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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기에 참 좋았으나…”(It Was Very Good, But …)

창세기 김영봉 목사............... 조회 수 2117 추천 수 0 2011.07.31 23:20:23
.........
성경본문 : 창1:26-31 
설교자 : 김영봉 목사 
참고 : 와싱톤한인교회 http://www.kumcgw.org 
2010.4.25 (김 영봉 목사)

“보시기에 참 좋았으나…”(It Was Very Good, But …)
-- 창세기(Genesis) 1:26-31

1.

방금 본 스킷(skit)을 통해 이미 짐작하셨듯, 오늘은 특별한 주일입니다. 지난 4월 22일은 ‘지구의 날’(Earth Day)이었습니다. 올 해는 ‘지구의 날’이 시작된 지4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1970년 4월 22일, 당시 위시콘신의 상원의원이었던 게일로드 넬슨(Gaylord Nelson)의 주도 하에 시작된 지구의 날 시위는 미국 전역에서 2천 2백만명이 참가한,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연합감리교회는 세계 교회 협의회(WCC)에 소속된 다른 교단들과 함께, 지구의 날에 제일 가까운 주일을 Celebration of God’s Creation 즉 ‘하나님의 창조를 축하하는 날’로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 말로는 보통 ‘환경 주일’이라고 부릅니다.

이 날을 특별하게 지키는 이유는 지구 환경이 급속하게 파괴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은 위기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몇 가지 통계 수치를 살펴 보면, 그 사실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1. 1974년과 2008년을 비교할 때, 평균 가구 쓰레기 양이 50% 증가했습니다. 미국에서 생산된 음식물의 40%가 쓰레기로 버려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버려지는 음식물의 양이면 지구 전체의 기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2.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하며 수 많은 동물의 서식지가 되어 온 ‘열대 우림’(rainforest) 지대가 급속하게 파괴되고 있습니다. 매 초당 1.5 에이커 만큼의 면적이 사라지고 있다니,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3. 공기 오염, 지하수 오염, 토양 오염이 심각합니다. 지구의 70%가 물로 되어 있지만, 이 중에서 음료수로 사용하기에 적당한 물은 1%밖에 되지 않는데, 그나마도 급속도록 오염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물 전쟁과 식량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4. 오존층(Ozone Layer)이 파괴되어 지구 생명들이 자외선(ultra violet rays)에 지나치게 노출되고 있습니다. 지나친 자외선은 피부암을 유발시키고, 물 속에 있는 플랑크톤(plankton)을 죽게 만듭니다.
5. 지구의 ‘온실 효과’(Greenhouse Effect)로 인해 여러 가지 기상 이변이 발생하고 있고, 지구의 온도가 상승하여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방치하면 가까운 미래에 방글라데시, 뉴욕, 혹은 일본 같이 낮은 지역은 물에 잠길 수 있다고 합니다.
6. 이로 인해서 멸종되는 생물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World Conservation Union은 멸종 위기에 있는 동물과 식물을 조사하여 소위 Red List 즉 ‘적색 표’라는 것을 만들었는데, 그 ‘적색 표’에 의하면 2008년에 16,118가지의 동식물이 멸종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7. 핵무기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들이 만든 ‘지구 종말 시계’(doomsday clock)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핵전쟁으로 인해 지구가 멸망될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자정에 가까와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지금 핵 전문가들은 자정 6분 전에 시계를 맞추어 두고 있습니다.

2.

이같이 환경 문제에 대한 최근의 보고서를 잠시만 들여다 보고 있어도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같은 위기감에 의해 이미 40년 전에 ‘지구의 날’을 시작했고, 매 년 이 날을 지키면서 환경 문제에 대한 각성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환경 운동에 열심을 내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 실리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환경 파괴 문제를 이대로 방치하면 우리 후손은 물론이고 우리 자신도 해를 입을 것이 분명합니다. 아니, 실은 지금도 우리는 그 해를 톡톡히 경험하고 있습니다. 당장 눈 앞의 이익을 위해 환경을 훼손하면, 장기적으로 상상할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둘째, 모든 생명과 존재가 나름대로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깨닫고, 그 태생적 권리(inborn right)를 위해 환경 운동에 투신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유익하든 유익하지 않든, 그것이 옳은 일이므로 그렇게 한다는 신념의 사람들입니다.

