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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남 전도사 간증 -만족하십니까?

연예인신앙간증 임복남............... 조회 수 4576 추천 수 0 2011.09.04 20: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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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하십니까?

이 글은 연세의료원 원목실 김복남 전도사님이 1997년 6월 19일 기업은행 기독선교회에서 간증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많은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제 간증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병원에서 생활하면서, 환자와 더불어 살면서, 그들을 통해서 늘 제 자신을 바라보면서 몇 가지 느낀 점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것입니다. 먼저 여러분에게 한 번 묻겠습니다.
여러분 지금 어떠하십니까? 행복하십니까? 여러분 지금 하나님이 여러분에 게 주신 직장에 만족하십니까? 여러분의 주위에 만족하십니까? 여러분의 가정에서 여러분의 아내에게 만족하십니까? 남편에게 만족하십니까? 자녀에게 만족하십니까? 여러분들의 만족의 기준은 어디에 있습니까?
저는 병원에서 일하면서 사람들을 통해서 믿는 사람이건 안 믿는 사람이건 삶의 만족의 기준이 참으로 상대적인 것을 느끼고 있어요. 제가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일하고 있는데 아시다시피 기독교 병원입니다. 그래서 각 병원마다 목회자들을 두고 있는 중, 저는 특별히 재활의학 쪽 환자와 직원들을 담당하고 있는 전도사입니다. 그래서 각 병원에서 직원들과 상담하고 환자와 보호자와도 상담하고 있는데 직원들을 통해서 느끼는 것과 환자들에게서 느끼는 것이 동일합니다. 청소하는 아줌마들은 저희직원이 아닙니다. 용역회사에서 보내주신 분들인데 이 분들이 저를 만나면 "전도사님 병원에서 직원으로 일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는 밥을 나르는 저 영양과의 아주머니들을 보면 너무 부러워요. 저 영양과에서 일할 수 있도록 취직 좀 시켜주십시오"라며 영양과에서 일하는 분들을 부러워하십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이 부러워하는 영양과 직원들을 만나게 되면 또 다른 얘기를 하더군요.
"집에서도 허구헌 날 밥하구. 병원에 와서도 밥하구. 의사들이 아무리 치료 잘 하더라도 우리가 먹이지 않으면 굶어 죽을텐데 우리가 하는 이 일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시원한 곳에서 일하는데 우리는 이 더운 날 뜨거운 밥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얘기가 "저렇게 에어컨 밑에서 일하는 사무직원들은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무직원으로 일하면 좋을 것을 잘못했습니다."며 부러워하 십니다. 그런데 정작 제가 만난 사무직원들은 또 다른 얘기들을 합니다. "전도사님, 병원에서 사무직 별 볼일 없습니다. 사무직으로 일할 것 같으면 큰 기업체나 은행 같은데서 일해야 빛을 보는 거예요. 병원에서 일하려면 의료진으로 일해야 되는데 우리가 잘못 직업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의료진, 치료진을 무척이나 부러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치료사들은 또 다른 얘기를 하십니다.
"전도사님,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뙤놈이 번다'고 환자는 우리가 죽어라고 만지고 치료하는데 환자들이 '고맙다'는 얘기는 의사 선생님들에게 합디다. 이럴 줄 알았다면 공부 좀 더 열심히 해서 의사가 되는 건데요, 병원에서는 뭐니 뭐니 해도 의사가 최고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렇구나 역시 병원에서는 의사가 최고로 존경받고 대접받는 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저와 친한 의사 선생님은 또 다른 얘기를 하십니다. "전도사님, 의사 좋다는 얘기, 옛날 얘기입니다. 요즘 '환자 권리장전'인가 뭔가 만들어서, 환자들이 얼마나 똑똑한데요. 조금만 잘못하면 법정에서야 합니다. 저는 전도사님이 부럽습니다. 전도사님이 늘 웃으면서 기도해 주고요. 환자들이 나으니까 우리에게 고맙다는 소리 안하고 전도사님이 기도해 줘서 낳았다고 전도사님께 고맙다고 얘기합디다. 우리는 낫지 않으면 욕먹는데, 전도사님은 안 나아도 할 말이 있지 않습니까? '니 믿음이 없어서 안 나았다'라고 하면 되잖아요."
그런 얘기를 하시길래 재활병원에서는 그러면 '내가 가장 부러운 대상이고 가장 행복한 사람인가?' 그렇게 생각해보니까, 나도 아니예요. 같이 근무하는 분은 목사니까 저보다 더 좋은 대접을 받고 65세까지 정년인데 저는 전도사니까 60세까지 정년이고, 월급차이도 많구요. 이렇게 따지니, 목사님이 제일 부러운 사람이 되더군요. 그래서 목사님께 물어보니까, 목사님께서는 "기간목회,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며 "평생을 해도 교인 한 명 없지 않냐" 반 문하시며 일반 목회 하시는 분들을 부러워하시는 거예요.
이렇게 병원에서 일하시는 분들, 각종 직업을 가지신 분들 얘기를 들어보면 각기 남이 하는 일은 보람돼 보이고, 쉬워 보이고, 사람들에게 대접받는 것처럼 보이고, 자기 하는 일은 힘들고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른 사람을 저울질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마찬가지로 환자들도 저에게 똑같은 얘기를 합니다. 제가 근무하는 재활병동에는 갖가지 장애를 가진 환자들이 많습니다. 팔이 없는 환자들은 제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전도사님, 이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들은 자기 두 팔 을 가지고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요. 저렇게 일하고 있는 청소부가 부럽습니다. 내게 팔이 주어져서 내 사랑하는 아내를 다시 안아볼 수 있고 열심히 일할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절단의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팔이 없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발이 없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 저는 다리 없는 사람들이 고무다리를 끼고 산다고 하길래 '그냥 그렇게 사는가 보다'고 쉽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제가 병원에서 다리 없는 사람들이 의족을 끼고 사는 모습을 지켜 보면서 그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다는 것을, 그들을 볼 때마다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있어요.
절단된 부위와 의족이 맞물려서 굳은살이 생겨서 통증을 느끼지 않고 의족을 신고 다니려면 많은 세월이 흘러야 되는 것입니다. 십 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도 아직도 통증 때문에 진통제를 날마다 쓰는 환자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의족을 맞추고 난 뒤에 살이 쪄서 그 의족이 맞지 앉자 비싼 의족을 다시 할 수 없어서 힘들게 의족을 신었지만 10m도 못 가서 통증 때문에 의족을 벗어야 하는 그런 환자를 만난 적도 있습니다. 한쪽 다리가 없는 경우는 그런데로 괜찮습니다만 두 다리가 없는 경우는 그 딱함을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예전 같으면 두 다리 없는 환자들은 엉덩이로 밀어가면서 살라고 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 병원에서는 웬만하면 두 다리 없는 환자들에게 의족을 신겨서 걸을 수 있도록 치료를 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두 다리 없는 환자들이 의족을 신고 일어서서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아십니까?
