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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사람 : 복 없는 사람(1)

시편 최용우............... 조회 수 3441 추천 수 0 2011.08.14 00:12:45
.........
성경본문 : 시1:1-8 
설교자 : 이정수 목사 
참고 : 말씀의샘물교회 http://www.wordspring.net 
복 있는 사람 : 복 없는 사람(1)
본문/ 시1; 1-8, 2: 1-12

1. 들어가는 이야기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남녀노소-동서고금-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어느 누구도 불행-가난-고통-비극-밑바닥 인생을 살고 싶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보다 나은 삶-보다 풍성한 삶-보다 큰 복 받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을 “인생의 목적은 행복한 삶을 사는 데 있다!” 라고 단 한 마디로 잘 정리하였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는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 하시는가?”를 묵상하는 가운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2. 본문 말씀 연구-시편1:1-8, 2:1-12
시편(시150편)은 “제1권 1-41, 제2권 42-72, 제3권 73-89, 제4권 90-106, 제5권 107-150” 으로 묶은 것입니다. 본문 시1편과 시2편은 시편 전체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1) 시편 안의 다른 시들은 각각 저마다 “다윗의 시, 고라의 시, 관악에 맞춘 노래 등등” 제목과 설명이 있으나 이 두 시에는 없다. (2) 시1편이 “복 있는 (아슈레)” 시작되는데, 시2편은 “복이 있도다 (아쉬레)” 로 마감함으로써 두 시는 首尾雙關(수미쌍관: 처음과 끝이 서로 통함) 하고 있다. (3) 내용으로 볼 때 시1편(복 있는 사람)과 시2편(복 없는 사람)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이로써 시1, 2편은 시편 전체를 이끄는 서론이자 기준이며 嚮導(향도)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합니다. 또한 성경은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罰(벌) 내리기를 기뻐하시는 분이 아니라, 복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 이라고 하십니다.

*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렘29:11) *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겔18:23) * 아들이 생선을 달라하는데 뱀을 줄 아비가 어디 있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제 자식에게는 좋은 것으로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9-11) *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눅12:32) *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살전5:9) *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3:17) *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라(딤후1:7) *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애3:33) 등등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3. 복 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다 하셨습니다. 무슨 뜻인가?
첫째. 물질적인 복이 있습니다. 99881234(99세까지 88하게 살다가 1, 2, 3일 좀 앓다가 4-死 하는 것), 부동산-주식-보험-다양한 통장 완벽한 포트 폴리오로 구성된 빵빵한 경제력, 남들이 알아주는 Social position,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자식들, 짱짱한 인맥, 미끈한 몸매에 탄력 있는 근육의 몸짱-얼짱, 어떤 분위기에도 잘 어울리는 패션 감각, 고상한 매너 등등 이 모든 것이 물질적 복입니다.

둘째. 정서적인 복입니다. 감사하게 받아들일 줄 알고, 기쁨으로 베풀 줄 아는 수용성, 문학-음악-무용-영화-사진-동양화-서양화-조각-골동품 감상 등 각종 예술에 대한 깊은 심미안, 승마-등산-고산 등반-수영-테니스-골프-바둑-스키-야구-눙구-축구 등 각종 스포츠에 대한 관심과 참여, 역사-철학-신학-경제학-고고학-생물학-우주학-지질학-심리학-각종 학문 분야에 대한 준전문가 수준의 실력, 어느 상황에서나 Positive thinking-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유지함, 균형 잡힌 Well being-Well dying 의식, 여러 사람들과 호호탕탕하게 어울릴 줄 아는 풍류 등 이 모든 것이 정서적 복입니다.

셋째. 영적인 복이 있습니다. 당하면 외로움이고, 선택하면 고독인 줄 알고,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고 고독 할 수 있는 건강한 자립성, 무소유란 아무 것도 없이 꾀죄죄하고 후줄근한 채 빈털털이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나에 필요 없는 것을 소유하지 않고 살겠다는 의지적 결단으로 만드는 간수한 삶(Simple life mode), 온갖 근심-걱정-염려-두려움-고통에도 평정을 잃지 않는 아타락시아의 확립, 安閑無事 應緣接物 隨機應變 隨性适意(안한무사 응연접물 수기응변 수성괄의: 현실을 도피하여 평안을 구하지 아니하고, 만나는 일과 기회에 따라 바르게 응대하며, 자기 성품에 따라 신속하게 대응함)하는 平常心(평상심), Sancta Simplicitas!-성스러운 단순함-고귀한 단순성과 위대한 침묵에로의 복귀!, 예수님처럼 높은 산-빈들-광야에 나 홀로 금식하며, 하늘 아버지의 뜻을 살피고, 기쁨과 찬양 속에 나의 십자가를 지고 黙言(묵언)하는 영성수련 등 이 모든 것이 영적인 복입니다.