셋째, 그것이 좋아 보여서 따라 나선 사람들도 있습니다. 요즈음에는 환경 운동에 헌신하는 것이 ‘깨인 사람의 특징’처럼 인식되고 있습니다. 자신도 의식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 이 운동에 발을 들여 놓은 사람들도 없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몇 가지 이유가 더 있습니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고 예배하는 사람에게는 믿는다는 그 이유 하나 때문에 환경 문제에 애정을 가지고 참여할 이유가 두 가지 더 생깁니다.

첫째, 이 피조 세계가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의 걸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께서 공들여 만드신 걸작품인 이 세상을 잘 보살피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일어날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이 피조 세계를 관리하고 가꿀 책임을 인간에게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을 진실하게 믿는 사람이라면, 당신의 걸작품을 잘 관리하고 가꾸라는 명령을 귀하게 여기고 신실하게 그 책임을 다하려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날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이유가 오늘 읽은 창세기 본문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창조 과정을 지켜 보시면서 만족감을 표현하셨습니다. 하루 하루, 당신의 뜻대로 창조가 완성될 때마다, “좋다, 참 좋다!”고 만족하게 여기셨습니다. 이 피조 세계가 하나님의 기준에 만족할 만한 것이었다면,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걸작품이라는 말입니까? 그런데 그 걸작품을 만드시고, 그 관리인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뭐라고 하셨습니까?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창 1:26)

여기에 언급된 ‘우리의 형상’이라는 말에 대한 해석은 분분한데, 그 중 가장 유력한 것은 ‘하나님의 대리자’를 뜻한다는 해석입니다. 마치, 고대 제국의 황제들이 다른 나라를 정복하고 그곳에 자신의 동상을 세워 놓았던 것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동상처럼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이 땅과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께서 인간을 통해 다스리시겠다는 뜻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이어지는 말씀 속에서 이 뜻은 더욱 분명해집니다.

그리고 그가[인간들이],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 사는 온갖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 (26절)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고 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또 다른 명령을 주십니다. 이 명령 안에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고귀한 소명이 담겨 있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28절)

이 두 가지 말씀 속에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는 아주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걸작품 중에서도 최고인 인간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이 걸작품 세상 안에서 살아가면서 그것을 관리하고 가꿀 책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창조주라고 고백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분이 공들여 창조한 이 피조 세계를 알뜰살뜰하게 돌보고 보살피는 마음이 있어야 마땅합니다.

3.

이 대목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싶은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과학자라서 창조론을 받아들이지 못하겠습니다.” 혹은 “저에게는 진화론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리기 때문에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기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런 질문을 가진 분들은 그같은 고민과 의문이 자신에게만 있는 줄 생각하지만 실은 많은 분들이 그런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 한국을 다녀 오신 교우께서 이와 같은 생각을 제게 털어 놓으셨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우주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 우리가 사는 태양계와 같은 것들이 현재 허블 망원경으로 발견한 것만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합니다. 그것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했다는 사실에 대해 의문이 들더라는 겁니다. 얼마든지 공감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 이후로 과학자들이 진화론을 가지고 생명과 우주의 생성을 설명하려 해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동안 기독교와 과학이 대립해 왔습니다. 창조론과 진화론의 싸움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오늘날에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진화론을 받아들인 사람은 창조 신앙을 받아들일 수 없고, 창조 신앙을 받아들인 사람은 진화론을 인정할 수 없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진화론을, 하나님의 창조 과정을 연구하고 설명하는 하나의 가설(a theory)로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과학 연구는 언제나 하나의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이 얼마나 실제와 일치하는지 실험하고, 그 실험 결과에 따라 가설을 수정하는 과정을 거쳐 진리에 접근해 갑니다. 만일 과학자에게 가설을 마음대로 세우지 못하게 한다면, 과학은 발전할 수 없습니다.

