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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대상4:9-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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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동현 목사 |
참고 : |
< 라스베가스 소재 복된교회 주일 예배 말씀 >
대상 1 Chronicles 4:9-10
『 지경이 넓어지는 사람, 근심이 없는 사람 』
『 Person Who Extend His Blessing, Person Who Don’t Have Any Anxiety 』
봉독해 드린 본문은 "야베스의 기도"라는 제목으로 너무도 잘 알려진 말씀입니다.
야베스라고 하는 이름은 '고통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본문의 9절 후반부에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라는 말씀이 야베스라는 이름의 뜻을 뒷받침 해주고 있습니다.
보통 이름을 복되거나 좋은 의미를 담아 짓는데, '고통의 아들'이란 뜻의 야베스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데는 어떤 특별한 사연이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엄마의 건강 또는 태아의 상태가 좋지 못해 난산이었다든지, 식구가 많으면서도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날 때부터 별 희망이라고는 없었다든지, 태어나기전부터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아버지가 없는 유복자로 태어났든지, 장애인으로 태어났든지 등 여러 가지를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어떠한 연유에서든지 자신의 신세가 너무도 처량하고, 도무지 어찌할 바를 모르는 가운데 있던 야베스는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뭐라고 부르짖었습니까? 첫째로 복에 복을 더해 달라고 했습니다. 둘째로 지경을 넓혀달라고 했습니다. 셋째로 주의 손으로 도와주셔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 구하는 것들을 허락하시고는 야베스를 형제들보다 존귀케 해 주셨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수 많은 성도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여러면에서 볼 때에 야베스보다 훨씬 나은 처지의 우리가 복에 복을 더해 달라고만 기도하지 그 다음 기도로 나아가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진가를 맛보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 복을 구하고 받으면 그것으로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하는 중요한 문제가 빠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무턱대고 복을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복을 달라고 하는 사람의 순수한 동기와 목적을 보십니다. 복을 내려주면 받을만한 그릇이 되는지를 보십니다. 그릇이 되지 못하면 복을 받는다 해도 그것이 독이나 화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릇이 되지 못한 상태에서 복을 받는 것은 밑빠진 항아리에 물을 붓는 것과 같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공부를 한다든지, 직장생활을 한다든지, business를 open하거나 open할 계획을 가진다든지, 사업체를 운영할 때에 중요한 것은 복을 받을만한 그릇을 준비하는 것이요, 복을 받을만한 자세를 갖추는 것입니다.
어떠한 성도든지 하나님께 복을 달라고 구합니다. 복을 구할 때에 중요한 바가 무엇입니까? 복을 받으면 어떻게 할 것이냐? 받은 복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이냐?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복을 받고자 하는 것에 대한 순수한 동기와 아름다운 의도나 목적이 있느냐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야베스는 복에 복을 더해 달라고 하면서 지경이 넓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지경이 넓어지게 해 달라는 것을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만, 단순히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지경이 넓어지게 해 달라는 것을 직역이 아닌 의역을 하게 되면, 하나님께 받은 복을 가지고 내 기쁨이 아닌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을 위하여 살게 해 달라는 것, 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답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살게 해 달라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중등 교육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교육 주간(Education Week)지는 20세기를 대표할 수 있는 고등학교로 보스톤에 있는 필립스 아카데미를 선정했습니다. 필립스 아카데미는 미국 최초 대학 준비 학교(College Prep School)로서 오늘날 고둥학교의 효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 영국에서 독립한지 2년만인 1778년에 세워진 학교입니다. 독립한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등 각 분야를 이끌어 갈 인재를 양성할 목적으로 사무엘 필립스(Samuel Philips)가 설립했습니다. 전 미국 대통령인 부시와 그의 아버지와 동생 등 3부자가 이 학교를 졸업했습니다. 필립스 아카데미는 동문 35명 중 1명꼴로 미국 명사 인명 사전에 올라있고, 백만 장자가 되는 비율이 가장 높으며, 초일류대 진학률도 가장 높습니다. 그러한 통계는 설립 이래 200년 이상 지속되온 전통입니다. 이 학교의 경우, 조그만 거짓말을 했다가 들키면 정학이고, 두 번 거듭하면 퇴학입니다. 심한 거짓말은 한번에 퇴학을 당하기도 합니다. 적어도 일주일에 3시간 정도는 지역 사회를 위하여 봉사하거나 일을 해서 학비를 보태도록 장려하고 있습니다. 이 학교 헌장에는 “지식이 없는 선함은 약하고, 선함이 없는 지식은 위험하다.”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교육이란 자신을 위해 받는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교육학에서도 교육은 자아 실현을 목적으로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필립스 아카데미와 이곳에서 40여Km 떨어져 1781년에 세워진 필립스 엑서터라고 하는 두 학교의 건학 이념이 라틴어로는 “Non Sibi"이고 영어로는 “Not for Self", 즉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입니다. 