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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의 향기

고린도후 허태수 목사............... 조회 수 2612 추천 수 0 2011.11.21 18:3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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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고후2:14-17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춘천성암교회 http://sungamch.ne 

그 사람의 향기
고후2:14-17
2007.8.18

 

*벼 익는 냄새, 햇살이 여물어 가는 소리 들리세요?
 최근에 만난 어떤 이가  3천5백만원을 내 놓고 필리핀이던지 어디던지 마음이 가난하고 이쁜 사람들을 위해 예배당을 지어 달라고 합니다.
  교회 다니냐고요?
  권사인 어머니가 총동원주일에 꼭 나가야 한다고 해서 두 서너 번 간 게 고작이랍니다.
  그러나 가장 복된 일이 무얼까 하는 걸 알면 그게 무슨 대수겠냐고 합니다. 뭐가 문제가 아니라는 건지, 그건 아주 넓고 깊은 말인듯 싶어요.
이 사람은 뭣 땜에 이러는 걸까, 나를 사로잡고 있는  생각입니다.  

*

우리가 흔히 백두산이라고 하는 산 주위를 중국 사람들은 [장백산]이라고 부릅니다. 갔다 오신 분은 아시겠지만, 버스를 타고 몇 시간을 가도 가도 자작나무 숲입니다. 하늘로 치솟은 하얀 아름드리 자작나무 말입니다. 그러니 그야말로 ‘장백(長白)’이지요. 그런데 그 외진 숲속에, 자작나무만 울창한 그 숲속에 꿀벌을 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꽃은 없고 나무만 울창한 그곳에 말입니다. 궁금하지 않으세요? 저도 궁금하더라고요. 그곳 사람들 말이 거기 꿀은 꽃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자작나무의 진액을 빨아다가 만든다는 것이었어요. 자작나무에서 달콤한 액이 나온다는 거죠. 자작나무만이 아니라 참나무며 웬만한 나무에도 달콤한  진액이 있다고 합니다. 벌은 10리 밖에서도 바람을 타고 흐르는 연하고 연한 냄새를 맡을 수 있다지요.

사람은 냄새를 맡는 데는 곤충이나 짐승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본래는 그렇지 않았겠지요. 중국 사람들은 요리사가 되려면 400가지 맛을 느끼고 200가지 냄새를 맡을 줄 알아야 한다고 하니까요. 그러나 보통 우리들은 오랜 세월 동안 손과 머리를 많이 쓰고 말을 사용하면서 냄새 맡고 소리를 듣는 감각 기능이 점점 약해진 겁니다. 최근에는 사업문명의 발달로 그 나마의 감각 기능도 점점 퇴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냄새를 즐기는 기쁨’하나를 잃고 있습니다.
산에 오르면 숲의 냄새며 송진 냄새, 들에 가면 수박풀이며 쑥과 들꽃의 냄새들, 냇가에 가면 비릿한 물 냄새와 떨어진 고기비늘이 썩는 냄새, 둑에 올라서면 싱그러운 바람 냄새, 거름 냄새, 부엌의 아궁이 냄새....그런 냄새를 맡으며 때론 가슴 깊이 들이마시며 살지 않았습니까?  머리와 손이나 발을 써서 사는 비중보단 냄새를 맡으며 사는 비중이 훨씬 높았던 때가 있었죠. 내 생각에 삶의 진성 성으로 따지자면, 냄새를 맡고 사는 삶이 머리나 손이나 발을 써서 사는 삶 보단 훨씬 정직하지 않나 생각듭니다. 냄새는 꾸미거나 속이지 못하니까요. 숲이 있는 그곳에 숲 냄새가 나고, 거름이 있는 곳에서 두엄 썩는 냄새가 있잖아요. 냄새는 그렇게 냄새 그대로 믿음이 됩니다.

지난주 금요일 춘천의 오존농도가 주의보 발령기준(0.12ppm)보다 0.017ppm 초과됐다며 오존주의보를 발령했다고 합니다. 어디를 가도 신선한 공기가 없습니다. 이런 형편이니 무슨 냄새가 있겠어요. 냄새를 맡으며 살려고 하겠어요? 지하철에서는 사람들이 몸에 뿌리고 다니는 진한 향수 냄새가 나고, 길거리는 온통 음식을 만들 때 나오는 매캐한 고기타는 냄새뿐입니다. 자동차 안에서는 화학직물의 냄새가 나고, 새로 나온 전자상품, 가구, 옷에서 나는 냄새는 우리를 즐겁게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언제부터 냄새 맡는 것을 두려워하며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문명속의 들어가 만지고 보고 먹고 생각하는 삶을 사는 동안 잃어버린 [냄새]가 정말 소중한 그 무엇은 아닐까요?

