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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9:57-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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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남준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ullin.org |
뒤돌아 보지 않는 섬김
2005-06-15
길 가실 때에 혹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또 다른 사람이 가로되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 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눅9:57-62)
본문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나선 이들을 꾸짖으시면서 동시에 부르심을 받은 이들의 태도가 어떠해야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예수님께 세 사람이 나아오는데 각각 다르게 다루신다.
첫째 사람에게는(9:57) 예수님께서 대답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상황을 알려주신다. (58)
즉 ‘나는 세상의 권세, 명예를 네게 줄 수 없다. 머물 곳조차 없을 텐데 그래도 따르겠느냐’ 하고 되물으시는 것이다. 주를 따르려는 결심을 한 사람이라 해도 실제 섬김의 자리에서 자신의 믿음이 섬김을 감당할 처지가 아닐 수 있다. 이 첫째 사람은 주를 위해 헌신하고는 싶은데 세상 사랑과 미련이 많이 남아 있음을 깨달아 드러나게 하셨다.
예수님의 삶, 예수님을 따르는 삶의 실체를 그는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좇을만한 믿음이 그에게 없었다.
두 번째 사람은 예수님이 지명한 자이다.(59) 그는 부친상 중이라 장례 이후에 주를 따르겠다고 답한다. 그에게는 죽은 아버지를 향한 사랑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다. 육신의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보다 지존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명이 더욱 우위에 있어야 한다. 우리가 판단하기에 합당한 일이 예수님께 헌신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일 수 있다. 우리가 사명을 받아 헌신할 때에 그럴듯하게 포장된 일들이 우리를 훼방 놓는 일은 빈번하다. 인간적인 도리를 행하느라 하나님의 사명을 소홀히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다.
세 번째 사람은 스스로 나와 주를 좇기로 결단하며, 가족에게 작별인사를 다녀오겠다고 구한다.(61) 그런데 그는 두 마음에서 망설이고 있었다. 바로 예수님을 따르는 것과 가족에 대한 사랑이다. 예수님은 그의 마음이 예수님보다 가족을 더욱 우위에 두고 집착하고 있음을 보셨다. 이는 우리가 실제로 가족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든 그 무엇이든 예수님보다 우위에 있지 않도록 경계하라는 의미를 새겨야 한다.
‘쟁기를 잡은’ 자는 가야할 방향을 주의 집중하여 바라보며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사명을 감당한다는 것은 전심을 다하여 사명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걸지 않으면, 자기가 죽지 않으며 예수께서 온전히 사실 수 없다. 예수께서 모든 멸시와 천대를 받으시면서도 아파하시거나 비굴하지 않으셨던 것은 그분의 사명에 모든 것을 걸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쟁기를 들고 뒤돌아보신 적이 없으셨다. 십자가에서 자신을 남김없이 다 드린 예수님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의 불결한 헌신과 예수님의 순결한 헌신을 비교할 수 있다.
섬김의 종류가 문제가 아니라, 섬김 그 자체에 있어서 진액을 다 짜내어 바치는 섬김이 중요하다. 주께서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셨으니 이제는 우리가 주를 위해 드릴 때이다. 우리가 살고 죽어야할 사명의 자리가 각자에게 있다.
그 곳이 성도가 최고의 영광을 볼 자리이다. 잠시 이 세상에서 부끄러움을 당할지라도 마지막 날 주님께 받을 칭찬과 상급을 바라보라. 2005-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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