일곱 살짜리 꼬마가 유치원을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두 다리를 몽땅 잃었습니다. 이 조그만 아이에게도 의족을 신기고 걷는 연습을 시키는데 이 아이가 힘이 든다고 떼를 쓰면서 우니까. 엄마가 소리를 질렀어요.
"이놈아! 네가 지금 포기하면 너는 평생 앉은뱅이로 살아야 해, 다시 일어나!" 이렇게 소리를 질렀지만 아이가 힘들다고 일어나지 못할 때 이 엄마가 이런 말을 했어요. "전도사님, 내 다리를 잘라서 우리 아이에게 붙여 줄 수 없을까요. 우리 아이는 지금 한 번의 고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키가 자라면서 또 다른 의족으로 바꿔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 아이가 얼마나 힘들까요."
이렇게 다리가 없는 사람들 참으로 힘들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의사 선생님 한 분은 요. 자기가 의사인데도 자기 당뇨를 다스리지 못해서 두 다리를 다 잘라야 하는 경우였습니다. 너무 심했기 때문에 엉덩이 깊숙이 잘라서 의족마저 신을 수 없었어요. 그 때 의사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내 평생 모은 전 재산을 다 주고 다리 하나만 구할 수 있어서, 한쪽 다리라도 있어서, 목발이라도 짚고 한 번 일어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 분의 전 재산이 얼마나 될 지 모르겠습니다만 50대 후반에 지방에 서 개업을 했던 병원장이셨기에 제가 추측컨대 아무리 못해도 수억은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분이 갖고 싶어한 한쪽 다리를 수억에 비교한다면 우리가 갖고 있는 이 두 다리는 수십 억, 아니 수백 억, 아니 수천 억 가치가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다리가 없는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다리가 좀 못 생겼으면 어떻습니까? 다리를 좀 절면 어떻습니까? 관절염으로 무릎이 좀 쑤시면 어떻습니까? 내 다리가 있어서 걸을 수만 있다면 그보다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리가 절단된 분들은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만 우리 병원에서 이런 분들은 '나이롱 환자'라고 불릴 만큼 양호한 환자들입니다. 다리가 절단된 환자들을 지켜보면서 "우리 남편이 저 정도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라며 부러워하는 또 다른 환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환자들인가 하면 다리는 붙어 있지만 결코 일어 일어설 수도 없는 환자들 다리를 꼬집어도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지 않는 환자들, 마취를 하지 않고 발톱 열 개를 다 뽑았는데도 단 한마디도 아프다고 소리하지 않는 환자들, 하반신이 마비된 환자들인데 병원에서는 이런 환자들을 척수손상장애인이라고 합니다. 이 환자들은 다리가 절단된 환자들을 지켜보면서 "저 사람들은 우리보다 낫지 않습니까. 힘들지만 그래도 목발을 짚고 의족을 신고 다닐 수 있고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아무리 좋은 곳이라 해도 휠체어가 다닐 수 없는 곳은 갈 수가 없습니다."라면서 다리 절단된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부러워하는 이유가 또 하나 있다면 이들은 하반신이 마비될 때 일어서고 걸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소변과 대변 마려운 느낌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 병원에 오시면 '방광훈련'이라는 것이 있어서 하루에 4-5번 씩 주먹을 쥐고 아랫배를 주먹으로 때려서 그 자극으로 소변을 뽑아 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손목이 시리도록 아랫배를 두드리고 있는 모습이나, 아니면 손가락을 넣어서 대변을 긁어내는 모습이나, 아니면 발가락까지 동원해서 소변을 짜내는 모습을 여러분이 단 한번만이라도 지켜보신다면 저처럼 밥 먹을 때만 기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화장실 가서도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 발로 걸어서 화장실을 왔다'는 자체가 바로 하나 님의 축복이기 때문에 반드시 기도합니다.
이렇게 하반신이 마비된 사람들, 참으로 힘들게 살고 있지만 그런데 더 딱한 일은 우리병원에서 이 하반신이 마비된 척수손상장애인들을 지켜보면서 "전도사님, 우리 형편이 저 정도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라며 그들을 부러워하는 또 다른 많은 환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환자들인가 하면 목을 다쳐서 사지가 마비된 경추손상 장애인들입니다.
요즘의 교통 사고가 목을 다치게 해서 사지마비 장애인들을 많이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사지 마비 장애인이 될 경우에는 스스로 옆으로 돌아누울 수도 없습니다. 스스로 앉아서 설 수도 없습니다. 자기 손으로 밥을 떠먹을 수 없습니다. 자기 몸이 가려워도 자기 손으로 긁을 수가 없습니다. 성경을 읽고 싶어도 자기 손으로 성경을 넘길 수가 없어서 성경을 읽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지마비 장애인들은 제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반신 마비된 저 사람들 너무 부럽습니다. 저 사람들은 휠체어라도 밀고 다닐 수 있지 않습니까.
