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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감정을 분별하라

무엇이든 묵상............... 조회 수 1368 추천 수 0 2011.08.22 07:5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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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감정을 분별하라! - 죠나단 애드워즈

 

 

거짓 구원의 감정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확신을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와는 반대로 개신교도들은 구원의 확신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것이라고 항상 믿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가지는 구원의 확신에 대해 많이 언급하고 있다. 예를 들면 다윗은 시편에서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과 구세주로, 또한 자신의 반석, 방패, 요새 등으로 자주 표현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자신과 예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이 구원 받은 기쁨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내가 믿은 그분을 내가 알고, 또한 내가 그 날을 대비하여 그분께 맡긴 것을 그분께서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딤후 1:12)

 

사도들이나 대언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함을 성경은 분명히 증거하고 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선택에 대한 은혜를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촉구하고 있으며(벧후 1:2), 이런 확신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도 가르쳐 주고 있다(벧후 1:5-8).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구원의 확신의 결여는 성경의 가르침과 부합되지 않는다고 바울은 말한다.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지 너희 자신을 점검하고 너희 자신을 입증하라. 너희가 버림받은 자들이 아니라면, 어찌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는 줄을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고후 13:5)

 

요한은 우리의 구원을 확증할 수 있는 많은 시험 방법들을 성경을 통해서 말해 주고 있다.

“우리가 그분의 명령들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분을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우리가 형제들을 사랑하므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줄을 알거니와,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 안에 거하느니라.....그분께서 자신의 영에서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하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요일 2:3, 3:14, 4:13)

 

따라서 성경의 가르침을 통하여 볼 때,

자신의 구원에 대해서 깊은 확신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인을 비판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어떤 사람이 단지 자신은 확실히 구원받았다고 느끼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이 구원받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깊고 확고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구원받지 못한 사람일 수 있다.

 

아마 그는 하나님과 굉장히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것처럼 보이며, 아주 담대하면서도 간절한 말로 거침없이 기도도 잘 하며, 하나님을 “나의 사랑하는 하나님”, “나의 놀라운 구세주”라며 온갖 달콤한 말로 부를지도 모른다.

 

또한 그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 되심을 나는 확신합니다. 이미 천국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을 확신하는 것처럼 죽어서도 천국 갈 것을 확신합니다.” 그는 너무나 자기만만해서 자기 믿음의 진실성을 검증해 볼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 누군가가 그의 구원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한다면 그는 화를 낼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그 어느 것도 그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 사실, 항상 드러내고 자랑하기를 좋아하는 이러한 외식적인 확신은 전혀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확신을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누가복음 18:9-14에 나오듯이, 자신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고 또한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의로운 사람이 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기도를 한 바리새인과 같지 않은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구원의 확신은 겸손하면서도 자랑하지 않는 것이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은 우매하며, 기만적이고 자기중심적이므로, 그들이 자신에 대해서 아주 높게 평가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사탄이 그들의 악한 욕망에 거짓 평안과 거짓 기쁨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회심하지 못한 사람들이 구원에 대한 강하고도 거짓된 확신을 갖게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이런 거짓 확신을 가질 때, 그는 진짜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구원을 의심하는 다음과 같은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가 있다.

 

첫째, 거짓 확신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영원한 운명의 심각성과 옳은 기초,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중요성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반대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겸손하며 매사에 조심스럽게 행동한다. 왜냐하면 그는 영원한 재판장이신 거룩하신 하나님 존전에 나아가는 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놀라운 것인지를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짓 확신은 이런 것들을 전혀 알 수가 없다.

 

둘째, 거짓 확신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얼마나 우매하며 기만적인지를 깨닫지 못한다.

따라서 구원에 대한 거짓 확신은 자기 자신을 더욱더 높게 평가하도록 큰 자신감을 불어넣는다.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자기 자신을 낮게 평가한다.

 

셋째, 사탄은 거짓 확신을 가진 자를 공격하지 않고 오히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확신을 공격한다.

이는 진정한 확신은 더 깊은 거룩함으로 그를 인도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사탄은 거짓 확신을 가진 사람을 자기 손안에 완전히 넣을 수 있으므로 거짓 확신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된다.

 

넷째, 거짓 확신은 죄의 진정한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도록 만들므로 거짓 그리스도인의 눈에는 자신이 깨끗하고 찬란하게 보인다.

이와는 반대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자기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큰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종종 자신처럼 죄 많은 사람이 어찌 구원받은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의아해 한다.

 

거짓 그리스도인에도 두 부류가 있다. 한 부류는 단순히 자신들의 외적인 도덕성과 신앙의 실천 때문에 그리스도인이라고 믿는 사람들로서, 이들은 종종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한 구원의 은혜를 얻을 수 있다는 기독교의 근본 교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또 다른 부류는, 거짓 믿음에 근거한 감정적인 체험을 하고 나서 자신들이 그리스도인들 이라는 확신을 갖는 자들이다.

