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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본심

예레애가 이상호 목사............... 조회 수 2858 추천 수 0 2011.08.24 21:2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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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애3:19-33 
설교자 : 이상호 목사 
참고 : 세광교회 http://sk8404.or.kr 

하나님의 본심

렘애가 3:19-33                                                     

2005. 2. 13, 오전
 
하나님의 본래 의도는 고생과 근심이 아님을 알려주십니다(애3;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님이로다. 잠시 고난이 가져올 유익과 변화에 대하여 필요한 잠깐의 근심, 고생이 필요할 뿐 ... 의로운 백성, 의로운 자녀, 의로운 일꾼이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예레미야 애가서는 예레미야서의 보충적인 내용입니다. 거기에는 죄로 인하여 망하게 된 유다의 비극을 슬퍼한 것으로 가득 차 있는데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당한 슬픔의 사연으로 인하여 통곡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매양 저들의 회개를 간곡하게 부르짖고 있으며, 4장에서는 그런 정황 속에서 행해지는 인간적인 노력은 정말 무익한 것이라고 강조하고있습니다. 다섯 장밖에 안 되는 아주 짧은 성경이지만 거기에 있는 비통의 분량은 하늘과 땅에 가득 차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히브리 민족은 하나님께 범죄하므로 B.C. 586에 바벨론에게 망하는 민족적 비극은 절정에 달하게 피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크나큰 위로와 희망, 그리고 기쁨을 주는 내용입니다.

고난의 의미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에게 사로잡혀 갔고 또 그 전후에 당한 고난과 오늘날까지 말할 수 없는 역경 속에서 지내 왔습니다. 그러나 그런 고난들은 결과적으로 큰 유익을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첫째는 저들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평안할 때에는 방탕, 우상숭배, 강대국을 의지함 등이었는데 일단 큰 시련과 망국의 아픔을 당하게 되니 "오 하나님이시여, 정말 잘못했습니다. 용서하소서!"라고 부르짖으며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오게 되었습니다. 아이들도 잘 놀다가 급하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두 손들고 "엄마!" 하고 달려와서 안기는 것처럼 사람들도 어려운 일이 생겨야 성경 읽고, 기도 많이 하며 하나님께 가까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종교 철학적인 견지에서도 전쟁터에서와 죽음을 앞에 둔 사람으로서 무종교 인은 없는 법입니다. 한국 기독교가 왕성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역사적으로 숱한 전쟁과 난리, 역경들을 당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사회의 불안과 위기가 생기면 기독교인은 급증하게 마련입니다(히 12 : 5-7).

 

둘째는 가나안을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인들이 애굽에서 편안히 지낼 때는 고국인 가나안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렸지만 일단 환난과 핍박이 몰아쳐 오고 큰 위기를 당하게 되니 비로소 가나안 땅을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난관이나 좌절 같은 고통이 오면 영원을 더 사모하게 마련입니다. "세상에 고난이 많은 것은 천국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기 위한 것이다"(J. Calvin).

 

셋째로 하나님께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런 심한 고난을 당하고 나니 이제는 하나님께 순종하게 되었습니다(시 119 : 67-71).

 

넷째로 인내력과 능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강력한 이유는 많은 고난을 당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한국 민족이나 우리의 신앙이 굳건한 이유 또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린 예레미야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큰 고통 속에서 살았던 비운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였지만 평생을 고통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백성들에게 범죄 하면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눈물로 증거 했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결국 범죄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침략으로 멸망하고 백성들은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잡혀갔습니다.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와 이스라엘 백성이 당했던 고통은 실로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우리 민족에게는 특히 고난이 많았습니다.

