 일기를 쓰는 것을 금했습니다. 그러나 노트를 사서 몰래 감추어 놓고 일기를 썼습니다. 중학교 때 일기장은 학교에서 만든 것이었습니다. 전체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만든 일기장을 나누어주고 일기를 쓰도록 선생님들께서는 지도해 주었습니다.

그 때는 참 힘들고 어려운 일 중의 하나였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좋은 학교의 방침이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그 일기장은 좀 특이하였습니다. 그 일기장 맨 밑줄에 오늘의 선행란이 있었습니다. 하루에 한 가지씩 선행을 하고 그 곳에 선행한 것을 쓰라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들이 그것을 꼭 확인하였습니다. 아마 학교에서 아이들의 인성 교육을 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순수했던 어린시절 하루에 한 가지씩 선행을 하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저녁에 일기를 쓰기 전까지 선행을 한 것이 생각이 나지 않으면 억지로 조그마한 것이라도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그 내용을 기록하곤 했습니다. 하교 길에 리어카를 끄는 아저씨가 있으면 리어카를 밀어 주기도 하고 무거운 짐을 들고 가시는 아주머니를 보면 그 짐을 들어 주기도 하였습니다. 때로는 거리에 쓰레기가 있으면 지나치지 않고 쓰레기를 줍기도 하고 길을 물어 보는 사람이 있으면 친절하게 가르쳐 주기도 하였습니다.

하루하루 억지 선행을 통해 점점 마음이 변해갔습니다. 남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억지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남을 위해 선행을 베푸는 삶이 아름다운 삶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졌고 조그마한 선행을 한 후의 기쁨이 무엇인가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때 하루에 한 번 이상 선행하던 습관은 고등학교 때에도 대학, 대학원 때에도 계속 이어졌습니다.

대학을 다니던 어느 날 선생님이 우리 반에서 가장 편안한 사람이 누구냐고 학생들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학우들은 모두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저의 이름을 부르며 가장 편안한 사람으로 느껴진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얼굴은 붉어졌지만 기분 좋은 소리였습니다. 마음 깊이를 들여다 보면 더러운 것으로 가득차 있는데도 아마 마음에 하루에 한 가지라도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해야하겠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조금 선하게 보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조그마한 말 한마디라도 상대를 도와주고 세워주어야 하겠다는 다짐이 부족하지만 군에 가서도 변치 않았습니다. 몰래 일기를 쓰면서 계속 이어졌습니다. 초년병 시절에 고참들은 무엇인가 트집을 잡아 괴롭혔습니다. 왜 사람을 괴롭히려고만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잘못해도 격려해 주기보다는 잘못을 지적하며 기압을 주고 구타를 하였습니다. 잘못을 찾기 위해 이 땅에 내려온 악한 사자들 같았습니다.

어느 날 회식 자리에서 술을 먹지 않았다고 고참병이 나오라 하더니 가슴을 치는데 피가 날 올 때까지 때렸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병영생활이었지만 일기를 쓰며 늘 하던 대로 하루에 한 가지씩 선행을 하고 기록하였습니다. 자연스럽게 내무반 청소나 화장실 청소 등 굿은 일을 기쁨으로 맡아하게 되었습니다. 선배들로부터 많이 구타를 당했지만 한 번도 후배 병사들을 때리지 않았습니다. 가능하면 도움을 주려고 애를 썼습니다. 군 생활을 다 마치고 제대할 때였습니다. 후배 병사들이 환송을 한다고 위병소 앞에 나왔습니다. 모두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남자들의 세계이고 자신이 죽지 않고 남을 죽이는 훈련을 전문적으로 하는 곳이었지만 정이 흘렀습니다. 눈물 흘리며 박수를 치던 후배들 사이로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위병소를 나오던 때가 지금 생각하면 그림처럼 그리어 집니다.

중학교 때 처음 일기를 쓰며 하루 한 가지 이상 억지 선행을 했던 그 시절로부터 20여 년이 훌쩍 지나 목사가 되었습니다. 목사가 되기로 다짐할 때 "첫째가 하나님을 위해 살자. 둘째가 남을 위해 살자. 셋째가 역사 앞에서 살자"로 마음을 정하였습니다. 그리고 결혼해서도 가훈을 그렇게 정하고 아이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남을 도와준 것보다 도움을 받고 사는 것이 훨씬 더 많습니다. 죽는 날까지 도움받은 것 다 갚지 못하고 죽겠지만 하루에 한 가지라도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부드러운 미소 한 줄기로라도 만나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선행 일기장/섬기는 언어/김필곤/200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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