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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합 3:17-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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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동현 목사 |
참고 : |
< Nov. 20, 2011 복된교회 / 성령강림 후 스므 세 번째 주일 / 추수감사주일 / 1부 예배 >
< Nov. 20, 2011 / This message is for twenty three Lord's Day after Pentecost. >
합 3:17-18
『 아름다운 감사 』, 『 The Beautiful Thankfulness 』
한 가지 질문을 드립니다.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은 하나님 안에 있습니까? 비슷하면서도 반대인 또 다른 질문을 드립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안에 있습니까? 상당히 단순하면서도 어려운 질문입니다. 무조건적인 믿음으로 예라고 대답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습니까?
천주교나 개신교 신학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던 성 어거스틴은 앞의 두 질문에 대하여 매우 중요한 명제를 남겼습니다. “우리가 올바르게 생각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다. 그리고 우리가 올바르게 살 때에 하나님은 우리 안에 계신다.”라고 했습니다. 성 어거스틴의 그러한 정의는 크리스찬들이 자신의 삶을 늘 돌아보면서 두고 두고 되새김질, 곧 곱씹어야 할 매우 중대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올바르게 생각한다, 올바르게 산다는 것을 몇 가지로 말씀드릴 수 있지만,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이기 때문에 감사와 관련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올바르게 생각하고, 올바르게 산다라는 것은 무엇을 가리킴니까? 감사의 생각과 감사의 삶이 넘쳐남을 가리킴니다.
어떤 성도가 열심히 기도해도 하나님의 응답이 없어서 몹시 실망하고 있던 어느 날 꿈을 꾸었습니다. 천사의 손에 이끌려 하늘 보물창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창고가 텅텅 비어있었습니다. 성도가 천사에게 “이 창고는 어떤 창고입니까?” 하고 물었더니 “이 창고는 기도 창고입니다.”라고 천사가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 매일 울며 매달리고 기도하면서 이것 주십시오. 저것 주십시오. 애원하며 기도할 때마다 이 보물 창고를 열고 나누어 주었더니, 이렇게 텅 빈 창고가 되었다.”라고 천사가 대답했습니다. 이어서 옆 창고를 갔습니다. 이 창고는 기도 창고보다 더 큰 창고였는데, 그 창고에는 보물이 하늘 천장까지 가득히 쌓여 있었습니다. 또 그 성도가 “이 창고는 무슨 창고입니까?”하고 물었더니, 천사가 “이 창고는 감사 창고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감사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려고 쌓아 두었던 보물 창고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하도 감사를 하지 않아 보물이 그대로 쌓여 있습니다.”라고 천사가 대답하더라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시사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복 받는 길이 무엇을 자꾸만 달라고 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받은 은혜를 헤아리며 감사하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자꾸만 달라고 매달리는 신앙보다도 한 차원 더 높은 신앙은 감사하는 신앙에 있음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존 헨리 박사(Dr. John Henry)는 “감사는 최고의 항암제요, 해독제요, 방부제”라고 했습니다. 독일의 신학자인 디이트리히 본훼퍼는 “감사를 통해 인생은 부해진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부자,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은 결단코 돈 많은 사람, 이 땅의 것들로 풍족한 사람이 아닙니다. 물질의 많고 적음과 관계없이 올바르게 생각하는 사람, 올바르게 사는 사람, 우리네 인생의 독소요, 쓴뿌리요, 우리네 인생을 갉아먹고, 우리네 인생의 발목을 잡는 모든 원망과 불평과 열등의식 등을 떨쳐버리고 어떠한 삶의 형편에서든지 감사의 생각이 넘치는 사람, 감사의 삶이 넘치는 사람이 진정한 부자요, 진정한 행복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는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는 있어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져가고 있습니다. 오히려 늘 부족하다고 불평과 원망을 일삼습니다. 바로 그러한 모습이 현대인들의 크나큰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둘째는 있으므로 감사하는 사람들입니다. 있으므로 감사하는 경우는 누구나 쉽고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감사입니다. 원하는 바가 채워지면 하는 감사이기 때문입니다. 은혜와 축복을 받을 때에 감사하는 것, 주어진 것 때문에 감사하는 행위는 너무나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보면 그러한 감사에는 한 가지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감사의 조건이 사라지면 감사할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러한 종류의 감사는 미숙한 감사라 할 수 있습니다.
