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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으로 건너가는 다리

누가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1977 추천 수 0 2011.11.29 15: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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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6:19-25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춘천성암교회 http://sungamch.net 

천국으로 건너가는 다리


가수 김장훈씨가 아산상 사회봉사상 이란 걸 받았답니다. 그간 30 억 원을 기부했다는 것입니다. 신문에서 그와의 인터뷰 기사를 읽는데 눈물도 나고 서글픈 마음도 들고 그랬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돈은 돌고 도는 것인데 쌓아두면 인생도 멈춥니다. 등 따뜻하면 영혼은 죽어요. 몸으로 하는 봉사가 최곤데 나는 시간이 없어요. 그분들에 비하면 돈 내는 건 쉬워요. 나눔은 고마운 중독입니다.”

목회자를 돕는 직분자도 세워야 하고 또 새해 예산도 수립해야 하기에, 지난 한 해 동안 교우들의 신앙생활을 생각해 보고, 한해의 헌금 명세표도 뽑아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우리들의 신앙과 김장훈씨의 삶을 겨누면서  성경에 나오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를 볼 수 있었습니다.

주님은 오늘 비유를 통해 너무도 대조적인 두 인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편에는 최고의 의상인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갖춰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잔치를 즐기는 한 부자가 있고, 또 다른 한편에는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잔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근근이 연명해 가는 불행한 거지가 있습니다. 주님은 이 두 인물로서 이 세상의 현실을 축소판으로 그려냅니다.

이 두 사람의 생활은 너무도 대조적입니다. 부자는 자색 옷에 고운 베옷을 입고 거지는 헌 누더기를 입습니다. 부자가 입는 '자색 옷'이란 로열 퍼플이라고 불리 우는 염료로 염색한 옷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염료가 귀해서 색깔이 들어가는 옷은 무척 비쌌습니다. 고대 로마인들은 지중해 지역 특산의 달팽이가 분비하는 맑은 액체를 효소로 처리해서 '로열 퍼플'이라는 짙은 자주색 염료를 만들었습니다. 1만 2천 마리의 달팽이를 잡아야 겨우 1.4g 정도 얻을 수 있었던 이 염료는 왕립공장에서만 만들어졌고 만약 다른 곳에서 이 염료를 만들다 발각되면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그래서 그 염료 이름이 로열 퍼플, '왕가의 자주색'입니다. 그러니 이 로얄 퍼플로 물들인 옷을 입을 수 있는 사람은 왕족이거나 아니면 왕의 허락을 받은 극소수의 사람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자색 옷을 입은 부자가 어떤 사람인지는 대충 짐작이 되지 않습니까? 최고의 부와 권력과 명예를 지닌 엄청난 특권층의 사람입니다. 이 부자는 그런 옷을 매일 입고 살았습니다.

입는 것만 아니라 먹는 것도 달랐습니다. 부자는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했다고 했습니다. 가장 싱싱하고 좋은 재료를 곳곳에서 구해다가 맛있고 진기한 음식들을 별미로 만들어서 끼니마다 잔치 상처럼 거나하게 차려 먹었습니다. 그러나 거지는 먹을 것이 없어 거기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주워 먹습니다. 입는 것, 먹는 것뿐만 아니라 사는 곳 또한 달랐습니다. 거지는 한데에서 변변히 덮을 이불 하나 없이 살지만 부자는 큰 대문이 버티고 있는 수 십 개의 방이 있는 호화주택에서 원앙금침을 깔고 잠을 잡니다.

보십시오. 그런 저들도 언젠가는 죽게 됩니다. 부자도 죽고 거지도 죽었습니다. 최고의 행운아로 살았든 최악의 불행 아로 살았든 땅에서의 인생들 모두 끝을 맺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이 두 사람의 장례식이 치러지는데 이들의 장례식 장면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거지 나사로의 경우 그의 주검은 가마떼기에 둘둘 말아져서 어느 골짜기에 내던져졌을 것입니다. 부자와 비교해볼 때 본문엔 그가 장사되었다는 말이 없습니다. 누가 그를 위해 빈소라도 차려주었겠으며 그를 위해 울어주었겠으며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안타까워했겠습니까? 오히려 그렇게 사느니 잘 죽었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자의 장례식은 달랐을 겁니다. 그는 정말 장사되었습니다. 그의 죽음이 곳곳에 알려지고 거창한 빈소가 차려졌을 것이며 수많은 문상객들이 와서 그의 죽음을 애도했을 것이고 긴 깃발을 앞세우고 화려한 장례행렬로서 선산의 따스한 햇볕 드는 명당자리로 옮겨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님은 이 두 사람의 최후를 이러한 세상의 풍경으로 묘사하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그들의 변화된 운명을 소개합니다. "그 거지는 죽어 비록 장례식을 못 치렀지만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고, 부자도 죽어 거대하게 장례식을 치렀지만 그는 음부에 가 고통을 받았다." 장례식도 변변히 치루지 못한 사람은 죽어 천국의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고, 성대하게 장사지낸 사람은 죽어 고통스런 지옥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23절 이하는 이승의 장면이 아니라 저승의 장면입니다. 이렇게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운명은 죽음 후 완전히 바뀝니다. 부자는 지옥에 떨어지고 거지는 천국에 오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왜 부자가 지옥에 떨어졌습니까? 부자였다는 것이 그가 지옥에 떨어진 이유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도 부자였습니다. 부와 가난이 윤리적 선악의 판단 기준이 아닙니다. 부자는 다 지옥가고 가난한 자는 다 천국 가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비유의 어느 구석에도 부자가 도덕적으로 나쁜 일을 저질렀거나 가난한 나사로가 선한 일을 했다는 내용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가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걸 보면 그는 유대인으로서 신앙생활을 했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선민인 모든 히브리인들의 아버지입니다. 그러니까 부자는 아브라함의 자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지 못한 겁니다. 즉 신자이면서도 천국엘 들어가질 못한 겁니다.

