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김남준  | 출판사 : 생명의말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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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덕스러운 인생을 꿈꾸는 그대에게삶의 태도는 하나님의 은혜가 담기는 그릇입니다.태도가 변해야 관계가 개선되고 인생이 달라집니다. 태도가 변해야 관계가 개선되고 삶이 달라진다!매력적인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예수 그리스도께 관심 갖도록 한다!애매하게 고난당하는 인생도 있지만, 많은 경우 사람들은 상식을 벗어난 잘못된 삶의 태도 때문에 고통당하고 어려움에 봉착한다. 이와 같이 ‘개념 없는’ 인생은 자기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에게도 비극이며, 특히 그리스도인에게는 그리스도인 고유의 향기를 날리지 못하게 하는 올무가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과 또 이웃들과 사랑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순 …[더보기▶]

 



김남준 목사님의 <개념없음>을  읽으면서 각 챕트마다 일부분을 옮겨적었습니다.

가능하면 읽어보는 것으로 만족하시고 죽 긁어다가 다른데로 옮기는 것은 좀 삼가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작권 문제 때문에 글이 여기저기 복사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아시겠지요?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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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보다 덕스러운 인생을 꿈꾸는 그대에게

 

'개념없다'는 생길 정도로, 상식을 벗어난 태도의 사람들이 많은 시대입니다. '개념 없는 인생'은 자기 자신을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도 비극입니다. 그가 달라지지 않는 한, 그의 인생은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한 진창이 될 것이며, 주변 사람들도 그런 그의 곁에서 힘들어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 헝클어지기 전에, 더 외로워지기 전에, 삶의 태도를 고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2.위로-관계의 강화

 

살다보면 도움을 줄 때도 있고 도우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위로가 필요할 때도 있고, 위로할 필요가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테레사 수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가장큰 질병은 핵이나 문둥병이 아닙니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고 아무도 위로하지 않고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아무도 필요하지 않은 것, 이것이 가장 무서운 병입니다. 세상에는 빵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도 많지만 작은 사랑이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위로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적절한 위로를 베풀고 있습니까? 위로는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의 의무이자, 사람 사이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최고의 비책입니다.

 

3.인상의 법칙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어떠한 인상을 남기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각인된 인상은 그 사람에게 우리의 말과 행동을 해석하는 틀로서 작용하는데, 문제는 한번 생긴 인상은 여간해서 바꾸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좋은 인상을 심어 주었으면 다행이지만, 나쁜 인상을 심어 주었다면 이후로 무엇을 하건 그사람에게는 좋지 않게 비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관계의 지혜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주었다면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더 좋은 인상을 남겨 가는 것, 혹시 나쁜 인상을 남겼어도 그 관계를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여 좋은 인상으로 뒤집는 것이 인간관계의 지혜입니다

 

4.관계를 개선하는 방법

 

아프고 힘들 때, 돌아보아 준 사람은 잊을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심리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에게 나쁜 인상을 심어 주었다면, 진심으로 그것을 개선하고 좋은 관계로 진전되기를 원한다면, 그 사람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모른 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뜩이나 나를 불편하게 생각하는데, 지금처럼 상황이 좋지 않을 때 찾아가면 오히려 거북해할지도 몰라.' 라고 생각하고 피해버린다면, 영영 관계의 개선은 없습니다.
긴 말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그의 마음에 공감해 주고, 여력이 되는 한 최선을 다해 그가 필요로 하는 도움을 제공해주면 됩니다. 묵묵히 행동하는 모습이 보다 많은 메시지를 보다 확실하게 전달합니다.

 

5.황제적 발상의 인간관계

 

상대방에게 자신은 전혀 헌신하지 않고, 필요한 때에 상대방이 자신을 도와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황제적 발상입니다. 세상은 결코 여러분 한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주고 받는 세상의 원리를 무시하고, 자신은 무조건 누리기만 하겠다는 태도를 고수한다면 모든 관계로부터 내쳐지는 결과밖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인간관계는 메아리와 같습니다. 아무 말 없어도 내 마음의 미운 감정은 그 사람의 마음에 울려 퍼지고, 주는 것 없어도 그 사람을 향한 인정과 사랑의 감정은 특별한 눈빛이 되어 그 사람의 마음을 연주합니다. 

