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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 복음 예수

마가복음 김창인 목사............... 조회 수 2078 추천 수 0 2011.10.30 18:4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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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8:1-10 
설교자 : 김창인 목사 
참고 : 광성교회 - 김창인 목사 제3설교집 <하늘농사꾼/모퉁이돌> 에서 

no3.jpg 광야의 복음 예수(마가복음 8: 1-10) 

 

마가복음 8장 1절에서 10절까지의 말씀 가지고 "광야의 복음 예수"란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본문에 기록된 성경 말씀이 전개된 무대는 광야입니다. 그러므로 광야에서 되어진 그 복된 소식 즉 광야에서 되어진 복음이란 뜻입니다.


복음이란 말은 헬라어로 유앙겔리온이라고 하는데 그 뜻은 내게 기쁘고, 반갑고, 귀한 좋은 소식을 전해주고 사람에게 수고했다 하고 주는 약간의 수고비의 개념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수고비보다 오히려 그 사람이 가지고 온 그 자체를 유앙겔리온이라고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이 단어가 채용되면서 복음이라고 쓰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된 소식, 즉 나에게 참 기쁨이 되는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복된 소식이란 이런 저런 소식을 다 예기 할 수 있지만, 예수 자신이 우리에게는 복된 소식입니다. 예를 들어 내 아들이 저 멀리 가서 고생 끝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접할 때 그 소식이 나에게 복된 것이 아니라 그 아들 자체가 복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렇다 저렇다 하는 여러 가지 소식이 우리에게는 복된 소식이 아닐 수 없지만 예수 자신이 우리들에게는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생활이 복음이고, 예수님의 죽음이 복음이고, 예수님의 부활이 복음이고, 예수님의 재림이 복음이고, 예수님의 전부가 우리에게는 복음입니다. 광야에서 되어진 그 복된 소식은 예수가 됩니다.


I. 긍휼의 복음 예수(1-3절)


1. 가난한 자에게 긍휼(1-2상 반절)


여기서 불쌍히 여긴다는 것은 곧 긍휼을 의미합니다.


우선 먹을 것이 없어 불쌍히 여긴다. 바꾸어 말하면 가난한 자에게 주님께서는 큰 긍휼을 베푸신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가난한 자들은 항상 어디서나 소외당합니다. 심지어 형제끼리도 가난한 형제가 오는 것은 싫어합니다. 또 가난한 형제는 부자 형제에게 잘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자격지심에 공연히 마음 상하고 서러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사람은 자꾸 소외당하고 외로워집니다.


여러분! 가난이 죄일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가난 때문에 서러움 당하고, 가난 때문에 소외당하니 불쌍한 사람입니다. 경제적으로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은 약자입니다. 그러니 약한 사람, 소외된 사람들을 주님께서는 불쌍히 여기시고 깊은 관심을 가지십니다. 예수께서 이런 약자, 소외된 자에게 관심을 가졌다면 교회도 약자들과 소외된 자에게 깊은 관심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배운 사람에 비하면 배우지 못한 사람은 약자입니다. 배운 사람은 배운 사람끼리만 상대하려 합니다. 그러면 배우지 못한 사람은 소외당하고 모른다고 멸시 당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배운 사람은 배우지 못한 사람에게 그 만큼 아량을 베풀고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라는 곳에 학력을 중심으로 해서 조직된 단체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자칫 잘못하여 나 하나의 말과 행동이 소외된 자, 약자에게 상처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는 약자에게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 안에 패거리 짓는 것, 줄이 생긴다는 것은 있어서도, 해서도 안 됩니다. 교회는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다 같이 와서 함께 믿은 생활하며 형제로서 우대하면서 사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없는 사람은, 약한 사람, 소외된 사람에게 늘 관심을 가지고 계셨듯이 우리도 이런 자들에게 관심의 눈길과 사랑의 손길을 보내야만 합니다.


2. 함께한 자에게 긍휼(2절)


주님께서 가난하고 약하다해서 무조건 긍휼을 베푸시지는 않습니다. 젊어 일할 수 있는 사람이 게을러 놀고 있으면서 먹을 것이 없다면 이런 자에게 긍휼을 베풀겠습니까? 본문에 보면 이 사람들이 왜 먹을 것이 없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나와 함께 광야에 있은 지 사흘이다"라고 했습니다. 먹을 것이 떨어져 사흘을 있었겠습니까?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광야로 모여 그 많은 사람들이 3일 동안 예수님의 말씀의 잔치에 빠져 얼마나 은혜를 받았는지, 그만 집에 돌아가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밤낮이 가는 줄 몰랐던 것입니다. 먹을 것이 떨어지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알고 있었지만 먹을 것이 없어도 예수 제대로 믿어야겠고, 먹을 것이 없어도 은혜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한 자, 믿는 자에게 주님께서 긍휼을 베푸신다는 뜻입니다.


