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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창28:1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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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명혁 목사 |
참고 : | 강변교회 |
하나님께 가까이”
본문: 창28:10-22, 롬9:13-16
아브라함이나 이삭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을만한 장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을만한 장점들이 없었습니다. 야곱은 이기적인 사람이었고 간교한 사람이었고 거짓된 사람이었고 변덕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어떻게 야곱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게 되었는지 우리는 그 이유를 잘 알지 못합니다. 물론 두 달 전 정진경 목사님께서 설교하시면서 야곱의 장점 세 가를 지적하시기는 했습니다. 높은 가치관과 운명에 도전하는 용기와 미래 지향적인 자세가 그의 장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여전히 이기적인 사람이었고 간교한 사람이었고 거짓된 사람이었고 변덕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야곱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게 되었는지 우리는 그 이유를 잘 알지 못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9:13-16).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원하셔서 야곱을 그저 불쌍히 여기셨고 하나님께서 원하셔서 야곱을 그저 사랑하셨던 것 같습니다. 사실 저와 여러분들도 모두 이기적인 사람들이고 간교한 사람들이고 거짓된 사람들이고 변덕스러운 사람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원하셔서 우리들을 그저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들을 그저 사랑하신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께서 야곱을 사랑하시고 은혜를 베푸신 모습을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어떤 은혜와 사랑을 베푸셨습니까? 한 마디로 말씀 드리면 “하나님께 가까이” 하게 하신 은혜와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그것이 야곱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설교 제목을 “하나님께 가까이” 라고 정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은혜와 사랑 중 가장 귀한 것은 “하나님께 가까이” 하게 하시는 은혜와 사랑입니다. 그래서 시편 73:28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베푸신 은혜와 사랑은 “하나님께 가까이” 하게 하신 은혜와 사랑이었습니다.
첫째 하란으로 도망가던 야곱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가까이 하게 하셨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와 아버지 이삭을 속인 다음 형의 분노를 피하기 위해서 고향 브엘세바를 떠나 외 삼촌이 사는 하란으로 도망가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창28:10,11). 야곱이 고향을 떠나 하란으로 도망가는 불행에 처하게 된 것은 야곱이 저지른 죄에 대한 대가였습니다. 그런데 그 불행이 바뀌어져서 복이 되었습니다. 전화위복이 되었습니다.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아주 쓸쓸하고 외로운 장면입니다. 돌을 베개로 하여 빈 들에서 잠을 잔다고 생각해보세요. 외로움과 고독함과 두려움이 몰려올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야곱으로 하여금 하늘을 바라보게 하셨고 하나님 자신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하게 하셨습니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하늘이 보이고 하나님이 보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야곱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자 마자 베개 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하나님께 새벽기도를 드렸습니다.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야곱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야곱이 하나님께 가까이 하게 되었습니다. 돌 단을 쌓고 기도의 제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야곱이 받은 은혜와 사랑과 축복이었습니다. “야곱이 잠깨어 일어난 후 돌 단을 쌓은 것 본 받아서.”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은혜의 체험은 야곱으로 하여금 그 후 20년 동안의 고달픈 타향살이를 너끈히 기쁨으로 해 낼 수 있게 했습니다.
고향의 일, 집안의 일, 자녀와 손자의 일, 사업의 일에 얽매이면 하나님께 가까이 하지 않게 됩니다. 새벽제사는 물론 저녁 제사도 드리지 않게 됩니다. 저는 야곱과 같은 이기적이고 간교하고 거짓된 사람이지만 부모와 고향을 떠났을 때 그리고 제2의 고향인 서울을 떠나 대구로 피난을 갔을 때 새벽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은혜와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 3년 동안 저는 이성봉 목사님의 부흥집회를 쫓아다니면서 그리고 새벽마다 대구 제일교회로 달려가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은혜와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은혜의 체험은 저로 하여금 그 후 수 십년 동안의 나그네의 생활을 너끈히 기쁨으로 해 낼 수 있게 했습니다.
둘째 고향으로 돌아오던 야곱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가까이 하게 하셨습니다.
