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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리] 편이다.

로마서 허태수 목사............... 조회 수 2267 추천 수 0 2011.11.16 22:5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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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롬8:31-39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춘천성암교회 http://sungamch.net 

하나님은 [우리] 편이다.
롬8:31-39

          *설교는 삶의 문제에 대한 터취라야 한다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아무리 내가 예수의 설교를 읽어봐도 그는 현장성없는 내일이나미래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간혹 '내일' 이 엿보인다 하더라도 그것은 '지금'을 말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오늘은 아주 현장성있는 문제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나는 원고를 쓰면서도 말과 말 사이에 많은 말들을 남겨둡니다.
           어느때나 그것까지 읽어 낼 동무를 만나기는 어렵겠지만.
  
제 손전화기는 밤 동안에는 꺼져 있다가 아침에야 켜집니다. 토요일 아침에 손 전화기의 전원을 켰더니 ‘딸랑’‘달랑’ 연거푸 메시지 가 들어왔다는 신호음이 들렸습니다. 확인을 했더니 금요일 밤 11시 52 분에 도착한 글이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목사님 죄송합니다. 제 잘못으로 어린애한테 인간 이하의 수모와 모멸을 받았어요. 제 잘못입니다. 모든 것 사죄하고 갑니다. 제가 기증하는 것은 몸 밖에 없어요.”

뭔가 개인적인 고통이 극에 달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소름이 좍 돋으면서 무서운 기운이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뭘까? 왜 그러는 걸까? 누굴까? 어떤 상황인데 이런 문장을 내게 보냈을까? 동터오는 새벽이 두려워졌습니다. 무슨 일이 생길까봐 말입니다. 그러다가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성경을 폈습니다. 기도도 잘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를 읽는데 오늘 본문인 8장에서 [우리]라는 글자가 가슴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8장만 수십 번 읽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롬 8:31)
바울은 왜 하나님을 [내]편이라고 하지 않고 [우리]편이라고 말한 것일까? 이것이 바울이 말하려고 하는 은혜의 실마리인가? 어쩌면 이 생각은 저의 손 전화기에 찍힌 누군가의 절박한 외침 속에서 [나]라는 고립감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가 느끼는 절벽은 [우리]에서 온 게 아니라 [나]에서 온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하나님을 [내]하나님 이라고 말하지 않고 [우리]하나님 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한 번 마음속으로 되뇌어 보세요. [우리 하나님!} [내 하나님!] 저만 그렇게 느끼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하나님!]하면 어딘지 하나님 이라는 지존 자 외에도 나 외에 많은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어서 힘이 되는 듯 한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반면에 [내 하나님!]그러면 의지는 되지만 어딘가 낭떠러지에 선 것 같은 고립감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하나님은 누구 편입니까? 내 편입니까? 아니면 우리 편입니까? 어쩌면 바울은 아직도 이기주의적인 하나님 신앙을 벗지 못하고 있는 유대적인 기독교인들, 자기가 믿는 하나님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내]편 하나님을 주장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다고도 보아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정죄하고 정죄당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이전까지의 하나님은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누구의 하나님은 되고, 누구의 하나님은 아니었습니다. 죄인들과 비유대인과 사회적인 약자들은 하나님을 감히 [내편이다]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유대인만이 하나님을 [내 편]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만의 하나님이었을 때 정죄가 생기는 것입니다. 내 밖으로 너를 밀어내는 것입니다. 우리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나]를 [우리]로 바꿔 놓으셨습니다.

바울이 말합니다.

“당신의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주신 분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거저 주지 않으시겠습니까?”(32절)
거듭 강조하여 바울은 [우리]가 되게 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말하길,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누가 감히 고소하겠습니까? 의롭게 하여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누가 감히 그들을 정죄하겠습니까?”(33-34절).