 

1)전쟁의 고통
우리민족은 동족간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으로 우리는 사랑하는 남편, 아버지, 자식을 잃었고, 남북의 가족이 생이별하는 이산의 아픔을 당하여 50년이 넘도록 생사도 모른 채 살았고, 북에서 살고있는 가족들은 믿음과 교회를 잃고 공산독재 통제하에서 죽음보다도 못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2)가난의 고통
남북한은 전쟁 후 가난과 배고픔의 고통을 당했습니다. 남한은 지금 좀 나아졌습니다. 그러나 북한 동포들은 아직도 가난과 기아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3) IMF의 고통
배고픔에서 벗어나 좀 먹고 살만-해 지자 우리 국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과소비, 사치, 허영, 허풍을 떨었습니다. 대기업들은 방만한 경영과 부실한 경영으로 대기업과 금융권이 일거에 쓰러지면서 1997년 IMF를 당하여 실직자들로 서울역과 각 지하철역, 공원, 등산로가 넘쳐나 6.25이후 최대의 고통을 당했습니다.
4) 제2의 IMF 고통
은행들이 기업에게 빌려준 자금 45조원이 회수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신문기사)
기업들이 갚을 여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공적 자금 40조원을 투입해도 모자란다고 합니다. 그래서 불거진 말이 그 무서운 제 2의 IMF 고통이 왔다는 얘깁니다.
5) 깨어지는 가정의 고통
우리나라 가정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결혼한 부부가 쉽게 이혼하여 가정이 깨지고 있습니다. 결손 가정의 자녀들이 가출하여 청소년 탈선이 심각합니다. 미혼모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결혼한 부부는 믿음으로 인내하여 가정을 세우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사람은 예외 없이 고통을 당하면서 한평생을 살아갑니다.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 뿐 사람은 누구나 고통을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강한 사람이 됩니다.


발전을 위해서는 고통이 있습니다.
사람은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는 욕구가 있습니다. 무지한 자리에서 지성의 자리로, 미개한 자리에서 문화인의 수준으로, 가난한 자리에서 풍요한 생활로 발전하려고 합니다. 이런 향상을 위해서는 반드시 고통을 치루어야 합니다. 진학하려면 밤새 공부하는 고통이 있고, 남보다 앞서기 위한 노력의 고통이 있습니다. 이런 고통은 자신의 발전을 위한 것입니다.
사업이 안됩니까? 몸에 병이 있습니까? 자녀가 빗나갑니까? 부부간에 고통이 있습니까?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도 근심과 수고와 슬픔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전 2:23]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 뿐이라 그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은 곤고한 자라고 했습니다.
[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런 면에서 볼 때 이 세상을 사는 사람은 누구나 고통이 있습니다.

왜 인간은 고통하며 삽니까? 그 원인을 신학적으로 대답하면 '죄' 때문입니다. 이스라엘도 하나님께 죄을 지어 바벨론에 망하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불순종과 우상숭배의 죄로 바벨론에게 멸망당하고 포로가 되어 70년간 끔직한 고통을 당한 것입니다.
본문 19-33절을 보세요.
[애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 인생이 고통을 당하고 고생하고 근심하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지 않으십니다. 인생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사랑과 평안과 소망입니다.
시인은 고통이 유익했다고 합니다. [시 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인생을 살면서 경제적으로 질병으로 사고로 고통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에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주님을 소망하면 하나님이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렘 29: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살후 3:16]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는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실지어다.

고난은 반드시 원칙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고통 당하는 것이 보기 좋아서 고난 당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유익하기 때문에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애 3장 30-33절)에 보면 "때리는 자에게 뺨을 향하여 수욕으로 배불릴지어다 이는 주께서 영원토록 버리지 않으실 것임이며 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노라"고 말씀하신 것 같이 우리가 수욕을 받고 고생하며 근심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난은 값진 음식물과 같아서 고난을 잘 참고 견디어 소화만 시키면 영양소가 되고 힘이 되고 성장의 촉진제가 되지만 이 고난을 소화시키지 못하면 음식물이 체한 것 같아서 큰 손해를 보고 낙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에 뒤따르는 원칙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명심해 두어야 어떤 고난도 참고 견딜 수가 있습니다.

