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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귀한 세가지 금은 황금, 소금, 지금 이라고 한다. 나도 좋아하는 세가지 금이 있다. 현금, 지금, 입금 이다 ㅋㅋㅋ(햇볕같은이야기 사역 후원 클릭!) |
감동을 주는 사람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인디아나주의 작은 마을에 뇌종양으로 고통받고 있는 15세의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계속된 방사선 치료와 화학요법으로 머리카락이 모두 빠지고 말았습니다. 부끄러워 학교를 다니기가 어려웠습니다. 이때 그 반의 학생들은 그를 돕기 위해 모두 삭발을 하였습니다. 뇌종양을 앓고 있는 브라이언만이 유일하게 머리카락이 없는 학생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 반의 아이들 모두가 머리를 삭발 한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감정은 폭포수처럼 쏟아지는데 감동은 메마른 시대, 감동 결핍증에 걸려 정서가 유산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세기를 초월하여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인은 세상에 살면서 감동을 주는 사람으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이 감동을 받을 때는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 친절을 베풀 때입니다. 사람들이 감동을 받는 것은 큰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일에 내 마음을 알아주어 친절을 베풀어 줄 때 코끝이 찡한 감동을 받습니다. 마음을 헤아려서 작은 친절을 베풀 때 감동을 받는 것입니다. 조그마한 친절이 큰 감동을 만들어 냅니다.
예수님은 아무도 상종하지 않는 불륜의 여인에게 친구가 되어 그의 필요를 채워주셨고, 세상에서 따돌린 문둥이들에게 인간대접을 해주었습니다. 오늘의 시대를 4무(無)의 불치병에 걸린 시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관심, 무반응, 무의식, 무책임입니다. 서로 관심이 없습니다. 관심 갖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합니다. 피리를 불어도 반응이 없습니다. 아무리 외쳐도 시체처럼 무반응입니다. 아무런 의식을 하지 않습니다. 자신들만 좋으면 남이야 상관이 없습니다.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권리만 주장합니다. 우리가 감동받는 것은 의미없는 대 자연이 아니라 화가가 붙잡은 화폭속의 그림입니다. 각종 기념일을 챙겨 주는 것, 조그마한 것에 감사를 표현해 주는 것,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하여 이해해 주고 높이 평가해 주는 것, 간단한 메모, 전화 등이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사람이 감동을 받을 때는 희생하는 모습을 가슴으로 느낄 때입니다.
카네기 영웅 기금 위원회에서 미국을 감동시킨「작은 영웅들」18명을 선정했습니다. 지하철 권총강도에 맞서 싸우다 총상을 입은 청년, 불타는 자동차의 뒷 좌석에 남겨진 11개월된 아기를 구하기 위해 불길 속으로 뛰어든 30대 여성, 급류에 휩쓸린 남동생을 구해내고 자신은 익사한 10세난 소녀, 성난 황소 네 마리에 둘러싸인 여성을 구출해낸 20대 청년 등 타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내 건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을 보면 감동을 받습니다. 희생하는 것만큼 큰 감동을 만드는 것은 없습니다. 모두가 큰 것, 좋은 것, 많은 것만 찾는 시대에 손해보는 삶을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보다 풍성한 대우를 받는 회사를 뒤로하고 자신을 필요로 한 회사를 찾아가는 것, 안락한 환경을 갖춘 교회를 지나 주님을 위해 희생할 교회를 찾는다는 것은 어쩌면 시대에 뒤떨어진 행동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희생의 참 의미를 보여주신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 16:24)"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주님 때문에 손해보고, 자존심을 상하며 욕 먹고, 고통받는 것 아름다운 삶입니다. 세상은 `능력'으로 사람을 평가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희생으로 평가합니다. 너희가 나를 위해 죽을 수 있느냐 입니다. 너희가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너희가 얼마나 나를 위해 줄 수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너희가 능력이 있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얼마나 그것을 나를 위해 사용하는냐가 문제입니다.
사람이 감동을 받을 때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역전을 시키는
모습을 볼 때입니다. 우리가 축구나 농구를 보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팀이 마지막 순간 역전을 하여 이기면 얼마나 기뻐하고 감격합니까? 극한 상황을 헤쳐 승리의 인생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을 볼 때 감동이 됩니다. 역경이 닥쳐오면 사람들은 대개 네 가지 유형으로 반응합니다. 첫째는 '체념형'입니다. 역경 앞에 그대로 주저앉아 버립니다. 비관합니다. 둘째는 역경을 피해가는 '도피형'입니다. 일단 위기를 벗어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셋째는 핑계형입니다. 모든 것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고 불평불만만 합니다. 넷째는 역경에 당당히 맞서는 '돌파형'입니다. 신앙인은 무균실에서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주님 의지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사람입니다.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감수해 나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꼭 승리를 쟁취하고야 마는 사람입니다. 이 시대에 감동을 주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것을 잃은 바닥에서 일어서는 욥이나 나오미의 삶을 보면 감동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시대는 이기심과 욕심이 난무하는 시대입니다. 극한 대립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감정의 홍수 속에서 이성은 마비되고 감동 마저도 상행위의 수단으로 변한 시대입니다. 그리스도께 감동되어 베드로와 바울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의 주인공으로 살았습니다. 감동 결핍증이 걸린 이 시대 속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인이 작은 친절과 희생, 역전의 드라마로 감동을 주는 살맛나는 세상 만들 수 없을까요?●
감동을 주는 사람/섬기는 언어/김필곤/2003.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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