손이라도 움직이기 때문에 앉아서는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전도사님 손가락 다섯 개라도 움직일 수 있어서 내 몸이 가려울 때 옆에 사람 도움 받지 않고 긁을 수만 있다면요, 내 손으로 밥을 떠먹을 수만 있다면요, 아니 손가락 하나만이라도 움직여서 컴퓨터라도 누를 수 있다면 내가 남의 도움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겠는데요." 그러면서 그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는 부탁을 날마다 수없이 듣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지마비된 분들 참으로 딱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사지 마비된 경추 손상장애인들을 지켜보면서 "전도사님, 우리 환자 형편이 저 정도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라며 그 환자들을 부러워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면 여러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뇌를 다쳤거나 뇌를 수술 받았지만 중풍으로 쓰러졌는데 의식이 돌아오지 않아서 입으로 음식을 씹어 삼킬 수가 없어서 배에다 호스를 끼고 시간을 맞춰 음식물이 들어가고 있고, 눈은 떠 있지만 수십 년 함께 산 가족이 아무리 앞에서 어른거려도 그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고, 귀는 열려 있지만 자기 이름을 부르고, 여보라고 부르고, 엄마라고 부르고, 아빠라고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은 채 하루, 이틀이 가고 한 달이 가고 일 년, 이 년이 흐르기도 합니다. 이런 상태로 칠 년이 지난 환자의 보호자와 상담을 했습니다. 이렇게 오랜 세월동안 숨만 쉬는 환자를 둔 보호자들은 제게 이렇게 말합니다. "사지가 마비되었지만 저런 환자를 둔 보호자들은 우리보다 낫겠습니다. 저들은 의식이 온전해서 말할 수 있지 않습니까? 입으로 음식을 씹어 삼킬 수 있지 않습니까? 대화를 나눌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 환자는 움직이는 것은 고사하고 우리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태로 한 달, 두 달이 가고, 일 년, 이 년이 년이 흐르고, 우리는 날마다 가슴을 조이면서 '오늘은 무언가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 기다리고 있습니다만 우리 환자들은 저 상태에서 침묵만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지마비 장애인들을 너무나 부러워하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젊은 여자 한 분은 남편이 아침에 출근길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지금 6년째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있는데, 언젠가 그분이 저를 찾아와서 이런 부탁을 했습니다. "전도사님, 저는 가톨릭 신자인데 다 같은 하나님 아닙니까. 저를 위해서 기도를 해주십시오." 그래서 제가 "당연히 해 드려야죠", 가톨릭 신자인 여자분도 처음에는, 기독교 병원이기 때문에 가톨릭 신자에게는 상담 제가 그 환자를, 4년 동안 들락거리며 봤거든요. 그렇다고 하니까. 그 젊은 여자분이 말을 이었습니다. "전도사님, 제가 지금 이 마당에 와서, 우리 남편이 예전처럼 건강한 모습을 되찾아서 돈벌어 오는 것을 감히 바랄 수 있겠 습니까? 우리 남편이 일어서서 걷는 것을 감히 바랄 수 있겠습니까? 육 년을 기다렸는데요. 저, 더 이상 바라지 않겠습니다. 제가 평생 파출부를 해서 남편을 벌어 먹여 살려도 좋습니다. 제가 우리 남편 손, 발이 되어서 밥을 떠 먹여 주고, 대 소변을 받아내도 좋으니까, 의식만이라도 돌아와서 내가 자기 아내인 것을 알아보고 다시 한번만 '여보'라고 불러 줄 수만 있다면 저도 더 이상 바라지 않겠습니다. 우리 남편 입에서 여보라는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그런 기적이 일어나도록 기도해주십시오"
그래서 저도 생각날 때마다 그 남편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만 아직까지 그이의 남편의 의식은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때때로 저는 젊은 여자 분들, 특별히 남편이 돈을 적게 벌어 온다고 짜증내시는 분들, 남편이 집에 돌아와서 아이들과 놀아주지 않고 집안 일을 거들지 않는 다고 불평하는 여자 분들을 보면, 평생을 남편을 벌어 먹여 살려도 좋고, 평생을 남편손발이 되어서 밥을 떠먹여 주고, 대소변 받아 주어도 좋으니까, 그 입에서 다시 한번 '여보' 소리 듣기 원하는 그 여자분을 생각하면서 건강한 남편을 주신데도 감사하지 못하고 사는 여자분들, 참으로 딱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환자들과 보호자들의 고백을 들으면 제가 어떻게 위로를 해 줄 수 있을 까요. 저는 정말 할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더욱더 할 말을 잃게 하는 또 다른 환자들이 있다면, 태어나면서부터 갖가지 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아이들, 어린 나이에 질병과 사고로 장애자가 된 아이들, 우리 병원 5층.3층에 오시면 많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특별히 3층은 우리나라에서 하나밖에 없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초등학교 교육 과정을 마칠 수 있는 학교가 있습니다. 저는 그 학교에서 어린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있는데 성경을 가르치면서 저는 수없이 절망합니다. '도대체 내가 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까?' 수업시간 내내 고개만 떨구고 있는 아이, 침을 질 질 흘리고 있는 아이, 까닭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있는 아이, 육 년을 가르쳤지만 제 이름도 쓰지 못하는 아이, 자기 엄마인 것도 알아보지 못하는 아이, 이런 아이들에게 내가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고, 우리는 죄인이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것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 얼
마나 많이 절망하는지 모릅니다. 대다수의 아이들이 우리 학교를 졸업하지만 일반학교를 가지 못하고 특수학교를 가거나 그나마도 가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그 엄마들은 제게 이렇게 말합니다. "전도사님, 어떻게 하면 자식을 잘 낳아서 정상아를 낳아서, 자기 발로 걸어서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보낼 수 있겠습니까?" 언젠가 연세대학에 입시가 있던 날 그 어머니들이 참으로 가슴 아픈 얘기를 제게 했습니다. "전도사님, 어떻게 하면 자식을 낳아서 대학시험을 치게 해서, 시험을 한번 쳐서 떨어지게라도 해 볼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합격해 볼 수 있겠습니까?'가 아니었어요. 떨어져도 좋으니까. 대학시험 칠 수 있는 그런 자식이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그 엄마들이 고백을 합니다. 그 엄마들로부터 더 가슴 아픈 얘기를 들은 적도 있습니다. "이 세 상의 어떤 부모가 자기 자식이 먼저 죽기를 바라는 부모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들은 때때로 '자식들이 우리보다 먼저 죽었으면'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죽은 뒤에 아이들이 다른 사람 손에서 천덕꾸러기가 되는 것보다 우리 살아있을 때 죽는 다면, 아이들을 묻고 우리도 마음 편히 눈감을 수 있을 텐데, 그러나 그런 생각은 잠깐입니다. 아이가 아프면 우리는 다시 아이를 업고 병원으로 뛰어 옵니다. 사람들은 말하더군요. '사람구실 못하는 아이들, 뭘 그렇게 가르치고, 뭘 그렇게 고치려고 애를 쓰느냐?'고 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합니까, 전도사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식인 걸요." 십오 년 동안 몸이 뒤틀릴 대로 뒤틀린 뇌성마비 아이를 안고 사는 엄마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너무 많이 몸이 뒤틀렸기 때문에 잠이 들지 않고 깨어 있는 시간은 엄마가 안아줘야 합니다. 십오 년 동안 아이를 안고 사는 이 엄마는 아직 마흔도 안 됐는데 머리가 반백이 된 오십대의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장애아를 낳은 것이 죄입니까? 이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이 아이가 잠든 시간에 재봉질을 해서 백화점에 행주 같은 것, 앞치마 종류를 내다 팔고 있는데 이 아이가 잠이 들어야 일을 하는데 요즘 이 아이가 잠이 안 듭니다. 어떤 사람이 저보고 '술을 먹이면 잠들것'이라고 하는 데 제가 아이를 잠들게 하기 위해서 술을 먹여야 할 까 요?" 저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병원에서 제가 전도사로 일하고 있으면서 여러분, 말의 빈곤을 느끼는 곳이 병원입니다. 도대체 내가 무슨 말로 위로해 줄 수 있을까? 손가락 한 개만이라도 움직였으면 좋겠다고 하는 사람 앞에서 손가락 열 개가 다 움직이는 내가 뭐라고 위로를 해 줄 수 있을까? 골수 암으로 두 다리를 몽땅 잘라낸 여학생 앞에서 못난 다리지만 서 있는 것이 얼마나 송구스럽던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가 오늘 환자들과 무엇을 위해서 기도하다가 여기에 온 줄 아십니까 "하나님, 일어설 수 있는 기적을 베풀어주십시오, 말할 수 있는 기적을 베풀어주십시오, 볼 수 있는 기적을 베풀어주십시오, 한 발짝이라도 걸을 수 있는 기적을 베풀어주십시오"
이런 기적을 베풀어 달라고 목이 메이도록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소망하는 그 기적, 여러분과 저는 다 행하고 있는데도, 우리가 하나 님 앞에 감사하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 환자들 제게 이렇게 말합니다.
