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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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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행10:39-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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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수 목사 |
참고 : | 말씀의샘물교회 http://www.wordspring.net |
부활사건은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닙니다
본문/ 행10:39-41, 고전15:3-8
1. 들어가는 이야기
2011년 부활주일 아침입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의 부활사건 위에 기초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교회 강단의 설교가 부활에 대한 것이 주류를 이루는 것이 마땅한데, 교회 강단의 현실을 보면 부활에 관한 설교는 부활주일 하루 그것도 화려한 데코레이션과 음악회, 아이들 율동, 등 특별 순서를 곁들여 千篇一律(천편일률)적으로 무슨 記念辭(기념사)처럼 행해지고 있을 뿐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가? 그 이유는 많은 설교자들이 부활을 개인적-실존적으로 하나님의 존재론적 신비를 몸소 경험하고(누미노스-numinous experience) 기쁨으로 동참하는 사건이 아니라, 과학적-이론적 증거를 제시하여 합리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려고 하니 어렵고 곤란하고 힘드니까 부활 설교를 회피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침묵하라!” 라고 한 비트겐슈타인의 명제는 옳습니다. 참고: 정용섭, 설교란 무엇인가, 홍성사.
2. 부활사건은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니라, 참예하여 누려야 할 존재론적 신비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풀어야 할 숙제로 생각한 것은 예수님의 부활 당시부터 있었습니다(마28:11-15). “모든 생명은 죽는 존재(Sein zum Tode)” 라는 인간의 실존의식은 부활을 理性(이성)으로는 믿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사건에 대하여 사람의 이성으로 납득 할 수 있을 법한 수많은 이론적 가설을 제시하였습니다. 시체도적설, 재매장설, 가사소생설, 대리처형설, 전설설, 환상설, 신화설, 영적부활설 등이 그것들입니다. 이런 모든 시도들은 결국 성경을 부정하거나, 기독교 전통 교리를 無視(무시)-歪曲(왜곡)-牽强附會(견강부회)하는 그야말로 理論(이론)-異論(이론)일 뿐입니다.
이 모든 이론들에 대하여 디벨리우스는 “그러므로 단시일 내에 제자들의 심경을 一新(일신)하였을 뿐만 아니라 저들에게 새로운 활동력을 주어 초재교회를 설립하게 만든 그 무엇 사건이 일어난 것만은 틀림없다. 바로 "그 무엇(etwas)!" 이야말로 말로 부활신앙의 역사적 핵심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무엇(etwas)"은 결코 말로 다 설명될 수 없습니다. 말은 다만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의 역할을 할 뿐입니다. 참고: 허호익, 예수 그리스도2, 동연, 231-334쪽.
3. 이정수 목사가 이해하고 있는 부활사건의 핵심(江湖諸賢의 叱正을 부탁함)
본문: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행10;39-41). 고전15:3-8.
첫째. 예수님은 스스로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수님을 부활 시키셨습니다. 지난주일 말씀 드린 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율법 가운데 가장 큰 계명을 敬天愛人(경천애인-하나님 사랑+사람 사랑)이라 하시고, 그 말씀대로 사셨기 때문에 경천애인을 무시하는 마귀-사탄의 세력에 사로잡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려내신 것입니다. (God raised him from the dead on the third day). 참고: 말씀의 샘물 제5권 290호.
무슨 뜻인가? 하나님께서 경천애인을 무시하는 사탄-마귀적 삶이 틀렸고, 경천애인의 삶을 사신 예수님의 삶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신 것이 부활사건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과학적-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미리 택하신 사람들에게만 나타내신 하나님의 존재론적 신비 사건입니다(God caused him to be seen). 본문에서 나타내셨다(to be seen)-보이셨다(appeared)는 말은 객관적-과학적으로 展示(전시)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으로 특정한 사람에게 임재하셨다-계시하셨다는 뜻입니다(참고: 신약성서 신약사전, 요단출판사, 801쪽).
무슨 뜻인가? 왜, 부활하신 예수님은 대제사장 가야바-유대 총독 빌라도에게 나타나지 않으셨는가? 아니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성전 꼭대기에 나타나지 않으셨는가? 부활사건은 객관적-과학적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론적 신비 사건이라는 말입니다. 참고: 말씀의 샘물 제2권 104호.
셋째.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의 대심판과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를 先取(선취-몰트만의 신학 개념)하는 우주적-종말론적 계시사건인 동시에 오고 오는 각 시대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영접하는 한 사람 한 사람 개개인의 종말론적 깨달음을 일깨우는 사건입니다.