 

6. 곳간에서 인심 나기에

 

우리말 속담에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의 형편에 여유가 있어야 남도 돌아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의 마음도 예외가 아닙니다. 일단 자신의 마음이 안정되어 있어야, 남의 내면도 살필 수 있는 것입니다.
'위로'는 값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선물로 받아 내적 풍성함을 누리며 살아가는 존재인 우리의 의무이자 사명입니다. "친구는 사랑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를 위하여 났느니라"(잠17:17)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끝없이 사랑을 베푸는 친구가, 위기에 봉착한 사람에게는 위로와 도움이 되는 형제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 안에 있습니까? 그것을 여러분 안에 머물러 있게 하지말고 삶을 통해서 흘려보내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삶을 통해 드러나, 우리가 살아있는 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실제로 혜택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7.위로의 사명을 감당하라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여러분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 지위가 높은 사람 앞에서만 꼬리치는 사람은 아닙니까? 비록 여러분에게 어떠한 도움의 메아리도 돌려 줄 수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베풀 수 있을 때 베풀며 살아가십시오. 그저 그렇게 돕고 세우면서 나의 존재의 가치와 목적을 실현하며, 나로 말미암아 저 사람이 좀 더윤택해졌다는 사실 때문에 기뻐할 수 있는 아량을 가지십시오. 그럼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야 누군가에게 진정한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빌리그레이엄 목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우리를 위로하시기 위해서 위로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위로자가 되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위로하신다."

 

8.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두 명의 여행가가 깊은 산속을 여행하는 길에 독수리가 다람쥐 한 마리를 번개처럼 낚아채는 것을 봤습니다. 그것을 바라 본 한 여행가가 혀를 차며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쯧쯧, 오늘 저 다람쥐 초상날이구만!"
그러자 다른 여행가가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래도 독수리네 집은 잔칫날이 아닌가!"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같은 상황을 보면서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물러서고 위축되는 사람입니까?"

 

9.참된 기쁨은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웃으셨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우셨다는 기록만 3번이나 나오기에, 자칫하면 예수님의 지상 생애가 슬픔과 우울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코 비관적인 태도로 인생을 사신 분이 아닙니다.
자기 깨어짐의 태도를 유지하며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통회하며 살아가는 삶을 비관적인 태도의 인생이라고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참된 기쁨은 진정한 슬픔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만이 경험합니다.
자신의 인생을 진심으로 소중하게 여기고, 자신이 속한 사회와 이웃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이 세상에 하나님의 아름다운 나라가 반드시 이루어지리라는 희망을 품은 사람은 퇴영적인 태도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땅에 떨어진 하나님의 영광과 패역한 세대를 보며 많이 우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눈물을 닦고 세상을 볼 때는 진취적이고 소망적인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10.일과 일하는 사람

 

그리스도인들이 직장생활에서 범하기 쉬운 오류 중 하나는 자신의 부정적인 자세가 그 직장의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잘못된 직장에 대한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자세는 바로 자신이 신중하고 경건한 사람임을 입증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태도와 경건한 심중함을 착각하지 마십시오. 신앙의 갈등으로 직장생활이 어렵다는 것은 그 회사가 도덕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지 않는 이상 비겁한 변명일 뿐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그렇게 약하고 무능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싸워서 이기고, 그릇된 것을 고치라고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에 내보내신 것 아닙니까?
회사가 하는 일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며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혼자만 고결한 척 하는 직원을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원칙만 따지고, 정작 일에는 열성을 다하지 않는 사람을 귀하게 여길 상사나 동료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뭔가 다르다는 것을 진취적인 태도로 보여 주십시오. 