저는 근간 사회문제가 되는 가짜박사 또는 학력을 속이는 행위도 결국은 사람들이 [냄새]맡고 살아야 할 정직함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여깁니다. 그 사람의 냄새를 맡는 게 아니라 그저 보고 만지고 따지고 판단하니까 그런 일이 생기는 게 아닌가요? 우리는 너무 사람을 눈으로 손으로 주머니로 견장으로 문서로만 가늠합니다. 그 사람의 냄새는 아무 필요도 없다는 식이예요. 농부의 냄새, 생선 장수의 냄새, 자장면집 주인의 몸에 밴 장 냄새 그런 걸 왜 하찮게 여기는지요. 이게 정말 가장 정직한 그 사람의 참 모습이 아닌가요? 냄새를 버린 사람들은 출신과 배경, 졸업한 학교, 가족 관계, 사는 곳을 묻습니다. 가당치 않게 춘천의 어느 지역에서도 아이들끼리 ‘어느 아파트에 사느냐’를 묻는다니 이게 어디 사람 만드는 일입니까? 이상한 짐승하나 기르는 거죠. 이런 삶의 방식이 점점 인간을 외로운 존재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갈릴리에서 세리와 죄인, 작은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으며, 참으로 살맛나게 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고 그에게 몰려들었습니다. 그에게 큰 재산이나 권력이 있어서도, 그에게서 오묘한 지혜를 배우거나 놀라운 기적을 보아서도 아닙니다. 그에게서 참 사람의 향기가 났기 때문이죠.

그가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했을 때 그들은 두말 않고 그물을 버리고 따라나섰습니다. 그가 삭개오의 집에서 머물렀을 때 삭개오는 완전히 새 사람이 되어서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무슨 특별한 일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그저 그를 한 번 마주한 것뿐인데 어떻게 이렇게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까요? 그에게서 참 사람의 향기가 났기 때문입니다. 그가 그들 안에, 그들이 그 안에 있음을(요 14:20) 느끼게 해 주는 그런 향기를 그들이 맡았기 때문입니다. 수가 성 우물가에서 그와 이야기를 하다가 물동이를 내버려두고 동네로 달려간 사마리아 여인도(요 4:5-29),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들려 죽임을 당할 뻔했으나 그의 기지로 화를 면한 어느 여인도(요 8:3-11), 그에게서 참 사람의 향기를 맡았으리라 여겨집니다.

생선을 싼 종이에서는 비린내가 나고 꽃을 싼 종이에서는 꽃향기가 난다죠. 마찬가지로 참 사람의 향기가 나는 그를 좋아하고, 그와 더불어 살며, 그를 따르는 사람에게서 같은 향기가 납니다. 바울은 이것을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하네요.

“우리는 구원을 얻는 사람들에게나, 멸망을 당하는 사람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고후 2:15).

