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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받는 바울(1) - 벨릭스 앞에서 .....

사도행전 이정원 목사............... 조회 수 2548 추천 수 0 2011.09.15 18:5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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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행24:1-27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2011.7.15 주일설교

 

만일 당신이 부도가 나서 감옥에 가게 되었거나 실직을 당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또는 힘든 일을 당하거나 견디기 어려운 오해를 받고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경우에 힘들어하며 실의에 빠지고 안달하며 원망합니다. 이런 경우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본문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가이사랴에서의 세 차례의 재판
  

예루살렘에서 갇혀 있던 바울은 총독이 있는 가이사랴로 호송되었습니다. 거기서 바울은 세 번의 재판을 받게 됩니다. 첫 번째는 벨릭스 충독에게, 두 번째는 베스도 총독에게, 그리고 세 번째는 아그립바 왕에게 재판을 받게 됩니다. 24장은 벨릭스에게 재판받는 것을 기록하고 있고, 25장은 벨릭스의 뒤를 이어 총독으로 부임한 베스도에게 재판받는 것을 기록하고 있으며, 26장은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재판받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3번의 재판을 받으면서 2년 동안 가이사랴의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의 고소
  

바울이 가이사랴로 이송된 지 5일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을 고소하기 위해 장로들과 함께 왔습니다. 그들은 더둘로라는 변호사를 내세워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소했습니다. 이제부터 재판은 로마 당국이 주관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통역 겸 변호사로 더둘로라는 사람을 내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둘로는 대제사장의 대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더둘로의 고소는 총독 벨릭스에 대한 심한 아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로 개선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크게 감사하옵나이다”(3절)
  

물론 법정에서는 재판장에 대해 존경을 표시하는 것이 예의로 되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더둘로의 말은 너무 지나친 아첨이었습니다. 더구나 벨릭스는 몇 번의 반란을 너무나도 야만스럽고 잔인하게 진압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그를 혐오하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제사장이었던 요나단은 벨릭스의 폭정을 비난했다가 벨릭스가 보낸 암살단에게 목숨을 잃은 일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둘로는 바로 그 장본인인 벨릭스에게 갖은 아첨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더둘로의 말이 대제사장을 대변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대제사장은 영적, 정신적, 정치적으로 유대인들의 대표자였습니다. 유대민족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대제사장이 로마 총독에게 이렇게 아첨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나니아의 아첨은 하나님 앞에 범죄하는 것이었으며, 반민족적인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고소 내용
  

유대인들이 바울을 고소한 내용은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그들은 바울이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동케 하는 자라고 고소했습니다. 로마는 각 식민지의 질서유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는 중죄인으로 다루어졌습니다. 당시의 황제였던 네로는 소요를 일으키는 사람은 결코 용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또 바울이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고 고소했습니다. 이 말은 바울이 예수의 메시아 운동을 주도하고 있으며, 이 메시아 운동은 바로 로마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음모를 획책하는 것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질서를 어지럽히고 소요를 일으키는 자일뿐만 아니라, 로마를 전복시키려는 주동자라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세 번째 고소 내용은 바울이 성전을 더럽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를 성전의 금지된 구역에 데리고 들어갔다는 것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바울이 예루살렘 거리에서 드로비로와 함께 있는 것을 보았을 뿐, 성전에서 함께 있는 것을 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억지로 바울에게 성전 모독죄를 뒤집어씌우려 했던 것입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바울이 소요를 일으키는 사람이라는 것이 증명되는 셈이었습니다. 그리고 로마 당국은 성전 모독죄와 같은 종교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유대인들에게 상당한 자율권을 부여하고 있었습니다. 이상이 유대인들이 바울을 고소한 내용이었습니다. 더둘로의 말이 끝나자 유대인들은 그의 견해에 동의했으며, 더둘로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유대인들도 이에 참가하여 이 말이 옳다 주장하니라”(9절)