정죄가 무엇입니까? [우리]로 여기지 않고 나는 [나]고 너는 [너]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나는 잘못이 없고 너만 잘못이 있으니, 잘못 없는 나와 잘못 있는 너는 구별이 된다는 것이 이른바 ‘정죄’ 아닙니까? 사람이 외부의 공격이나 비난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이 정죄입니다. 나와 너의 분리입니다. 아내와 남편이 다투고 하는 선언 중에 가득 섬뜩한 게 ‘이제 당신과 나는 상관이 없다’는 것이죠. 이제는 우리가 아니라 남남 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남의 정죄를 받는 것도 견디기 힘든 것이지만, 더 무서운 것은 나중에 자기 자신을 스스로 정죄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바울은, 하나님이 의롭게 하여 주신 사람을 그 누구도 정죄할 수 없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우리]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고립된 나를 하나님이 받아 주셔서 하나님과 내가 [우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나는 너의 아버지가 되고 너는 내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리라 는 말씀이 바로 하나님이 나를 의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정죄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정죄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시는데 감히 그 누가 우리를 정죄할 수 있겠어요. 주님조차 나를 정죄하지 않는 것은 그가 이미 나와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나를 비난하는 것은 바로 그 자신을 비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집에서는 자식을 나무라도 밖에서 그러지 않는 것은 그게 곧 나를 나무라는 행위이기 때문이죠. 아들과 나는 이미 하나이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이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당시대의 이방인들과 비유대인들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자각하고 받아  들이는 누구든지 더 이상 [나]라는 고립감에 있지 않아도 됩니다. 정죄하거나 정죄 받지 않습니다.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곤고입니까, 핍박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협입니까, 또는 칼입니까? ...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35-39절).

이 우렁찬 선언의 핵심은, 하나님이 나만 사랑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유대인만 사랑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만의 하나님, 그들만의 하나님이셨는데 이제는 [우리]의 하나님도 되셨다는 것입니다. 결코 이 사실이 뒤바뀌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게 기독교 신앙입니다. 나는 나고 너는 너다 하는 식의 신앙은 예수님이 그렇게 경멸하시는 유대인이 신앙입니다. 우리는 [우리 하나님]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1)그러려면 시간을 성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휴식이나 명상, 기도의 시간, 산책이나 여행 등,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을 사치나 낭비로 여깁니다. 헬렌 니어링 부부가 쓴 <조화로운 삶>에서 보면, 그들은 하루 일과에서 절반은 밭에서 일을 하고 나머지 절반은 꼭 휴식을 취하면서 책을 읽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일과의 절반은 아니더라도 하루 한 시간이라도 일주일에 하루라도 꼭 자기 자신만을 위한 시간,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주일에 주님 앞에 나오는 것도 시간을 성별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 무엇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한 점을 주목하세요. 우리가 절대 침해받아서는 안 되는 것은 주님의의 사랑입니다. [나]라는 고립에 빠진 사람들을 [우리]의 정원으로 들어서게 한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시간의 성별은 그 사실을 확인시켜 줍니다.

2).그 다음이 기도입니다. 생명의 탄생 과정을 전자현미경으로 찍은 것을 보면 수억 마리의 정자가 난자에게 접근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난자와 만나 수정이 이루어지는 순간 보호막 같은 것이 쳐져서 다른 것이 들어오지 못하게 합니다. 그렇게 해서 생명이 탄생하죠.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과 만나는 경험, 사랑하는 경험, 사랑받는 경험을 진하게 합니다. 그 순간 우리 주위에는 보호막이 생기고, 이 세상의 그 어떤 근심도 불안도 그 무엇도 우리를 공격하지 못하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해줍니다. 그래서 나와 너의 구별을 없애고 우리가 되게 해줍니다.

저는 지금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되지 못하고 [나]가 되어 고립무원에 서서 떨고 있는, 죽음을 생각하는 누군가로 인해서 영혼이 춥습니다. 그가 오늘 이 바울의 선언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곤고입니까, 핍박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협입니까, 또는 칼입니까? ...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35-39절).

이것은 하나님이 나와 하나가되어 [우리]로 존재한다는 사랑의 확인임과 동시에, 이 땅에 사는 모든 그리스도안의 형제자매들이 나는 나고 너는 너이기 때문에 각자의 손익을 따라 뭉치고 갈라서서 살 수는 없다는 실천적인 계명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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