만일 하나의 가설인 ‘진화론’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방법을 밝힌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마치 조각가가 석고상을 조각하듯 세상 만물을 창조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창조 과정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어떻게 되어라”고 명령하셨고, 만물이 그 명령에 따라 형성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되었다”(It was so)라는 구절이 여러 번 반복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것을 구상하시고 그것이 이루어지도록 의도하시면, 그 디자인 대로 형성된 것입니다. 그 과정을 뭐라고 부르겠습니까? ‘진화’(evolution)라고 할 수도 있고, ‘발전’(development)이라고 할 수도 있으며, ‘형성’(formation)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 말의 ‘자연’(自然)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창조 과정에 적합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연’이라는 말은 ‘스스로 그렇게 된 것’이라는 뜻인데, 신앙인의 시각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스스로 그렇게 되어 만들어진 것이 피조 세계입니다. 이렇게, 만물이 하나님의 디자인대로 형성된 과정을 탐색하는 것이 진화에 대한 연구일 수 있습니다. 진화론을 비롯한 모든 과학을 부정하는 것은 바람직한 믿음의 태도가 아닙니다. 과학을 통해 밝혀지는 새로운 사실들에 대해 마음을 열고 그것을 이해하려 하고 그것을 자신의 신앙적인 세계관에 통합시키는 것이 더 바람직합니다.

그러므로 진화론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든지, 하나님께서 모든 생명과 온 우주를 창조하셨다고 믿을 수 있습니다. 창조에 대한 편협한 도그마를 가지고 말도 되지 않는 논쟁에 시간과 정력을 허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믿음 안에서 과학을 통해 드러나는 생명과 우주의 비밀을 겸허히 수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피조 세계 속에 드러난 하나님의 영광을 감상하고 창조주 하나님의 놀라우심에 대해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찬양이 참되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그 걸작품을 소중히 여기고 살피고 돌보려는 열망을 마음에서 느끼게 됩니다.

4.

바로 이런 까닭에, 피조 세계에 대한 관심과 노력에 있어서 그리스도인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열심이어야 마땅합니다. ‘지구의 날’ 같은 운동을 주창하고 이끄는 데 있어서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을 섰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과거에도, 지금도, 그리스도인들은 환경을 지키는 문제가 기독교 신앙의 핵심 요소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각에서도 그렇고, 행동에서도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걸작품이 훼손되는 것을 보고 마음 아파하지 않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환경 보호에 대한 책임을 망각하게 된 이유가 여러 가지 있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인 이유 하나를 언급해야 하겠습니다. 종말과 재림에 대한 오해가 그것입니다.

‘지구의 날’에 대해 클리블랜드(Cleveland)에 사는 어느 목회자가 인터넷에 올린 글의 한 대목은 이 주장을 잘 요약해 줍니다. 그는 환경 문제에 대해 믿는 사람들이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우리에게 돌보도록 맡겨지기는 했지만, 우리는 결국 이 세상은 사라져 없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세상은 점점 낡아질 것이고 마침내 파멸될 것임을 우리는 예상하고 있어야 합니다.” (We have to remember that this world we live in, while it is under our charge, is ultimately passing away. We should expect that it will deteriorate and ultimately be destroyed.)

