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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모시고 사는 사람들

마태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2192 추천 수 0 2011.11.06 09: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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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23:5-12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춘천성암교회 http://sungamch.net 
예수를 모시고 사는 사람들
마태복음 23:5-12
 *2007년 3월 11일 설교원고 입니다.

지난 목요일이었습니다.
일영에 있는 감리교 연수원에서 11기 <서울엠마오 가는 길> 팀 멤버 준비 기도회가 있었습니다. 주로 말씀을 전하게 될 평신도 봉사자들의 말씀을 시연해 보고 의논하는 자리였습니다. 그 중에 고완균이라는 장로께서 ‘십자가의 길’이라는 말씀 중에 자신이 살아온 그동안의 인생길을 고백하는 시간이 이었습니다. 장로님은 이번 11기 팀 멤버로 봉사를 하십니다. 지난 번 우리 말씀 성회 첫 날 간증해준 한충국 권사처럼 영성수련에 들어오는 분들의 간증은 참으로 은혜롭습니다. 고 장로님은 자기 돈으로 지금의 신림제일교회를 건축을 한 후 교회의 걸림돌이 될까봐 예배 시작 전에 맨 뒷자리에 앉았다가 끝나기가 무섭게 집으로 돌아가곤 했답니다. 장로가 되면 그게 교회에 걸림돌이 될까봐 나이 60살에야 장로가 되셨답니다. 저는 장로님의 간증을 듣는 순간 ‘아, 이분이야 말로 예수를 모시고 살았구나.’ 생각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의 토크 시연이 끝난 다음에 우리는 모여 앉아 여러 가지이야기들을 했습니다. 왜 우리가 이렇게 영성수련에 집중하는지, 이렇게 하면 무슨 영적 유익이 있는지, 이런 수련을 통해서 뭘 얻자고 하는지와 같은 본질적인 물음들이었습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예수를 가슴에 모시고, 예수처럼 사는 사람이 되어보자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대가 교회가 없어서도 아니고, 목사가 모자라서도 아니고, 기도가 짧아서도 아니라는 거였습니다. 그럼 뭐가 모자라는가? 예수처럼 사는 사람, 이게 예수를 믿고 바르게 사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신앙의 모델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신앙인들이 생겨나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걸 위해서 지속적이고 깊은 영성훈련이 계속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 날 대화의 결론이었고, 목사가 먼저 모범적으로 욕망과 행실에 대해서, 장로가 먼저 그 헌신과 섬김에 대해서 모범이 되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마23장을 통해서 지적하시는 예수님의 말씀도 그것입니다.
이때가 서기80년경인데, 66-70년 동안 일어난 유대전쟁에서 로마가 승리하고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상황입니다. 백성을 지도한다고 하던 자들, 사두개파, 열심당 등이 무너지고 이제 로마의 직접 지배가 강화된 시기입니다. 로마 황제가 명실공히 ‘주님’(kyrios)이 되어 그들을 지배하던 때입니다. 유대전쟁 이후에 살아남은 자들이 바리새파입니다. 그들은 로마에게 거슬리거나 정권 잡은 자들에게 부담이 되는 일은 하지 않으면서 오직 율법을 지키는 일에만 매진하였습니다. 그들 가운데 대제사장도 나오고 율법학자도 나오고 또 성전 관리들도 나왔기 때문에 그들 가운데 많은 자들이 지도자로서 행세했습니다. 특히 율법학자 같은 이들은 ‘랍비’(‘나의 선생님’, ‘나의 크신 분’이라는 뜻)라고 불렸습니다. 본래 이 말은 존경을 표하는 호칭입니다. 그런데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실제로 백성들을 잘 가르치고 인도하는 사람들이기보다는 말만하고 실천은 하지 않고 위선을 행하면서 존경만 받으려고 했습니다. 늘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에 앉기를 즐기고, 장터에서 인사받기와, 사람들이 자기들을 ‘랍비’라고 불러 주기를 즐겼습니다. 신앙의 모범을 보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순전히 그들의 신앙은 이기적이고 위선적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모습도 저들과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바리새파 사람들의 위선을 질타하면서 제자들에게도 가르치신 것입니다. 제자들도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8~10을 다같이 읽읍시다.