물질적인 복-정서적인 복-영적인 복, 이 모든 복은 복입니다. 복에는 높고 낮은 수준이 없습니다. 왜? 이 모든 복의 근원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이르되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My power and strength of my hands)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을 얻을 수 있는 능력(ability)을 주셨음이라(신8:17-18)” 라고 하였습니다. 즉, 복이란 "하나님께서 복 있는 사람-복 받을 일을 한 사람에게 물질적이든-정서적이든-영적이든 그가 원하는 복을 얻을 수 있도록 부어주신 내적 능력-Ability-Inner power" 입니다.

문제는 내가 과연 복 있는 사람인가? 하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 : 복 없는 사람(2)  
본문/ 시1:1-8, 2:1-12

1. 들어가는 이야기  
   내가 연세대학교 신학과 1학년에 입학하여 첫 구약개론 시간에 김찬국 선생님으로부터 시편1편, 시편23편을 우리말과 영어로 외워오라는 숙제를 받고 열심히 외웠던 기억이 새롭습니다(The Lord is my shepherd, I sall not want;  he makes me lie down in green pastures...지금도 반 쯤 외운다). 시편 중에도 제1편, 제23편은 그만큼 아름답고 은혜롭고 유명한 시편입니다. 우리는 물론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 두 편의 시만큼은 외워두는 것이 참으로 유익하리라 생각합니다. 자, 그럼 오늘 본문 시1편을 꼼꼼히 읽도록(외우도록) 합시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시1:1-8).  

2. 복 있는 사람과 복 없는 사람의 기준은 매우 단순합니다
복 있는 사람: *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죄인들-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1:1-2) * 여호와는 생존 하시니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내 구원의 하나님을 높일찌로다(시18:46), *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The living God)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시42:1-2),

복 없는 사람: *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부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시2:1-3) * 악인은 그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치 아니 하신다 하며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시10:4), *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시14:1-4=시53:1-4).

즉,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있다 하고 그의 율법(The law of the Lord-토라-가르침-교훈-십계명 등)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사람이요, 복 없는 사람은 여호와와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고 그의 토라를 전면 거부하는 사람입니다.

3. 여호와의 율법(The law of the Lord-토라-가르침-십계명 등)이 왜 복인가?
(推記: 우리들은 율법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낍니다. 그 이유는 율법과 율법주의를 혼돈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5:17-19)” 하셨습니다. 즉, 율법의 문자에 얽매어 법정신을 상실-왜곡-파괴하는 율법주의가 잘 못된 것이지 율법 자체가 잘 못된 것은 전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첫째. 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법정신은 소유지향적(Having mode-I am what I have)이 아니라, 철저하게 사람+자연+우주 그 자체를 사랑하는 존재지향적(Being mode-I am what I am)임으로 복됩니다. 구약의 계약법전(출20:22-23:19), 신명기법전(신12-26), 정결법전(레17-26), 신약의 모든 말씀이 그러합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자연+우주+사람)이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 겪고 있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롬8:18-25). 왜? 우리 모두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떠나, 所有(소유)에 눈이 멀어 탐욕-분노-어리석음으로 헤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눅12:15)” 하신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법정신은 정의와 자유임으로 복됩니다. 엘리야 선지자와 바알과 아세라 제사장들과의 갈멜산의 혈투는 “정의와 자유 vs 물질주의와 억압”의 투쟁이었고, 아모스-호세아-미가 등 위대한 선지자들은 왕-귀족-제사장들의 권력과 횡포 아래 신음하는 백성들에게 정의와 자유를 되찾아주기 위한 거룩한 투쟁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정의와 자유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6:6) *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5:24) *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6:8)  

셋째. 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근본 법정신은 사랑과 용서이기 때문에 복됩니다. 자유-평화-정의-행복 등등을 다 갖추고 산다고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결국 죽는 존재입니다. “내가 하나님 안에서 평안을 얻기 전까지 그 어디에서도 쉴 곳을 찾지 못 하였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은 그냥 입에 발린 표피적인 상투적인 소리가 아니라, 사람은 결국 최후에 각 사람이 각각 단독자로서 하나님 앞에 설 수 밖에 없다는 처절한 절망감-두려움-허무감-외로움-영적 어두움에서 몸부림칠 때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만나고, 정말 말로 할 수 없는 그 은혜에 감사와 감격과 惶悚(황송)한 마음을 토로한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 : 복 없는 사람(3)  
본문/ 시1:1-8, 2:1-12