전염병
  

더둘로는 바울을 고소하면서 그는 전염병과 같은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5절) 전염병이라는 말은 바울이 도덕적으로 가장 비열하고 타락한 사람이라는 것을 벨릭스에게 인식시키기 위하여 사용되었습니다. 이 말은 그들이 총독 앞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가장 모독적인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 이 말은 바울에 대하여,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특징에 대한 가장 적절한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그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여 사람들을 변화시켰습니다. 바울을 만나면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고 달라졌습니다. 그 힘은 매우 강력하고 신비한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가는 곳마다 변화를 일으키는 사람들입니다. 만일 어떤 그리스도인이 한 직장에 들어갔는데, 그 직장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면 그 그리스도인은 잘못된 사람입니다. 아내가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남편이 아직도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이라면 뭔가 문제가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복음이 전파된 곳에는 예외 없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속해 있는 곳을 변화시키고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 가정과 직장, 그리고 지역 사회를 복음화하고 변화시켜야할 사람들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의 변증
  

자신의 죄를 조목조목 지적하는 더둘로의 고발이 끝나자 바울은 자신을 변증하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의 고소 내용에 대하여 침착하고 논리정연하게 반박했습니다. 바울의 변증은 변사 더둘로의 고소보다 오히려 훌륭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결코 소요를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11-13절). 그는 소요를 일으킬만한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온지 12일 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 기간은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고 친구들 만나기에도 부족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바울이 시장이나 성전에서 누구와 변론하거나 무리를 소동케 한 것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고소하는 내용을 입증할 어떤 증인이나 증거도 제출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의 고소는 거짓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또 자신은 이단의 괴수가 아니라고 변증했습니다(14-16절). 여기에는 바울의 공적인 신앙고백이 네 가지로 나타나 있습니다. 첫째 그는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있으며, 둘째 율법과 선지자의 글, 즉 구약성경을 믿으며, 셋째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을 믿으며, 넷째 이것을 인하여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쓴다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들과 같은 예배와 믿음과 소망과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바울을 이단의 괴수라고 말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성전을 더럽혔다는 죄목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부인했습니다(17-21). 바울이 예루살렘을 방문한 목적은 구제금을 동족에게 전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예물을 가지고 성전에 들어가 제사를 드리고 결례를 행하였습니다. 이것이 바울이 예루살렘에 와서 행한 모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아시아에서 온 몇몇 유대인들이 바울을 방해하고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법정에 나와서 그들의 고소 내용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주장이 거짓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여기 법정에 있는 유대인들도 바울이 어떤 옳지 못한 행위를 한 것을 보았다면 이 법정에서 그것을 분명히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확실한 증거를 제출하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이렇게 재판을 받게 된 것은 단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믿음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의 고소와 바울의 변증의 차이점
  

유대인들이 더둘로를 통하여 고소한 것과 바울이 자신을 변증한 내용을 보면 중요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재판장에게 하는 말이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법정에서는 재판장에게 존경하는 말투를 쓰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더둘로는 존경하는 말을 넘어서 심한 아첨의 말을 많이 쓰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12:3에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첨은 하나님 앞에서 죄악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더둘로의 고소에는 거짓된 내용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이미 바울의 변증을 통하여 유대인들이 더둘로를 내세워 고소한 것들이 거짓된 것임을 보았습니다.
  

반면에 바울은 오직 진실만을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이 고소한 내용 중에서 바울이 인정한 유일한 내용은 부활신앙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마저도 죄목이 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도 부활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부장은 바울에게서 아무런 죄목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총독 앞에서 재판을 받을 때 시종일관 진실만을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상황에 따라서 적당히 거짓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런 거짓말로 그 순간은 피할 수 있을지 모르나 다음 순간은 피할 수 없는 법입니다. 또 그 순간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모르나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거짓을 미워하시며 싫어하십니다.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리이다”(시5:6상) “거짓 증인은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뱉는 자는 망할 것이니라”(잠19:9) 거짓말을 하여 난처한 순간을 면하고 손해 보지 않는 것보다, 진실을 말하고 욕을 먹고 손해 보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자세입니다. 작은 거짓말이라도 용납하지 않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기를 힘쓰노라.
  