3. 구체적인 긍휼(3절)


예수님께 모인 그 사람들이 남자만 4000명이니 여자와 어린아이까지 합하면 무려 12000명이나 되었을 것입니다. 12000명이 주일 낮 시간도 모이고 저녁도 모이고 여러날 모인 사람들이라 그쯤 되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할 수도 없을 지경입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이 가운데는 멀리서 온 사람도 있으니 그냥 보내면 가다가 기진하여 쓰러질까 하시며 먹여 보내겠다 하십니다. 얼마나 구체적이고, 얼마나 자상하신 분입니까? 주님께서는 일일이 다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구체적으로 긍휼을 베풀어주십니다. 이론적이고 추상적이 아닙니다. 하루 또는 이틀 길을 가야하는, 멀리서 온 사람들은 먹기도 했지만 아마 싸 가지고도 갔을 것입니다. 배불리 먹고 또 싸 가고 남은 떡이 일곱 바구니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그만큼 형편과 처지에 따라, 필요에 따라 다 채워주신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는 자상하고,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긍휼을 베푸시는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하나하나 전부의 입장과 처지를 아시고 긍휼을 베풀어주시는 예수인 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긍휼의 복음은 가난한 자에게 긍휼, 함께 한 자에게 긍휼, 구체적인 긍휼입니다.


II. 축복의 복음 예수(4-8절)


1. 있는 것으로 축복(4-5절)


광야에서 영의 양식인 말씀으로 채워주신 예수님께서는 많은 무리를 그냥 돌려보내지 않으시고 육신의 배고픔을 생각하사 배불리 먹여 보내야 하겠다 말씀하실 때 믿지 않는 자의 눈으로는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광야에서 어떤 좋은 것으로도 먹을 것을 구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너희에게 있는 것이 얼마냐고 물으셨습니다. '지금 물고기 두 마리와 떡 일곱이로소이다'라고 대답할 때 그러면 그것 가지고 해결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있는 것 가지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예수님입니다. 있는 것으로 축복해 주시니 늘어나서 남자만 4000명, 여자와 어린아이까지 12000명 정도 먹고, 싸 가지고 일곱 광주리가 남았다는 말씀입니다. 본문의 내용에서 주님께서는 있는 것으로 축복하시고, 늘리고, 키워,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줄 믿고, 여러분도 하나님 앞에 내가 아쉽고 없을 때 기도하십시오,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내게 없는 것을 구하지 마십시오. 나에게 조금 있는 것, 내가 무엇을 지금 하고 있는데 안 되는 것 이러한 것을 키워 달라고 하면 분명 키워 주시는 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있는 것으로 축복해 주시는 복음 예수입니다.


2. 믿는 자에게 축복 (6상반절)


결론부터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 하나는 참 좋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일곱 개는 혼자서 먹어도 모자랍니다. 그런데 무리를 명하사 앉게 하시니 믿고 앉았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일곱 개는 먹겠다고 앉았으니 그 믿음이야말로 얼마나 좋습니까?


주님의 손에 있어 주님의 손만 거쳐 나오면 문제가 해결되리라 믿고 앉았더니, 그 많은 무리가 실컷 먹은 후 싸 가지고 가고도 일곱 광주리나 남았다는 것입니다. 믿는 대로 받은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 준 것입니다. 믿지 않고 간 사람은 받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믿는 만큼 되고, 믿는 만큼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믿는 자에게 주는 축복입니다.


3. 봉사한 자에게 축복(6하-8절)


여기 보면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 있는 것이 얼마냐 물으시고, 저희에게 있는 생선 두 마리와 떡 일곱 개는 가지고 축복해 주시어, 그 많은 무리가 먹고 일곱 광주리가 남았다 했습니다. 그런데 12000여명을 주님께서 땅에 앉게 하신 다음 축복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다 나눠주라고 했습니다. 제자 열두 명이 12000여명에게 봉사한 것을 말합니다. 나도 배고픈데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을 다 나눠주고 그런 다음 받은 것은 귀한 것입니다. 봉사하고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고 천국 가는 일에 우리가 할 일을 없습니다. 오직 믿음뿐입니다. 그러나 축복은 행함에 있다 하셨으니, 봉사 잘 하여 축복 받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III. 인도의 복음 예수 (9-10절)


1. 가정으로의 인도 (9절)


많은 무리들이 밤낮 삼일 간 열린 예수의 말씀의 잔치, 부흥회에 동참하여 얼마나 많은 은혜를 받았는지 상상해 보십시오. 삼일 밤낮 동안 말씀의 잔치를 베풀어 은혜 받게 하시고, 많은 무리를 배불리 먹게 하시고, "예수께서 저희를 흩어 보내시고" 즉 각자의 자리로 가라, 집으로 가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은혜 받았으니 집으로 돌아가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각자 맡은 바 구실을 잘 해 가정 복음화부터 먼저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가정으로 인도하는 복음입니다.