야곱은 20년 동안의 타향살이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나그네 생활을 크게 축복하셔서 대 가족과 큰 재산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형 에서를 만나는 일이었습니다. 형 에서와 화해를 이루는 일이었습니다. 우리 남북이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도 남북이 만나는 일일 것입니다. 서로 화해를 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허문영 박사는 한반도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정치적 통일이나 경제적 통일 이전에 심정 통일을 이루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속이고 피해를 입힌 사람을 만나 화해를 이루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용서를 빌고 용서를 주고 받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저는 어제 우리 최규창 국장님이 일하시는 기독교신문에 “용서를 비는 마음”이란 제목의 글을 써서 보냈습니다. 그 글의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을 여기 소개합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해방 60주년 기념식이 1월 27일에 열렸다. 이스라엘과 독일의 대통령을 비롯한 각국 정상과 정부 대표단, 그리고 수용소 해방의 주역이었던 옛 소련 군인들이 기념식에 참석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에 대한 참회와 함께 그들에 대한 특별한 책임을 강조했다고 한다. 민족적 우월감과 체면이 어느 나라보다도 강한 독일 나라의 총리가 독재자 히틀러의 나치가 범한 무자비하고 처참한 역사적 범죄를 60년이 지난 오늘 피해자들과 그들의 후손들 그리고 세계 국민들 앞에서 시인하고 참회하며 용서를 빈 일은 높이 받아드려야 할 일이다. 나는 1991년 6월 4-6일 일본 시오바라에서 열린 제3회 일본 전도대회에 참석한 1200여명 일본교회 지도자들 앞에서 일본에 대해서 내가 품고 있었던 미움의 죄를 다음과 같이 고백하며 용서를 빈 일이 있다. [그 내용은 생략합니다.] 용서는 약함도 부끄러움도 아니다. 용서는 오히려 강하고 자랑스러운 것이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마음을 모두 녹여서 한데 묶는 부드러운 이슬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일본 지도자가 일본이 지난날 한국 사람들에게 범한 죄에 대한 용서를 빌 수 있다면, 한국의 군사 독재자들이 지난날 한국 국민들에게 범한 죄에 대한 용서를 빌 수 있다면, 북남의 지도자들이 지난 날 서로를 향해서 범한 죄에 대한 용서를 빌 수 있다면, 이 땅은 화해와 평화와 사랑이 깃 드는 보다 살만한 곳이 될 것이다. 오늘의 한국교회의 지도자들과 정치 지도자들이 앞장 서서 용서를 비는 마음을 가진다면 우리 교회와 나라는 훈훈한 인정이 넘치는 보다 살만한 곳이 될 것이다.”
야곱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형 에서를 만나는 일이었습니다. 형 에서와 화해하는 일이었고 용서를 빌고 용서를 받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형 에서에게 평화의 사절단을 보냈습니다. “야곱이 세일땅 에돔 들에 있는 형 에서에게로 사자들을 자기보다 앞서 보내며 그들에게 부탁하여 가로되 너희는 이같이 내 주 에서에게 고하라”(창32:3,4). 그러나 야곱의 마음은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자기와 함께한 종자와 양과 소와 약대를 두 떼로 나누는 전략을 짜기도 했습니다.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한 종자와 양과 소와 약대를 두 떼로 나누고 가로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하고.”(창32:7,8). 그리고 기도를 했습니다.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 내가 그를 두려워하옴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냄이니이다”(창32:11). 그래도 야곱의 마음은 여전히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예물을 형에게로 보냈습니다. “야곱이 그 소유 중에서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택하니 암염소가 이백이요 수염소가 이십이요 암양이 이백이요 수양이 이십이요 젖 나는 약대 삼십과 그 새끼요 암소가 사십이요 황소가 열이요 암나귀가 이십이요 그 새끼나귀가 열이라 그것을 각각 떼로 나눠 종들의 손에 맡기고 그 종들에게 이르되 나보다 앞서 건너가서 각 떼로 상거가 뜨게 하라 하고 그가 또 앞선 자에게 부탁하여 가로되 내 형 에서가 너를 만나 묻기를 네가 뉘 사람이며 어디로 가느냐 네 앞엣것은 뉘 것이냐 하거든 대답하기를 주의 종 야곱의 것이요 자기 주 에서에게로 보내는 예물이오며 야곱도 우리 뒤에 있나이다 하라 하니 이는 야곱의 생각에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으리라 함이었더라”(창32:13-20). 야곱은 철저한 전략가였고 철저한 현실주의자였습니다. 그래도 야곱의 마음은 여전히 불안했습니다.
