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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고후12: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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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
고린도후서(49) 성공적인 인간관계의 4대 원리
1. 서로 격려해주십시오
왜 사도 바울이 자기 입으로 자신의 삶과 체험을 자랑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었습니까? 교인들이 사도 바울을 칭찬해야 마땅함에도 침묵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 침묵은 “바울은 영성도 없고 화술도 없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다.”란 거짓 선생들의 주장에 묵시적으로 동조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큰 사도들보다 전혀 부족함이 없는 존재라고 주장했습니다(11절). 사실 그런 말을 교인들이 해주면 얼마나 격려가 됩니까?
듣는 입장에서는 자신을 찔러 쪼개고 수술하는 말씀도 잘 듣겠다고 각오해야 하지만 말하는 입장에서는 칭찬과 격려를 많이 해주십시오. 아이에게 젖을 먹이면서 화를 내면 설사합니다. 목회할 때도 책망이 많을수록 목회는 더 안 되고 사람의 변화도 더 안 됩니다. 항상 칭찬과 격려와 축복을 아끼지 마십시오. 바울이 바울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나바의 격려 때문이었습니다. 그처럼 격려해주기를 힘쓸 때 인간관계가 견고해집니다.
2. 오래 인내하십시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도 된 증표를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의 4가지로 들었습니다(12절). 이 구절에서 ‘모든 참음’은 ‘극한 인내’ 혹은 ‘오래 참음’을 뜻합니다. 이 구절을 자세히 보면 바울은 사도의 표로서 표적과 기사와 능력보다 인내를 더 중시하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그것은 인내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줍니다. 인내는 인간관계를 견고하게 만들어주고 결국 승리하게 합니다.
화가 날 때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혼자 마음을 다스리십시오. 자신이 어떤 일로 인해서 화를 내고 분노하면 주위사람들이 더 신경 써주고 위로해줄 것 같지만 실제로 그의 명예는 그 순간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그러면 주위 사람들이 조심스러워서 가까이 다가오지 않습니다. 때로 어려운 순간을 만나도 최대한 인내하십시오. 그러면 인간관계에서 승리하고 반드시 그의 명예는 올라갑니다.
3. 부담주지 마십시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재정적인 지원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13절). 돈을 목적으로 복음 전파의 사명을 이행한다는 오해를 불식시키고 그가 구하는 것이 ‘고린도 교인들의 재물’이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의 영혼’임을 뚜렷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14절).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영혼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한 몸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15절). 그처럼 그는 누구에게도 전혀 부담을 주지 않고 떳떳하게 사역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때 그의 비판자들은 사도 바울이 교인들에게 재정적인 부담을 지우지는 않아도 교묘하게 교인들의 마음과 물질을 취한다고 비판했습니다(16절).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신과 디도는 물론 자신이 보낸 누구를 통해서도 그런 시도를 하지 않았다고 언급합니다(17-18절). 처음부터 끝까지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그 모습을 보십시오. 그런 사람이 인간관계에서 최종적인 승리자가 됩니다. ‘부담을 주는 존재’가 되지 마십시오.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말고 적극적으로 ‘부담을 지는 존재’가 되십시오. 부담을 지기 싫어하면 지도력도 얻을 수 없습니다.
4. 깊이 성찰하십시오
당시 고린도 교인들은 거짓 선생들에게 미혹되어 영성 자랑에 빠졌습니다. 그러자 교회도 심한 혼란에 빠지면서 다툼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중상함과 수군수군하는 것과 거만함과 어지러운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사도 바울과 고린도 교인들이 만나면 얼마나 불편한 만남이 되겠습니까? 그것은 서로가 원치 않는 일이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도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20절).
바울은 자신에 대한 오해보다 그런 불편한 만남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고린도 교회에 가면 자신이 징계의 채찍을 휘두르지나 않을까 하고 염려했습니다. 특히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가지고 잘못된 행동을 한 교인이 회개치 않을 것을 보면 더욱 평정심을 잃을 것 같아서 잠시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21절).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잠시 사건 현장에서 떨어져 생각할 시간을 가지면서 상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방향으로 생각의 방향을 잘 잡으십시오. 인간 사회는 신뢰사회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로를 신뢰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부분의 일로 사회 전체를 불신사회로 단정하지 마십시오. 가끔 불신적인 상황이 생기면 자기를 먼저 깊이 살피고 남을 탓하기보다는 차라리 자신을 탓하며 새로운 창조적인 계획을 각오하십시오. 자신에 대한 깊은 반성과 함께 사람에 대한 믿음을 체질화시키면 성공적인 인간관계의 가능성도 그만큼 커집니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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