 

11. 현실 직시

 

목사님들이 흔히 내세우는 말로 우리나라 기독교인이 1200만명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느 신뢰할 만한 통계에 의하면 매주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에 참여하는 숫자는 실제로 480만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12.진취적인 사람이 되라

 

하나님은 진취적인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러한 기상을 지닌 사람을 통해 이 땅에 이루어져 가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이끌어 가는 사람, 어느 일을 맡기든지 성취를 가져오는 사람, 어디에 있든지 주변인이 아니라 주역이 되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이 맡긴 사명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생을 감사히 생각하는 사람의 바람직한 인생입니다.

 

13.사과를 망설이는 이유


왜 사람들은 사과하는 일을 망설일까요? 자존심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과를 꺼리게 하는 자존심은 올바른 자존심이 아닙니다.정말로 자신을 존중하는 사람은 사과해야 할 상황을 대충 모면하지 않습니다. 잘못된 것은 인정하고, 자신으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이 있다면 진심으로 고개를 숙이는 것이 자신을 올바로 지키는 일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과할 수 있는 용기가 진짜 자존심입니다.

 

14.성찰능력

 

성찰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사색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사색은 감각적인 것들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 가능합니다.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스스로 감시하기 위해서는 관념적인 것들에도 생각을 집중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삶의 철학이나 태도를 논하는 것을 고리타분하게 생각하는 이들의 귀에 이러한 충고가 들어올 리 만무합니다. 결국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파악하고 고칠 수 없기에 누군가의 개입이 필요해집니다. 그런데 그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존재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15.자기 성찰력의 회복

 

자기 성찰력이 없는 사람의 삶의 태도가 고쳐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잘못을 하고도 그것이 잘못인 줄 모르고, 어렵게 지적해 주어도 자기 논리로 변명만 늘어놓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인간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성찰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반성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실수도 교훈이 되고 좌절도 약이 되지만, 반성할 줄 모르는 사람은 성공은 성공대로 독이 되고 실패는 실패대로 해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라도 자기 성찰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16. 실수 자체보다 실수 이후가 중요하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정말로 부끄러운 것은 잘못을 들키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하는 태도입니다. 무엇인가 잘못이 있다면 사과하는 일에 머뭇거릴 필요가 없습니다. 사과해야 할 상황에서 사과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은 상대는 물론 자기 자신까지 망치는 행위입니다.
제대로 사과하지 않은 사람에게서 상대방이 전달받는 것은 '나는 당신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당신을 존중하지도 않습니다.'라는 메시지입니다.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사과란 실수한 사람의 자기 존중이지, 결코 굴욕이나 패배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실수 그 자체가 아니라 실수 이후의 태도입니다.

 

17.사과의 기쁨을 배우라

 

사과를 해 본 사람만이 사과의 기쁨을 압니다. 사과할 용기가 없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마음에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무모한 용기입니다.
새가 추를 달고는 멀리 날 수 없듯이, 마음에 무거운 짐을 지고는 성도의 올바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기쁨과 관용의 태도는 마음이 가벼운 사람만이 가질 수 있습니다.
잘못을 시인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사과는 한 사람의 인격의 깊이를 보여주는 행동이며, 보다 깊은 관계로 나아가게 하는 지혜입니다.

 

18.다툼-관계의 파괴

 

희랍신화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헤라클레스가 길을 걷다가 길 위를 굴러다니던 어떤 이상한 물체에 발등을 찍혔습니다. 화가 난 헤라클레스는 그것을 부셔버리려고 발을 높이 들어 힘껏 밟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부서지기는커녕 몇 배 더 커지는 것이 아닙니까? 약이 오른 헤라클레스는 그 물체를 더욱 세게 밟고 몽둥이로 내리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 물체는 점점 더 커질 뿐이었습니다.
그제야 헤라클레스는 몽둥이를 내던지고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우두커니 앉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헤라클레스 앞에 아테네가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다툼이라는 녀석이지요. 도발하지 않는 한 그것은 처음 모양으로 있어요. 그러나 더불어 싸우면 한없이 불어나지요"

 

19.사람의 영광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대접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것이 바로 '다툼을 멀리하는 사람이 누리게 되는 영광'입니다. 
다투며 사는 사람은 이 세상을 살아가며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그것은 다투는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며 겪어야 하는 응분의 희생입니다. 