‘학생’이라고 한 것은 원문에는 모두 ‘형제’라고 한 것인데 의역하였습니다. 아무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라고 하는 것은 부모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 오늘날 신부를 ‘Father’라고 부르듯이, 당시는 지도자를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사람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세 번이나 ‘……하지 말아라. ……는 한 분(heis)뿐이시다’는 구조가 나옵니다.

요한복음은 13:13~14에서는 이렇게 가르치십니다.
“너희가 나를 선생님 또는 주님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옳은 말이다. 내가 사실로 그러하다. 주이며 선생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남의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결코 높아지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는 예수를 이용하려는 사람입니다. 지난 번 김동준 목사님과 대화를 하는데, 김목사님이 직제와 소명이라는 자료를 읽다가 이런 내용을 읽었다고 하셔서 큰 감동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모든 직분은 ‘소명은 있지만 권세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본래 교회의 모든 직분은 하나님이 맡긴 소명만 있지 그걸 이용해서 뭘 어찌하려는 힘, 권세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권세는 없고 소명으로만 섬기는 목사, 장로,권사, 집사가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걸 하려고 이렇게 우리가 예수에게 집중하여 배우고 익히며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번 주에는 그런 거룩한 성도들의 이야기를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다가 닮기 때문입니다. 저도 오늘 그런 분 두어 사람을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1)
고 문창모 장로님은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불리는 훌륭한 의사입니다. 그는 70이 넘어서 손에 마비 증상이 와서 어쩔 수 없이 은퇴를 할 때까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문이비인후과에서 진료를 하였습니다. 그는 아침 6시면 진료를 시작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아침 일찍 출근하거나 등교하느라 진료를 받을 시간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따뜻한 배려입니다. 환자가 돈이 없으면 무료로 진찰해 주는 것은 물론 간혹 딱한 환자들에게는 여비까지 주어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는, 인천도립병원장(1946), 국립 마산폐병원장(1947), 세브란스병원장(1949), 원주기독병원장(1959) 이밖에도 해주시 초대시장(1945), 대한결핵협회 사무총장(1953), 국제대학학장(1957), 14대 국회의원(1992) 등 많은 일들을 맡아오면서도 하루도 환자 보는 일을 거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떻게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이렇게 헌신적인 삶을 살 수 있는가? 이것은 예수가 그의 삶의 주인이 되었기 에 가능했습니다.

1907년 평북 선천 출신인 문 장로는 아버지의 권유로 학교에 들어가면서 기독교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남창교회에서 운영하는 사립학교에 다닐 때 교장선생님이 “너는 집도 잘살고 똑똑하니까 예수만 잘 믿으면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해서 주일학교에 나갔다고 합니다. 그 후에 배재중학교 진학하여 거기에서 교회주일학교도 인도하면서 신앙을 키워나갔다고 합니다. 당시 문 장로는 무악재 너머에 있는 한 권사님 댁에서 아이들을 모아놓고 주일학교를 시작했는데, 그 모임이 자꾸 늘어나서 지금의 홍제감리교회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늘 “하나님께서 나를 의사로 만들어 주셨으니 죽을 때까지 환자를 보는 것이 당연하지요” 이렇게 말하면서 살았고, 1957년에, 당시로는 장래가 유망한 의사가 아주 낙후되었던 원주로 간 것도 오직 주님이 시키시는 일이라는 생각에 억지로 간 것이라고 합니다. 당시 교회라고는 세 곳밖에 없던 원주에서 그는 기독장로회를 조직해서 교회설립을 적극 도왔습니다. 그 결과 현재 원주에는 400개도 넘는 교회가 있습니다.

