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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고후3: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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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sarang.onmam.com/ |
하나님을 만나 뵙는 우리
요즘 당신은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 뵙고 있습니까?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여기에 임재하셔서 우리의 예배를 받아주시며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영광스럽고 축복된 일입니까?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 뵐 수 있습니다.
우리는 특히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 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자신을 풍성하게 계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날마다 성경을 읽으며, 진지하게 묵상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만나 뵙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날마다 말씀 묵상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더 나아가서 우리는 자연계를 통해서도 하나님을 만나 뵐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날마다 쉬지 않고 그것들을 다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폭우가 끊임없이 쏟아지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이 가고 이제 가을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이 가을의 시원한 바람과 자연의 변화를 통해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고 있습니까?
그밖에도 우리는 날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 뵐 수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을 통하여 우리는 역사와 우리의 대소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뚜렷이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신뢰하는 성도는 이 모든 일들 속에서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따뜻한 손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복되고 귀한 일입니까? 날마다, 순간마다, 일마다, 때마다 하나님을 만나 뵙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우리는 이와 같이 날마다 하나님을 만나 뵙고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불신자들은 하나님을 모르며, 예배를 드리지 않기 때문에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 뵙는 일이 불가능합니다. 그들은 성경을 믿지 않고 읽지도 않기 때문에 성경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런 사람들이 자연을 통해 하나님을 발견하기를 기대하기도 어렵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불신자들은 자기들의 불신앙 때문에 하나님을 보지 못하면서도 믿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그들의 요구가 억지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그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불신자들이 하나님을 만나거나 발견하는 유일한 길은 믿는 우리를 통해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들은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주어야 할 책임과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그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편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추천서
우리 사회에서는 추천서가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추천서라는 것은 어떤 사람을 다른 사람이나 기관에 소개하고 보증하는 역할을 합니다. 사람을 한 눈에 보고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 수 없으므로, 그 사람을 잘 알고 있는 믿을만한 사람의 추천이 필요합니다. 요즘에는 대학 진학도 추천으로 들어가는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 추천서 제도는 오래 전부터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어 왔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이 추천서 문제가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그 요점은 우리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추천서, 즉 편지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모습을 통해 교회를 보게 되고, 심지어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모습이 어떠한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의 모습은 곧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우리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그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주님은 이런 분이라고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습이 어떠한가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당신은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가만히 들어 온 사람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복음을 전하여 세운 교회였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약 2년 동안 머물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이 한 곳에 이렇게 오래 머문 경우는 극히 드물었습니다. 에베소에서는 약 3년 동안 머물렀는데, 그 외에는 그렇게 오래 머물렀던 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과 고린도 교회 성도들과의 관계는 특별히 친밀하고 가까운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고린도를 떠난 후에 어떤 사람들이 가만히 들어와서 바울을 중상모략하고 비난했습니다. 바울은 사도가 아니라고 하는가 하면, 바울이 전한 복음이 잘못되었으므로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고린도 교인들을 미혹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어디서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추천서를 가지고 고린도에 들어왔습니다. 아마도 예루살렘 교회에서 보낸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 교인들은 더욱 미혹을 당하기 쉬웠습니다.