 

20.다툼의 삶을 사는 이유

 

다툼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꾸만 다툽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다툼을 일삼으며 살아갑니다. 대체 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일까요? 다투는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첫째로 혈기 때문입니다. 혈기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상황에 대해 일어나는 분노와 거절의 정동을 절제 없이 표출하는 것입니다.
사실 누구나 속에서 울컥 하고 치밀어 오르는 혈기를 경험합니다. 그러나 대다수는 그것을 절제하며 살아갑니다. 절제가 반복되다보면, 무엇인가 심각하게 '욱'하고 치밀어 올라도 그것을 억누를 수 있는 저향력이 길러집니다.
하지만 절제 없이 치밀어 오르는 대로 발산하며 살아온 사람에게는 혈기를 억제할 수 있는 그 어떤 통제력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별것 아닌 일에도 화를 주체하지 못합니다. 

 

21.욱 하는 인생이 치르는 대가

 

만나면 반가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주칠까 무서운 사람이 있습니다. 조금만 마음에 안 들어도 얼굴 표정에 대 드러나고, 혈기를 참지 못해서 가는 곳마다 시비가 붙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만나기를 꺼릴 것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웃고, 부드럽고, 관대하고, 따뜻한 사람에게 이끌립니다. 이것은 편애가 아니라, 인간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성향입니다. 

22.사람을 남기는 삶

 

정말 지혜로운 사람은 일을 통해 사람을 얻고, 얻은 사람을 통해 필요한 일을 감당해 나갑니다. 인생에서 정말로 중요한 성과는 사람 그 자체입니다. 인생에서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보다 남는 장사는 없습니다. 인생의 소중한 가치들은 모두 사람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일로서 자기 가치를 증명한 사람은 일이 끝나면 버려지지만, 마음을 얻은 사람은 결코 배척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얻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덕이 있는 삶을 살아가며, 착한 행실로 사람들을 감동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세상이 그리스도인에게 기대하는 것은 고매한 영성이나 심오한 기도의 세계가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것을 보여준다 해도 알지 못할뿐더러, 별반 관심도 없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에게서 덕스러운 삶을 보기 원합니다. 착한 헌신으로 자신들을 감동시켜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23.양보의 덕을 배우라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따지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혈기의 문제든, 이익의 문제든 다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일그러진 관계들 중 상당부분이 우리가 조금만 더 너그러웠다면 아름답게 이어질 수도 있었을 관계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오늘은 내가 양보를 해서 저 사람에게로 흘러가고 내일은 저 사람이 양보를 해서 나에게 흘러 들어오게 하며 살아가기 원하십니다.
소학(小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평생 길을 양보해야 백 보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평생 밭두렁을 양보해도 한 마지기를 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평생 양보하며 살아간다 해도, 정작 나누어줄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양보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기꺼이 양보하십시오. 기거이 베푸십시오. 양보는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한 사람의 아름다운 의무입니다.  

 

24. 역린지화(逆鱗之禍)

 

역린지화(逆鱗之禍)란 말을 아십니까? 이것은 '용이란 동물은 본성이 착해 잘 길들이기만 하면 그 등을 타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온순하지만, 목 부근의 거꾸로 자란 한 자 길이의 비늘을 건드리면 반드시 그 사람을 죽여 버린다.'라는 내용의 고사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용에게 건드려서는 안 될 비늘이 있듯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건드려서는 안될 '역린'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나 무엇인가 콤플렉스를 갖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학벌이, 어떤 사람에게는 외모가, 어떤 사람에게는 자식이 역린입니다.

