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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15: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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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남준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ullin.org |
기다리시는 하나님
2005-09-18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눅 15:20).
1. 본문의 배경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을 때 그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는 사람들은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죄인이라 믿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많은 죄인들이 예수님 가까이 모였고,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먹으며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셨다. 이에 바리새인들은 왜 예수님이 죄인들과 친구처럼 지내며 귀한 진리의 말씀을 나누어주는지 원망하며 물었다. 이에 예수님은 잃은 양의 비유, 드라크마의 비유, 탕자의 비유를 통해 잃어버린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의 다양한 역사를 말씀하셨다. 첫째는 연약함 때문에 하나님 앞에 잃어버린바 된 사람에 관한 것이고, 둘째는 숙명적으로 - 이교도의 가정에서 태어났다든지 하는 - 하나님 앞에 잃어버린바 된 사람에 관한 것이고, 셋째는 하나님 안에 있던 사람이 의지적으로 하나님의 집을 떠났다가 다시 의지적으로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이다.
2. 하나님을 떠나서
비유에 나오는 둘째 아들은 부모가 살아있는데도 자기 몫의 유산을 달라고 요구하였고, 아버지는 그것을 허락해주었다. 그 아들에게는 아버지의 집에 거하는 즐거움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고 오로지 아버지의 간섭에서 벗어나서 자기 좋은 대로 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둘째 아들의 모습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하나님의 집을 멀리 떠나버린 신자들을 가리킨다. 몸은 교회에 나와도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고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아버지의 집을 떠나 있는 사람들이다.
1)“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그는 방탕한 삶을 위해 받은 유산을 다 써버렸다. 세상에서 허랑방탕하다는 것은 말이나 행동에 거짓이 많고 착실하지 못하며 주색에 빠져 행실이 추저분한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허랑방탕한 삶은 하나님이 주신 자원들을 원래 하나님이 그것을 주신 목적대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며 망가진 이 땅을 고치도록 하늘의 자원과 땅의 자원을 주셨는데, 그 생명의 자원을 그릇된 일에 사용하며 자기의 유익만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2)“비로소 궁핍한지라”
그러나 그러한 삶의 결국은 궁핍한 삶으로 나타났다. 허랑방탕한 삶으로 받은 유산을 모두 탕진하였을 무렵 그 고장에 흉년이 들었고, 이제 그는 자기 입에 풀칠도 할 수 없는 궁핍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주신 자원을 본래 그것을 주신 목적을 위해 사용하지 않을 때 신자의 삶 역시 이 땅의 자원이나 하늘자원 모두 고갈되고 만다. 신자가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이렇게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이 주신 자원을 방탕하게 사용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 밖에서 행복을 찾아보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원하는 것은 아버지가 원하는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지정해두신 자리에 있을 때 신자는 비로소 행복할 수 있고 하나님은 가장 영광을 받으신다. 하나님 밖에서 행복을 찾으려 할 때 그는 반드시 하나님을 등질 수밖에 없고, 거기에서 궁핍함이 시작된다.
3. 돌아오는 길
1) 죄를 인식함 :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자원이 모두 고갈되고 죽음의 문턱에 섰을 때 그는 비로소 자기의 죄를 인식하게 되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극한의 상황에서 자신을 돌아볼 마음이 생겼고, 유산을 받아 아버지 집을 떠난 것이 육신의 아버지와 하나님께 죄를 지은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떠난 신자가 하나님께 돌아오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죄를 인식해야만 한다. 몸으로 교회에 나오는 것은 부지런하면 할 수 있지만, 마음으로 아버지 집에 돌아오는 일은 하나님 밖에서 행복을 찾는 자신의 죄악을 참회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2) 겸비함 :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아버지의 집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있었더라면 보석처럼 아름다웠을 아들이 아버지의 집을 떠나자 아무 쓸모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우리 역시 하나님 아버지 곁을 떠나면 추루한 존재가 되고 만다. 자신의 죄악을 깨달은 그는 이제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도 감당할 수 없어서 품군의 하나로만 여겨달라고 말한다. 자신의 비참함을 깨달았을 때 그의 마음은 한없이 겸비하게 된 것이다.
3) 결단함 : “스스로 돌이켜... 일어나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그러자 그는 아버지 집에 돌아가기로 결단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부유한 사람이었기에 사람을 시켜 강제로라도 아들을 찾아올 수 있었지만, 아들이 스스로 돌이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당신을 떠난 자녀들이 자신의 죄를 인식하고 겸비해져서 스스로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방탕한 길에서 돌이켜 돌아오는 아들을 먼저 알아보고 달려가 안고 입을 맞추는 아버지처럼. 2005-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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