무슨 뜻인가? 부활사건을 통하여 이 세계와 각 사람이 하나님의 존재론적 신비에 참여하여함으로써 “이 세대를 본받는 삶에서 변화되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가 분별하는 삶(롬12:1-2)”을 살아감으로써,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 사랑+사람 사랑으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본문/ 행10:39-41, 고전15:3-8
1. 들어가는 이야기
2011년 부활주일 아침입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의 부활사건 위에 기초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교회 강단의 설교가 부활에 대한 것이 주류를 이루는 것이 마땅한데, 교회 강단의 현실을 보면 부활에 관한 설교는 부활주일 하루 그것도 화려한 데코레이션과 음악회, 아이들 율동, 등 특별 순서를 곁들여 千篇一律(천편일률)적으로 무슨 記念辭(기념사)처럼 행해지고 있을 뿐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가? 그 이유는 많은 설교자들이 부활을 개인적-실존적으로 하나님의 존재론적 신비를 몸소 경험하고(누미노스-numinous experience) 기쁨으로 동참하는 사건이 아니라, 과학적-이론적 증거를 제시하여 합리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려고 하니 어렵고 곤란하고 힘드니까 부활 설교를 회피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침묵하라!” 라고 한 비트겐슈타인의 명제는 옳습니다. 참고: 정용섭, 설교란 무엇인가, 홍성사.
2. 부활사건은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니라, 참예하여 누려야 할 존재론적 신비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풀어야 할 숙제로 생각한 것은 예수님의 부활 당시부터 있었습니다(마28:11-15). “모든 생명은 죽는 존재(Sein zum Tode)” 라는 인간의 실존의식은 부활을 理性(이성)으로는 믿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사건에 대하여 사람의 이성으로 납득 할 수 있을 법한 수많은 이론적 가설을 제시하였습니다. 시체도적설, 재매장설, 가사소생설, 대리처형설, 전설설, 환상설, 신화설, 영적부활설 등이 그것들입니다. 이런 모든 시도들은 결국 성경을 부정하거나, 기독교 전통 교리를 無視(무시)-歪曲(왜곡)-牽强附會(견강부회)하는 그야말로 理論(이론)-異論(이론)일 뿐입니다.
이 모든 이론들에 대하여 디벨리우스는 “그러므로 단시일 내에 제자들의 심경을 一新(일신)하였을 뿐만 아니라 저들에게 새로운 활동력을 주어 초재교회를 설립하게 만든 그 무엇 사건이 일어난 것만은 틀림없다. 바로 "그 무엇(etwas)!" 이야말로 말로 부활신앙의 역사적 핵심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무엇(etwas)"은 결코 말로 다 설명될 수 없습니다. 말은 다만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의 역할을 할 뿐입니다. 참고: 허호익, 예수 그리스도2, 동연, 231-334쪽.
3. 이정수 목사가 이해하고 있는 부활사건의 핵심(江湖諸賢의 叱正을 부탁함)
본문: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행10;39-41). 고전15:3-8.
첫째. 예수님은 스스로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수님을 부활 시키셨습니다. 지난주일 말씀 드린 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율법 가운데 가장 큰 계명을 敬天愛人(경천애인-하나님 사랑+사람 사랑)이라 하시고, 그 말씀대로 사셨기 때문에 경천애인을 무시하는 마귀-사탄의 세력에 사로잡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려내신 것입니다. (God raised him from the dead on the third day). 참고: 말씀의 샘물 제5권 290호.
무슨 뜻인가? 하나님께서 경천애인을 무시하는 사탄-마귀적 삶이 틀렸고, 경천애인의 삶을 사신 예수님의 삶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신 것이 부활사건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과학적-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미리 택하신 사람들에게만 나타내신 하나님의 존재론적 신비 사건입니다(God caused him to be seen). 본문에서 나타내셨다(to be seen)-보이셨다(appeared)는 말은 객관적-과학적으로 展示(전시)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으로 특정한 사람에게 임재하셨다-계시하셨다는 뜻입니다(참고: 신약성서 신약사전, 요단출판사, 801쪽).
무슨 뜻인가? 왜, 부활하신 예수님은 대제사장 가야바-유대 총독 빌라도에게 나타나지 않으셨는가? 아니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성전 꼭대기에 나타나지 않으셨는가? 부활사건은 객관적-과학적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론적 신비 사건이라는 말입니다. 참고: 말씀의 샘물 제2권 104호.
셋째.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의 대심판과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를 先取(선취-몰트만의 신학 개념)하는 우주적-종말론적 계시사건인 동시에 오고 오는 각 시대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영접하는 한 사람 한 사람 개개인의 종말론적 깨달음을 일깨우는 사건입니다.
무슨 뜻인가? 부활사건을 통하여 이 세계와 각 사람이 하나님의 존재론적 신비에 참여하여함으로써 “이 세대를 본받는 삶에서 변화되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가 분별하는 삶(롬12:1-2)”을 살아감으로써,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 사랑+사람 사랑으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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