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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나는 가끔 아이들을 데리고 궁궐 나들이를 한다.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을 데리고 얼마 전 이순신 장군 동상을 보러 광화문에 나갔다가 아들한테 질문받은 말이 지금도 귓전을 때린다.
"엄마. 저 글자는 무슨 글자야?"
"응 저건 한자란다"
"왜 우리나라 한글이 있는데, 저런 글자로 썼어?"
"....."
아들이 광화문 앞에 이르렀을 때 내게 던진 질문이었다. 무엇인가 아들이 알아들을 답을 찾다가 나는 말을 멈추었다. 나도 아들과 같은 생각을 평소 해왔기 때문이다.
조선 오백 년 역사의 중심 경복궁은 광화문을 거쳐야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광화문은 조선의 상징이며 대한민국으로 바뀌고도 여전히 수도의 중심에 자리한다. 지금의 광화문은 조선 태조 4년인 1395년에 창건된 광화문의 모습이 아니다. 굴곡의 역사 현장을 묵묵히 지켜본 광화문은 일제강점기 때 훼손되고, 한국전쟁을 거치는 동안 일부 불탔으며, 1968년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보수한 것을 지난해 문화재청이 관련 사료와 문헌, 사진 등을 통해 고종 2년(1865년) 중건(重建) 때의 모습으로 복원해 놓은 게 오늘의 모습이다.
문화재청의 '광화문 제 모습 찾기 사업'은 나름대로 의의가 있지만 한편에서는 현재 한자로 되어 있는 광화문 현판을 한글로 달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진작부터 있었다. 외국인이 관광 왔다가 대한민국의 상징인 광화문 앞에서 사진을 찍어 다른 이에게 보인다면 그 사진을 본 사람은 한자 현판을 보고 중국에 다녀왔느냐고 물을 것이다.
현판 글씨 때문이다. 일곱 살짜리 아들의 질문처럼 한글이 있는 나라에서 어찌하여 한자 현판을 고수하는 것일까? 문화재 복원은 가능하면 최초의 것에 가깝게 하는 것이 좋겠지만 불타 없어지거나 도둑이 떼어가는 등의 수난으로 그 원형을 잃어 복원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광화문 현판도 원형 그대로 복원은 어렵고 다만 예전 형태의 글자를 본떠 걸어놓은 것인데 이나마도 균열이 가서 다시 달 모양이다.
초기 현판도 아니고 중건 때의 한자 모양의 글씨를 흉내 내 걸 바에야 당당한 우리 문자인 한글을 훌륭한 서예가에게 부탁하거나 훈민정음 글자에서 모아쓰면 어떨까 한다. 기왕지사 현판을 만들 바에는 남의 나라 문자인 한자를 떼고 자기 나라 글자인 한글로 해 달 좋은 기회가 아닌가?
지금으로부터 다시 세월이 흘러 100년, 1000년이 흐른다면 그 후손들이 광화문 한글 현판 단 것을 두고 '원형복원이 아니니까 한자로 해 달자."라고 시비 할 사람은 없다고 본다. 오히려 "남의 나라 문자를 과감히 떼어버리고 자기 글자로 당당히 현판을 건 2011년의 용감한 조상"들에게 고개가 수그러들 것이다.
한자 현판을 단다고 해서 광화문의 품격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고 한글 현판을 단다고 해서 문화재적 가치가 손상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한글 현판을 내걺으로써 민족적 자존심을 지킬 수 있다고 본다. 얼마 있으면 세종임금이 창제한 한글날이 다가온다. 창제로부터 568년을 맞이하면서도 여전히 한글은 푸대접이다. 이미 세계 최고의 과학적이며, 철학적인 글자라고 언어학자들이 극찬하는 한글을 놔두고 중국 글자인 한자를 한국의 상징 건물에 내거는 일은 이제 청산할 때다. 더러는 옛것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으나 지금 광화문 현판은 본으로 삼을 원형이 사라 진지 오래다. 원형을 알 수 없는 한자를 겨우 짜깁기해서 달지 말고 아름다운 한글로 달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독자 주연순 / 영등포구 문래동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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