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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받는 바울(3) - 아그립바 앞에서 ...

사도행전 이정원 목사............... 조회 수 2939 추천 수 0 2011.09.15 22: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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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행26:1-23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만일 당신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설하는 기회가 생긴다면 무슨 말을 하고 싶습니까? 많은 사람들 앞에서가 아니라 하더라도 누군가에게 마음껏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신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당신의 평생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바울은 법정에서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몇 차례 얻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억울한 사정을 해명하고 변호할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때마다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기보다는 그리스도를 전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 전하기를 힘썼습니다. 나중에 바울은 그의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4:2)
  

오늘 본문에서도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 전하기를 힘쓰는 바울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오늘 우리도 바울의 이러한 열정과 삶의 태도를 배워야겠습니다. 일 년이 가도, 어떤 사람들은 평생 한 사람도 전도하지 못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야 말이 되겠습니까? 우리도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 전하기를 힘쓰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법정의 모습
  

아그립바 왕이 베스도를 방문한 다음 날, 베스도는 아그립바로 하여금 바울을 심문하도록 했습니다. 25장 23절은 그날 열린 법정의 모습에 대하여 간단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튿날 아그립바와 베니게가 크게 위엄을 갖추고 와서 천부장들과 시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접견 장소에 들어오고 베스도의 명으로 바울을 데려오니”
  

아그립바는 자주색 왕복을 입고 이마에는 금으로 된 머리띠 모양의 왕관을 썼을 것입니다. 베스도는 총독이 입는 주홍색 예복을 입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천부장들과 성의 높은 사람들이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 총독의 뒤를 따라 심문소에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위세를 한껏 과시하면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법정에 들어와 앉자 총독의 명으로 바울이 끌려나왔습니다.
  

법정에 끌려나온 바울의 모습은 아그립바 왕이나 베스도 총독, 그리고 그 일행들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바울은 키가 작고 대머리였으며, 코는 구부러졌으며 다리는 휘었으나, 은혜가 충만했다고 합니다. 그는 왕관도 쓰지 않았고, 화려한 예복도 입지 않았습니다. 그는 수갑을 차고 죄수의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정에 끌려나온 바울은 높은 사람들이 한껏 과시하고 있던 위세에 전혀 압도당하지 않았으며, 평온하고 담대했습니다. 법정을 압도한 사람은 오히려 바울이었습니다. 오늘 세상에서 성도의 모습이 이와 같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그립바와 바울
  

이 법정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아그립바 왕과 바울이었습니다. 이 아그립바는 헤롯 왕가의 마지막 왕이었습니다. 헤롯 왕가의 창시자인 헤롯 대제는 아기 예수를 죽이려 했던 사람이었고, 그의 아들이며 갈릴리 분봉왕이었던 안디바는 세례 요한을 목 베어 죽인 사람이었습니다. 헤롯의 손자 아그립바 1세는 사도 야고보를 죽였으며, 바로 그 아그립바 1세의 아들이 바울을 심문하기 위해 앉아 있었습니다. 기독교의 대사도인 바울이 지금 헤롯 왕가를 대표하는 아그립바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은 왕복을 입고 보좌에 앉아 있었으며, 한 사람은 사슬에 매여 심문을 받기 위해 서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모두 젊었으며 유대교에 정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죄와 더러움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으며, 한 사람은 죄로부터 구원받고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겉으로는 왕이었으나 사실은 노예와 같은 자였으며, 한 사람은 겉으로는 죄수였으나 실상은 왕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의 대결장이 될 이 법정에서 주도권을 잡은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바울이었습니다.

변증하는 바울의 심정
  

아그립바 왕이 바울에게 발언할 기회를 주자 바울이 변론하기 시작했습니다.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너를 위하여 말하기를 네게 허락하노라 하니 이에 바울이 손을 들어 변명하되”(1절) 바울은 정중한 서두로 아그립바의 지식을 인정하고, 그가 인내심을 가지고 자신의 말을 끝까지 들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아그립바 왕이여 유대인이 고발하는 모든 일에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기나이다 특히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아심이니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너그러이 들으시기를 바라나이다”(2-3절) 바울은 아마도 자신이 전에 연설 도중 방해를 받아 연설을 끝내지 못했던 일을 기억하고 이런 요청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베스도가 중간에 끼어들어 그의 연설을 중단시켰습니다.
  