불행히도, 이같은 사고 방식에 빠져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이 세상은 마지막에 하늘로부터 내릴 심판불에 의해 모두 타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굳이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지구 환경의 파멸이 빨리 올수록 주님의 재림이 더 앞당겨 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같은 생각을 가지게 되면, 창조 세계가 훼손되고 파괴되는 것을 ‘마땅하게’ 여길 뿐 아니라, 그것을 반기는 현상까지 생깁니다. 이 태도는 종말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심각하게 오해한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종말에 하나님의 진노의 불에 의해 태워질 것들은 인간의 죄와 죄로 물든 세상 문화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거룩한 피조 세계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때 변모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재림’ 혹은 ‘종말’은 모든 것이 ‘파멸’(destruction)되는 시간이 아니라 모든 것이 ‘변모’(transformation)하는 순간입니다. 재림에 대한 강한 열망이 환경 문제에 대한 무관심을 만들어 낸다면, 그것은 성경을 잘 못 이해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은 인간의 영혼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우선적인 관심은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있었습니다. 인간의 타락에서 온 우주의 타락이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분의 관심에는 인간의 영혼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과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피조 세계까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분은 인간을 구속하여 그 결과로써 모든 피조물이 구속되기를 소망하셨고 또한 그 미래를 내다 보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거룩함을 누리며 장차 그 구원이 완성될 것을 기대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온 세상을 새롭게 보게 됩니다. 모든 생명의 고귀한 가치를 알아 보고, 모든 생명이 성령의 능력 안에서 회복되기를 소망합니다. 육신적인 병에 걸린 사람을 두고 성령의 치유와 회복의 은총을 기도하듯, 이 세상의 모든 상처받은 생명들을 위해 성령의 치유와 회복을 기도합니다. 육신적인 질병에 걸린 사람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경주하여 치유를 위해 힘쓰듯, 믿는 사람들은 피조 세계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이것이 믿는 사람들이 환경 운동에 열심을 내야 하는 세 번째의 이유입니다.

5.

이렇게 환경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종종 두 가지의 음성을 듣습니다. 하나는 “너무 늦었다!”는 음성이고, 다른 하나는 “나 하나의 노력이 무슨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라는 음성입니다. 앞의 음성은 환경 파괴가 너무 심각하여 지금 노력해 보았자 소용이 없다는 ‘절망감’을 자극하고, 뒤의 음성은 이 거대한 우주적인 질병에 대해 나 하나의 힘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자괴감’을 자극합니다.

만일 우리가 환경 문제를 위해 노력하는 이유가 실리적인 이유 때문이라면 이 두 가지의 음성에는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환경 문제에 마음을 쏟는 이유는 하나님의 피조 세계를 사랑하기 때문이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거룩한 소임 때문이며, 또한 모든 생명을 구속하시려는 예수 그리스도의 소원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음성에 귀 기우리거나 그 음성에 혹할 이유가 없습니다. 아무리 늦었다 해도, 혹은 나의 노력이 아무런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없다 해도, 나는 그 거룩한 소명과 책임을 우직하게 받들어야만 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우리 모두가 각자에게 맡겨진 일터에서 혹은 가정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담당해야 하겠습니다. 정치인들은 정치인으로서 주어진 힘을 가지고 이 일에 헌신하고, 과학자는 과학자에게 주어진 힘을 가지고 이 일을 위해 노력하고, 사업가는 또 그에게 주어진 힘을 가지고 이 일에 관심을 쏟으면 됩니다. 주부는 주부로서 할 일을 하고, 목사는 목사로서 할 일을 찾아 하면 됩니다. 그렇게, 모두가 환경 문제에 같은 의식을 가지고 참여하면 됩니다. 매사가 그렇듯, 변화는 하나님께서 만드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본문을 다하면 됩니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우리 교회 안에 이 문제를 붙들고 씨름하려는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2년 전, 환경 주일을 지키면서 이 문제에 대해 설교했을 때, 그 말씀에 반응하여 나선 분들이 계셨습니다. 그렇게 하여 ‘친환경팀’이라는 것이 조직되었습니다. 그동안 별다른 활동을 하지 못했는데, 오늘 친환경팀이 헌신 예배를 드리면서 본격적인 발족과 노력을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 정도라면 이미 이같은 사역이 시작되어 탄탄히 뿌리를 내렸어야 합니다. 이제, 친환경팀이 교회 안에서 환경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좀 더 적극적으로 벌여 나갈 것입니다. 철저한 분리 수거부터 시작하여, 머그 컵 사용하기, 일회용품 줄이기, 에너지 절약하기 등,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동원하여 이 사역을 펼쳐 나갈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혹시 앞으로 여러분에게 불편이 갈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불편과 손해 없이 환경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예컨대, 교회에서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고 접시를 사용한다 했을 때, 과연 설겆이를 하면서 사용하는 물의 소비와 그로 인한 지하수 오염을 두고 어느 것이 나은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환경 문제에 있어서 ‘절대’라는 것은 없습니다. 때로는 일회용을 써야만 할 때도 있고, 때로는 비싼 종이를 써야 할 때도 있습니다. 다만, 언제나 환경을 의식하면서 판단하고 의사 결정을 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관된 관심과 애정과 헌신을 기뻐하실 것입니다.

