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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받는 바울(2) - 베스도 앞에서 .....

사도행전 최용우............... 조회 수 2371 추천 수 0 2011.09.15 22: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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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행25:1-27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재판 받는 바울(2) - 베스도 앞에서 .....

 

고난을 많이 당한 사람과 고난을 별로 당해 보지 못한 사람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고난은 사람의 인격과 신앙을 깊게 만들며, 강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중용하시기 전에 반드시 고난을 통하여 연단하십니다. 요셉과 다윗, 그리고 바울과 같은 사람들이 좋은 예입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기 전에 십 수 년을 노예생활과 감옥생활을 통하여 연단을 받았습니다. 다윗도 왕이 되기 전에 많은 연단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그의 시편에서 그의 고난을 적나라하게 토해 놓았습니다. 바울처럼 고난을 많이 당한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그것은 고통스럽고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것들을 통하여 바울을 불굴의 사도로 만드셨습니다. 오늘 어려움을 당하는 성도가 있다면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를 기억하고 잘 감당할 수 있게 해주시라고 기도하기 바랍니다.

 

2년의 감옥생활
  

24장에서 우리는 바울이 벨릭스 총독 앞에서 재판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2년이 흘렀습니다. 바울은 2년 동안을 감옥에 있었는데 아직도 재판의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위하여 그토록 열정을 가지고 일하던 바울이 이렇게 무의미하게 2년이라는 세월을 감옥에서 썩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2년은 결코 무의미한 세월이 아니었습니다. 당시에 바울이 무죄로 석방되었더라면 틀림없이 유대인들에게 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감옥에서 안전하게 보호해 주셨습니다. 바울은 그 동안 거의 쉬지도 못하고 전도여행을 하면서 복음을 전했으며, 많은 어려움을 당하면서 이 재판 자리에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느라고 심신이 지쳤을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바울에게 휴식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이사랴 감옥에서의 2년은 바울이 모처럼 가졌던 안식년이었으며, 그 동안 바울은 휴식을 취하며 재충전을 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로마로 가기 전에 이렇게 충분한 휴식을 취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2년 후의 상황
  

바울이 감옥에 있던 2년 동안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총독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벨릭스는 유대인들에게 너무 악하고 잔인하게 굴었기 때문에 여론이 악화되어 로마로 소환되었습니다. 역사가들에 의하면 많은 유대인들이 진정서를 냈다고 합니다. 원성이 높아지자 로마 황제는 벨릭스를 소환하고 베스도라는 사람을 후임으로 보냈습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베스도는 정직하고 의롭고 곧은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전임 총독이었던 벨릭스가 유대인들에게 악하게 굴어서 로마와 유대의 관계가 불편해지자, 로마에서는 온건하고 지혜로운 사람을 후임으로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베스도는 건강이 좋지 못하여 부임한지 2년 후에 죽었습니다.
  

또 하나의 변화는 대제사장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아나니아의 뒤를 이어 이스마엘이 대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상황들이 바뀌었지만 한 가지 변하지 않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이 여전히 바울을 죽이려고 벼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기필코 바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새 총독이 부임한 것을 바울을 죽일 좋은 기회로 삼고자 했습니다.

신임 총독에 대한 유대인들의 요구
 

 신임 총독 베스도는 부임한 지 삼일 후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거기서 총독은 대제사장과 유대인 지도자들을 만났습니다. 악화된 로마와 유대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매우 조심스럽고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신임 총독이 우호관계를 새롭게 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을 방문했다면,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좋은 선물 한 가지쯤은 주는 것이 상식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신임 총독에게 유대인들이 한 가지 소원을 말하면 총독은 그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때 유대인들은 신임 총독 베스도에게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데려다가 재판하게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렇게 요구한 저의는 바울을 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길에 매복해 있다가 암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더라”(3절)
  

로마의 신임 총독과 유대인 지도자들과의 첫 번째 상견례에서 나온 건의 사항이었기 때문에 베스도는 이것을 거절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베스도는 이 요구를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대신에 가이사랴로 와서 다시 바울을 고소하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이것은 기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보호하시기 위하여 베스도의 마음을 감동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이렇게 하십니다. 우리가 사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지 않습니까?