"팔다리는 당연히 있는 것 인줄 알았습니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볼 수 있고, 당연히 말할 수 있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당연한 줄로 여겼던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장애인들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예비장애인들입니다. 140명 입원해 있는 우리 환자 가운데 의사가 3명이나 있습니다. 젊은 의사 한 분은 교통사고로 사지마비가 되었고, 또 저와 같은 40대 의사 한 분은 연세대를 나와서 지방에서 개업한 병원장이신데 환자들을 열 심히 돌보다가 과로로 쓰러져서 발신불수가 되었습니다. 그분이 제게 오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평생 가운입고 의사일 줄 알았는데 내가 환자로 살아야 되다니...." 목사, 교수, 박사, 전직장관 출신, 우리가 뭐 잘났다고 큰 소리 칠게 있는 줄 아십니까. 다른 사람보다 내가 지위가 높다고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배웠다고 뭐 자랑할 게 있는 줄 아십니까? 머리 핏줄 하나만 터지면 그 많은 기억을 다 잃어버리고 말 한 마디 못하게 되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인 것을. 저는 날마다 병원에서 확인하고 있습니다. 내가 똑똑하고 걸을 수 있고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내가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기억하시고 나눌 수 있을 때 나누시기 바랍니다.

"죄인"이란 깨달음을 얻기까지 저는 예수 안 믿는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어릴 적부터 불러주셨어요. 예수 믿는 친구들이 많아서 교회 문턱을 쉽게 드나들 수 있었고 미션 스쿨을 졸업했기 때문에 채플시간에도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솔직하게 고백하겠습니다. 교회 문턱만 더럽히며 다녔지. 채플시 간에 자리만 채웠지. 제 속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감격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믿지 않는 남자와 3년 간 교제 끝에 결혼하게 되었고 결혼과 동시에 저는 그나마 드나들던 교회도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77년 7월에 결혼했는데 그 때 제 남편은 28살이었고 농협의 상무고시에 합격한 상태였어요. 아마 연소자였고 미혼이었기 때문에 제주도로 발령이 났던가 봅니다. 처음에 결혼했을 때 남제주군 농협에 상무로 있다가 그 다음 해에는 성산포 지점에 지점장으로 갔습니다. 남편을 따라서 3년간 신혼 생활을 제주도에서 보내게 되었는데 부끄럽게도 그 3년간은 우상을 짝하던 시절이었어요. 제 남편이 동양철학에 관심이 많았고 토속종교를 연구한다고 이곳 저곳 토속종교를 연구한다고 이곳 저곳 수 없는 절을 기웃거리게 되었고 남녀호랭갱교를 믿는 곳도 갔고 굿하는 곳도 다녔습니다. 이렇게 제가 결혼하자마자 우상을 짝하며 3년을 보내게 되었고 별 우상을 다 섬겼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저의 모습을 무척이나 안타깝게 여기셨던지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게 했던 것처럼 남편을 3년만에, 80년 2월에 농협 중앙회로 발령이 나게 하셨습니다. 농협 중앙회 저축부로 발령이 나서 서대문이 가까운 불광동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그런데 서울에 와서 보니까, 남편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대학동창이고 농협 입사동기였던 부산시 농협에 근무하던 손세만 씨라는 분이 우리와 똑같은 날 저축부로 발령이 났고 우리가 살고 있는 불광동으로 이사를 왔는 데요. 이 친구는 남편 말로는 대학 다닐 때까지만 해도 예수를 안 ale고 부산 동승교회의 장로 따님하고 결혼하고 나서부터는 사람이 갑자기 변해서, 농협은 부업으로 다니고 전도하는 것이 주업이라면서 아주 예수에 미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자기와 같은 부서에 일하게 되고 우리와 같은 동네로 이사를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친구와 같은 부서에서 일하고 같은 동네에서 살게 되자 이 친구가 얼마나 열심히 전도를 했겠습니까. 우리 남편이 진절머리가 난다면서 "세만이가 눈만 마주치면 '예수 믿으라'하는 데 내가 '하루에 담배 두 갑 피우고 술도 많이 먹는데 예수 믿어 술담배 끊으면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하자 이 친구가 하는 말이 '술 담배 내가 너보다 더 많이 피우고 더 많이 먹었는데 예수 믿으니까, 술 담배보다 더 재미있다'면서 예수 믿자고 한다"고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요. "세만이 그 찰거머리가 어디까지 따라와서 전도한 줄 알아?" "어디까지 따라와서 전도하던 가요?"
"세상에 내가 요리조리 피해 다니니까. 화장실 가려고 하면 재빨리 따라와서 화장실에 와서도 예수 믿으라 하는데, 여보 내가 소변볼 때는 꼼짝 없이 들어야 돼. 오줌 누는 것도 내 마음대로 못한다"
남편은 손세만 씨의 그 열심 있는 전도를 귀찮아하더라구요. 그런데 하도 전도를 열심히 하니까 우리 남편이 넉 달만에 두 손을 들고 말았어요. 80년 6월 불광동 은광장로교회에 총동원전도주일이 있었는데 우리 남편에게 "친구 따라 강남도 가는데,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주는데 친구야 내 소원 한 번만 들어 주라. 나 따라 한 번만 교회에 앉아 있어주면 된다. 내가 한 명을 데 리고 가야 하는데 서울에서 아는 사람 너밖에 없다"며 자꾸 매달리니까, 우리 남편이 조건을 걸었데요.
"내가 너 따라 교회 단 한번 가 줄테니까 다시는 예수 믿으란 소리하지 말아라. 한번만 가줄게. 가기는 가지만 예배드리러 가는 것이 아니라 구경하러 갈게."