1. 들어가는 이야기  

   시편1편은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에 순종하는 사람”이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시편2편은 “복 없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거부하는 사람”이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2. 시편2편의 3부 구조
제1부(1-3절: 장면은 지상이다)- “복이란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여, 존재지향적(Being mode-I am what I am)-정의와 자유-성령에 따르는 삶이다” 라는 시편1편의 선포에 대하여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버리자(3절)!” 하는 이 세상의 왕-제후-귀족-재판관-기득권자들의 저항이 제기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시편1편의 복은 복이 아니라,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억압하는 족쇄-사슬-결박이다. 사람의 복은 힘의 논리-소유지향적(having mode-I am what I have)-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성취하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제2부(4-9절: 장면은 천상이다)-이들의 주장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입니다.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하나님은 처음에 저들의 無知蒙昧(무지몽매)와 螳螂拒轍(당랑거철-사마귀가 쇠수레에 대항함)에 어이없어 웃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곧 이어 하나님의 거룩한 산 시온에, 하나님의 아들을 기름 부어 왕으로 세우시고, 저들을 철장으로 깨뜨리고-질그릇같이 부수게 하십니다. 즉, 저들의 주장을 이 지상에서 산산이 부수어 없애버리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제3부(10-12절: 장면은 다시 지상이다)-그러나 하나님은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도 기뻐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시는 분입니다(겔18:23). 그러므로 하나님은 저들에게 살 기회를 주십니다.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이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복이 있도다(10-11절)” 라고 하신 것입니다.

鳶(연)이 높이 날려면 연줄에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만약 연이 더 높이 날겠다고 연줄을 끊어버리면, 그 순간 연은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칩니다. 하나님의 율법(토라-계명-바른 가르침)은 인간다운 삶을 억압하는 족쇄-사슬-멍에가 아니라, 참으로 인간답게-복 있게 하는 연줄과 같다고 하신 것입니다.

3. 다시, 왜 여호와의 율법(The law of the Lord)이 복인가?
첫째. 이 세상에 자유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란? 내 마음대로 그 누구의 구속이나 방해 받음 없이, 내 마음 내키는 대로 사는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그 누구도 황제-재벌-천재-영웅 등등 정말 그 누구도 그런 자유를 누리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자유란 없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그런 자유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다만, 법 안의 자유가 있을 뿐입니다. 바울 사도는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한다(딤후2:5)”고 하였습니다. 법이 없는 데가 없습니다. 이 세상 모든 분야(스포츠-음악-미술-정치-군대-학교-회사-사업-예술-취미-학문-심지어 종교까지)에는 법이 엄존합니다. 그러므로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면 그 분야의 법을 존중하고-잘 배우고-법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 그 모든 분야의 법을 법 되게 하는 법의 元型(원형-archetype)이 “하나님의 율법-토라-십계명-The law of the Lord”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고 순종할 때 무한히 자유하는 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둘째. 내 마음대로-나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는 것은 복이 아니라, 오히려  저주입니다. 이 세상네는 天敵(천적)이라는 게 있습니다. 내 마음대로-나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다가 어느 날, 딱! 천적을 만나면 이제까지 쌓아온 나의 모든 권위-자신감-“나 한테 어느 누가 감히!” 하는 氣高萬丈(기고만장)한 나의 체면이 餘地(여지)없이 박살납니다. 그 날부터 그는 처절하게 망가집니다. “이건 별거 아냐!, 그럴 수도 있지 뭘...” 합니다. 물론 별 거 아닙니다. 그것이 별 거 아니라는 것을 自他(자타)가 모두 잘 압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에겐 별 거 아닌 그 문제가 그 자신에게만은 별 것이 되어 그의 내면세계를 회복 不能(불능)으로 만드는 겁니다. 정신과-상담소를 찾는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경우라고 합니다. 작용-반작용(action-Reaction)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인간의 그런 비극적인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는 방패가 됩니다. 시편에 “주는 나의 산성이시오, 나의 방패시니이다(시3:3, 18:30, 28:7, 84:9, 91:4 등)” 라고 한 것은 외적의 침략에서 나를 보호하신다는 의미뿐 아니라, 나의 내면의 영적 위기에서도 나를 지키신다는 의미도 포함합니다. 이렇듯 여호와의 율법은 우리 내면세계를 굳건하게 지켜주시는 방패이기 때문에 복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율법-계명(The Law-The commands)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계약조건입니다. “너희가 나의 율법과 계명을 준행하면...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레26:3-12, 꼭 참고할 말씀: 신5:33, 렘7:23, 11:4, 31:33, 슥8:8, 요1:3:23)” 하셨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게 하시는 약속이기 때문에 복이 됩니다. 차제에 다음 주부터 12계명(구약의 10계명+신약의 주님이 주신 2계명)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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