 

25.역린과 순린

 

사람들은 타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장점 보다는 단점을 말하기 좋아합니다. 특별히 누군가의 역린을 화제에 올리며 쾌감을 느낍니다. 좌중 역시 그런 이야기를 재미있어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모임에 탈모가 많이 진행된 남성이 있다고 칩시다. 그러면 누군가는 꼭 이런 말을 합니다. "어휴, 이제 곧 앞동네 뒷동네 만나겠네."
자신은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던진 말인데, 듣는 사람에게는 비수가 되어 박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겉으로 태연하게 웃어 넘긴다고 해서, '이 정도 말은 괜찮구나.'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사람에게 점수를 따는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잃는 것은 한 순간입니다. 그래서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점수를 따는 것보다 잃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26.예수님의 대화법

 

아픈 곳을 찌르는 말을 유난히 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미리 연구하고 준비한 것처럼, 상대방의 약점을 적나라하게 들춰냅니다. 물론 때로는 그런 말들이 마음을 후련하게 하기도 하고 묘한 짜릿함과 쾌감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의 공격 대상이 되면 어떨까요? 그때에도 그 사람의 말이 재기 발랄한 농담으로 여겨질까요?
말 한마디의 위력을 얕보지 마십시오,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말 한 마디로 한 사람을 완전히 사로잡을 수도 있고, 영영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27.허물을 덮어주는 자

 

누군가에게 어떤 콤플렉스가 있다고 할 때, 그것이 우리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또한 그것을 건드린다고 우리에게 특별한 이익이 돌아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남의 콤플렉스를 건드리지 못해 안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개인의 성격이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나쁜 짓'입니다. 상대방에게만 나쁜 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더 나쁜 행동인 것입니다.
노래 못하는 사람에게 억지로 노래시키고, 깔깔대고 웃어본 적 없습니까? 별 것 아닌 것 같은 이러한 행동이 사람들과의 관계를 파괴하는 악임을 명심하십시오. 다른 사람의 약점을 놀림거리나 웃음거리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특히 예수님의 사랑을 안 사람들은 결코 그래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삶의 지혜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을 입은자의 의무입니다.

 

28.사랑으로 다른 사람의 약점을 덮어라

 

남의 말을 쉽게 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버릇입니다. 버릇이 지속되면 인격이 됩니다. 남의 허물을 거듭 말하면서 이간하는 버릇이 여러분의 인격적인 특성으로 굳어지지 않도록 '남의 말'을 근정하십시오.
남의 약점을 화재거리로 삼아 깔깔댈 수 있는 것은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역린을 건드려 상처 준 사람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사과하십시오. "당신은 평생을 그것을 끌어안고 아파하는데, 나는 장난삼아 그것을 건드리며 즐거워했습니다. 나를 용서해 주십시오."
사랑으로 그것을 덮어주십시오.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나지 않도록 감싸주십시오. 예수님이 그 자리에 계셨다면, 분명 그렇게 하셨을 것입니다. 사랑으로 감싸, 그의 약점을 고치고, 그를 새롭게 하셨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다가오실 때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29.영혼의 자선, 용서

 

사람은 누구나 허물이 있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수와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용서는 누구에게나 필요합니다. 우리는 모두 용서를 베풀기도 하고, 받기도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잘못을 했을 때, 분노하며 그의 잘못을 비난하는 것은 당장의 화만 달랠 뿐입니다. 그를 진심으로 용서해 주면 그는 영원히 우리의 우군이 되어 줄 것입니다. 소인배는 타인의 잘못으로 일을 그르쳤을 때, 그 일을 망친 요인을 제공한 사람을 추적해서 그를 내치지만, 대인배는 그 사람을 용서해 줌으로써 사람 하나를 얻어냅니다. 

 

30. 용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도리

 

용서는 인간 관계의 최상의 기술이며, 사람을 얻는 놀라운 지혜이지만 뼈를 깎는 아픔을 수반합니다. 나에게 고통을 주고, 사무치는 원한을 남겨 준 사람과 다시 손을 잡는 일이 어찌 아프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용서를 실천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용서는 그리스도인에게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의무'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의무'를 다하지 못한 종의 빛을 탕감하였던 것을 취소하고 그를 다시 옥에 넣는 것으로 끝납니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18:35) 

 

31.용서로 맺어지는 돈독한 결합

 

용서는 허물을 눈감아주는 것이 아니라 그 허물에도 불구하고 그와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용서이며, 지금도 변함없이 베풀어지고 있는 용서의 정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베풀어야 할 용서도 관계의 회복을 포함합니다. 복수의 포기에서 멈추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용서가 아닙니다. 용서가 사람을 얻는 지혜인 것은 그것이 깨어질 관계를 다시 회복시키는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32.허물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허물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래서 허물을 덮어줄 수 있는 사랑이 있는 사람은 사람을 얻지만, 허물을 덮어줄 수 있는 사랑이 없는 사람은 사람을 잃습니다. 인생이라는 커다란 짐은 홀로 지고 가기에는 여간 버거운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의 허물로 인해 고초를 겪을 때 아무도 손을 내밀어주지 않는 쓸쓸함을 맛볼 것입니다.