이렇게 말하고 30년만에 난생 처음으로 교회 문턱을 들어서게 되었는데 그 한 시간이 우리 남편이 예수 믿게 된 동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후로 열심히 다니지는 않았지만 친구가 교회 가자고 하면 마지못해서 따라나서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80년 12월에, 저희 남편이 고등학교 때부터 간디스토마를 앓아서 만성 간염으로 고생을 많이 했어요. 제주도 살 때는 서귀포에서 치료를 받았고 서울에 올라와서는 서대문의 고려병원, 지금은 강북삼성병원 으로 바뀌었죠. 그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간 치수가 높으면 약을 사먹고 그랬는데 12월에는 간치수가 너무 높아 졌다고, 이대로 두면 간경변이 될 것 같다고 했어요. 12월이 되면 농협이 너무 바쁜 철이기 때문에 이 바쁜 시간 지나고 연휴기간에 입원하면 안되겠느냐고 했더니 의사 선생님 하시는 말씀 이 "당신, 일하고 싶소? 죽고 싶소? 간이 나쁜 사람은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하는데 당신 지금 그 간을 갖고 일하다가는 죽을 거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을 하고 있는데 이 손세만 씨가 "친구야 병원가기 전에 나 따라 금식기도 한 번 가보자"며 "C.C.C의 금식 기도회중
12월30일에서 1월3일까지 하는 기도회가 있는데 같이 가지 않겠냐"고 하는 거예요. 그 얘기를 듣고 제가 화를 벌컥 냈어요.
"손세만 씨! 예수를 믿어도 그렇게 몰상식하게 감정으로 믿어서 되겠어요? 간 나쁜 사람은 절대 안정을 취하고 고단백을 섭취해야 하는데 간 나쁜 사람을 데리고, 지금 입원하자는 사람을 데리고 금식기도를 가자고 하는 것은 화약을 지고 불로 뛰어 드는 것 아니예요?"
제가 화를 냈더니 당연히 안 따라갈 줄 알았던 남편이 화를 내는 저를 막으면서 "금식기도가 뭔지 모르지만 한번 따라가 볼래. 우리 엄마가 절에 다닐 때 초하루가 돌아오면 꼭 불공을 드리던데 내년부터 예수 믿으려면 제대로 기도하고 믿어야 될 거 아니야?"
그러면서 따라가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삼일간 금식할 자신이 있냐" 고 물으니까 자기는 금식을 안하겠데요. 음식을 몰래 숨겨 가져가서 숨어서 먹겠다면서 그러다가 들켜서 안 된다고 하면 그때 내려와도 될 거 아니냐며 음식을 갖고 금식기도를 따라 갔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 남편이 삼 일 동안 꼬박 금식을 하고 돌아왔어요. 저에게는 남편이 삼일 동안 금식했다는 것이 기적이었습니다. 금식을 하고 돌아온 남편이 저에게 뭐라고 물었냐 하 면 "너는 나보다 먼저 예수 믿었다고 했는데 내가 너에게 한 번 묻겠는데, 예수 믿은 구원의 감격이 있느냐"고 했어요. 저는 그 얘기를 듣고 '어디 남편이 구원파 갔다 왔는가' 해서 놀랐어요. 그리고 내 속으로 '예수 믿으면 구원받은 것이지 무슨 구원의 감격 같은 것이 필요한가'라고요. 그렇게 생각했는데 남편이 간증을 하더군요. 사실 자기가 친구 따라 교회를 다니면서 기분이 나빴데요. 그래서 왜 그랬느냐고 물으니까. "교회만 가면 목사님이 기도하실 때마다 우리 같은 죄인들, 장로님도 마찬가지고 찬송가도 나 같은 죄인,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도매급으로 죄인취급 당하는가? 내가 사기쳤냐, 도둑질했냐? 왜 교인들은 입만 열면 죄인이라고 하는 거지?" 자기들이 일주일동안 잘못하고 주일에 교회와서 용서를 비니까 죄인이지 나는 죄인 아니다.'
그래서 교회가서 죄인 소리 듣는 것이 기분이 나빴는데요. 그런데 C.C.C금 식기도를 가서도 회개를 위한 통성기도를 했나 봅니다. 남편은 처음 예수를 믿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 불러놓고 할 말이 없었는데 다른 참여자들은 계속 기도를 하니까. 나중에는 고개만 숙이고 있으니까 목이 아프더래요. 그래서 속으로 생각하기를 '야, 예수쟁이들 말많다고 하더니 진짜 말많고 죄도, 무슨 죄를 저렇게 많이 지었길래 울고 불고 난리일까?' 그래서 고개를 들고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는지 들어보려고 살펴보았데요. 예쁜 여자가 울면서 기도하면 남편은 '음, 저거는 남편 몰래 바람을 피웠겠구나', 남자들이 울면서 기도하면 '음, 저 치는 회사 돈 띠어먹었나 보군!' 그러면서 '예수쟁이들은 말만 번지르르하지 죄만 많이 짓는 구나'라고 생각했데요. 자기는 죄를 안 지었으니까. 울 일도 없고 기도할 일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목사님께서 로마서를 강해하시면서 '의인은 하나도 없으며 우리는 다 죄인인데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의인이라 칭함을 받았다.'는 그 말씀 가운데 죄인이라는 말씀이 깨달아 진 거예요. 어떻게 깨달아 졌느냐하면 우리 남편이 효를 굉장히 중요시 여겼어요. 저에게 "효는 백행의 근본이다. 부모에게 잘 하지 않는 사람은 백 가지 다 잘못한다"며 결혼할 때도 "우리 부모에게 잘 할 자신이 있으면 시집 오라"고 할 정도로 부모님을 중요시 여긴 사람이예요. 그래서 하나님과 부모님을 같이 생각해보면서 이 세상에서 아무리 똑똑하고 잘 난 사람이더라도 자기를 낳아준 부모를 믿지 않고 다른 사람을 부모보다 잘 믿고 섬긴다면 그것보다 더 큰 불효자식이 어디 있겠는가?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믿고 섬긴다면 그것보다 더 큰 죄인이 어디 있겠는가? 자식이 부모를 섬기지 않으면 당연히 불효자식인 것처럼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인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바로 죄라는 사실이 깨달아 진 것입니다. 어린아이들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데 나이 삼십이 되도록 진정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고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찾아다니며 그것이 신 인양 믿고 섬겼던 자신이 가장 큰 죄인이라는 것이 깨달아 지면서 용서해 달라고 울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마음껏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그 놀라운 구원의 감격을 기뻐했더니 배가 고픈 것도 모르고 삼일이 흘렀다는 것입니다.
