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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딤후1:7-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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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상호 목사 |
참고 : | 세광교회 http://sk8404.or.kr |
하나님이 주신 것
딤후 1:7-12
04. 11. 7, 오전
우리의 원수 마귀는 얼마나 간교한지 때로 과거를 응시하게끔 몰아 넣으므로 우리를 침체시키려 합니다. 만일 그 일에 실패하면 마귀는 전략을 바꾸어 우리에게 미래를 두려워하게 합니다. 그 결과 항상 우리를 현재에 침체되게 합니다.
왜 사람들은 미래에 대하여 두려움으로 고민하고 있습니까? 물론 기질적으로 신경질적이며, 걱정이 많으며, 놀라기를 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울 자신도 이런 증세가 있었습니다. (고전 2:3 ; 고후 7:5 참조) 그는 선천적으로 소심한 사람이었습니다. 반면에 자신감과 확신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디모데의 경우를 보십시다. 당시 디모데는 나이가 연소했고(딤전 4:12) 또한 건강한 체질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자주 나는 병이 있었습니다.(딤전 5:23) 그는 매우 겁많고 수줍어하는 성격이었습니다. 특히 그에게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영적 침체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상상적인 두려움에 기인합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혀있고 디모데는 앞으로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걱정하였습니다.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를 일에 대한 걱정, 그들이 고생할지도 모를 사명에 대한 걱정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에게 강경하게 말했습니다. 바울은 그의 고난과 자기가 갇힌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디모데에게 말했습니다.(딤후 1:8)
두려움을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까?
성경이 항상 우리에게 경성시키는 바는 미래에 대하여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마 6:34)는 말은 "내일에 대하여 너무 염려하여 죄를 짓지 말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래에 대한 우리의 걱정이 타당한 일이지만 거기에 지배를 당하게 되면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세상 지혜도 우리에게 지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선 디모데에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라고 책망합니다. 디모데는 그 당시에 두려워하는 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래서 그를 책망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 (딤후 1:7)이라고 했습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 앞에 놓여진 위대한 소명과 엄청난 과업에 우리의 연약함과 힘의 부족을 비교해서는 안됩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해 줄 일은,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기억하게끔 하는 일이었습니다.
또한 바울은 우리가 염려하며 생각하는 미래와 실제 펼쳐지는 미래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인식시켜 주려 했습니다. 우리는 고난을 새로운 각도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미래의 두려움에 대처할 방법은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우리 자신에게 상기시켜 주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본성적으로는 연약하고 그의 대적들은 강했으며 그가 해야 할 과업은 막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연약함을 생각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질까지도 성령이 지배하시면 우리의 기질을 통하여 독특한 방법대로 일할 수 있도록 가능케 하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은 어떤 영이신가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소원을 두고 행하시는 능력에 의해 일할 수 있습니다. (빌 4:13) 이 능력은 가장 소심한 사림이 모든 것, 심지어 죽기까지도 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능력을 의미합니다.
베드로 - 그는 죽는 것을 두려워했고 주님을 부인하고 맹세하고 저주까지 하면서 부인했습니다. (마 26:69~75) 그러나 사도행전에서 그 이후의 그를 보시기 바랍니다.(행 4: 19~20 참조) 사도행전의 제자들은 자신의 힘으로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능력의 영이 주어졌습니다. 그들 자신도 놀라울 정도로 능력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성령은 능력의 영이시며, 사랑의 영이시며 근신하는 마음 - (절제, 지혜, 분별, 이해의 영)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마음이 아닌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두려워 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한 이후에 비로서 '두려움'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두려운 마음이란 그 본질이 하나님 앞에서 선 인간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두려워하는 마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는 마음입니다. 여러분이 예수안에서 자유하게 되면, 이런 두려움은 다 사라지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1.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두려움을 이길 수 있도록 몇 가지 특별한 은혜를 주십니다. 그것은 '튼튼한 동앗줄'입니다. 오늘 본문 7절에 보면
첫째는 '능력'입니다. 이것은 '문제를 해결하고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그것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능력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는 부활의 능력입니다. 이 능력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어떠한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고 자족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물리치고 병든 자를 고치는 능력입니다. 12년 혈루증 환자가 옷자락만 붙잡아도 고침받는 능력이요, 믿음대로 되고, 말한대로 되는 능력입니다. 기도한 대로 이루어지는 능력이요, 주의 이름으로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바로의 군대를 홍해바다에 수장시키는 능력입니다.
둘째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어려움 속에서도 나의 삶을 활기차게 만들어 주는 힘을 말합니다. 사랑은 언 땅을 녹이는 따뜻한 봄 햇빛과 같은 것입니다. 사랑이란 냄새도 없고 모양도 없는 것이지만 닫힌 마음을 열고 흩어진 것을 이어주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랑을 그 어떤 무기보다 강력한 원자탄이라고 표현한 사람도 있습니다.