 

1. 감당치 못할 고난은 없다는 원칙
예수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아무리 절망적인 고난일지라도 반드시 감당할 수 있는 것만 주시지 견디지 못할 고난은 주시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부모가 다섯 살 밖에 안된 어린 아들에게 쌀 한 가마니를 어깨 위에 짊어지우겠습니까? 이와 같이 감당할 만한 고난만 주시지 견지지 못할 고난을 결코 주시는 법이 없다는 이 원칙을 암기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고난과 시험을 당할 때에는 "이제는 끝장이구나" 혹은 "에이, 콱 죽어버릴까보다", "하나님이 안 계시거나, 나를 버리셨구나"하는 생각이 반드시 들 때가 옵니다. 그러나 이 원칙만 알면 결코 좌절하지 않고 승리합니다. 이사야 41장 10절에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하셨습니다.

 

2. 의미 없는 고난은 없다는 원칙
우리가 고통과 시련을 당할 때는 공연히 당하는 것 같지만 반드시 고난 속에는 어떤 의미가 있고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있는 법입니다. 우리가 우둔해서 깨닫지 못할 뿐이지 먼 훗날 혹 영적으로 성장한 뒤에는 그 고난의 의미를 터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고난은 이 세상에서 그 의미를 깨닫지 못했어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면 반드시 의문이 풀리게 될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5절 이하에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고 말씀하시고 어찌 아들이 잘못하는데 징계하지 않는 아비가 있겠는가, 잘못하는데도 고통으로 징계를 주지 않으면 사생아이지 참 아들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12장 11-13절에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고 했습니다. 부모가 아픈 매를 때릴 때에는 잘못을 깨닫고 회개케 한다든지, 나쁜 버릇을 고친다든지 교만을 꺽는다든지 하는 분명한 목적이 있고 때리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실 때에는 죄를 깨닫게 하고 돌이키게 하시거나 우리의 육성을 깨트려서 신령한 사람이 되게 한다거나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어서 큰 사명을 감당케 하시기 위함에서 고통과 시련을 주시는 법입니다. 의미 없는 고난이란 없습니다.
이사야 48장 10절에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고 말씀하신 것 같이 하나님이 특별히 택하여 쓰실 사람들은 반드시 고난의 풀무불을 통과해야 되는 것입니다. 풀무불에 들어갔다 나와야 더러운 찌꺼기가 제거되어 순금이 되는 것처럼, 고난의 풀무를 통과할 때 죄성이 제거되고 육성이 깨어지며 교만이 녹아져 버리는 법입니다.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 백성은 그 어느 민족보다 고난을 많이 겪은 민족이고 그 고난을 통과하면서 세상 만민에게 구원의 길과 진리를 가르쳐 주는 성경이 탄생된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사랑이 동반되는 원칙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섭리의 울타리 밖에 있으므로 알 수 없지만 예수 믿고 구원받은 자녀들이 당하는 모든 고난 속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사랑이 깃들어 있다는 원칙입니다. 고난을 당할 때는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요셉이 형들의 시기를 받아 죽을뻔했다가 애굽의 종으로 팔려 가고 또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2년이나 감옥 생활을 할 때 같아서는 어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가 있었습니까? 틀림없이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사람이요 버림받은 사람으로밖에 볼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세상 막말로 하면 지지리도 재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한 말은 창세기 50장 19-21절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인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요셉이 당한 고난은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고난이었지만 지나 놓고 볼 때, 모든 고난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사랑의 한 과정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를 고난으로 연단 시키되 섬세한 사랑과 지혜로 각 사람의 형편과 처지를 따라 적당한 방법으로 치리하시는 것입니다.
욥기 5장 17-18절에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경책을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라고 했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의 원칙을 알지 못하면 고난을 받을 때 낙심하거나 불신앙에 떨어지기가 쉽습니다.