 

후자의 경우가 가장 좋지 못한 거짓 그리스도인들로서 그들의 확신은 종종 상상에서 비롯된 계시로부터 온 것이다. 그들은 이 계시를 “성령의 직통 계시”라고 부르며 환상을 보고 감동을 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영이 미래의 일을 자신에게 예언해 주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런 경험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자신의 구원에 대한 환상을 보거나 감동을 받는다고 하는 것을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상상에서 비롯된 계시가 자신의 구원에 대한 것들로 귀결될 때 가장 철저한 확신을 그들에게 심어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실제로, 놀라울 정도의 자신감은 자신의 상상에서 비롯된 계시로부터 자신의 모든 것이 인도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다. 그들은 담대하게, “네, 저는 이것을, 또 저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는 “네, 알고 말고요. 저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자신의 경험에 이의를 제기하는 어떤 주장이나 합리적인 질문도 받아들이지 않고 경멸한다. 이런 사람들의 자신감이 어디서 생기는지는 쉽게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하나님의 귀중한 자녀임을 그들에게 특별히 계시했다고 생각할 때, 그들의 자애심은 더 큰 흡족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들이 성령 하나님께서 그들 속에 역사하셨다고 잘못 해석한 그 생생한 감정들과 또한 이와 함께 받은 직통 계시는 그들의 확신을 더욱 더 깊게 할 것이다.

 

이제, 나는 설교자들에게 한 마디 충고를 주고자 한다. 여러분은 설교자로서 가끔 기독교의 진리를 잘못 가르쳐서 사람들에게 거짓 확신을 심어 주거나 장려하고 있지는 않은가?

 

성도들에게 “우리의 감정을 믿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만 의지하라.”, “세상적으로 살지 말고 믿음으로 살아가라”하고 가르치는가?

 

이런 것들이 올바르게 이해되었을 때만 성도들에게 진정한 진리가 될 수 있다.

 

“보는 것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가 우리의 생각이나 삶에 대한 자세를 지배하도록 허락하는 것이다.

 

우리의 육안으로 하나님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는 없다.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우리 눈으로 지금 볼 수 없다. 아직 이 땅에 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는 그 보이지 않는 실체(實體)를 믿는 것이다. 이 보이지 않는 실체를 믿고 그 믿음이 우리의 마음과 삶 전반을 지배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보는 것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삶”인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보는 것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산다.”는 뜻을 우리 마음이 영적으로 어둡고 죽어 있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비성경적이며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영적으로 어둡고 죽어 있기란 불가능하다. 진정한 믿음이란 영적 어둠과 죽음으로부터 나와서 그리스도의 빛과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마음이 어둡고 죽어 있는 것 같은 상황이 계속 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말하는 것은 마치 계속 불신자로 남아 있어도 좋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우리의 영안으로 예수님을 보는 것이라고 성경은 가르친다.

“나를 보내신 그분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존하는 생명을 얻는 이것이니”(요 6:40)

 

진정한 믿음은 오로지 우리가 다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듯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볼 때 존재한다(고후 3:18, 4:6).

 

이런 영적인 빛이 결여된 믿음은 빛의 자녀의 믿음이 아니라 어둠의 자녀의 착각에 불과하다.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마치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신 것 같이 상황이 어렵고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그분의 말씀을 믿는다는 뜻이다.

 

그것은 또한 다른 때처럼 분명하고도 확실한 하나님의 사랑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그분을 신뢰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무런 영적인 빛이나 체험 없이 죽어 있는 세상적인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영적 체험 없이 믿음을 사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믿음에 대한 이상한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이 진정으로 의미하는 믿음은 자신들이 구원받았다고 믿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신들이 영적으로 죽어 있으며 세상적으로 살아간다 할지라도, 자신들의 구원을 의심하는 것을 죄악시 하는 이유이다. 믿음이란 우리가 이미 구원 받았음을 의미한다고 성경 어디에서 말하고 있는가?

 

믿음은 죄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따라서 믿음이란 우리가 이미 구원 받았음을 믿는 것이라는 뜻이 아니다. 만약 믿음이 우리가 구원 받았음을 믿는 것을 의미한다면 우리는 구원받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다고 믿는 것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믿음이란 우리가 믿는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불신앙으로 인해 확신이 부족하게 될 수 있음을 나도 인정한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은 작으며, 그 작은 믿음으로 인해 작은 구원의 증거밖에 남기지 못한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그 믿음에서 자라서 더 많은 믿음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 자신들의 삶 속에 회심했다는 많은 증거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확신이 부족한 그리스도인들도 있다.

 

이들의 의심은 자신들은 가치 없는 존재라는 편견과 하나님의 긍휼의 실재와 권능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부터 생긴다. 또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어둡고 고통스러운 자신의 상황 때문에 확신이 부족할 수도 있다.

 

하나님이 자신들을 그렇게 사랑한다면 왜 고통 속에 그대로 내버려 두시는가? 이런 의심은 하나님의 주권과 지혜에 대한 의뢰심이 부족한 데서 생긴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이 자신의 마음이 완전히 영적으로 죽어 있고 세상적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느낄 경우, 그가 자신의 구원을 의심한다고 해서 그를 탓할 수는 없다.