베스도 앞에서의 재판
  

열흘 후에 베스도는 가이사랴로 돌아와서 다음 날 즉시 재판을 시작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인들은 여러 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바울을 고소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모든 고소들에 대하여 아무런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유대인들의 모든 고소를 완전히 부인했습니다. 이번에도 유대인들은 완전히 판정패를 당했습니다. 신임 총독 앞에서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자칫하면 유대인들의 원망이 총독 베스도에게 퍼부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며칠 전에 베스도는 바울을 예루살렘에서 재판하게 해달라는 유대인들의 부탁을 거절했으며, 가이사랴에 와서 바울을 고소하라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베스도의 말을 듣고 가아사랴에 와서 바울을 고소한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목적을 달성하기는커녕, 오히려 창피만 당한 셈이 되고 말았습니다. 베스도로서는 유대인들을 달랠 필요가 있었습니다. 취임 초기부터 유대인들과의 관계가 불편해서는 안 되겠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베스도는 유대인들과 바울을 다시 예루살렘에서 재판하는 문제를 논의하게 되었습니다.
  

베스도는 재판을 가이사랴에서 하든, 아니면 예루살렘에서 하든, 그것은 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재개하기를 소원하고 있었습니다. 베스도로서는 이 정도의 양보쯤이야 못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더욱이 유대인들이 바울을 고소한 가장 큰 죄목은 성전 모독죄였으므로, 그 문제에 대해서라면 예루살렘에서 다루는 것이 좋을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베스도는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서 베스도 자신의 주재하에 다시 재판을 받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더러 묻되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9절)

가이사에게 호소함
  

그러나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다시 위험에 빠지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더구나 유대인들에 대하여 경험이 없는 베스도가 이런 식으로 유대인들의 계략에 말려들기 시작하면 바울은 심각한 상황에 빠질 것이 뻔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서 재판 받는 일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만큼은 막아야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신임 총독의 호의를 이용하여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려 했는데, 그렇게 되면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기도 전에 죽임을 당할 가능성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신임 총독은 유대인들의 요구를 들어줄 태세였습니다. 이제 바울로서는 단 하나의 방법밖에는 없었는데, 그것은 로마 황제에게 상소하는 것이었습니다.
  

로마 시민에게는 누구나 황제에게 재판을 청구할 권리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무슨 죽을죄를 지었다면 죽기를 사양하지 않겠지만, 죄가 없다면 아무도 자기를 유대인들에게 내줄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바울이 이르되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 당신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나이다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죽을 죄를 지었으면 죽기를 사양하지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이 나를 고발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아무도 나를 그들에게 내줄 수 없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한대”(10-11절)
  

바울이 황제에게 상소하자, 이제부터 바울을 재판하는 권한은 오직 황제에게만 있게 되었고, 총독이라 해도 바울을 임의로 예루살렘으로 보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총독은 황제에게 호소하는 바울의 요구를 허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그립바
  

이제 총독은 바울을 로마로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을 로마로 보내어 황제 앞에서 재판을 받게 하려면, 이제까지 이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가 하는 보고서를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베스도는 아직 이 사건에 대한 전모를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서 난감해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마침 헤롯 아그립바 2세가 총독을 방문했습니다. 이 아그립바는 헤롯 왕가의 마지막 왕으로서, 로마의 총독이 새로 부임해 왔으므로 인사차 베스도를 방문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그립바 왕은 유대 종교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으므로, 총독은 아그립바가 이 일을 도와줄 적임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베스도는 아그립바 앞에서 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베스도는 전임자 벨릭스가 바울이라는 사람을 구류해 놓았다고 하면서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요약해서 설명했습니다(15-21). “유대인들이 그 사람을 고소하기에 재판해 본 결과 그 사람에게서 어떤 죄도 발견할 수 없었다. 내가 보기에 이 사건은 유대인들의 종교 문제이며, 바울이 예수라는 사람이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주장하는 것 때문에 유대인들이 그를 고소한 것 같다. 유대인들은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송치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바울은 황제에게 재판을 받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래서 그를 보내기까지 대기시켜 놓고 있는 중이다.” 베스도의 설명을 들은 아그립바는 자기도 바울의 말을 들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마침 아그립바 왕의 도움을 받고자 했던 총독은 다음 날 바울을 아그립바 왕 앞에 세우기로 했습니다. “아그립바가 이르되 나도 이 사람의 말을 듣고자 하노라 베스도가 이르되 내일 들으시리이다 하더라”(22절)
  

