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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고후1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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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
고린도후서(43) 자신을 지키십시오 (고후 11:1-6)
< 자랑을 멀리하십시오 >
건강한 사회를 위해 정당한 비판은 필요하지만 비판주의는 조심하십시오. 비판주의자는 “역사의식을 가지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비판주의가 창조적인 일을 이룬 예가 없다는 역사의 진정한 교훈을 잘 모르는 것이 문제입니다. 역사는 ‘의인’을 쓰지만 ‘말만 의인인 사람’을 쓰지 않습니다.
자칭 의인의 나쁜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행동이나 열매나 내용으로 인정을 받으려고 하지 않고 남을 헐뜯는 말이나 번듯한 말을 수시로 내세우는 것입니다. 진짜 자랑거리를 만들지는 않고 남에게 손가락질만 하려고 하고 말로 자기를 높이면 누가 그를 인정해줍니까? 문제는 ‘자기 자랑을 위한 비판’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인에게 그런 문제가 없도록 당부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자꾸만 자신의 영성을 자랑하거나 혹은 영성을 자랑하는 거짓 선생들에 의해 현혹되니까 이렇게 말합니다. “비록 어리석은 일이지만 나도 자랑할 것을 한 번 자랑해보겠다. 그러니까 잠깐 양해해 달라(1절).” 그러면서 무엇을 자랑합니까? 고린도 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그들을 예수님의 신부로 만드는데 최선을 다한 열심을 자랑했습니다(2절).
예수님의 신부처럼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고 사십시오. 기적이나 은사나 축복도 주님보다 앞세워 추구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대단한 기적이나 은사나 축복이라도 그것을 앞세우면 선악과에 유혹된 하와처럼 됩니다(3절). 사도 바울은 ‘영성을 자랑하는 것’을 ‘예수님을 향한 진실하고 깨끗한 믿음에서 떠나 마음이 부패한 증거’라고 언급합니다. 그러므로 영성을 자랑하는 삶을 멀리하고 영성을 자랑하는 사람을 속히 멀리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점점 심령이 부패해서 망합니다.
< 자신을 지키십시오 >
특히 사도 바울은 신비체험, 은사체험, 기적체험으로 영성을 자랑하는 거짓 선생들의 행위를 ‘다른 복음’으로 묘사합니다. 사도 바울이 언급하는 ‘다른 복음’은 ‘진리를 왜곡하는 것’을 의미하기보다는 ‘영성을 자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영성을 자랑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최악의 죄는 바로 ‘신비체험과 기적체험과 은사체험을 내세워 영성을 자랑하는 죄’입니다. 사실상 그것은 예수님의 삶과 가장 반대되는 삶입니다.
요한복음 6장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삶겠다고 몰려들고 예수님의 눈도장만이라도 찍으려고 몰려들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 군중들을 피해 산으로 떠나가셨습니다(요 6:15). 그렇다면 군중들이 예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깨닫고 자신들의 모습을 돌라보고 그런 행동을 삼가야 하는데 그 다음 날에도 또 예수님께 몰려들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그 기복주의적인 군중에게 정곡을 찌르는 아픈 말씀을 했습니다. “너희들이 나를 찾는 것은 떡 때문이구나! 썩을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의 양식을 위해 일하라.” 그러자 백성들이 물었습니다. “예수님! 무엇이 영생의 양식을 위한 하나님의 일입니까?” 그때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무슨 말입니까?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예수님께 몰려든 것은 ‘떡을 얻으려는 태도’이지 ‘예수님을 믿는 태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정곡을 찌르는 그 말씀을 듣고 몰려온 수많은 군중들은 거의 대부분 예수님의 곁을 떠나 12제자만 남았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했습니다. “너희도 떠나겠느냐?” 그때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영생의 말씀이신 주님을 두고 우리가 어디로 떠나겠습니까?(요 6:68)” 얼마나 그 말씀이 주님께 위로가 되었겠습니까? 주님은 표적을 좇아 예수님께 나온 다수를 원하지 않고 말씀을 좇아 나온 12명의 제자를 원하셨습니다.
표적으로 사람을 끌어 모으는 것은 예수님의 뜻과는 가장 반대되는 ‘다른 복음’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요즘은 어떻습니까? 사람들을 끌어 모으려고 오히려 표적을 이용합니다. 즉 예수님은 표적을 보고 몰려온 사람들까지 물리치셨는데 거짓 목자들은 사람들을 몰려오도록 표적을 이용하고 심지어는 거짓 표적까지 만듭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뜻과 반대된 ‘다른 복음’입니다.
사람들은 외적인 말과 숫자를 통해 사람을 평가하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봅니다. 중심을 볼 줄 알아야 이단과 거짓 선생에 넘어가지 않고 자신을 지킬 수 있습니다. 이제 영성 자랑을 주의하고 영성을 자랑하는 사람을 멀리하십시오. 숫자나 외모에도 너무 큰 가치를 두지 마십시오. 중요한 것은 중심이요 내용입니다. 그처럼 중심과 내면을 보는 시야를 통해 자신의 영혼과 행복과 축복을 지키십시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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