 

그런 마음 속에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믿음에 대한 확신이 존재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해진 후 햇빛 보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

 

우리 마음이 지금 죄악으로 어두워져 있다면 우리가 한때 가졌던 믿음의 경험들에 대한 추억이 우리의 확신을 계속 지탱시켜 줄 수는 없다.

 

실제로, 우리 마음이 어둠에 휩싸여 세상적으로 기울어져 있다면 우리의 구원의 확신을 한번쯤 의심해 보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식을 때 자신의 염려는 더 커진다. 영적인 암흑의 시간들을 맞이했을 때, 우리는 이런 자신에 대한 걱정 근심이, 우리를 죄로부터 멀리하게 하고 새로운 영적 노력들을 기울이도록 하는 촉매제 역할 을 하게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마음이 영적으로 죽어 있거나 또는 세상적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확신을 가지라고 말해 주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부정하는 일이다.

 

만약 우리가 이렇게 사는 것이 “보는 것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것이요,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믿는 삶이요, 우리의 감정을 믿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심각한 오류에 빠져 있는 것이다.

 

마음이 세상적으로 기울어져 있고 영적으로 죽어 있는 사람들에게 확신을 가지라고 격려하는 것은 그들의 거짓 확신을 부추기는 것이 된다.

 

우리가 우리의 영적인 감정들이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경험들을 구원의 증거로 삼는다면, 그것은 “그리스도보다 우리의 감정을 믿는 것이다.”

 

우리가 구원의 증거로 삼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우리가 우리의 감정들로 인해 우리 자신을 치켜세우고 자랑하게 된다면 그리스도보다는 오히려 우리의 감정을 더 믿는 것일 것이다.

 

우리의 감정들이 하나님보다 더 중요해질 때, 그리고 우리의 놀라운 감정들에 대해 하나님께서 칭찬해 주시기를 기대할 때, 우리는 큰 위험에 빠지게 된다. 실제로 우리가 그렇게 될 때, 우리는 비도덕적인 무신론자들보다 더 악한 영적 상태에 빠지게 되지 않을까?

 

성경 말씀을 떠난 감정

 

진정한 영적 감정들은 성경 말씀과 함께 유발될 수도 있다. 이런 감정들이 그 성경 말씀들이 가르쳐 주는 영적 깨달음과 함께 일어난 것이라면 영적인 것이다. 반면에, 그 감정들이 갑작스럽게 마음에 강하게 와 닿는다고 해서 모두다 영적 감정들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체험들을 구원받은 표시로 생각한다. 특별히 성경 말씀이 소망이나 기쁨의 감정을 일으킨다면 더욱 더 그렇게 생각한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갑자기 그 말씀이 제 마음 속에 강하게 와 닿았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저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 일이 일어났을 때 저는 그 성경 말씀을 생각하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그런 말씀이 성경에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아마 그들은 이렇게 덧붙일 것이다. “성경 한 구절 한 구절이 머리 속에 하나 하나 떠올랐습니다. 그 말씀들 모두가 굉장히 긍정적이면서도 격려가 되는 구절들이었죠. 절로 기쁨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이제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사랑하고 계심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과 경험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그들의 확신은 근거가 불충분하다. 오로지 성경만이 진정한 믿음과 실천의 절대적으로 확실한 기준이지만, 성경은 이런 식으로 우리 믿음의 실체를 시험하라고 말하고 있지 않다.

 

갑자기 성경 구절들이 우리 마음 속에 와 닿는다고 해서 우리가 구원을 얻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지 않다. 긍정적이며 격려가 되는 성경 말씀들이 갑자기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서 눈물을 흘리게 했다고 해서 우리가 구원 얻었음을 증거한다고 성경을 말하고 있지 않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의 경험이 성경 말씀을 수반하고 있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가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경험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런 경험이라면 올바른 것이라는 점이다.

 

성경 말씀이 수반된 경험이라고 해서 다 올바른 것은 아니다. 우리 마음속에 와 닿은 성경 말씀들이 사탄으로부터 주입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사탄은 예수님까지도 유혹하고 속이기 위해 성경을 인용하였다(마 4:6).

 

하나님께서 예수님까지도 성경 말씀을 통해 사탄의 시험을 받도록 허락하셨다면 사탄이 우리를 속이기 위해 성경 말씀을 우리 마음속에 넣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우리의 영력을 흐리게 하기 위해서 긍정적이면서도 격려가 되는 말씀들까지도 사탄은 이용하지 않을까? 마귀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 속에 거짓 소망과 기쁨을 넣어 주기를 즐거워하지 않을까?

 

그들이 진정으로 회개하고 구원받기 전에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믿기를 사탄은 바라고 있다. 이 거짓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 사탄은 격려의 성경말씀들을 악용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거짓 대언자들은 이런 식으로 성경 말씀들을 왜곡시켜서 사람들을 속였다. 결국 사탄의 종으로 이용당한 것이다. 사탄은 자신의 종들이 하는 일을 충분히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진정한 믿음 안에서 경험하는 영적 감정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온것인지를 점검할 필요가 있으며 그리고 말씀이 마귀가 성경을 도용하는것인가를 살필 피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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