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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生一代事-죽음

창세기 이정수 목사............... 조회 수 2153 추천 수 0 2011.08.14 00: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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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창3:19 
설교자 : 이정수 목사 
참고 : 말씀의샘물교회 http://www.wordspring.net 

人生一代事-죽음

본문/ 창3:19, 전7:1-2, 약4:14

1. 들어가는 이야기  

   나로서는 현재도 진행 중인 3월 11일 발생한 일본 동북부 지방의 엄청난 대재난(지진-쓰나미-후쿠시마 원전폭발)의 報道(보도)를 보고 들으면서 남다른 느낌입니다. 왜냐하면 작년 2010년 12월  신칸센으로  “야, 참 멋있구나, 야, 정말 일본답다!” 감탄하며 여행하였던 도쿄-이바라키-후쿠시마-센다이-미야기-이와테-구지-아오모리 지방이 대참사의 현장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일본 정부의 공식 발표로는 3월 19일 현재 사망 6911명, 실종 1만316명이라지만 그 전모는 도대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게다가 조속한 시일 안에 후쿠시마 원전을 원천봉쇄하지 못하는 날엔 그야말로 대재앙이라고 합니다.

2. 사순절에 일본 대재난을 보면서 죽음 문제를 묵상합니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이 죽음에 이르는 존재인 한 불안은 인간의 실존을 철저하게 결정짓고 있다. 죽음 문제를 회피하는 것은 불안을 잠시 억누르는 것일 뿐 불안은 언제나 인간의 존재 밑바탕에서 항상 일렁이고 있다” 라고 하였습니다. 즉, 죽음 문제는 사람의 현실 삶에 조용히 흐르는 배경음악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죽음 문제는 외면 할 수도 없고, 외면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유독 죽음 문제를 터부시합니다. 평소 일상생활에서도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상징-비유는 재수 없다 하고(예. 아침에 상여나 장례차를 보면 돌아 서서 침을 세 번 뱉어야 액댐 한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다), 당장 죽음이 임박한 親族(친족)을 앞에 두고도 죽음 문제를 입에 올리지 못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입니다. 원인과 결과(Input-Output)-상수도와 하수도-榮辱(영욕)-밝음과 어둠은 둘이 아닌 하나입니다. 삶과 죽음(生死) 역시 그러합니다. 도연명은 이것을 동양적으로 참 잘 표현하여 주었습니다.

有生必有死 早終非命促 昨暮同爲人 今旦在鬼錄(유생필유사 조종비명촉 작모동위인 금단재귀록 : 태어남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도 있기 마련, 일찍 죽음도 제 운명 탓이라, 엊저녁엔 다 같은 사람이었는데, 오늘 아침 그 이름 귀신 명단에 올랐구나)

성경은 사람의 죽음을 간명직절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 갈 것이니라(창3:19)
*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 하리로다(전7:1-2)
*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 없어지는 안개니라(약4:14)


3. 우리가 죽음 문제를 회피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첫째. 육체적 고통(physical pain)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음에 이르면 대부분의 경우 생물학적-육체적으로 심한 고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옛 사람들은 무엇보다 고통 없이 편안히 善終(선종)하는 것을 五福(오복-壽-富-貴-多男-考終命) 가운데 하나로 생각하였습니다.

둘째. 정신적 고통(psychological pain)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퀴블러 로스는 죽음을 맞는 사람의 정신적-심리적 과정을 5단계로 정리하였습니다.
(1) 부정(denial-아니야, 그럴 리 없어, 먼가 잘못된 거야!).

(2) 분노(anger-왜, 하필 나야!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나는 거야!).

(3) 타협(bargaining-하나님, 이번 만 살려주시면 앞으로 잘 하겠습니다-자녀의 결혼식 때까지 만이라도 살게 하여주십시오)

(4) 우울(depression-어쩔 수 없는 자신의 운명 앞에 우울 증상을 보인다)

(5) 수용(acceptance-나 역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가는 길로 가게 되는구나 하는 깨달음에 이른다).

옛날에는 사람이 임종에 이르면 집에서 집안 식구들의 슬픔의 전송을 받으며 운명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날은 집안 식구들도 제대로 만날 수 없는 차가운 병원 중환자실에서 갖가지 의료 기구와 튜브를 꽂고 있다가 외롭게 홀로 죽을 수밖에 없다는 정신적-심리적 두려움 때문에 죽음 문제를 가능한 외면하려고 합니다.

셋째. 사회적 고통(social pain)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남기고 가야 할 가족의 장래 문제-자신의 사회적 관계로 얽혀 있는 문제를 자신의 손으로 말끔히 정리하지 못한다는 점-꼭 이루고 싶었던 일, 먹고 싶었던 것, 보고 싶었던 것, 가고 싶었던 곳 등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안타까움 등의 문제가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친척-친구-사회적 인간관계에서 맺혀 있는 은원관계를 풀지 못하고 죽게 된다는 고통입니다.

