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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1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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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남준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ullin.org |
섬기는 자의 영혼
2005-08-10
I. 본문의 배경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3장에서 당신이 제자들을 떠날 것을 이야기하셨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두고 가신다고 하자 마음에 근심하기 시작했고, 이에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 위로하시며 보혜사 성령님이 그들에게 오실 것임을 예고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나의 계명”을 언급하신 것은 이러한 이야기들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였다.
II. '나의 계명' : 새 계명 (13:34)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기 전까지 계명은 하나님의 계명뿐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마 5:17) 소개하셨는데, 왜 오해의 소지가 남도록 (구약의 계명 말고 별도의 또 다른 신약의 계명이 존재하는 것처럼) 이렇게 말씀하셨을까?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구약의 계명과 신약의 계명 사이에는 연속성과 불연속성이 함께 존재함을 알아야 한다. 구약의 계명과 예수님의 가르침사이에 어떠한 차이도 없다(가장 중요한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는 의미에서 연속성이 존재하고, 신약의 새 계명은 구약의 계명과 달리 우리를 율법에 행위적으로 묶어두는 것이 아니라는 측면에서 질적인 불연속성이 존재한다. 행위를 담보로 하는 행위 언약을 인간은 이미 에덴에서 깨뜨리고 선을 행할 수 없는 절망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인간들에게 또 다른 행위 언약인 모세언약을 주셨다. 이는 인간으로 하여금 율법을 지키고 선을 행함에 있어서 자신들이 얼마나 무능한 존재인지를 자각하게 하기 위함으로,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행위 언약 뿐 아니라 은혜 언약도 있다. 이것은 행위가 담보가 아닌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베푸시는 은혜를 근거로 하는 언약이다. 은혜 언약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총으로 맺어졌고,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은혜로 준수된다. 이 은혜 언약은 인간의 타락 즉시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깨뜨릴 것을 예고할 때) 우리에게 들어왔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 구약의 역사 속에서도 면면히 이어져 왔다. (제사도 이 은혜 언약에 속함) 행위 언약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두려워하고 경계하게 만들 뿐 죄를 이길 힘을 주지는 못하지만 은혜 언약은 죄를 이길 힘을 준다. 구약에서는 좁은 의미의 율법인 행위언약 속에 나오는 계명과 넓은 의미의 율법인 하나님의 흠 없는 자기 계시와 은혜 언약 안에 있는 계명들이 함께 있었는데,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 계명을 언급하실 깨에는 좁은 의미의 율법이 빠져나가고 은혜 언약 안에 있는 계명들이 보다 중요하게 자리 잡았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나의 계명, 새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로 정리된다. 즉 “사랑으로 섬기라”가 예수님의 계명인 것이다. 이 사랑은 그 기본적인 뿌리를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 두고 있는 것으로, 만약 우리에게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외출적 삶으로 흘러나온다. 바로 이웃을 향한 사랑과 섬김이다.
III. 섬김의 계명을 이루는 것 : 섬김의 계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믿음과 사랑이 꼭 필요하다.
A. 믿음 :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는 우리가 부당한 자기 사랑을 비우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 당위성이 항상 우리에게 이해되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 때때로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큰 짐과 고난을 주시면서 사명을 따라 살아가게 하시는지 납득하지 못한다. 믿음은 논리적으로 설득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멘할 수 있게 한다.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뜻을 좇을 수 있게 하는 힘이 믿음인 것이다.
B. 사랑 : 원어적인 의미로 볼 때 다른 사람을 섬긴다고 하는 것은 자신을 낮추어 그의 노예처럼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섬김의 특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우리를 섬기기 위해 종처럼 낮아지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다른 사람을 섬기고자 한다면 먼저 자기의 꿈, 자기의 미래, 자기가 소중히 하는 모든 것을 버리고 자기를 비워야만 한다. 우리가 철저하게 우리의 자기 사랑을 비우지 않은 한, 참된 섬김은 없다.
C. 대상과 계명이 분리되지 않음 : 믿음의 대상은 계명을 주시는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과 그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믿는 것은 분리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계명에 아멘 한다. 이것은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에 대한 깊은 사랑은 하나님과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한 사랑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증거이다.
IV. 섬기는 자의 영혼
(1) : 아버지께 사랑받음
섬기는 사람들의 영혼위에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영적 축복을 섭리적 축복과 함께 내려주신다. 그래서 자기를 다 버리는 섬김 속에 사는 사람들은 매 순간 섬기는 자의 영혼을 어루만지시는 하나님의 비밀스런 작용들을 누린다. 예수님께서는 본문에서 섬기는 자는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이 때문이다. 영혼 깊숙이 파고들어 마음을 어루만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우리는 섬김 속에서 느낀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은 늘 섬기고 헌신하는 실천의 삶 속에서 이해가 잘된다.
물론 섬기는 데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의무감에 못 이겨 억지로 형식만 섬기고 있는 경우이다. 영혼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섬김만이 섬기는 이의 영혼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또한 섬기는 이에게 부어지는 하나님의 사랑은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가변적인 것임도 잊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섬겨도 고난위에 곤고가 겹칠 뿐이라면 그것은 잘못된 섬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섬기느니 안 섬기겠다는 것은 옳지 못하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바라시는 것은 때려치우고 가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은 자신의 육신이 원하는 것이 잠시의 게으름 뿐 안 듯 하지만, 그것을 따라주면 우리의 육신은 점점 더 악한 것을 원할 것이다.
무위도식하는 신자의 영혼이 순결할 수 없음을 명심하라. 애달픈 마음으로 섬기지 않을 수 없는 사명의 자리가 있는가?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녹는 섬김의 현장이 있는가? 사명을 버린 자가 번영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던져 깨뜨리기 위해 높이 드시기 때문이다. 주님을 섬기기 위해 눈물 흘리는 사람들을 보시며 주님은 사랑스러워 눈물 흘리신다. 더 많이 섬기며, 더 많이 사랑받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2005-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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