아그립바 앞에서 연설을 시작하는 바울의 마음속에는 뜨거운 열정이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지금 바울 앞에 있는 아그립바라는 인물은 바울처럼 히브리 종교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이 사람도 그 모든 지식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맞추어 이해할 때 구원을 받게 될 가능성이 많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많은 유력한 인사들도 복음을 받아들이기가 쉽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파급 효과는 얼마나 크겠습니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바울의 마음이 뜨거워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힘을 다하여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복음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나’를 변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전함
  

바울은 자신을 변증하는 기회를 얻었을 때 “나는 죄가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왜 나를 이렇게 감옥에 가두어 두느냐?”라고 따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말하는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으로 자기변명을 대신했습니다. 사실 아그립바 왕은 바울을 심문할 권한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나를 심문하느냐?”라고 공박하지 않았습니다. 아그립바에게, 그리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할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는 2년 동안이나 억울하게 감옥 생활한 것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복음 전할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만으로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변호하는 기회를 복음 전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바울의 변호는 자기의 생애에 일어났던 잊을 수 없는 체험을 설명하는 간증의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자기의 생애에 일어났던 일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변증의 진정한 주인공은 그리스도였습니다. 바울은 언제나 자기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그리스도인이란 이제 자아가 죽고 그리스도께서 자기 안에 사시는 사람입니다. 이제 ‘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은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나’가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새로운 피조물, 전혀 새로운 사람입니다. 이 새 사람은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이요, 그 본질이 새로워진 사람입니다. 당신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으로서 이렇게 새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까? 당신은 늘 무엇을 생각하며 삽니까? 당신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당신의 기쁨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바울의 간증
  

바울은 그가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던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사도행전에는 바울의 이 간증이 세 번이나 기록되어 있는데, 아마도 바울은 가는 곳마다 이 간증을 말했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으며, 그의 삶을 180도로 완전히 바꾸어 놓은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당신에게도 이런 간증이 있습니까? 안 믿는 사람에게 감동적이고 설득력 있게 들려 줄만한 간증이 있습니까? 그저 내 자랑을 늘어놓는 그런 간증이 아니라, 오직 나를 붙잡아 구원하시고 당신의 종으로 삼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순수하게 자랑하는 간증이 있습니까? 구원받은 성도라면 적어도 이러한 간증 하나쯤은 준비하고 있어야 하며, 기회가 생길 때마다 이 간증을 통하여 주님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간증은 대개 세 가지 내용으로 구성됩니다. 먼저 예수 믿기 전에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두 번째로 나는 어떻게 해서 예수를 믿게 되었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수를 믿고 나서 나는 어떻게 변화되었는가? 당신도 이러한 형식으로 간증을 준비해 보십시오.
  

바울의 간증도 이 세 가지 단계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 바울은 엄격한 바리새인이었고 핍박자였습니다. 그런데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만난 후 그는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고, 증인이 되었습니다. 바울의 간증을 천천히 살펴봅시다.

예수를 믿기 전의 바울
  

사울은 청년 시절 랍비 가말리엘의 문하에 있을 때 예루살렘에서 잘 알려진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뛰어난 학식과 의로움과 율법에 대한 열심으로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마도 지금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 중에 상당수가 바울이 다소와 예루살렘에서 어떻게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를 잘 알고 있을 것이며, 바울이 유대교의 가장 엄격한 바리새파에 속해 있었다는 것을 증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다른 바리새인들과 마찬가지로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 때문에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메시아에 대한 구약의 예언들은 예수 안에서 이미 성취되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후 부활하신 것이 바로 그 분이 메시아라는 것을 증명해줍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역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왜 부활을 믿을 수 없는 일로 생각하느냐고 도전했습니다.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8절)

핍박자였던 바울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설명한 후 바울은 그가 어떻게 예수를 만나게 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 바리새인이었던 바울은 이 나사렛 예수의 도에 대하여 큰 적대감을 가지고 교회를 격렬하게 핍박했습니다(9-11절). 그러한 바울을 완전히 변화시켜버린 사건이 일어났는데, 바울은 바로 그 중대한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그 중대한 사건은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려고 다메섹으로 가던 중에 일어났습니다.
  