결국 야곱은 얍복 강가에 홀로 남았습니다. 불안과 두려움 가운데서 홀로 남아 하나님께 가까이 하게 되었습니다. 불안과 두려움의 시간은 오히려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은혜와 축복의 시간으로 바뀌어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서 야곱과 씨름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을 하시다가 일부러 하나님이 져 주셨습니다. 제가 동혁이와 팔 씨름을 하다가 일부러 져 주면 동혁이는 자기가 이겼다고 신이 납니다. 야곱은 신이 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놓아달라고 사정하시는 하나님에게 당당하게 대들었습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창32:26). 이 당당한 요구가 너무나 귀하고 중요한 요구였습니다. “주여 나를 축복하소서 주여 나를 축복하소서.” 결국 하나님께서 져 주셨고 야곱의 당당한 요구를 들어주셨습니다.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창32:27,28). 야곱은 위기의 상황에서 오히려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은혜를 받았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 친밀하게 몸에 몸을 대고 밤새 씨름하는 엄청난 은혜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라는 엄청난 축복된 이름을 받았습니다. 모든 믿는 자들과 모든 구원 받은 자들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 얍복 강변의 은혜의 체험은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두려워 하던 형 에서와 목을 어긋 맞기고 입을 맞추며 눈물을 흘리는 참된 용서와 화해를 가져왔습니다. “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에서가 사백인을 거느리고 오는지라 그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여종과 그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번 땅에 굽히며 그 형 에서에게 가까이 하니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아서 안고 목을 어긋맞기고 그와 입맞추고 피차 우니라”(창33:1-4).
셋째 세겜으로 내려간 야곱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가까이 하게 하셨습니다.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하는 은혜의 체험과 형 에서와 화해하는 축복의 체험을 한 후 큰 실수를 범했습니다. 20여년 전에 했던 하나님과의 서원을 잊어버렸습니다. 벧엘에 올라가서 기도의 제단을 쌓겠다고 한 서원을 잊어버렸고 소득의 십일조를 반드시 드리겠다고 약속한 서원을 잊어버렸습니다(창28:22). 그대신 숙곳이란 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짐승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세겜이라는 좀 더 큰 도시로 가서 거기서 땅을 사고 집을 짓고 평안하게 살았습니다(창33:16-20). 사람은 누구나 은혜를 받고 축복을 받으면 신앙 생활을 더 잘 하는 것이 아니고 더 잘 못하게 됩니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믿을 수 없는 변덕스러운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걱정하시는 말씀을 나중에 하셨습니다.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신8:12-14). 야곱이 은혜와 축복을 받았을 때 하나님과 맺은 약속을 잊어버렸습니다. 새벽 기도와 십일조 드리겠다고 약속한 것을 새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세겜 성에 살면서 세상 풍습에 푹 빠졌습니다. 세겜 유행에 따른 옷을 입고 세겜 유행에 따른 장식품을 몸에 부착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거기서 단을 쌓으라"(창35:1). 이것이 바로 야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였습니다. 사랑의 명령이었고 축복의 명령이었습니다. 제가 장로님들과 권사님들에게 새벽에 하나님의 집 벧엘로 올라가서 기도의 단을 쌓으라고 말씀 드리는 것도 사랑의 분부요 축복의 분부입니다.
야곱은 그 분부에 순종했습니다. 온 가족이 벧엘로 올라갔습니다. 이석호씨 정규명씨 가족들처럼 온 집안이 모두 일어나 벧엘로 올라갔습니다. 어떤 사람은 왜 올라가는지도 모르고 아버지 또는 할아버지 야곱이 올라가야 한다고 해서 졸리는데도 그저 올라갔을 것입니다. "야곱이 이에 자기 집 사람과 자기와 함께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창35:23).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과 자기 귀에 있는 고리를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 묻고 야곱과 그와 함께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그가 거기서 단을 쌓고 그것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창35:4,6,7). 야곱과 그의 온 집안이 벧엘로 올라간 사건은 야곱이 그 어느 때보다 하나님께 가장 가까이 한 사건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벧엘을 이제는 엘벧엘이라고 불렀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그곳에서 엘벧엘 곧 벧엘의 하나님을 가까이 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야곱은 이 엘벧엘 사건 이후 기도의 사람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습니다. 시편에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할 때는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란 뜻으로 사용했습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시84:8).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146:5). 히브리서11장은 야곱의 사적을 단 한 줄로 기록했는데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하나님을 경배했다"고 했습니다. 즉 야곱은 그의 마지막 순간을 기도와 예배로 마쳤다는 말씀입니다. 마지막 순간에도 하나님께 가까이 했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야곱에게는 인격적이고 기질적인 허물과 잘못이 많았으나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귀한 은혜와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은혜와 사랑을 받았습니다. 실수도 많았지만 곧 뉘우치고 하나님께로 가까이 하곤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기도의 은혜와 예배의 은혜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벧엘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실 때 곧 모든 것을 다 집어치우고 벧엘로 올라가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여러분들의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은혜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마지막을 축복의 기도와 하나님 경배로 장식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 젊은이들 나와서 “주께 가오니” 불러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김명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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