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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이 지위와 명성을 얻기 위해
서로 다투는 것을 보고 우리는 뭐라고 말해야 하는가?
그들이 칭찬과 명예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이런 길에서 돌이켜 성령으로 거듭나라.
거듭나지 아니하고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세상과 연합한 교회는 교회가 아니라 가련한 잡종에 불과하다.
이것은 주께 가증한 것이요,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교회의 명부에 교인으로 등록되어 있다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실 때 비로소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
성령으로 난 것만이 영적이며,
학습문답이나 세례, 성찬, 신앙고백 같은 것들을 모두 동원한다고 해도
죄를 죄은 아담의 자손이 하나님의 아들로 바뀌는 것이 아니요,
육이 영으로 바뀌는 것도 아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갈라디아서 4:6) 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너희가 알지 못하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고린도후서 13:5)
또한 로마 교인들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로마서 8:9)
교회를 다니고, 믿음생활을 한다고 자부하면서,
'세상과 하나님의 어중간한 사이에 있는
미적지근한 그리스도인들'은 당장 회개해야만 한다.
주님은 교회와 세상이 서로의 차이를 존중해가며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용인하지 않으신다.
교회와 세상을 갈라놓는 심연은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에서 부자와 나사로 사이에 끼인 구렁만큼이나 크다.
이는 구속(求贖) 받은 자들의 세계와 타락한 자들의 세계를 갈라놓는 심연이다.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는 무엇인가?
그들의 문제는 성경의 분명한 교훈을 받아들이고
그 교훈을 실천하는 일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입으로 "주여, 주여!" 라고 외치는 것과
주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믿음이 곧 순종이 될 때에 비로소 그것이 참된 믿음이 된다.
요한일서를 보면 두 단어가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그들'과 '너희'이다.
이 두 단어는 전혀 다른 두 세계를 대표한다.
'그들'은 아담의 타락한 세계에 속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너희'는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선택된 자들'을 가리킨다.
우리의 문제는 '이해'가 아니라 '믿음과 순종'이다.
우리는 "이것이 무슨 뜻인가?"라는 신학적 질문을 던질 필요가 없다.
우리는 "내가 이것을 믿고 순종할 것인가?" 라는 도덕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들은 저마다 죽음과 치욕의 십자가를 질 수 있는가?
주님의 사업을 한다는 명분 하에 기독교 기관을 세우고,
정치인과 기업가들의 지원을 받기 위해
아첨과 교태를 부리는 목회자들의 행태는 무엇인가?
좀 더 많은 헌금을 받아내기 위해
그들이 내미는 흥건한 손바닥은 무엇인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뭐라고 말해줘야 하는가?
인기 있는 지도자를 영웅으로 치켜 세우려고
열을 올리는 천박한 개인숭배는 또 무엇인가?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야고보서 4:4)
선한 마음과 선한 행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드높이자.
항상 '성경을 묵상하는 사람'이 되자.
아무도 보지 않는 은밀한 골방에서 성경을 펴고,
몸을 구부려 엎드리고는,
"하나님 아버지,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가르치소서!" 라고 기도하라.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한복음 5:39)
하나님은 '이기심, 자신감, 교만, 자기 의(義), 자기 칭찬, 자기 영향력의 증대'
그리고 '자기 연민'을 금하신다.
우리에게 남아야 할, 한가지 소원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겠다'는 소원이다.
실제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 부정의 뼈 아픈 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는 일은 아주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청함을 받은 사람은 많되, 택함을 입은 사람은 적은 것이다.
자기 부정이란 무엇인가?
힘든 고행이 자기부정은 아니다.
잘못을 뉘우치면서 자신을 괴롭게 만드는 것이 자기부정은 아니다.
참된 자기부정은 '자신을 위해 사는 삶'을 포기하는 것이다.
자기 부정은 "이것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라고 묻지 않고,
"이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실까?" 라고 묻는 것이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사도행전 4:12)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라디아서 5:24)
"네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지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잠언 3: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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