셋째, 없을지라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봉독해 드린 본문은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서지만, 망막한 현실이지만 그래도 기뻐하며 감사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는 무조건적인 감사요, 절대적인 감사요, 무에서의 감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성숙한 감사요, 온전한 감사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본문의 17절로 18절에서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를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열거하여 말한 여러 가지 것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될 가장 기본적인 것들입니다. 무화과는 먹을 양식의 일종입니다. 포도는 음료수의 주종을 이루고 있는 양식입니다. 감람나무 열매는 기름을 짜는 원료입니다. 밭의 식물은 하루 세 끼 먹어야 할 식량입니다. 양의 털로는 옷을 만듭니다. 소는 밭을 갈고 일하는 수단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본문에 나오는 여섯 가지는 사치품이 아니라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기본적인 요소로서 생활필수품입니다. 그런데 하박국 선지자는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최소한으로 필요한 그런 생필품들 조차 없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왜 심각한 궁핍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무엇때문에 그토록 감사하다고 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하여 주셨다는 그 한 가지 사실에 있었습니다. 거듭난 새생명과 새 삶을 허락해 주신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의 만족이 되며, 그 하나님이 자신과 동행하여 주시고, 때때로 드리는 간구에 응답하신다는 사실, 또 본향이요 영원한 행복처인 하나님나라를 예비해 주시고 보장해 주셨다는 사실 등으로 기뻐하며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감사는 없음에도 불구하고의 감사입니다. 감사의 조건을 자꾸만 물질 개념으로만 몰아가서는 안됩니다. 영의 눈을 뜨고 보면, 또 깨닫고 보면 내게 알게 모르게 있어진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깨닫고 보면 고난과 어려움이 더 큰 감사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종종 내게 고난과 어려움이란 장애물을 놓지 아니하시면 우리가 죄짓는 것은 둘째치고 우리의 생명을 잃을만한 사안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고난이나 어려움을 주시지 않았다고 한다면 우리의 생명은 아주 오래전에 끊어지고 이 세상에 없었을 것입니다. 종종 우리에게 있어지는 고난과 어려움은 우리의 생명을 보존하시고,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로 인도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또 다른 방편이요 은혜인 것입니다.
금세기 초 세계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지휘자가 있었습니다. '아루투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 1867.3/25~1957.1/16, 이탈리아 출신의 미국인 음악가, 지휘자)하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지휘자입니다. 그는 본래 첼로 연주자였는데, 심한 근시로 인하여 연주 시간에 제대로 악보를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떠한 연주곡이든 악보를 미리 다 외워야만 했습니다. 중요한 연주회가 있던 어느날, 악단의 지휘자가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단원들 중 누군가에게 지휘를 부탁해야만 할 입장이었습니다. 그때 악보를 몽땅 외우고 있던 토스카니니가 선발되어 지휘를 대신했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세계적인 지휘자로서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되었습니다. 토스카니니가 그토록 시력이 나쁘지 않았다면 구라파의 한 첼로 연주자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시력이 나빠서 악보를 제대로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악보를 외워야만 했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세계적인 지휘자로 발돋음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토스카니니의 회고록에 보면 이런 기록이 나옵니다. “어려울 때에 힘이 되신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좋은 환경이 아니라고 불평하지 말라. 좋은 환경만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아담은 에덴 동산과 같은 좋은 환경에서도 타락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눈물에 대해서도 감사를 드리자. 눈물이 있는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 더 똑똑히 바라볼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려울 때일수록 우리 가까이에 오셔서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힘이 되어 주신다.”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어떠한 삶의 처지 가운데서도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처럼 “나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무수한 죄, 죽을 죄에서 건져주신 하나님 한 분 만으로도 너무 감사합니다. 나에게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고, 무수한 기회를 열어갈 수 있는 거듭난 새생명과 새삶을 주셨으니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성숙한 감사, 아름다운 감사를 회복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또 하나의 아름다운 감사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연약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하고 나누는 삶에 있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렸던 성 어거스틴의 명제로 돌아갑니다. “우리가 올바르게 생각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다. 그리고 우리가 올바르게 살 때에 하나님은 우리 안에 계시다.” 올바르게 생각한다는 것, 올바르게 산다는 것은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감사가 가득한 생각, 감사가 가득한 삶일 뿐만아니라, 연약한 타인들과의 나눔을 가리킴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나 한 사람의 나눔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이 감동받아 힘과 소망을 얻고, 유익과 기쁨을 얻고, 새 사람으로 변화되어 새 삶을 산다면 그것이 이 땅을 사는 의미요 재미이지 않겠습니까? 이 세상에는 물질적으로 어려운 사람들 뿐만 아니라, 물질적으로 풍요로우나 영적, 정신적 빈곤으로 허덕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물질적, 영적, 정신적으로 피폐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와 같이 연약한 사람들의 삶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심어 저들에게 아름다운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이 얼마나 멋지고 행복한 삶이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하여 이 시간 이후로의 우리의 남은 생애에 하박국 선지자처럼 어떠한 형편에서든지의 아름다운 감사, 힘 닿는대로의 나눔이 있는 아름다운 감사가 넘쳐 하나님께서 하늘의 감사 보물 창고 문을 활짝 여시고 부어주시는 하늘의 보물들, 놀라운 복들을 풍성히 받아누리는 복되고 복된 생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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