우리는 모였다 하면 은혜 받고, 가정으로 가서 내 가정 복음화시키고, 내 가정에서 가정 생활 충실히 하라는, 주님의 인도하심을 귀한 복음인줄 믿어야 합니다.


2. 직접인도(10상반절)


3일 밤낮으로 은혜의 잔치를 베푸시고 배불리 먹이고 그 많은 무리들에게는 각자의 자리로 가라, 가서 이렇게 해라 방향만 가르쳐 주며 예수께서 직접 가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자"이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직접 제자들을 인도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다른 무리들은 그 제자들을 얼마나 부러워했겠습니까? 제가들은 예수님을 모시고 배에 따로 간다니 얼마나 긍지를 가졌겠습니까?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당으로 들어갈 때 가도 가도 끝없는 광야에서,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햇빛을 막아 서늘하게 하여 갈 곳으로 인도하여 주시고, 갈 만큼 가서는 먹여 주시며 그곳에 장막을 치게 하셨으며, 또 밤에는 구름 기둥이 불기둥이 되어 추위를 막아 줍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 기둥과 불기둥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가시는 구나 하는 것을 보고 느끼는 것입니다.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 하나님의 상징만은 아닙니다. 실제적으로 하남이 거기에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다 말고 성막을 치고 법궤를 들여놓으면 바로 성막 위에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 있는 것을 보고, 백성들이 밤에 나와 오순도순 예기하며 성막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장막을 치고 우리와 함께 저기에 계신다 하며 광야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그들에게 참 위안을 주고 용기와 희망을 주시는 것입니까?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40여년 동안 하나님이 직접 함께 하시며 인도해 주시니 가는 곳마다 승리 아닙니까? 하나님이 직접 인도해 주시니 가나안 복지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직접 함께 인도하셨고, 또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이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함께 직접 인도하셨다는 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줍니다. 뜨거운 감동을 줍니다. 그래서 우리를 깨우쳐 인도해 주고 지도해 주십니다. 여러분 각자 각자를 성령님이 맡으셔서 직접 인도해 주십니다. 그래서 직접 인도하시는 복음 예수입니다.


3. 새 일터로 인도(10하반절)


달마누다란 본문에만 기록된(본문 외에 들어볼 수도 없는) 생소한 곳, 낯선 곳인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그 곳으로 인도하여 간다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일할 새로운 일터가 바로 여기라는 뜻입니다. 지금까지는 많은 무리가 모여 은혜의 잔치가 있었고, 모든 백성들에게 환영받는 축복을 광야에서 누릴 수 있었지만, 이제는 새로운 일터로 다시 찾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생소한 곳,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달마누나 그곳에 가면 나를 환영한다는 보장도 없고,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지만 새 일터와 새 일감을 찾아 개척해 나가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내 할 일 다 했으니, 여기가 좋사오니 하며 그 자리에 주저앉은 것이 아닙니다. 이렇듯 믿는 사람은 항상 새 일터 새 일감을 찾아 나서는 창조적인 일꾼이 되고 개척하는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대통령 취임식에서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나라가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해 주겠는가를 묻기 전에, 내가 나라를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 이것을 먼저 물어주십시오" 이 말은 케네디 말이 아닙니다. 본래는 유대 나라의 유명한 의사로서 플랭클린이라는 박사가 한 말을 인용했을 뿐입니다. 히틀러가 유럽을 점령하여 유대인들을 잡아가 학살할 때에 프랭클린 박사가 붙잡혔습니다. 가스실에 하루 하루 차례로 들어가는데, 자기 차례가 정해져서 기다리고 있을 때에, 독일이 그만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그 시간 때문에 살아 남은 사람입니다. 죽을 순서를 기다리며 인생을 저주하고 인생을 불평 할 수도 있는 데고, 나와서 싱글싱글 웃으면서 그래도 나는 인생을 긍정한다 그것을 전재해 놓고 한 말이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 나온 나를 위해서 이 아무것도 없는 나에게 무엇을 해주겠는가 라고 묻기 전에, 이런 아무것도 없는 몸이지만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먼저 묻겠다"하고 그때 한 말입니다.


여러분! 예수님 자신이 저기 생소한 곳, 복음을 전혀 듣지 못한 그곳, 성공도 환영도 전혀 보장받지 못한 곳에서 그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와서 나에게 무엇을 해 주겠는가 바라기 전에, 내가 그들에게 찾아가 너희들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줄까를 묻겠다는 그 말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새 일터로 가라고 늘 인도해 주신다고 믿어야 합니다. 여기에 성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광야의 복음은 긍휼의 복음이고, 축복의 복음이고, 인도해 주시는 복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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