오늘, 환경 주일을 지키는 이유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이 문제에 대해 활짝 깨어나기를 바라는 까닭입니다. 환경을 지키기 위한 불편과 손해를 기꺼이 감당하려는 마음이 우리에게 불일듯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환경을 생각하고 행하는 작은 일 하나가 하나님의 마음에 기쁨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다. 환경을 지키기 위해 감당하는 작은 불편과 손해가 하나님께 드리는 값비싼 제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다.

허리를 굽혀 쓰레기 하나를 주워 들을 때 하나님께서 웃으십니다. 절약을 위해 전기불 하나를 끌 때, 하나님의 얼굴에는 미소가 하나 더해집니다. 여행 중에 호텔에서 쓰다 만 비누와 샴푸를 봉지에 넣어 가지고 와서 집에서 끝까지 사용할 때, 하나님은 흐뭇하게 웃으십니다. 패스트 푸드(Fast Food)를 사 먹을 때, 점원이 생각없이 넣어 찔러 주는 냅킨을 고이 접어 두고 두고 사용할 때, 하나님은 벙긋이 웃으십니다. 분리 수거를 위한 수고를 기꺼이 감당할 때, 하나님의 마음이 밝아집니다. 이 작은 행동 하나 하나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이며, 우리의 소명을 이루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작은 실천들이 모여 무참히 훼손되어 가는 이 세상의 한 구석이라도 회복되고 복원되기를 함께 소망 하십시다. 우리의 작은 노력이 퍼져 나가 이 회복의 운동이 더욱 널리 퍼져 나가기를 기도하십시다. 복음이 가는 곳에 이 회복의 역사도 함께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영혼만이 아니라 온 세상을 구원하시려 하기 때문입니다. 아멘.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
만물을 구속하신 예수님,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님,
저희를 깨우시옵소서.
삼위일체 하나님과 더불어
만물을 회복시키고 구원하는 일에
참여하도록 도우시옵소서.
그에 따른 불편과 손해를
기꺼이 짊어 지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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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90 마가복음 우리에게 부족한 것”(One Thing We Lack) 막10:17-22  김영봉 목사  2011-07-31 2552
5589 마가복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By All Means) 막9:42-48  김영봉 목사  2011-07-31 2889
5588 시편 시냇가에 심긴 나무”(A Tree Planted By the Streams of Water) 시1:1-6  김영봉 목사  2011-07-31 3241
5587 마가복음 우리의 거울은 너무 작다”(Our Mirrors Are Too Small) 막8:27-30  김영봉 목사  2011-07-31 2308
5586 야고보서 두 개의 영적 전립선”(Two Spiritual Prostates) 약2:14-17  김영봉 목사  2011-07-31 2494
5585 요한복음 영생에 이르는 열매”(The Crop for Eternal Life) 요4:3-9  김영봉 목사  2011-07-31 2745
5584 시편 순례길에 오른 캐라반”(Caravan on Pilgrimage) 시133:1-3  김영봉 목사  2011-07-31 2582
5583 요한계시 3 가지 새로움 계21:1  강종수 목사  2011-07-31 2111
5582 오바댜 이스라엘의 회복된 모습 옵1:19-21  박상훈 목사  2011-07-30 2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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