바울이 이 글을 쓴 것은, 한편으로는 열광주의자라고 하는 자들이 고린도교회 안에서 잘못된 성령론으로 물의를 일으키며, 다른 한편으로는 교회 밖에 있는 바울의 적대자들이 바울을 모함하며 공격하고 있는 상황에서입니다. 열광주의자들은 헬레니즘적인 성령 이해에 푹 빠진 자들입니다. 그것은,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서, 교회에서 무질서하게 방언을 하였으며(고전 14), 무엇이든 먹을 자유가 있다고 하면서 약한 사람들을 무시하였으며(8:1-13),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하면서 방종에 빠지는 것이었습니다(6:12). 그들은 현세의 삶에서 이미 구원을 다 받았다는 생각에서 종말 신앙도 부정하고 부활도 부정하였습니다(15:12). 바울의 적대자들은 주로 바울이 예루살렘 출신이 아니라는 것과, 예수를 직접 따라다닌 제자가 아니라는 점을 들어서, 진정한 사도 자격이 없다고 헐뜯었지요(고전 9:1-7). 뿐만 아니라 그가 약하다거나 말주변이 없다면서 인신공격까지 하였습니다(고후 10:10).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들이 예루살렘 출신이라는 것과 예루살렘교회로부터 발부받은 추천장이 있다는 점을 들어서 사도 자격이 있음을 입증하려고 하였습니다(고후 3:1-2). 열광주의자들은, 신도들 앞에서 방언을 하는 것과 같은, 뭔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자신들이 성령을 받은 신령한 사람들임을 입증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들의 이러한 모습 때문에, 교회 안에서는 적지 않은 문제가 생겼습니다. 어떤 자격이나 조건을 갖춘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 구별이 생겼으며, 나아가 서로 차별하고 갈라지는 일까지 일어난 것입니다. 이를테면, 방언을 받은 사람과 받지 못한 사람, 이른바 성령을 받은 ‘신령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구별입니다. 이런 구별은 나아가 유대지역 출신과 이방지역 출신,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 출신 성분이 좋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차별로 확대되었습니다. 이러한 것이 신도들을 분열시키고 공동체 전체의 기초를 흔들었지요. 이와 동시에 신도들 가운데서는 ‘그리스도인의 자격’ 또는 ‘성령 받은 사람의 증거’가 무엇이냐는 물음과 논쟁이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바울은, 그렇게 물의를 일으킨 자들을 견책하고, 다른 신도들을 바르게 안내하려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들이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들의 출신 성분이나 어떤 자격에서가 아니라 그들의 삶에서 그리스도인다움이 한꺼번에 드러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라면 그 신령함이, 방언과 같은 어떤 성령의 은사나 그 어떤 조건을 내세우는 데서가 아니라, 그들의 삶에서 아무런 설명이 없이도 드러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의 열광주의자들이나 바울의 적대자들은 외적인 자격과 조건에서는 갖출 것을 다 갖춘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어떤 자격을 갖추었다고 해서 그런 자격이 없는 사람을 헐뜯었으며, 자신들이 어떤 조건을 갖추었다고 해서 그런 조건을 갖추지 못한 사람을 무시하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것입니다. 그들을 향하여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 예요.

“너희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지 않는데 너희가 무슨 그리스도인이냐?”

“그러나 멸망을 당하는 사람에게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죽음의 냄새가 되고, 구원을 얻는 사람에게는, 생명에 이르게 하는 생명의 향기가 됩니다”(고후 2:16).

‘그리스도의 향기’는 누구에게나 향기로운 것은 아닙니다. 예수에게서는 참 사람의 향기가 났습니다. 예수를 따른 사람들에게는 그것은 한 번 맡고 나서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고 좋아하고 그리워한 그런 향기였겠지요. 그러나 똑같은 것이 바리새파 사람들에게는 향기가 아니라 ‘죽음의 냄새’였습니다. 그들은 예수에게서 풍기는 향기를 싫어했습니다. 그리하여 사사건건 간섭하고 시비를 걸다가 마침내는 십자가에 못 박는 일까지 서슴지 않게 된 것이죠. 그들은 참 사람의 향기는 악취로 여기고, 대신에 권력과 돈의 냄새를 향기로 여겼습니다. 그런 냄새는 로마 총독 관저와 헤롯의 궁전 그리고 대제사장의 집에서 풍겨 나온 것입니다. 그들은 그런 돈과 권력의 냄새를 맡고 나서 오직 그곳으로만 몰려들었습니다. 썩은 것에 파리가 몰려들듯이,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여들듯이 말입니다.(마 24:28).

옛 사람을 생각할 것도 없습니다. 세상은 돈 냄새거나 권력의 냄새를 맡고 살아가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단어는 단 두 개입니다. [정치]와 [주식 또는 재테크]입니다. 이 냄새를 개보다, 파리나 벌보다 잘 맡는 사람이 이른바 성공하는 사람이 된다는 겁니다. 이건 사실 엄격한 의미로 냄새의 문제가 아니라 예민한 이성의 직관력과 저돌적인 힘의 결단에 관한 사항이지요. 냄새랄 것도 없다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머리 둘 곳도 없이 산 예수, 어떤 세상 권력도 갖지 못하고 오히려 권력자에게 수난을 당한 예수, 부유하고 잘난 사람과 어울리는 대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과 함께 한 예수에게서 풍기는 것은 향기가 아니라 역겨운 ‘죽음의 냄새’일 뿐이겠지요.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에게는 향기로운 ‘생명의 향기’가 아니겠어요? 아니, 그리스도인 자신이 그 향기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요? 자신을 누구라고 소개하기도 전에 그의 삶에서 예수의 향기가 풍겨 나오는 사람 아닐까요? 저는 요즘 여기에 매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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