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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57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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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기종의 영성강좌9]
한국교회 무엇이 문제인가?
한국교회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왜 그렇게 활기차고 놀랍게 성장하던 한국의 개신교회가 오늘날 생기를 잃고 침체의 늪에 빠지게 되었나? 그 가장 중요한 요인은 무엇인가? 여기에 대한 원인 분석과 진단은 보는 사람의 시각/관점에 따라서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필자가 보는 가장 중요한/근본적인 원인은 한국 (개신)교회가 기독교의 복음을 통전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교회가 복음을 이해하는 가장 큰 특징은 기독교의 복음을 지적인 요소와 의지적인 요소는 배제하고 주로 감정에 호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의 온전한 인격구성과 또한 인간의 인식의 온전성 혹은 정당성은 바로 지정의(知情意)가 온전히 조화를 이룰 때 가능한 것이다. 즉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 곧 우리가 성서의 말씀을 이해하는 일과 또한 성경의 말씀을 실천에 옮기는 일도, 바로 우리 인간의 인격구성의 3대 요소인 지성과 감성과 의지가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복음을 이해하고 실행함에 있어서 주로 감정 하나에만 치중하고, 지성과 의지의 두 면을 외면하거나 무시해 온 데서, 우리 한국교회와 교인들의 신앙이 건전하고 튼튼하게 서지 못하고, 허약함/나약함을 보이게 된 것이다.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그 결과는 바로 성경 말씀/복음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문자적으로나 아니면 피상적으로 이해하게 되며, 또한 말씀을 읽거나 들어도 순간경험으로 그치고, 그 말씀을 삶에 적용하거나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개신교회의 주역들인 종교개혁자들은 복음을 이해함에 있어서 결코 감정에만 호소하지 않았으며, 또한 이성과 의지를 무시하거나 배제하지 않았다. 특히 칼빈이나 웨슬리는 복음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나 올바른 신앙생활에 있어서 지적인 면과 의지적인 면을 매우 중요시 하였다. 심지어 웨슬리는 진정으로 이성적이지 않은 것은 종교적인 것이 될 수 없다고까지 말하였다. 즉 종교 개혁자들은 복음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나 참된 기독교적 신앙생활에 있어서 지성과 감성과 의지의 3요소를 한시도 없어서는 안 될 필수불가결의 요소로 본 것이다. 왜냐하면 참된 신앙은 결코 감정에만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지성과 의지까지를 다 요구하기 때문이다.
참된 믿음이란 지성과 의지를 무시하거나 배제하는 것이 결코 하니다. 특히 성령은 우리의 지성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지성을 더욱 순수하게 하고 밝게 하여서(illuminating/enlightening) 하나님의 신비의 세계까지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요14:6, 16:13).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한다”는 말은 모든 깊은 진리들을 깨닫게 하고 또한 실천할 수 있게 하신다는 말씀이다. 우리 한국교회는 성령과 그리고 성령의 역사를 전적인 반지성주의적 현상(anti-intellectual phenomena)으로 이해하고 또한 전적인 감정적/감성적인 현상으로 이해한데서 모든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성령 충만자는 어떠한 사람을 말하는가? 성령 충만자는 바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높은 수준의 지성을 소유한 자를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령은 전지(全知)의 하나님의 영 곧 진리의 영,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의 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자는 무엇보다도 보통 인간이 기질 수 없는 높은 차원의 지혜와 지성을 소유해하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고대의 교부들이나 영성가들은 당시의 철인들이나 현인들이 소유할 수 없는 더 높은 차원의 지성을 가지고 하나님과 성경을 이해했고, 시대를 초월하여 감동을 주는 영성의 글들을 우리에게 남겨 준 것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 바로 이레니우스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와 오리겐과 아다나시우스와 터툴리안과 에바그리우스와 카씨안과 그리고 성바질 및 닛사의 그레고리 등 가파도기아의 교부들과 같은 인물들이다.
그러므로 우리 한국교회가 다시 활력을 얻고 새롭게 도약을 하려면, 지금까지 행해왔던 감정위주의 성령이해와 반지성주의적 성령운동을 지양하고, 지성과 의지의 중요성을 함께 강조하는 새로운 성령운동/영성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그리고 목회자의 설교나 성경 이해에 있어서와 또한 교인들의 교육이나 영성훈련에도 이것을 잘 반영해야 한다. 지성이 빠진 신앙은 맹목이며, 강한 의지력/실천력이 결여된 신앙은 나약한/죽은 신앙임을 알아야 한다. 감성은 민감한 반응을 일으키며 또한 체험을 동반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감성은 지성과 의지의 뒷받침이 있어야만 바른 기능을 행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한국교회가 감정위주의 영성/성령운동을 넘어서서 지성과 감성과 의지의 조화를 잘 이루어 나갈 때, 한국교회에 새로운 희망과 광명의 빛이 밝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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