넷째. 영성적 고통(spiritual pain)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죽음 이후의 세계는 어떠한가?-나의 영혼이 구원 받을 수 있을까?-나의 존재는 이제 완전히 소멸하고 마는가? 하는 등등의 영성적 문제가 실존적으로 아주 절실하게 대두되는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4. 독일어에서 죽음을 나타내는 말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Verenden(생물학적-동물학적 죽음)이고, 다른 하나는 Sterben(정신적-인격적으로 계속 성장하여 인간의 존엄성이 충만한 죽음)입니다. 죽음 문제는 회피할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살아있는 지금 나의 죽음과 직면 할 일입니다. 죽음과의 직면이야말로 人生一代事(인생일대사)이며, 내 인생의 가장 거대한 문제입니다.

 

人生一代事-죽음(2)
본문/  창3:19, 전7:1-2, 약4:14

 

1. 들어가는 이야기  
    출산을 앞둔 가정에서는 출산준비를 합니다. 대학시험을 앞둔 학생은 입시준비를 합니다. 취직을 앞둔 사람은 취직준비를 합니다. 결혼을 앞둔 사람은 결혼준비를 합니다. 요즈음은 노후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나 노후준비를 합니다.

노후준비 가운데 빠질 수 없는 것이 노후준비 자금입니다. 조선일보 2011. 1월 4일(A4)에 의하면 물가상승률 연3.5%-운용수익률 연5%라고 볼 때
2억-월100-18.9년, 월150-12.0년, 월200-8.8년
3억-월100-30.7년, 월150-18.9년, 월200-13.7년
4억-월100-44.9년, 월150-26.5년, 월200-18.9년
5억-월100-62.9년, 월150-35.1년, 월200-24.6년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Well-Being-품위 있는 삶-존엄한 삶을 살기 위하여 인생의 큰일들을 미리미리 잘 준비를 하고 삽니다. 그런데 그야말로 人生一代事인 죽음에 대하여는 거의 준비를 하지 않고 사는 것 같습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All is well that ends well)”는 서양 속담은 “끝이 안 좋으면 다 안 좋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죽음  역시 품위 있는 죽음-존엄한 죽음-Well-Dying이어야 참으로 삶 전체가 통째로 귀족적인 품위 있는 삶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유럽은 1950년대-미국은 1960년대 사망학회-죽음학회가 성립되어 초-중-고-대학교 학생들에게 죽음을 교육함으로써 Well-Being=Well-Dying을 병행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2005년에야 겨우 한국죽음학회가 조직되었습니다.
2. 죽음도 미리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태어나는 것은 할아버지-할머니-아버지-어머니-형제-조카-선베-후배 순이지만, 죽음에는 순서가 없습니다. 심지어 어린 아가들이 먼저 죽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 언제-어디서-어떻게 죽음과 맞닥뜨릴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죽음에 대하여 그저 막연히 터부시하고-두려워하고-재수 없다 할 것이 아니라, 죽음에 대하여 교육도 받고-스스로 연구하여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어제 오늘 성턴 몸이 저녁녘에 병이 들어, 부르나니 어머니요 찾느니 냉수로다. 애고 애고 답답하고, 애고 애고 설운지고, 불쌍하다 이 내 일신,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 진다고 설워마라, 명년 삼월 봄이 되면 너는 다시 피려니와, 인생 한번 돌아가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옛 노인의 말 들으니 저승길이 머다더니, 오늘 내가 당해보니 대문 밖이 저승이라.” 하기 전에 죽음을 준비할 일입니다.

3. 죽음에 대하여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첫째. 나 역시 죽는 존재인 것을 실존적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신문을 보면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연재해-전쟁-대형사고-불치병-자살-범죄-늙음 등으로 죽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주보를 봐도 매주 많은 사람이 죽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것 중 하나는 우리 모두 주변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고 있는 것을 보고 들으면서도 “나는 예외!-언젠가 죽겠지만 지금은 아냐!” 라고 믿고 사는 것입니다. 죽음을 관념적-개념적으로 생각은 하지만 “내게 지금 실제로 일어난 사건”으로 경험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일부러라도 “죽음준비학교-죽음 관련 책-장례식-화장터-공동묘지-병원 등”을 찾아가서 나도 죽는 존재임을 구체적으로-실존적으로 죽음을 연습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둘째. 중심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실제 상황으로서 나의 “유언장과 병원 측에 제출 할 생존시 유언장(Living Will) 혹은 사전의료지시서”를 작성해 두는 것입니다.  

유언장에 기록 할 내용
(1) 필수 기록 사항 :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작성일, 작성장소, 도장.
(2) 남는 가족들에게 : 배우자, 자녀들, 친구, 기타 인간 관계.
(3) 나의 유산 처리 문제 : 구체적으로.
(4) 나의 장례 문제 : 매장, 화장, 납골, 산골, 수목장, 장례 예식 등.