바울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부끄러움이 없기를 힘쓴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16절) 손해를 보고 수치와 고통을 당한다 해도 그는 언제나 떳떳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항상 부끄러움이 없기를 힘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재판을 받을 때마다 담대했습니다.
  

반면에 유대인들은 떳떳하지 못했습니다. 17-20절에 보면 바울이 성전을 더럽혔다고 주장한 사람들은 아시아에서 온 어떤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성전에서 바울이 행한 모든 것을 보았다고 했는데, 그 중에 잘못된 것이 있다면 지금 이 법정에 와서 증언을 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은 지금 법정에 나타나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주장이 근거 없는 거짓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누구에게도 부끄러운 일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얼마나 떳떳합니까? 성도는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을 때 힘이 있습니다. 현대는 경건의 능력이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별 볼일 없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죄와 타협하지 않는 믿음, 세상을 이기는 믿음을 소유한 성도들이 되기 바랍니다.

벨릭스의 판결
  

바울이 자신의 변론을 끝내자 총독 벨릭스는 재판장으로서 판결을 내려야 했습니다. 그는 양편의 주장을 다 들었습니다. 그러나 총독으로서 어느 한 편의 손을 들어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의 최고기관인 산헤드린과 불편한 관계를 맺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바울에게 무죄를 선고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바울에게서 어떤 죄도 찾아낼 수 없었기 때문에 산헤드린의 주장대로 바울을 처형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벨릭스는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면 다시 재판하겠다고 핑계를 대고서 휴정을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을 다시 감옥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렇게 해서 바울은 앞으로도 2년 동안이나 감옥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기회를 놓치는 벨릭스
  

총독 벨릭스는 감옥에 있는 바울을 불러 복음을 더 자세히 들었습니다. 바울은 그가 복음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에 대하여 강론했습니다(24-26절). 자신의 잔인하고 죄악된 과거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던 벨릭스는 바울의 강론을 들을 때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감동하사 회개를 촉구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단하기를 주저했으며, 그 후에도 여러 차례 바울을 만났으나 끝내 회심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는 바울에게서 뇌물을 받을까 바라는 부패한 마음을 가지고 바울을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물질에 눈이 어둡고 결단하기를 주저하던 벨릭스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기회를 놓쳐 버렸습니다. 그리고 2년 후에 그는 로마로 소환되었으며, 결국 관직을 박탈당하고 말았습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무죄판결을 받지 못하고 판결이 유예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감옥에 돌아와 2년 동안이나 감옥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이것은 부당한 일이며, 바울에게는 매우 억울한 일로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통하여 선을 이루고 계셨습니다.
  

만일 바울이 무죄 판결을 받고 석방되었다면 살아남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사십 명이나 되는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맹세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형이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바울은 감옥에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군대가 그를 지켜주었고 바울은 감옥에서 안전하게 보호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로마로 갈 때까지 감옥에서 이렇게 보호를 받았습니다.
  

바울이 비록 감옥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총독 벨릭스는 바울에게 자유를 주어 사람을 만나며 도움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아마도 이 때 바울은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를 만날 수 있었을 것이며, 가이사랴에 살고 있던 전도자 빌립도 만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쉴 새 없이 복음 사역을 힘쓰던 바울이 감옥에서 2년 동안 휴식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앞으로 바울은 로마로 가야했으며 로마에서 일하게 될 것인데, 그 동안 감옥에서 쉬면서 준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선하게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다보면 이해할 수 없는 역경들이 닥쳐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와 인도하심을 확신하다면, 그런 역경 가운데서도 평안하고 담대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마음의 모든 짐을 털어 버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누리며, 오직 하나님만을 의뢰하며 영육 간에 쉼을 누리는 것이 현명한 일입니다. 그러다 보면 오래지 않아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실 것이며,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를 깨닫고 기뻐하며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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