그러한 건학 이념이 4년간 기숙사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는 학생들의 뇌리에 끊임없이 집중적이고 반복적으로 심어지게 됩니다. 결국 그러한 그들에 의하여 미국이라고 하는 거대한 땅덩어리가 오늘날까지 건재해 올 수 있었습니다. 바로 “Not for Self",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이라고 하는 정신과 철학이 세계의 질서를 잡아가는 힘을 낳게 했고, 그것이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미국의 저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을 이끌어 가는 지도자들을 학교 설립 이래 지속적으로 배출한 그 두 학교의 건학 이념은 바로 성경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구할 때에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하나님과 타인들을 위한데 둘 때에, 우리의 먹고 사는 문제가 저절로 해결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최고 되게 해 주시고, 수 많은 사람들과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는 삶, 곧 지경이 넓어지는 위대한 사람 되게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느 회사에서 중견 사원 한 사람을 공채하기로 하고 광고를 냈더니 200명이 몰려들었습니다. 사장은 어떠한 방법으로 한 사람을 채용할까를 생각하다가 딱 한 문제를 저들에게 출제했습니다. '당신은 거센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길에 운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버스 정류장 앞을 지나는데 그 곳에는 세 사람이 퍼붓는 빗속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병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며 생명이 위독한 할머니, 그 언젠가 당신의 생명을 구해준 적이 있는 생명의 은인인 의사, 그리고 당신이 꿈에 그리던 이상형의 여성, 이 세 사람이 그 정류장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당신의 차에는 단 한 명만을 태울 좌석밖에 없습니다. 당신은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방법을 선택한 후 그 이유를 설명하십시오.' 이게 바로 던져진 문제였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입사를 희망하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면 어떤 답안지를 작성하겠습니까? 어떠한 답도 나름대로의 이유가 다 있을 것입니다. 죽어가는 할머니를 태워서 그 목숨을 우선 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은인인 의사를 태워 그의 은혜를 갚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의사에게 보답하는 것은 나중에 해도 가능하지만 이 기회가 지나고 나면 어쩌면 이상형의 여성을 다시는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하니 망설여지기도 합니다.
드디어 200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최종적으로 한 사람이 채용되었습니다. 그가 써낸 답이 궁금하지 않습니까? 과연 뭐라고 답을 썼을까요?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저는 제 생명을 구해주신 은인인 그 의사 선생님께 제 차의 열쇠를 넘겨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생명이 위급한 할머니를 병원으로 모셔다 드리도록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저의 이상형, 다시는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를 그녀와 함께 비를 맞으며 설레이는 마음으로 버스를 기다릴 겁니다.'
참으로 사려 깊은 멋진 답변이지 않습니까? 우리의 신앙생활이 그렇게 깊고 성숙하며, 멋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똑같은 상황이지만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하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뜻을 품느냐? 의도와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 복과 화가 나뉘어짐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야베스는 하나님께 복에 복을 더하사 지경이 넓어지게 해 달라는 기도에서 끝나지 아니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라고 간구합니다. 사람이 복을 받고 지경이 넓어지면 우쭐하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뤄주신 것을 도둑질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가 이루어 놓은 것이라 하며, 자신의 이름을 냅니다. 교만해짐니다. 그것은 망조입니다. 그렇게되면 지금까지의 복이 물거품이요 허사가 되고 맙니다. 하나님의 더 크고 놀라운 복이 끊어지고 맙니다.
야베스는 그러한 인간의 헛점을 간파하고는 하나님께 다시금 기도하기를 지경이 넓어졌다고 우쭐대거나 교만해져 환난을 당하게 되는 일이 없게 해 달라고, 환난으로 인하여 근심거리가 없게 해 달라고 간구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깊은 영성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얕은 사람이 아닌 깊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장만 하고는 성숙이 없어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성장과 성숙이 겸비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 어떤 복들을 구해야 겠습니까? 믿음의 복, 건강의 복, 자녀의 복, 물질의 복, 만남의 복, 순탄과 형통의 복 등을 구하되, 모든 받은 복들을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을 위하여, 타인을 사랑하고 섬기기 위하여 내어놓는 복,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영향력, 구원의 영향력을 끼치는 복들을 구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신 말씀을 통하여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구하여 받되, 환난과 근심거리가 없는 넓은 지경의 복, 하나님을 위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아름답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돌리는, 허망하지 아니하는 진정한 복을 받아누리실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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