이사야 28장 26절 이하에 보면 "이는 그의 하나님이 그에게 적당한 방법으로 보이사 가르치셨음이며 소회향은 도리깨로 떨지 아니하며 대회향에는 수레 바퀴를 굴리지 아니하고 소회향은 작대로 떨고 대회향은 막대기로 떨며 곡식은 부수는가 아니라 늘 떨기만 하지 아니하고 그것에 수레 바퀴를 굴리고 그것을 말굽으로 밟게 할지라도 부수지는 아니하나니 이로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난 것이라 그의 모략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놈은 가는 회초리로 때리고 어떤 놈은 굵은 몽둥이로 때립니다. 어떤 곡식은 수레바퀴로 맷돌질을 해야 굵은 껍질 벗겨지듯이 극심한 고통으로 우리의 죄성과 육성의 껍질를 벗기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곡식 알맹이는 부수어지지 않을 만큼 연자방아로 곡식들 찧는 것입니다. 그 섬세한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는 기묘하고 오묘막측합니다.
믿음이 하나도 없는 무신론자는 우주 만물이 저절로 생겨났다고 하고, 믿음이 조금 있는 사람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은 존재하지만, 우리 인간의 작은 일까지 간섭하시거나 섭리하시는 분은 아니라고 믿으며, 믿음이 아주 좋은 사람은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 것까지 섭리하시고 우리의 머리터럭하나 까지도 세시는 섬세하신 하나님을 매일 매일 생활에서 체험하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당하는 모든 고통과 시련 속에는 섬세한 하나님의 사랑이 배후에 있다는 원칙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4. 유익이 없는 고난은 없다는 원칙
하나님은 축복을 주실 때 고난의 보자기에 싸서 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은혜와 복을 주실 때 반드시 고난을 겸하여 주시는 법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성공이나, 실패나, 건강이나, 질병을 지난 다음에 보면 다 은혜가 되고 축복이 되고 유익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시편 119편 67-71절에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했고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고 시편 기자는 고백했습니다. 모든 고난은 다 유익한 것입니다. 평안할 때 받는 은혜보다 고통 속에 받는 은혜가 더 크고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참지 못하고 깨닫지 못해서 "하나님이 안 계신가보다" 혹은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나보다"하고 하며 낙심하고 좌절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고난의 원칙들을 알면 의심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습니다.
이사야 49장 14-16절에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젖먹이는 엄마가 자기 아기를 잠시도 잊은 일이 없음같이 나도 너를 잊을 수가 없다 혹 육신의 엄마는 잊을 때가 있어도 나는 결코 너를 잊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화) 『나의 등 뒤에서』 어느 날 한 기독교인에게 지금까지 지나온 과거를 모래사장 발자국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내내 두 사람의 발자국이 있었는데 극심한 고통을 당할 때는 발자국이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주님, 왜 내가 고통을 당할 때는 나를 버리고 떠나셨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주님께서는 "얘야, 그때는 내가 너를 떠난 것이 아니라 너를 내 품에 안고 갔단다"고 하실 때 발자국이 하나밖에 없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부모가 자기 어린아이가 잘 놀 때는 멀리서 바라보지만 아이가 위험한 곳이 갈 때는 얼른 가서 품에 안습니다. 더욱 숨을 헐떡이며 몹시 아플 때, 그 옆에 딱 붙어 앉아서 지켜보고 계십니다. 고난의 원칙들을 명심하고 고난 당할 때 결코 의심하거나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1016장 찬송
오늘은 사순절 첫째주일입니다. 예수님도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인생들의 죄 때문에 예수님은 고통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죽으셨지만 3일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우리들의 주님, 구세주, 메시야가 되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고통 다음에 큰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고통하던 이스라엘이 바벨론 그발강을 건너 고국으로 돌아가 평강을 얻은 것처럼, 오늘 고통을 당하는 성도들도 주님이 주시는 은혜로 평강을 얻고 승리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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