“생존시 유언장(Living Will)” 혹은 “사전의료지시서”는 스스로 판단 능력이 없어졌을 때를 대비하여 병원 측에 자신이 원하는 의료행위를 미리 밝혀두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사전의료지시서를 남기지 않은 경우 환자는 물론이고 병원과 가족, 가족들 사이에 엄청난 갈등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참고: 유경의 죽음준비학교, 궁리, 224-238쪽>

셋째. 내가 죽음에 임박하여 후회할 일이 무엇일까? 깊이 생각해 볼 일입니다.

(1) 속으로만 품고 있던 내 마음의 진정을 상대방에게 표현하지 못 한 것.  
(2) 놀 줄 모르고 죽도록 일만 한 것.
(3) 삶과 죽음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 한 것.
(4) 다른 사람에게 나쁜 짓 한 것.
(5) 맛있는 음식, 가보고 싶었던 곳, 보고 싶은 사람 만나지 못한 것.
(6) 조금 더 친절하고, 조금 더 겸손하고, 조금 더 베풀지 못 한 것.
(7) 종교의 가르침을 제대로 배우지 못 한 것 등.

<참고:  오츠 슈이치, 황소연, 죽을 때 후회하는 25가지, 21세기북스>

人生一代事-죽음(3)

본문/  사22:12-14, 고전15:31-32

1. 들어가는 이야기  

   아담 이후 죽음에 대한 관점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죽음 이후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관점(기독교, 가토릭, 불교, 힌두교, 전 세계 대부분의 민간 신앙 등)이고, 다른 하나는 죽으면 영화의 마지막 자막처럼 그것으로 끝(The End)이라는 관점입니다. 이 두 관점은 과학적으로 어느 것이 옳다-틀리다 판정 할 수 없습니다. 아니, 사후세계에 대한 眞僞(진위) 문제는 과학의 범주를 초월하고 있습니다. 다만, 파스칼의 말처럼 지혜문학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A>가 사후 세계의 존재를 믿고 살다가 죽었는데, 죽어보니 사후세계가 없다 하더라도 <A>는 특별히 손해 볼 것이 없다. 그러나 사후세계가 있다면 <A>는 무한한 복락을 누릴 것이다. 반면에 <B>는 사후세계가 없다고 믿고 살다가 죽었는데, 사후세계가 없다면 <B> 역시 특별히 손해 볼 것이 없다. 그러나 사후세계가 있다면 <B>는 도저히 회복 할 수 없는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된다. 그러므로 사후세계를 믿고 사는 것이 당연히 현명한 판단이다.”

2. 사후세계가 있는가? 없는가?
사후세계의 有無(유무) 문제는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입니다.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지혜의 문제입니다.

얼마 전 신문 보도를 보니 “사후세계를 믿고 사는 사람이 많은 나라의 행복지수가 높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내용인즉, 사후세계를 믿는 사람들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가난해도, 일이 잘 풀리지 않아도 사후세계를 믿지 않는 사람보다 그다지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충분히 일리 있는 소리입니다.

* 그 날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명하사 통곡하며 애호하며 머리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띠라 하였거늘 너희가 기뻐하며 즐거워하여 소를 잡고 양을 죽여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먹고 마시면서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하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친히 내 귀에 들려 가라사대 진실로 이 죄악은 너희 죽기까지 속하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사22:12-14)

*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내가 범인처럼 에베소에서 맹수로 더불어 싸웠으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느뇨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고전15:31-32)

3. 사후세계를 믿지 않고 사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이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 마음이 강퍅하여 회개할 마음이 일어나지 않아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왜?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그들이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롬1:28-32)” 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도덕적-윤리적-사회적 책임의식이 빈약합니다. 죽으면 만사 끝이니 그저 대충 대충 욕 안 먹고 살면 된다는 저급하고 허무한 의식으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 대표적 사례가 송강 정철의 將進酒辭(장진주사)입니다.

한 잔(盞) 먹새그려 또 한잔 먹새그려.
곶 것거 산(算) 노코 무진무진(無盡無盡) 먹새그려.
이 몸 주근 후면 지게 우희 거적 더퍼 주리혀 매여 가나
유소보장(流蘇寶帳)에 만인(萬人)이 우러네나,
어욱새 속새 덥가나무 백양(白楊) 수페 가기곳 가면,
누른 해, 흰 달, 굴근 눈, 쇼쇼리 바람 불 제, 뉘 한잔 먹쟈할고.
하믈며 무덤 우희 잔나비 휘파람 불제, 뉘우친달 무엇하리.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았으니, 이 정도의 의식을 가진 사람은 그래도 양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 우리 사회를 둘러보면, 자기 하나 잘 먹고 잘 살기 위하여 이웃 사람들에게 엄청난 육체적-정신적-물질적-사회적 피해를 주면서도 참회의 기색도 없이 사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런 사람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라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니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 하리로다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시37:7-10)”

셋째. 사후세계를 믿지 아니 하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이 다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이 세상이 있은즉 저 세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히9:27)” 하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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