캐나다의 한 신문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어떤 부인이 법원에 이혼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래서 재판장은 부인과 남편을 불러다가 사실 심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부인은 남편과 이혼을 하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재판장이 물었습니다. "남편의 노래를 매일 들어야 하는 게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부인의 대답이었습니다. "그래, 노래를 얼마나 못하기에 이혼을 할 정도입니까?" 재판장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자 부인은 자기 남편을 가리키며 대답했습니다. "이 사람은 아는 노래가 단 한 가지뿐인데, 그 노래 제목은 <독신 생활이 좋아>랍니다. 게다가 곡조도 전혀 맞지 않아서 도무지 참고 들을 수가 없어요." 참 기가 막힌 이야기입니다. 기왕 우리 사랑을 노래하십시다.
깊은 산골에서 농사를 짓는 젊은 부부가 있었습니다.남편은 한달에 한번씩 장을 보러 읍내로 떠났습니다.그때마다 아내는 세살된 딸과 돌이 갓 지난 아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아내가 장작더미를 드는 순간 그 속에 숨어있던 독사가 발을 물어버렸습니다. 아내는 독사의 독이 온몸에 퍼져오는 것을 감지했습니다.
남편이 돌아오려면 사흘이 걸립니다.이 어린 아이들을 돌보아줄 이웃도 없습니다."저 어린 것들이 굶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내는 아궁이에 불을 피워 아이들이 먹을 우유를 데우고 음식을 만들었습니다.온몸에서 땀이 비오듯 쏟아졌지만 계속 불을 피웠습니다. 정신은 점점 혼미해졌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마지막 사랑은 계속됐습니다.
몇 시간 후 아내는 자신이 아직 살아있음을 깨닫고 깜짝 놀랐습니다.비오듯 쏟은 땀과 함께 뱀의 독이 흘러나온 것입니다. 만약 어머니가 그대로 주저앉아 신세한탄을 했더라면 남편은 비참하게 죽은 세 가족의 시체를 발견했을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쫓습니다.
세번째는 '근신하는 마음'입니다. 이것은 '도대체 어떤 원인으로 이런 위기가 생겼는지를 꼼꼼하게 생각해 보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반성하고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게 하는 마음입니다. 이것들을 통하여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혹시 여러분은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이 튼튼한 세 동앗줄이 하나님이 주신 것인 줄 모르는 사람처럼 구경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는 이런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눅 12:32)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말씀입니까? 이렇게 두려움을 이기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십시다.(:8)
부정적인 사람이나 나태하고 게으른 사람을 따라 다니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되고 맙니다. 소극적인 사람이나 원망을 품고 사는 사람을 따라다니면 나도 원망이 입에 베어 버립니다. 그래서 늘 불만족스럽고 피곤한 뿐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라면 고난도 능력입니다. 복음과 함께 라면 환난도 은혜가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가운데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성경 욥기 23:10에 보면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고 했습니다. 이시간 찬양을 하나 하고 싶습니다. 1640장 '고난이 유익이라'
때때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인 것을 부끄러워하기도 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12절/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으로 살기를 원한다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부끄러워 할 필요도 없습니다. 고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내가 속해 있는 교회 공동체인 세광교회가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
내가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내게 얼마나 크게 역사하고 있습니까?
또 여러분은 자기가 전하는 복음에 대하여 얼마나 담대합니까?
3.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부르심은 주님의 은혜입니다.(: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
우리가 죄로부터 구원받은 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입니다. 주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셨습니다. 내가 나를 두고 사명을 감당한다면 때때로 부끄럽기도 하고 무기력해지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따른다면 지금 주신 은사와 함께 큰 일들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내게 능력이 있다고 내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은사가 있다고 아무렇게나 사용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부름에 합당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여기서 지나치면 교만이 되어서 자기 욕심을 따라 갈 것이요 여기서 부족하면 게으름이 되어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지경이 되고 맙니다.
우리의 행위 보다 우리의 판단보다 더 소중한 것은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시는 것입니다.
내 행위가 옳아도 내 생각이 지혜로와도 항상 그 위에서 역사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모든 것 위에서 역사하십니다.
4.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11-12)
우리는 내가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의도적으로 숨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사는 사람에게는 그리스도가 자랑이요 복음이 곧 능력입니다. 그래서 주를 위하여 갇힌 자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고난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고난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더욱 부끄러운 것입니다. 우리 성도가 고난 중에도 강하고 담대하게 일어나는 것은 하나님께서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생각을 조금씩 바꾸어야 합니다. 몸은 늙어도 생각은 늙어지면 안됩니다. 생각은 나이를 먹지 않습니다. 생각은 날마다 새로운 것이고 신선한 것이어야 합니다.
" (11절)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
우리는 이미 전도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습니다. 우리가 사명을 감당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반드시, 능히 지켜 주십니다. 그러므로 더욱 강하고 담대하게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은혜와 평강을 누릴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능력을 따르십시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십시오.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하십시오.(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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