그 일이 있은 후, 1월 3일 시무식이 끝난 뒤에 남편과 고려 병원에 입원하기 위해 갔습니다. 고려 병원에서 우리 꼴을 보더니 "그동안 입원하라고 했더니 입원도 안하고 왜 그 모양이 되도록 집에 있었습니까?"라고 물어서 금 식 기도를 갔다 왔다고 했어요. 그러자 화를 벌컥 내면서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 왜 그런 짓을 했느냐"며 빨리 검사를 다시 하자고 해서 다시 검사를 했는데 의사들이 모여서 수근거리리는 거예요. 저는 간경화나, 간암이 되었 는가 보다고 걱정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연세대학 병원은 거의 다 가 예수를 믿는 분인데 고려병원은 예수 믿는 병원이 아니었데요. 그 중에 예수 믿는 분이 한 분 계셨나봐요. 그분이 와서 "금식기도 갔다 왔다고 했죠?" 그래서 저희는 혼날 줄 알고요 조그맣게 "예"라고 했더니요, 그분이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당신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남편이 집에 와서 프로 헤파롬이니, 그 동안 학교 다니면서 먹던 약을 쓰레기통에 집어넣었어요. 그런데 여러분 저는 먼저 예수를 믿었다는 사람이 그게 믿어지지 않아서 쓰레기 통에 버려진 약들을 주워서 "여보, 할렐루야는 무슨 할렐루야? 종합병원이 얼마나 오진이 많은데!"
다시 한 번 더 검사를 하자고 했어요. 서대문에 가면 고려병원 옆에 적십자 병원이 있어요 그 적십자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했습니다. 적십자 병원에서도 깨끗하다고 했습니다. 두 번을 확인했을 때 남편은 진짜 낳았나 보다고 했는데 여러분 제가 얼마나 의심이 많은 사람인가 하면 "삼세 번 아니냐고 한 번만 더 확인해 보자"고, 그래서 성심병원에 가서 다시 한번 확인을 했는데 성심병원에서 "언제 간이 나빴습니까? 나빴던 흔적도 없습니다"라고 했어요. 세 번을 확인한 뒤에 남편은 여보, 나는 병낫기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 았어. 그런데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이 깨달아졌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감격에 기뻐했더니 하나님께서 보너스로 내 병을 고쳐주셨어!"라며 기뻐했습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그때도 '아멘'을 안했어요.
남편에게 "여보 예수를 믿어도 점잖게 믿자"며 "예수를 믿고 기도해서 병 나았다는 사람들보니까 무식해 보이던데 조용히 예수 믿자, 손세만 씨처럼 저렇게 떠들며 예수 믿지 말자"고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녔다고 하는 제가요, 오히려 우리 남편에게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제가 우리 남편 입을 단속한다고 해서 성령이 충만한 은혜를 입은 남편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예레미야가 그 중심이 뜨거워서 불붙는 것 같아서 여호와를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것처럼 우리 남편이 예수를 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다며 전도를 하기 시작하는 데요. 누구를 닮아가는가 하면 손세만 씨를 닮아 가더라구요. 그리고는 교회를 다니는데 얼마나 열심히 다니는지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 된다고 우리 님편의 열심에 저는 우리 아이를 업고 허겁지겁 쫓아다니기 바빴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다닌 남편은 일 년만에 세례를 받고 즉시 목사님께 찾아가서 교사하고 싶다고, 그리고 친구가 하는 성가대하고 싶다고 해서 교사, 성가대도 하게 되었습니다. 삼 년 만에 남편이 집사가 되었고 남선교회 임원이 되었고 성가대 대원이 되었습니다. 나이도 어렸지만 저는 남편 덕에 집사가 되었고 여전도회 임원이 되었고, 구역의 권찰이 되었고 주일학교의 교사가 되었습니다. 제가 여기까지 간증할 수 있다면 다른 간증과 뭐가 다를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간증을 여기까지 하고 '해피 엔딩'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간증은 지금부터입니다.

6 개월 동안의 감사 그리고 망각

 

집사가 되고 난 후부터 오히려 저의 신앙에는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 오래 하셨다고 장로가 되셨다고 목사가 되셨다고 집사님 되셨다고 자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초신자 보다 못한 신앙생활 할 수 있다 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집사가 되고 나서부터 오히려 초신자 보 다 못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칭찬이 저를 교만케 했기 때 문에 오히려 더 사탄의 유혹에 많이 빠졌습니다. 제가 성경을 남편따라 많이 읽다 보니까. 성경 암송을 잘하게 되었어요. 우리교회에서 잘하니까 전국대회를 나가 보래요. 새문안교회에서 전국 성경 암송대회를 주최했는데 제가 암송대회에 나가서 예선에서 본선을 거칠 필요도 없이 금상을 받았는데 심사의원들이 시계를 보면서 서로 "지금 몇 시간째 야? 하다가 "그만하십시오"라고 할 정도 였어요. 퀴즈대회 잘하니까 우리 교회에서 연합대회를 나가보래요. 연합회 퀴즈 대회를 나가서 문제 나오자 마자 제가 계속 맞추니까. 나중에는 진행하는 사람이 뛰어와서 제 입을 막으면서 "그만 하십시오. 이미 일등이 되었는데요" 그러면서 그 다음해에도 또 우승 하니까. 다른 교회 성도들이 "내년에도 저 집사님 출전시키면 우리 재미없어서 못하겠으니까. 출전 정지를 시키십시오." 그 정도로 잘하니까 우리 교회에서요. "늦게 예수를 믿었는데 이렇게 잘 할 수가 있느냐!"며 저를 칭찬해 저를 칭찬해 주게 되었는데 부끄럽게도 그 칭찬이 저를 넘어지게 했던 것입니다. 아무리 성경을 달달 외우고 아무리 예배를 열심히 드려도 아무리 봉사를 많이 한다고 해도 그 속에 교만함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지 않습니다. 저는 교만한 마음이 싹 트면서 사탄의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예배드리는 열심에서 떠나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헌금생활을 방해했습니다. 남편의 열심 있는 교회 봉사 생활을 방해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을 전도했던 친구가 직장을 그만두고 홍콩대학으로 CCC를 통해서 선교사로 갔을 때, 우리 남편이 후원회 회장직을 맡아서 수고하다가 이젠 남편이 일본어를 잘한다는 것을 간사들이 알고서 와세다대나 도쿄대학에 CCC평신도 간사로, 선교사로 보내고 싶다고 했을 때 제가 우리 남편보고 "나는 선교사 아내되기 싫으니까. 이혼하고 혼자가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예수 믿지 않던 남편 예수 믿게 해주셨지만 저는 그것이 축복인 줄 모르고 방해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아프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동네 병원에서 고칠 수 있나 싶어서 동네 병원을 다니다가 동네 병원에서 "이것은 무슨 병인지 모르겠지만 큰 병원 가야한다"고 해서 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겨오게 되었습니다. 세브란스 병원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받고 우여곡절 끝에 병명이 밝혀 졌는데 바로 '결장암'이었습니다. 암이지만 가스가 나오지 않고 장이 부어 있었기 때문에 수술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래 죽어도 죽고, 저래도 죽어도 죽으니까, 수술을 하다가 죽겠다"고 했어요. 장이 부어 있었던 사람은 수술하게 되면 열이 오르고 결국 장이 일제히 썩는다면서 도저히 수술이 안 된다는 것을, '수술하고 죽겠다'고 온 교인들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수술을 했습니다. 교인과 농협직원들의 기도 덕분에 수술을 했지만 열이 오르지 않아서 기적처럼 나아서 우리가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러나 창자를 이을 수 없어서 장을 옆구리로 빼내고 비닐을 붙여서 대변을 받아내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목숨만 건진 것도 감사한 줄 알았는데 창자를 옆구리로 빼내고 사니까 너무나 불편하더군요. 그 때 남편은 농협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로 있었는데 창자를 옆구리로 빼내고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다며, 옆으로 지나다니면 아주 냄새가 심할 텐데 어떻게 직장생활을 하냐며... 그래서 다시 이어 달라고 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다시 배를 열었다가 또 다시 다른 곳에 암이 있으면 그때는 창자를 옆구리로 빼내지도 못하고 죽게 되니까, 힘들어도 그냥 그렇게 살아 가십시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라고 우리에게 주의를 주었지만 남편이 이렇게는 도저히 못 살겠다고 고집을 피웠습니다.