그런데 아그립바가 왜 바울에 대하여 그렇게 관심을 나타냈을까요? 아그립바 2세는 헤롯 왕가의 마지막 왕이었는데, 그의 가문은 기독교와 특별한 인연이 있었습니다. 그의 증조부 헤롯 대제는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찾다가 찾지 못하자, 유아들을 학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아들이며 갈릴리 분봉왕이었던 안디바는 세례 요한을 목 베어 죽인 사람이었습니다. 헤롯의 손자 아그립바 1세는 사도 야고보를 죽였으며, 유대인들이 그것을 기뻐하자 베드로도 죽이려고 했었습니다. 그는 그 후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벌레가 먹어 비참하게 죽었습니다(행12:23). 여기 나오는 아그립바는 바로 그 아그립바 1세의 아들, 즉 헤롯 대제의 증손자였습니다. 이렇게 헤롯의 가문은 예수와 기독교에 대하여 특별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아그립바는 예수의 부활을 주장한다는 이 바울에게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그립바는 바울을 한 번 보기 원했고, 베스도는 다음 날 바울을 아그립바 왕 앞에 세우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미 바울이 로마 황제에게 상소를 했으며, 아그립바 왕에게는 사법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베스도 총독은 이 사건에 대하여 로마에 보고할 자료를 얻기 위해 아그립바로 하여금 바울을 한 번 더 심문을 하게 했던 것입니다.

유일한 죄목
  

유대인들이 바울을 고소한 내용들은 모두 거짓된 것이었으며, 바울은 그 혐의들을 모두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바울이 인정한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이었습니다. 베스도 총독도 이것만은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가 죽은 것을 살아있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고발하는 것뿐이라”(19절)
  

그러면 부활에 대하여 당시의 사람들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살펴봅시다. 먼저 바울을 죽이려 했던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리새인들은 이론적으로는 부활을 믿었으나 실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도 부활은 별 의미가 없었습니다. 반면에 바울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부활은 이미 성취된 사건이요 실제였습니다.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핵심은 부활입니다. 십자가에서 부활을 제거한다면 십자가는 하나의 비극이요 실패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셨고 영원히 살아 계십니다. 기독교 복음이 무한한 힘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이 부활을 믿으면 주님처럼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예수님의 부활을 확실히 믿습니까?
  

그러나 베스도는 이 부활에 대하여 별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그것은 단지 유대인들의 종교 문제의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만일 베스도가 이 복음에 관하여 관심을 가졌더라면 바울을 통하여 십자가와 부활에 대하여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었을 것이며, 그가 믿었더라면 구원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부활에 대하여 무관심했고, 2년 후에 구원받지 못한 채 죽고 말았습니다. 복음을 듣고 믿기로 결단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누구를 위한 고난인가?
  

지금까지 바울이 고난을 당하며 재판을 받은 이유는 단 한 가지였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과 그것을 전하고 다닌다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르심을 받은 후 자신의 문제로 고난을 당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가 말했던 그 숱한 고난들을 그는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 당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누구를 위하여 고생을 하고 있습니까? 누구를 위하여 직장 생활을 하며 사업을 하고 있습니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난은 무엇 때문입니까?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한 고생, 나의 죄와 미련함으로 당하는 고난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은 인생을 피곤하게 하고 지치게 할뿐입니다. 이런 삶은 아무리 많은 돈을 벌고, 아무리 많은 것을 누리고, 아무리 많은 것을 이루었다 해도 헛될 뿐입니다. 인생을 이렇게 산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쉽고 허무한 종말과 비참한 무덤이 있을 뿐입니다. 지금 당신의 삶은 어떻습니까? 이대로 한 평생을 마쳐도 후회가 없겠습니까?
바울은 오직 주님을 위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고난을 당해도 그것은 낙심되고 불행한 것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재판을 받고 감옥생활을 하며 죽을 위협을 당하고 있었어도 그는 담대하고 평안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죽음을 앞에 두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 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4:7-8)
  

그는 인생의 황혼에 이르러서도 후회가 없었으며 오히려 만족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인생과 바울의 인생에 있어서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주님을 위해 사느냐, 나를 위해 사느냐 하는 것이 아닐까요? 당신의 인생에서 수정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겠습니까?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고난을 당하든지 형통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후회 없는 인생이 되기 바랍니다. 주님을 위한 값진 인생이 되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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