이런 소식을 들은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에 오래 머물면서 고린도 교회를 세우고 그들을 가르치던 일들을 상기시켰습니다. 그 2년 동안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심혈을 기울여 복음을 전했으며, 도 고린도 교회를 보살폈습니다. 그리하여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았고, 그들의 모습도 많이 변화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그들 사이에는 매우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대해서라면 어떤 사람들처럼 추천서가 필요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 너희에게서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1절)
바울과 고린도 교회 사이에 추천서를 주고받을 필요가 없는 것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바울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무슨 추천서를 가지고 와서 바울을 비난하며 거짓된 교훈을 퍼뜨리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추천서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굳이 추천서가 필요하다면 고린도 교인들 자신이 바울의 추천서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2절) 바울이 고린도에 와서 복음을 전하며 말씀을 가르친 결과, 고린도 교인들은 회개하고 변화되어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바울과 함께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므로 고린도 교회에 대해서라면 바울에게는 추천서가 따로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의 변화된 모습, 그들이 바울과 함께 경험했던 은혜들이 그 어떤 추천서보다 힘 있고 확실한 추천서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가리켜 ‘우리의 편지’라고 말했습니다. 그 편지는 고린도 교인들의 마음에 씌어졌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분명히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쳤으므로, 그들의 변화된 모습들은 바울이 신실한 하나님의 종임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편지
더 나아가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은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 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 판 에 쓴 것이라”(3절) 그 편지를 쓰신 분은 그리스도이시며, 먹으로 종이에 쓰거나 돌비에 쓴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에 쓰셨습니다. 즉 성령께서 사도 바울을 펜으로 사용하셔서 그들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편지를 쓰셨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구절을 쓸 때 렘31:31-33과 겔36:26과 같은 구약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 말이니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31:31-33)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겔36:26)
구약시대에는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측면이 강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하나님의 법을 쉽게 망각해 버리고 불순종의 길로 나갔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우리의 마음을 감동하시고 새롭게 하시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사모하여 자발적이고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사도 바울을 통하여 고린도 교인들의 마음에 말씀을 새겨주심으로 그들의 삶이 변화되어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까? 하나님 말씀에 대하여 완악한 마음을 버리고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순종하여 그 말씀을 통하여 날마다 변화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열매 맺는 좋은 밭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눅8:15)
우리가 그리스도의 편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중요한 계시가 두 가지 있는데, 그것은 자연과 성경입니다. 자연과 성경 속에는 하나님의 능력과 거룩하심, 사랑과 공의, 높으신 주권과 영원하신 통치 등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연과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과 그 하시는 일,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이 죄악으로 어두워져 자연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불신자들은 성경을 읽지 않고 믿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연과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알 수 있는 편지가 있는데 바로 믿는 우리 자신들입니다. 성도는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기독교에 관해서 읽을 수 있는 유일한 편지입니다. 이 편지는 성도들의 마음에 새겨져 있으며 그들의 삶을 통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이 편지는 가장 읽기 쉬우며, 가장 설득력 있고 확신을 줄 수 있는 편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얼마나 막중한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 선배들
우리는 우리 믿음의 선배들 중에서 이런 편지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한 예들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가나안 땅에서 살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블레셋 족속들이 텃세를 부려서 이리 저리 쫓겨 다녀야 했으며, 그 땅에 심한 기근이 들어 살 수 없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의뢰하는 믿음으로 살았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기근이 심한 가나안 땅에서 살았습니다. 그렇게 순종한 결과 이삭은 결국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그 땅에서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땅의 왕 아비멜렉이 그의 군대장관과 함께 와서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다’고 실토했습니다.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창26:28)
요셉은 인생의 청춘기를 애굽에서 노예로 보냈지만, 사람들은 그가 어디 가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하신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결국 애굽 사람들은 애굽을 구원할 사람은 요셉 밖에는 없다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이기게 하셨습니다. 다니엘은 적국에 포로로 끌려갔으나, 그곳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너무나도 분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왕이 대답하여 다니엘에게 이르되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들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내가 능히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었으니 네 하나님은 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시로다”(단2:47)
신약에서 초대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보고 두려
하며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4-47) 많은 선교사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보여주었습니다. 오늘도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분명하게 증거하는 삶을 살고 있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오늘 우리의 사명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볼 수 없으며, 우리에게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볼 수 없으며, 영으로는 계시지만 육체로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여 달라고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억지라고 무시하고 말아야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을 나타내는 편지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모습으로, 우리의 삶으로 그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편지된 우리의 책임이 얼마나 막중합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모습이 어떠한가, 우리의 삶이 어떠한가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선하고 경건한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경건한 삶과 믿음 지키는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이적과 능력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편지된 성도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우리가 이 사명을 다 할 때 전도의 문이 더욱 활짝 열릴 것이며,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교회의 문을 가로막고 있는 성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모습을 볼 때 사람들은 하나님과 교회에 대하여 더욱 마음을 닫아 버립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늘 당신은 그리스도의 편지로서의 사명을 다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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