석달만에 의사 선생님이 "모험을 해 보자"며 다시 배를 열었습니다. 다행히 암이 없어서 장을 이었습니다. 다시 밑으로 변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남편과 나는 다른 2개 교회를 다니며 남편과 간증도 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시면 얼마나 오랫동안 그 은혜를 간
직하십니까. 저는 참으로 간사한 사람이었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던 남편, 창자를 옆구리로 빼내고 살 수 밖에 없었던 그 남편을 하나님께서 살려 주시고 장을 잇게 해 주셨는데도 저는 그 감사가 6개월을 넘어가지 못했습니다.
6개월을 넘어가니까 그 감격이 희미해지면서 또 다시 옛날의 모습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항문에서 피가 난다고 했어요. 병원에다가 연락을 했더니 암은 아닐 거라고, 치질일 거라고, 매달 체크하는데 지난 달 에도 아무 이상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괜찮다고 하니까 별 염려를 안 했는데 남편이 자꾸 통증이 심하다고 했어요 그래서 다시 병원에 갔습니다. 한 달 보름간 여러 가지 검사를 해서 정밀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임파선 전이도 안됐다고 하던 그 암이 수술한 부위에서 또다시 콩알만하게 전이가 돼서 이제는 직장암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직장암이 되었지만 다시 수술을 할 수 없다면서 그냥 생명이 있는 한 살아있으리라고 했어요. 항암치 료도 우리는 효과가 없다고 했습니다. 방사선과로 가보라고 했습니다. 방사선과에 갔더니 뇌종양, 유방암, 폐암과 같은 경우는 방사선 치료가 어느 정도 유효하지만 직장암은 장을 방사선 치료를 하면 장이 굳어져서 터질 수도 있으니까. 안 된다고 했어요, 사정 사정을 했습니다.
"병원에서 뭔가라도 할 수 있어야 할 건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합니까? 우리 남편은 아직 마흔도 안됐는데 죽으면 어떻게 합니까?" 매달렸 더니 방사선 치료를 해 보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치료를 40여 회에 걸쳐서 장이 굳어 들어갈 때까지 했습니다. 뜻밖에요, 정말 뜻밖에 36살에, 농협에서 그래도 쾌속 승진을 하고 좋은 보직을 맡게 되었고 입사동기들이 출세했다고 인정했던 남편, 교회에서도 열심있는 일꾼이라고 했던 남편, 친구들도 "니 남편 성격 좋고 잘 생겼다고 부럽다"고 했던 그 남편이 36살에 결장암에 걸리고 37살에 직장암으로 전이가 되어서 암으로 죽어갈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남편과 더불어서 투병하는 4년 동안 제가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줄 아십니까? 여러분은 평안한 가운데 은혜를 깨닫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너무 어리석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고난과 역경과 환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으며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우리 남편이 예배시간만 되면 교회를 못 가니까 라디오를 통해서 예배를 드렸는 데 그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하나님 앞에 회개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 우리 언제쯤 교회가서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요?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교회를 가던 그 때가 돌아올 수 없는 겁니까? 언제쯤 교회 갈 수 있겠습니까? 남편과 내가 앉았던 그 자리에 누가 앉아 있을까요? 다시 나아서 다시 교회를 갈 수 있게 해 주세요!" 지금 이 기도는 환자들의 기도이기도 합니다. 우리 병원에는 많은 믿음의 형제 자매들이 입원해 있는데 그들의 첫 번째 기도 제목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 빨리 나아서 다시 한 번만 더 우리가 섬기는 교회에 돌아가서 믿음의 형제 자매들과 예배드리기를 소원합니다." 그렇게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만 안타깝게도 그들의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고 우리 병원에서 교회로 가지 못하고 하나님의 품에 안겨야 하는 환자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어리석게도 교회를 가고 싶으면 가고, 가기 싫으면 안 가는 곳인 줄 알았더니 우리 남편이 병들어서 교회에 갈 수 없었을 때에라야 깨달았습니다. 예배시간에 졸다 오더라도, 아이들이 떠들어서 교회 마당에서 놀다 오더라도, 예배시간 마다 교회에 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인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저는 남편과 투병하며 또 하나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저는 남편이 "교회 일 많이 한다"고 불평하며 "적당하게 하고 우리도 아이들과 같이 주일날 오후에는 좀 놀자"고 했는데 병드니까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 앞에 하루 종일 교회에 가서 살아도 좋으니까 병원에만 있지 말게 해주세요. 남편이 열심있고 능력이 있어서 교사하고 성가대 하는 줄 알았는데 천만에요,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남편으로 인해 비워진 자리는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을 통하여 메꾸어 가시는 것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지금도 우리 병원에 있는 많은 환자들이 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들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다시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신다면 좋은 목사가 될 수 있겠는데요." "좋은 장로, 좋은 권사 될 수 있겠는데요." 믿지 않는 환자들 도 이렇게 말합니다.