 

33.영원한 것을 위해

 

짐 엘리엇은 말했습니다. "영원한 것을 위하여 영원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사람은 결코 바보가 아니다." 영원한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아낌없이 던진 젊은 선교사의 말이 우리의 가슴을 울립니다. 우리의 인생은 영원한 것을 사모하며 살기에도 짧습니다. 용서하지 않음으로 인해 낭비할 시간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과 용서라는 영원토록 가치있는 일을 위해 아집과 옹졸함을 과감히 버리십시오. 그것이 영원한 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삶의 태도입니다. 

 

34. 예수님을 따라 용서하라

 

혹시라도 스스로 인덕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까? 어저면 이렇게 도와주는 이 하나 없이 박복하게 살아가는지 한탄스러운 분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삶의 태도를 진지하게 반성해 보십시오.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에게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좀 더 대범했더라면, 좀 더 관대했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과 함께 하고 있지 않을까요?

 

35.하나님의 칭찬과 사람이 칭찬은 병립

 

바른 신앙은 우리의 존재를 오히려 더 사랑스럽게 변화시킵니다. 신앙 때문에 사람들에게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신앙을 지키려 노력하기 때문이 아니라 지혜가 부족하고 어리석기 때문에 미움을 산 것입니다. 조금만 더 지혜롭고 성실했다면 하나님은 물론 사람에게도 사랑을 받을 수 있었는데, 스스로 부족했기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섬기다보면 불가피하게 사람과 원수가 되어야 하는 때도 만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생 가운데 극히 드물게 찾아오는 특별한 상황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태도로 살아가면, 대부분의 경우 사람에게서도 칭찬을 듣기 마련인 것입니다.

 

36.진리를 따라 사는 삶

 

참다운 진리를 따라 살아가면, 외롭고 쓸쓸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세상이 그리고 세상의 사람들이 워낙 진리를 싫어하기에, 그 진리를 미워하는 미움 때문에 덩달아 고통을 당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진리를 미워하는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에 목말라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진리에 합치하는 어떤 사람의 삶을 볼 때, 그 속에서 무한한 영감과 감화 그리고 사랑을 느낍니다.
그것이 바로 진리가 사람들을 합치하게 하는 힘입니다. 진리에는 그런 힘이 있고, 다윗은 그 힘을 직접 보여준 사람입니다.

 

37.사랑 받고 싶은 이유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사람들에게 환심을 얻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가치를 양보해서 받는 사랑이라면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다 팔아 먹고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어떻게 옷을 입고,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웃어야 할지를 익히는 것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앵무새 놀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좋은 삶의 태도를 갖추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가진 좋은 신앙이 제대로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아주 좋은 신앙을 가지고 있어도 삶의 태도가 나쁘면, 그것은 둔탁한 갑속에 들어있는 칼과 같아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영성이 깊을 뿐만 아니라 삶의 태도도 아주 올바르면, 그때는 삶도 검의 위력을 발휘합니다.


38.좋은 신앙은 좋은 삶의 태도를 낳는다

 

하나님께만 집중하다보면, 당연히 사람들은 소홀히 할 수밖에 없지 않는가? 그러나 하나님께 집중을 하면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어진다는 생각은 하나님께 집중해보지 못한 사람의 편견입니다.
하나님께 집중하면,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즉 올바르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러한 삶의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의 선망과 부러움을 사지, '저 사람 하나님께만 집중하느라 나를 무시하는구나'하는 인상을 심어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39.최고의 인생은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께 집중해 보십시오. 오래도록 같이 있고 싶고, 친밀한 관계를 맺어가고 싶은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알면 알수록 존재의 아름다움이 계속 발견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누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러한 아름다움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나누는 사람들만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최고의 인생은 하나님께도 사랑받고 사람에게도 사랑받는 삶입니다.

