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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딤전6: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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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상호 목사 |
참고 : | 세광교회 http://sk8404.or.kr |
먹을 수만 있어도 감사하라
딤전 6:6-8
2005. 7. 3, 맥추감사주일
"7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지난달에 어느 신문에서 본 내용입니다. 충청도 시골 마을에서 자란 처녀가 3년 전에 일자리를 찾아 상경했다가 몇 군데 직업소개소를 전전하다가 결국 서울역 자하도에서 박스를 깔고 자는 노숙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노숙 생활을 하면서 노숙하는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그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는데 아들과 함께 노숙을 한다고 합니다. 그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노숙자인 것입니다. 그들은 식사는 무료 급식으로 해결하고 잠은 광장이나 지하도에서 자고 분유와 기저귀는 주변 교회에서 가끔 주는 것으로 해결한다고 합니다. 지난 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현재 전국 노숙자 수는 4,000명을 육박한다고 합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지난 한해 자살건수가 11,000명이었다고 합니다. 하루에 30명씩 자살한 셈입니다. 자살 사망률이 OECD국가 중 4위이고, 자살 사망 증가율이 세계에서 1위가 되었습니다. 자살이 늘어난 것은 대부분 경기불황으로 인한 실업과 생활고가 원인입니다. 그런 점들을 생각한다면 올 한 해도 감사할 조건이 전혀 없는 것 같이 여겨집니다. 그러나 본문은 먹을 것과 입을 것만 있어도 감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1. 세상에 올 때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날 때 아무 것도 가져온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무리 없어도 먹을 것과 입을 것은 있습니다. 우리의 태생이 어떠했는지 생각해 보면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힘들게 살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아무리 없다고 해도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습니다. 생계를 유지하는데 최소한의 것은 있습니다. 여러분 어렸을 때 어떻게 살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먹을 것, 입을 것, 잘 곳이 변변치 않았습니다. 겨울이면 따뜻한 물이 없어서 목욕은 고사하고 세수도 안하고 다녔고 머리도 못 감았고 빨래도 못했습니다. 불과 일이십년 전만 생각해 보아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인생에서 힘든 상황에 빠졌을 때를 생각해 보면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보다 힘든 나라 사람들을 생각하면 우리가 아무리 가난하다고 해도 우리가 얼마나 풍족하게 사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에 못사는 나라들 보십시오. 김혜자씨가 쓴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책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잭 캘리라는 한 신문기자가 소말리아의 비극을 취재하다가 겪은 체험담이 있습니다. 기자 일행이 수도 모가디슈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그 때는 기근이 극심한 때였습니다. 기자가 한 마을에 들어갔을 때, 마을 사람들은 모두 죽어 있었습니다. 그 기자는 한 작은 소년을 발견했습니다. 소년은 온몸이 벌레에 물려 있었고, 영양실조에 걸려 배가 불룩했습니다. 머리카락은 빨갛게 변해 있었으며, 피부는 한 백살이나 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마침 일행 중의 한 사진기자가 과일 하나 갖고 있어서 소년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너무 허약해서 그것을 들고 있을 힘이 없었습니다. 기자는 그것을 반으로 잘라서 소년에게 주었습니다. 소년은 그것을 받아 들고는 고맙다는 눈짓을 하더니 마을을 향해걸어 갔습니다. 기자 일행이 소년의 뒤를 따라갔지만, 소년은 그것을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소년이 마을에 들어섰을 때, 이미 죽은 것처럼 보이는 한 작은 아이가 땅바닥에 누워 있었습니다. 아이의 눈은 완전히 감겨 있었습니다. 이 작은 아이는 소년의 동생이었습니다. 형은 자신의 동생 곁에 무릎을 꿇더니 손에 쥐고 있던 과일을 한 입 베어서는 그것을 씹었습니다. 그리고는 동생의 입을 벌리고는 그것을 입 안에 넣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동생의 턱을 잡고 입을 벌렸다 오므렸다 하면서 동생이 씹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기자 일행은 그 소년이 자기 동생을 위해 보름 동안이나 그렇게 해온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며칠 뒤 결국 소년은 영양실조로 죽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1월에 갈 필리핀을 보십시오. 관광지에 가면 현지 아이들이 얼마나 거머리처럼 달라 붙어서 집요하게 구걸하는지 모릅니다. 처음에는 불쌍하게 보였다가 뒤에는 화가 납니다. 중국 연변에 조선족들 사는 모습을 보십시오. 한국인들만 보면 잡아먹으려고 듭니다. 교회들도 한국 목사를 봉으로 압니다. 그러면 우리보다 잘사는 일본은 어떻습니까? 부자 나라이고 바다로 둘러 싸인 나라이지만 1년 가도 우리처럼 회 먹기 힘듭니다. 캐나다나 미국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평생 자기집 가지고 사는 사는 사람 드뭅니다. 외식 한달에 한번도 하기 어렵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외식하는 날이 기다려지고 한번 했다 하면 몇 시간이고 죽치고 잇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나온 것인 리필문화 아니겠습니까?