문 장로는 자서전을 하나 냈는데 그 제목이 특이합니다. 제목이 <천리마 꼬리에 붙은 쉬파리>입니다. 이 우스꽝스러운 제목에 대해 문 장로는 “천리마 꼬리에 붙은 쉬파리가 힘들이지 않고 천리를 날 수 있는 것처럼 나 역시 나를 지켜주시는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셔서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이 얼마나 겸손하고도 멋진 고백인가! 쉬파리가 별 것 아니어도 천리마 꼬리에만 붙어 있으면 천리를 가듯이, 우리가 부족해도, 예수를 주님으로 모시고 예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면 짧은 생애 속에서도 저토록 위대한 생애를 살 수 있는 것입니다.

2)
금요일에 간성에 있는 동호리에서 작은 교회를 섬기는 목사님 한 분이 방문했습니다. 그는 공부방을 통해 동네 아이들을 돌보고 ‘다름 나무’로 십자가를 만드는 분입니다. 바닷가에 위치한 교회라 군인들이 나와서 아이들 공부도 가르치고 봉사도 하는데, 6개월 해안경계 근무를 서던 군인들이 본대로 들어갈 대가 되었는데 그 중 세 명의 군인들이 연장근무를 자원했다는 것입니다. 전에 없던 일이라 부대가 소란스러워 졌고(혹시 다른 짓이라도 해서 사고를 칠까봐) 그들을 불러다가 사유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이 이랬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아이들을 두고 편안하게 빠져 나올 수 없어서 6개월을 더 해안 경계 근무를 서겠다.”는 것이었답니다. 우리도 이렇게 살 수 있지 않습니까?

4)
이렇게 섬기는 삶을 살 때 생명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인생이 180도로 달라지고 전과 달리 복음 전하며 살게 되고 남을 섬기며 살게 되는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거라사의 귀신들린 사람은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얼마나 난폭한지 쇠사슬로도 묶어 둘 수가 없어서 산속 무덤 사이에 방치되어 있었고, 소리를 지르고 자해행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레기온이라고 하는 군대마귀가 그를 사로잡아서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그에게 오셔서 그 귀신의 정체를 밝히고 몰아냈을 때 그는 온전해졌습니다. 마가복음은 그 모습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15 그들은 예수께로 와서, 귀신 들린 사람, 곧 군대 귀신에 사로잡혔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이 들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였다. …… 20 그는 떠나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일을 데가볼리에 전파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다 놀랐다”(막 5).

마귀가 그를 지배하고 주인 노릇할 때는 그는 너무나 비참한 희생자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몰아내고 예수께서 그의 주인이 되셨을 때 그는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옷을 입었다는 것이나 제정신이라는 것이고 앉아 있었다는 것은 그가 이제 더 이상 버려진 사람, outsider가 아니라, 자기 주체를 확립한 존재임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하신 일을 자기 지역에 ‘전파하였고’(keryssein) 그러자 사람들이 다 ‘놀랐다’(thaumazein)고 하는데 이런 용어들은 모두 예수님께 쓰는 전문용어입니다. 이런 전문용어들을 귀신들렸다가 회복된 사람에게 사용한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가 그 후로 그 지역에서 크게 선교를 하고 아마도 교회까지 세웠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크게 복음을 전하고 예수의 일을 해나갔다는 것입니다. 이 기적 이야기도 아마 그 교회에서 전승되던 것이 수집된 것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누구를 주인으로 모시고 살고 있습니까? 이 세상의 허망한 것들,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것들에게 여러분의 삶의 주도권을 내주지 말기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과 같은 분이면서도,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신 분,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신 분,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신 그분, 예수 그리스도만을 섬기시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직 이 분만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우리 선생은 한 분이다, 아버지도 한 분이다, 지도자도 한 분이다,  한 분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이런 고백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마치 <천리마 꼬리 붙은 쉬파리>와도 같이, 우리의 유한한 생에서 하나님의 능력 있는 일들을 이루어가고, 많은 사람들을 섬기는, 위대하고도 복된 생애를 사는 성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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