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세가지 금은 황금, 소금, 지금 이라고 한다. 나도 좋아하는 세가지 금이 있다. 현금, 지금, 입금 이다 ㅋㅋㅋ(햇볕같은이야기 사역 후원 클릭!) |
귀향
서민이는 택시 기사가 되었다. 처음부터 기사가 된 것은 아니다. 그는 목사였다. 대학시절 독재 타도를 외치며 정치 민주화를 위해 열심히 투쟁을 하였다. 그래서 군사 정권시절 감옥에도 갔다. 일제 시대 때 민족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의로운 신앙인들처럼 자신은 정치적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고자 했다. 정권이 바뀌면서 나라의 민주화는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생각을 했다. 정치적 민주화는 어느 정도 이루어졌지만 인권은 그리 신장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경제적 정의는 이루어지지 않아 빈부 격차는 갈수록 심화되었다. 개천에서 용이 나온다는 말은 옛말이 되어 버렸다. 돈도, 권력도, 명예도 지식도 다 세습이 되었다. 수가 신이 되고 돈이 세상을 지배해 갔다.
서민이는 사회 구조악을 바꾸기 위해서는 종교의 힘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는 신학교에 들어가 목사가 되었다. 그러나 막상 목사가 되어 교회 개척을 해 보니 사회의 구조악을 개선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힘이 있어야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데 서민이처럼 사회악을 지적하고 희생과 헌신을 강조하는 설교를 하는 교회에는 사람들이 모이지 않았다. 신앙인이면 의로움 삶을 좋아하고 사회의 약자를 위해 희생하는 것을 좋아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교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현세적 축복과 심리적 평안을 강조하는 교회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공의와 정의, 희생과 나눔을 강조하는 것을 신앙인들 마저 싫어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깨닫게 되었다. 자신이 그렇게도 싫어했던 힘의 원리가 종교에도 그대로 통했다. 된다는 교회는 돈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종교계에서도 어느 도시에서 몇 년만에 교인 1천 명이 모였다는 성공 사례들이 발표가 되었고 그들은 성공한 목사라고 대접을 받았다. 그런데 성공했다는 목사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다 돈의 기반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성공의 이유를 여러 가지로 포장을 했지만 실제로 포장지를 뜯어보면 돈이라는 것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대학교 때 함께 술을 마시며 놀던 두 명의 친한 친구가 있었다. 한 친구는 아버지가 큰 교회 목사였다.
서민이가 감옥에 가 있을 때 그는 공부하여 미국에 유학을 갔다. 유학을 하고 돌아온 그는 목사가 되어 자기 아버지 교회를 물려받았다. 사람들이 종교 세습을 비난하자 한 친구 아버지는 그 아들을 신도시로 데리고 나가 대형 교회를 지어 세습을 해 주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같은 제목으로 설교를 하며 목회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270억을 주고 지었다는데 일년만에 5천명의 교인들이 모인다고 자랑을 하였다.
서민이는 예수님처럼 살려고 하지 않고 예수님을 통해 출세하려는 사람들이 싫었다. 예수님처럼 희생하고 봉사하며 헌신하는 삶을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 종교적 출세를 하려는 사람들이 구역질 날 정도로 역겨웠다. 세상이 변하여 돈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어려움을 극복할 수 없듯이 교회 현실도 똑같은 함정에 빠져 있었다. 지하 셋방에서 개척을 시작한 서민이 역시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구제의 대상이 되었다. 목회를 하는 것이 다른 사람을 도와 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꼴이 되어 버렸다.
그는 자신이 목사로서 부적격자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택시 기사가 되기로 결심을 하였다. 기사가 된지 한 달쯤 되었다. 한 젊은이가 그의 차에 탔다. "월곡동 가요" 한참 가는데 이 청년은 칼을 들여댔다. 서민이가 설득하려고 하자 그 청년은 서민이를 흉기로 찌르고 돈을 빼앗아갔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서민이는 괘씸한 마음에서 경찰에 신고한 후 동행 잠복근무를 자청하였다. 90일만에 그를 잡았다. 그는 같은 수법으로 택시 강도를 8번이나 저질러 택시 기사로부터 30만원을 빼앗았다. 서민이는 왜 돈이 필요했냐고 물어 보았다. "이틀이나 밥을 먹지 못해 배가 고파 그랬다."라고 말했다. 서민이는 직접 그의 집에 가 보았다. 낯익은 동네였다.
대학 시절 친구와 함께 가보았던 교회였다. 지금은 아버지 교회를 세습한 친구가 담임목사로 목회하는 교회였다. 그 동네에서 가장 큰 교회였다. 바로 그 교회 옆에 있는 초라한 집 지하 단칸방에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일찍이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질병으로 누워있었다. 암이 걸렸지만 치료할 돈이 없어 집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누나 하나가 있는데 누나는 공장에서 일하다 다리를 다쳐 장애인이 되어 휠체어를 타야만 했다. 전기세를 내지 못하여 전기가 끊긴지 이미 3달이나 되었다. 그는 주머니에 있는 돈을 그의 어머니에게 다 주고 경찰에 선처해 줄 것을 호소했다. 그러나 법은 눈물이 없었다. 그는 구속되고 말았다.
청년이 살고 있는 집 옆에 있는 친구 목사에게 도움을 청해 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서민이는 아무도 돌보는 이 없는 그 모녀를 모시고 아버지가 평생 장애인들과 살았던 산골에 들어갔다. 서민이 아버지는 산골에서 지독히도 가난하게 살면서 장애인들을 돌보며 살다 돌아가신 목사였다. 어머니를 일찍 하늘나라에 보내고 아버지는 홀로 장애인들을 돌보며 살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장애인들도 흩어졌고 아무도 그 집에서는 살지 않았지만 이제 서민이가 아버지의 일을 세습하게 되었다. 고향집에 오니 아버지가 늘 하시던 말씀이 생각났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40)"●
귀 향/섬기는 언어/김필곤 목사/2005.1.30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