2. 세상을 떠날 때 아무 것도 가지고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날 때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는 것처럼 세상을 떠날 때에도 아무 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지금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들은 우리가 죽을 때에 남의 수중에 들어가고 맙니다. 옛말에 '공수래 공수거'라는 말도 있습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말입니다. '화무십일홍이요 세무십년과'라는 말도 있습니다. 십일 가는 꽃이 없고 십년 가는 권세가 없다는 말입니다.
전도서12:3-8절에 "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 힘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맷돌질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어다 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 길거리 문들이 닫혀질 것이며 맷돌 소리가 적어질 것이며 새의 소리를 인하여 일어날 것이며 음악하는 여자들은 다 쇠하여질 것이며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길에서는 놀랄 것이며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원욕이 그치리니 이는 사람이 자기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자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라 은줄이 풀리고 금그릇이 깨어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어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어지고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고 했습니다.
누가복음12:16-21에는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3.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 알라.
본문에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9-10절에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고 했습니다. 곧 세상의 물질은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에 집착하다가는 오히려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얽매여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영원히 남아 있는 가치있는 것을 추구하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6:27에 "썩은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고 했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의 가치는 영혼의 구원과 만족과 성장에 있습니다. 우리의 행복은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하나님이 맡긴 사명을 감당하며 하나님이 주신 분복을 누리는 데에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은 육적인데 있지 않고 영적인데 있습니다. 잠깐 있다가 없어질 것이 있지 않고 영원이 없어지지 않을 것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것은 최소한의 필요만 있으면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일할 데만 있어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먹을 것만 있어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아니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먹을 것이 풍부합니다. 입을 옷이 넘치는 홍수속에 살고 있습니다. 들에 가면 산딸기, 보리수, 앵두, 벗지, 오디가 풍성합니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먹지 않습니다. 그것 말고도 먹을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국은 음식물쓰레기가 많습니다. 우리 아이들 점심 때마다 가르쳐야 합니다. 밥 한 톨, 반찬 하나라도 남기지 말도록 말입니다.
17세기초 영국에서 국교도(舊敎)의 핍박을 피해 메이플라워(Mayflower)호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간 청교도(新敎, puritan)이 지켰던 추수감사절의 의미는 우리에게 감사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해줍니다. 영국에서 102명(70가구)으로 출발한 청교도들은 1620.11.29(목)에 아메리카 대륙 프리머스에 도착하였습니다. 그해 겨울이 지나기 전에 추위와 식량부족과 질병으로 절반 가량이 죽었습니다. 48명만 살아 남았습니다. 남자라곤 27명(장정21명) 정도만 남았습니다. 낯선 땅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습니다. 그 이듬해 봄에 그들이 가져온 종자로 보리와 밀을 심었지만 토양이 달라서 완전히 실패하고 맙니다. 인디언들의 도움으로 옥수수를 조금 거두기는 했지만 첫 농사는 흉작이었습니다. 도무지 밝은 전망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금식기도를 선포하고 모두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이 상황을 돌아보십시오.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그들은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모여서 금식기도를 했는데, 이렇게 금식기도를 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땐가 또 한번 대단히 어려운 형편에 놓였습니다. 그들은 다시 금식기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금식기도를 하는 문제로 의논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그 때 한 농부가 제의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금식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생각을 달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비록 흉년으로 식량이 부족하고 형제 자매들이 질병으로 쓰러져 가는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감사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럽에 비해 모든 것이 풍족하지 못하지만 우리에게는 신앙의 자유와 정치적인 자유와 광대한 대지가 있습니다. 이젠 금식 대신 감사 시간을 정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라고 말입니다. 사람들은 감화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금식기도 대신 감사 주간을 선포하고 감사절을 지켰습니다. 그들은 감사절을 지키면서 영국에서 항해해 올 때부터 농사를 수확하고 저장하기까지의 고난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그들은 국교도의 핍박과 추위와 배고픔과 질병과 죽음의 이별 속에서 감사했습니다. 그들은 눈물흘림과 아픔 속에서도 하나님의 목적과 섭리를 깨닫고 그 은혜에 감사드렸습니다.
맺는 말
성경은 말합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3:17).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5:18). 어떤 형편과 처지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선택과 구원을 생각하고 목적있는 섭리를 생각하고 말씀과 성령으로 은혜생활 할 수 있게 된 것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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