때는 낮 12시였는데 뜨거운 햇볕이 작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햇빛과는 비교할 수 없이 밝은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13절). 그 순간 바울 일행은 땅에 엎드러졌는데,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14절)
  

핍박자 사울이 주님을 만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가시채를 뒷발질한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팔레스틴에서는 소나 말을 길들여 가지고 밭을 가는데, 아직 완전히 길들여지지 않은 소나 말은 순순히 말을 듣지 않고 자꾸만 뒷발질을 한다고 합니다. 이 못된 버릇을 고치기 위해서 주인은 가시채를 만들어 뒤에 묶어 놓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짐승이 뒤에 있는 주인을 향해 뒷발질을 하면 영락없이 찔리게 됩니다. 순순히 말을 듣지 않고 뒷발질을 할수록 손해요 고생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반대하거나 핍박하는 일은 이와 같이 가시채를 뒷발질하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그러한 와중에서도 바울은 “주여 뉘시니이까?”하고 물었는데, 주님께서는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교회를 핍박하던 바울에게 그것은 곧 주님 자신을 핍박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교회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당신 자신과 동일시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형제를 핍박하거나 미워하면 그것은 곧 주님을 핍박하거나 미워하는 것이 됩니다.

사환과 증인이 된 바울
  

이렇게 예수님 만난 것을 설명한 후 바울은 그 후 자신이 어떻게 변화되었는가를 말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을 찾아오신 주님께서는 바울을 사로잡아 당신의 종과 증인으로 삼으셨습니다.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16-18절). 주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구원받게 하는 사명을 바울에게 주셨던 것입니다.
  

바울은 주님의 명령을 거역하지 않고 주님의 사환과 증인이 되어 지금까지 약 20여 년 동안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복음 전하는 일을 감당해왔습니다. 그 결과 유대인들이 바울을 붙잡아 이렇게 고소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지금까지 전한 것은 어떤 불법과 이단이 아니라 모세를 비롯한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것이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그리스도가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신 후 부활하실 것에 대해서 예언했습니다. 과연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예언대로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신 후 부활하셨습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직접 만났으며, 부활하신 주님께서 바울에게 친히 복음 전파의 사명을 주셨던 것입니다. 바울이 여기까지 말했을 때 갑자기 총독 베스도가 끼어들어 바울의 연설은 중단되었습니다.

삶의 목표가 분명해짐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 사울은 교회를 극심하게 핍박했었습니다. 그러나 핍박자 사울은 혼란스럽고 뭔가 정리되지 못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특히 그는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의 장면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격렬한 증오심을 가지고 돌을 들어 자기를 쳐 죽이는 사람들 앞에서 스데반은 천사처럼 평화로웠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증오하고 죽이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스데반은 하늘을 우러러 그가 믿는 주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것을 본다고 말하면서 죽어갔습니다. 그것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핍박자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모든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그제서야 그는 스데반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목숨을 걸고 믿던 주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의 삶의 방향과 목표가 분명해졌습니다. 그 이후로 바울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한 번도 한눈을 팔지 않고 달려왔습니다. 그는 일생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오늘 당신은 어떻습니까? 당신의 삶의 목표가 분명합니까? 당신이 지금 왜 이 자리에 있는지를 분명히 설명할 수 있습니까? 만일 당신이 병이 들었다면 그 이유를 분명히 해석할 수 있습니까? 당신이 당하고 있는 어려운 일들에 대해서도 분명한 해석을 내릴 수 있습니까? 자녀를 양육하는 이유가 분명해졌습니까? 당신이 살아가는 이유가 분명해졌습니까? 바울은 주님을 만난 후 자신의 존재 이유와 삶의 목적, 그리고 사명이 분명해졌습니다. 그것은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명이 사울을 위대한 사도 바울이 되게 했습니다. 오늘 당신에게도 이러한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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