 

40.말씀의 은혜는 삶의 지혜로 나타난다

 

영혼의 아름다운 모습이 있어도, 사람들의 눈에 그것은 결코 한번에 읽혀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혜로워져야 합니다.
은혜를 받을 뿐 아니라, 그 진리가 우리 마음에 들어가서 녹고, 용해되어, 우리의 온 삶에 묻어나올 수 있도록 치열하게 그 진리에 자신을 합치하고자 애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분투가 있으면, 삶에 대한 어떤 명료한 지혜가 생겨납니다.

 

41.변명의 역사

 

타락 이후, 인간에게는 고자질과 책임 전가의 본성이 생겼습니다. 남의 허물은 들추고, 자기의 허물은 가리려는 태도가 성품의 일부로 자리잡게 된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고자질이 뭔지도 깨닫기 전에, 고자질을 실천합니다. 동생이나 형이 무엇인가 엄마에게 혼날 만한 일을 저지르면, 그것을 얼른 엄마에게 일러야 직성이 풀립니다. 입이 간지러워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옥은 훌륭한 변명과 핑계와 소워능로 가득한 곳이다.-허버트
죄를 범하고 힘들게 변명하는 것보다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쪽이 더 낫다.-토마스 아켐피스
평판과 명성이 높으면 높을수록 변명과 핑계가 적다. 그런 사람에게는 핑계할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리턴
핑계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다. 자연은 결코 핑계하지 않는다. -라바터 

 

42.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려면

 

어차피 이 세상은 죄와 모순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항상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상황들만 우리 앞에 펼쳐지지는 않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상황 속에 던져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우리는 비관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맡겨진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드는 상황이라고 뛸 듯이 기뻐하고, 우리가 원하지 않던 상황이라고 한숨을 내쉬며 부정적이 된다면, 결코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43.어떤 목사님의 고백

 

제가 아는 어느 목사님이 이런 고백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성도 한 사람이 찾아와서 "목사님, 교회에 이러이러한 잘못이 있습니다. 특히 이런 부분은 목사님이 잘못하셨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하더랍니다.
약간 오해하고 있는 부분도 있어서 그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설명을 시작했는데, 이야기를 하다보니 결국 몇 사람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그 결과 자신에 대한 오해는 풀렸지만 교회에는 상처를 입힌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쨌든 대화가 마무리되었는데, 있는 사실을 그대로 이야기 한 것인데도 마음이 너무나 찝찝하고, 스스로 목사로서 너무나 초라한 느낌만 남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깊이 후회하면서 '이제 다시는 그러지 말자. 차라리 혼자 조용히 당하는 게 낫지. 거기에서 나의 옳은 것을 입증하기 위해 남을 끌어들이지 말자.'고 결심했다고 합니다. 

 

44. 마음의 크기

 

마음이 좁은 사람은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기 힘듭니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이 큰 사람 곁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마음이 큰 사람 곁에 머물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큰 사람 곁에서 사람들은 암탉의 날개 아래 숨은 병아리들처럼, 안전함과 편안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 사람과 함께 큰 마음의 사람으로 자라갑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인생을 살아갈 때 마음과 정신의 크기가 작으면 옹졸한 기회주의자들만 주위에 꼬이고, 마음과 정신의 크기가 크면 올곧고 너그러운 사람들이 주위에 모입니다.

 

45.차라리 억울한 편이 낫다.

