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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1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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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남준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ullin.org |
썩기위해 사는 밀알
2005-06-0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12:24)
1. 본문 해석
예수님의 영광은 하나님으로부터 영광을 받는 것인데, 십자가의 고난을 통과한 후에 받으실 영광이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십자가 죽으심은 멸시와 조롱거리요, 수치였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이러한 십자가 고난을 앞두시고,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계획을 이루는데 당신을 죽음에 복종시키는 것을 영광스럽게 여기셨다. 주와 함께 죽으면 주와 함께 사는 것이 자명한데, 우리가 내세의 영광을 바라보며 현세에서 주께 충성하고 있는지 자문하여 보라.
어거스틴은 인간의 오성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물로써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야심)을 들었다. 그 중 이생의 자랑은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교만에 유래하며, 이생의 자랑은 쓸모없는 헛된 영광을 추구한다. 진리는 교만한 자나 허세부리는 자가 파악할 수 없다. 그런데 자신이 영광을 받으려하는 허세들이 우리 안에 많이 남아있다.
2. 밀알의 비유
밀이나 벼, 땅콩은 땅속에 묻히면 껍질부터 썩기 시작하는데 그 안에 씨눈(배아)이 자라나는 양분이 된다. 생명이 씨눈에 있기 때문에 씨눈을 살리기 위해 낟알이 양분되어 썩어간다. 즉 밀낟알의 사명은 씨눈을 위해 죽는 데 있다. 죽는 것이 결국은 다시 사는 것이 된다. 밀알과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받으실 고난을 밀알의 썩음을 들어 비유하셨다. 십자가 고난이 없었다면 승천의 영광이 뒤따르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은 당신의 육체를 낟알과 같이 드려 하나님 아버지의 구속 역사에 사용케 하셨다. 그것이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이유였다.
두 번째는 우리를 그 정신으로 살게 하기위해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우리를 움직이는 조종실이어서 조종실에 예수님이 계시면,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인생을 항로로, 조종실에 세상이 있으면, 세상의 길과 가치를 따라 나아간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는 ‘일자성’이 있어서 의도하신 그대로 참사람 되었었다.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일자성이 깨어지고, 욕망과 이생의 자랑 등이 뒤섞임에 따라 사람답지 않게 되었다.
따라서 성화되는 과정은 일자성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의 뜻인 씨눈을 발아시키기 위해 육체의 모든 것을 낟알과 같이 쓰기를 원하신다.
자기가 죽지 않으면 씨눈이 발아하지 않는다. 반대로, 자기가 죽으면 찬란한 사명의 싹을 틔울 수 있고 마침내 자신도 살게 된다. 이를 막는 것이 자기 사랑이다. 자기가 죽어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살 길을 얻게 된다. 희생의 모본을 이미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는데도 희생치 않는 신자는 온전치 못하다. 목숨보다 귀한 것은,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목적이다. 예수의 정신으로 살고 또 죽는 신자 되시기를 바란다. 2005-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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