"암에서 낫게만 해주신다면 신학해서 목사가 되겠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다만 그들의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다시 한번 더 기회를 갖지 못한 채, 하나님의 품안에 안겨야 하는 환자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36살의 나이에 수간호사가 된 우리 교회 집사님이 병원에서 같이 일하다가 5월달에 폐암이 있는 것을 알고 10월에 죽으면서 "전도사님 시간이 많이 있을 줄 알았습니다. '주일학교 교사 좀 하라'고 할 때 '나중에 하겠습니다. 나중에 하겠습니다' 했는데 폐암에 걸려서 내가 36살의 나이에 죽을 줄 몰랐습니다. 이렇게 빨리 죽을 줄 알았다면 교회 열심히 나가서 열심히 봉사하고 남을 위해 기도 많이 할 건데 내게 이렇게 시간이 짧은 줄 몰랐으니..."라고 끝내 말을 잇지 못하시더군요.
또 남편과 투병하며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물질이 저는 내 것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86년 2월에 우리 남편이 승진을 하고는 교육원 교수로 발령이 났는데 교육수당이 붙어서 급여가 파격적으로 올랐을 때 "십일조하지 말고 원정 헌금하자"며 "우리보다 직급이 높은 분이 십일조 적게 한다"고 지혜롭게 돈을 모아서 집을 사고 이사를 가야만 일가친척들이 '저것들 예수 믿고 복 받았다'며 하나님 앞에 돌아오지 않겠냐라고 했어요. 당시 강남의 8학군이 유명할 때였어요, 그래서 아이들 크기 전에 8학군으로 이사가자며 남편이 헌금할 때마다 꼬집고요, 하도 감사헌금을 많이 내서 내가 옆에서 꼬집었는데, 도 헌금은 무명으로 내요, 그런데 무명으로 내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면 남편은 무명이 소개될 때마다 꼬집혔어요. 그렇게 방해를 했습니다. 그런데 남편 아프기 전에 돈을 많이 모은 편이었는데 병원비로 나가기 시작해서 3번째 아플 때는 수술비가 바닥 났어요. 그래서 교인들과 농협직원이 모금을 해서 가져 왔을 때 제가 그 돈을 받고 울 때가 없어서 병원 화장실에 가서 울었어요.
"하나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제가 남을 도와줄 망정, 남의 신세지지 않는 다고 자신있게 살았는데 그리고 지혜롭게 돈 모아서 잘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고 했는데 그 돈 다 쓰고 이제 남의 신세지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시면 제가 단 돈 만원도 쥘 수 없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 환자들의 고백도 그 때의 저와 마찬가지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악으로 악으로 돈을 모아서 이렇게 병치료로 쓰다가 죽을 줄 알았으면 그렇게 돈 모으려고 아둥 바둥 살지 말걸요. 나중에 잘 살면 교회 다니려고 했는데 이렇게 아파서 죽을 줄 알았더라면 진작에 예수 믿을 걸요..."
여러분, 물질이 여러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천만에요. 하나님께서 이 물질 거두어 가시려고 한다면, 강도 만나거나 불나거나 아니면 여러분이 아프거나 여러분의 가족이 아파서 그 물질 다 없어진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청지기로서의 사명을 다 하시기 바랍니다.
"그 남편은 내 남편이 아니었습니다"
물질 보다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을 저는 날마다 느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물질만이 어떻게 하나님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시간은 우리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목숨은 우리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나의 아내, 나의 남편, 나의 자식은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남편이 내 것인 줄 알았습니다. 제것 인 줄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선교사로 필요하다고 하실 때도 나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내 남편, 남편이라는 존재는 내 곁에서 수고하고 봉사하는 존재인 줄 알았습니다. 한 번도 "이렇게 좋은 남편 주신 것, 하나님 감사합니다."하고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남편들과 비교하면 우리 남편은 늘 무능했고 성격이 마음에 안 들었고요, 다른 시댁 식구들은 잘 살아서 집도 사주고 하는데 가난한 우리 남편 집안, 늘 자존심 상하도록 탓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내 남편인 줄 알았는데 그 남편은 내 남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열심히 투병했지만 팔 년전에 하나님 품에 안겼습니다. 우리 환자들이 팔다리 당연히 있는 것인 줄 알고 소중한 줄 모르고 살다가 그것을 잃고 난 뒤에 그것이 그토록 소중한 것이었던가를 뒤늦게 깨달은 것처럼 저도 남편이란 존재가 그토록 소중한 존재인가를 이제 서야 깨닫고 있습니다. 남편 주신 것, 아내 주신 것, 자식 주신 것, 건강한 팔다리 다 주신 것, 감사하며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우리가 아무 것도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날 마다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저는 몰랐습니다. 많은 것을 잃고 난 뒤에야 저와 우리 환자들은 이제서 이 사실을 깨닫고 이제는 내게 있는 것만 하더라도 감사할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닫고 이제는 감사하며 살기로 작정했습니다. 팔이 없는 환자들은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고 움직이는 발가락이라도 있으면 그곳에 연필을 끼워 글을 쓰고 휠체어를 타고 농구를 하고 휠체어를 타고 정구를 하고 남아 있는 한 곳이라도 감사하며 살겠다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내게 있는 이것을 감사할 수 없는 사람은 앞으로 더 큰 것이 주어져도 감사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내게 있는 이것에 감사한다면 이 사회는 분명히 변화되리라 믿습니다.
오늘 내가 먹고 입는 이것만 하더라도 얼마나 감사합니까. 눈으로 볼 수 있고 사랑하는 아내와 대화할 수 있고, 사랑하는 아내가 부르는 말에 대답할 수 있고, 남의 도움 받지 않고 내 손으로 밥을 먹고, 걷고, 일어설 수 있고, 일자리가 얻기 힘든 이때 일자리가 있고요 얼마나 감사합니까. 저는 예전에는 많은 것을 가졌지만 감사할 줄 모르고 살았는데 이제는 진정한 감사가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까요, 돈이 없어도, 지위가 없어도, 가난하고, 때때로 병이 들어도, 예수 때문에 예수를 소유했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많은 것을 잃어도 예수 믿는 사람이 가진 사람보다 더 행복하고 더 자신있고 더 감사하며 산다면, 많은 것을 가졌지만 풍성한 인생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주님 앞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아침은 늘 눈부시다, 나침반 출판사>


댓글 '1'

정순종

2012.01.10 20:11:42

"비밀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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