 

사랑을 허물을 덮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허물을 덮으면 어떻게 합니까? 명명백맥 드러내어 고치는 것이 옳지 않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허물을 덮어 주라고 말힙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4:8)
바울은 성도들에게 세상 법정에서 성도들끼리 소송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차라리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이 낫지, 하나님의 판결을 받아야 하는 성도들이 서로 고소하여 세상의 판결을 받고자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46. 하나님의 은혜가 부족하면

 

우리가 살면서 꼭 기억해야 할 사실 하나는 세상은 '옳고 그름'만을 가지고 움직이는 곳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옳고 그름'이 묵살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시비비를 가리는데 너무 안달복달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힘으로 되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옳은 것을 추구해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이 필요하시면 드러내실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덮으실 것입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여기에 동의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요. 저는 성격상 절대 그렇게 못합니다. 밝힐 것은 밝히고, 풀 것은 풀어야지요" 그러나 이것이 과연 성격의 문제일까요? 혹시 하나님의 은혜가 부족해서는 아닐까요?

 

47.은혜로 사는 후천적 낙천주의자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지 않으면 사람과의 관계도 올바를 수 없고, 사람과의 관계가 올바르지 않으면 행복한 삶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인생의 필수불가결한 자원입니다.
눈앞에 아무 증거가 보이지 않지만, 믿음으로 걸어가기 때문에 소망가운데 살아갈 수 있는 사람, 구차한 변명 대신 십자가를 지는 마음으로 모든 책임을 스스로 떠 안는 사람, 모두가 자기 잇속을 챙기기에만 급급한 때에도, 다른 사람의 형편을 돌아볼 줄 아는 큰 마음의 사람, 그가 바로 요셉과 같은 사람이며 은혜로 사는 사랍입니다.

 

48.인간은 발전 가능한 존재

 

한 사람을 평가하는 데 있어 이미 갖추어진 실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배워 나가면서 성장해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더 이상의 진전이 없는 사람과 별로 지식이 많지 않지만 계속 전진하고 있는 사람 중 더 가치있는 사람은 후자입니다. 지금은 현격한 격차가 있다 할지라도 머지않아 후자가 전자를 능가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발전 가능한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배우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모든 것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면 최고의 선생님과 최상의 교재가 있다 한들, 모두 부질없습니다. 배우려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발전도 없는 것입니다. 
 

49. 배우려는 사람이 사랑을 받는다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성장합니다. 끊임없이 발전하고 성숙해가는 사람들은 배우려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아니, 좋아할 수밖에 없습니다. 날마다 발전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발전하는 것, 날마다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 가는 것, 그것이 삶에 대한 예의입니다. 그것이 살아있음에 대한 증명인 것입니다.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가며, 날마다 조금씩 자라가는 사람을 어느 누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50.발전, 삶에 대한 예의

 

우리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는 대우는 우리의 삶의 태도가 빚어낸 결과입니다. 사람들로부터 소중히 여김을 받기 원한다면, 먼저 그들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은혜를 많이 받아도, 삶의 태도가 잘못되어 있어, 사람과의 관계가 틀어지기 일쑤라면, 은혜는 그 서러움을 덮는 데 다 소진됩니다. "하나님, 제 인생은 너무 외로워요. 사람들이 저만 싫어해요." 하고 한탄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상처받고 하나님의 위로로 다시 일어나는 일만 반복하며 살다가 인생을 다 보내고 맙니다.

 

51.인생은 끝없는 배움의 길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그 안에 끝없는 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난이 오면 고난을 통해 무엇인가를 배우고, 기쁨이 오면 기쁨을 통해 무엇인가를 배우는 사람입니까?
배움 자체는 누구에게나 달갑지 않은 일입니다. 편안히 누워 쉬는 게 좋지, 무엇인가 공부하고 연습하고 고치는 것이 뭐 그리 좋겠습니까? 하지만 배우려는 사람은 조금씩 발전해 가는 자신을 바라보며 기쁨을 누립니다. 배움은 달콤하지 않으나, 배움을 통해 달라지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52.너그러운 사람

 

"선물은 그의 길을 넓게 하며 또 존귀한 자 앞으로 그를 인도하느니라."(잠18:16) "너그러운 사람에게는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고 선물을 주기를 좋아하는 자에게는 사람마다 친구가 되느니라."(잠19:6)
성경이 말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선물은 너그러움의 산물인 동시에, 너그러움을 입는 방편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정말로 좋아하는 것은 너그러움입니다. 즉 사람들이 선물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안에 그 사람을 향한 너그러움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김남준 (열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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