왜 부자에게 이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25절 말씀이 이 비밀을 푸는 열쇠입니다. 아브라함은 부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이 아브라함의 말은 눅6:20-26절의 주님의 행복선언과 불행선언을 생각나게 합니다. 주님은 6:20-23절에서 '이 땅에서 지금 가난한 자, 주리고 있는 자, 울고 있는 자, 고난당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나라를 차지하고, 배부름을 얻고, 웃고, 칭찬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24-26절에서는 '이 땅에서 지금 부요한 자는 위로를 이미 받았고, 배부른 자는 주릴 것이고, 웃는 자는 애통해하며 울 것이고, 모든 사람에게 칭찬받는 자는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여기에 부자가 지옥에 떨어진 이유가 있습니다.

음부와 천국 사이에 구렁은 부자 스스로가 만든 겁니다. 부자는 세상에서 자신과 나사로 사이에 가로놓인 심연에 다리를 놓으려는 그 어떤 시도도 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자기 집 대문 밖에 있던 나사로를 돕기 위해 대문을 나선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에조차도 자기가 그 심연을 건너려고 하지 않고 나사로가 자기에게 건너오기를 요청합니다. 이렇게 부자는 나사로와의 관계를 끊고 산겁니다. 이게 바로 부자의 죄였습니다. 가난한 자와 인격적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은 겁니다. 그래서 지금도 '물 좀 달라'고 나사로에게 청하는 게 아니라 '나사로를 시켜 물 좀 달라'고 아브라함에게 청하는 겁니다.
그는 나사로에게 무관심했습니다. 그 무관심은 부자가 모세와 예언자들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약자와 가난한 자에 대한 책임, 부자는 그것들을 모두 간과해버렸습니다. 말씀과 연결된 삶을 살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회당에도 다녔고 누구보다도 비싸고 귀한 성경 두루마리도 갖고 있었지만 그에겐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게 바로 그가 지옥에 떨어진 이유입니다.

그러니까 고해와 같은 이 세상에서 이웃의 아픔에 무관심하게 사는 것이 저 세상에서 자신과 하나님 사이, 자신과 의인들 사이에 건널 수 없는 심연을 스스로 고정시킨다는 사실을 부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겁니다. 그랬기에 부자는 자신의 부를 '먹고 마시고 입는 일'에 잘못 사용했던 겁니다. 그는 가난한 자에 관한 율법을 무시했습니다. 거지 나사로를 사랑의 대상으로 여기질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는 교만했습니다. 상황이 바뀐 지금도 그는 여전히 나사로를 자기의 혀를 축여줄 정도로 생각합니다.

부와 가난의 문제는 인간 공동체가 존재하는 한 어느 지역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상존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부의 축적을 선망의 대상으로 삼는 오늘 우리 시대에 있는 자와 없는 자 사이의 긴장과 갈등이 얼마나 높아지고 있습니까? 사실 우리 사회 안에서 부유한 이는 가난한 이가 얼마나 못살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가난한 사람은 부유한 사람이 얼마나 잘살고 있는지 알지를 못합니다. 두 계층 사이에 가로놓인 장벽은 이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에 언급된 큰 구렁만큼이나 높고 두텁습니다. 이런 세상을 과연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거지는 천국에, 부자는 지옥에.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운명은 이렇게 결말지어집니다. 그럼 이 비유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음부에 간 부자일까요, 천국에 간 나사로일까요? 그러나 이 비유의 주인공은 부자도 아니고 나사로도 아닙니다. 이 비유의 주인공은 바로 엑스트라처럼 보이는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부자의 다섯 형제들'입니다. 주님이 들려주는 이 비유의 초점은 이미 죽은 부자나 나사로에게 있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 즉 부자의 다섯 형제들에게 있습니다.

죽은 사람은 이제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이미 늦어버렸습니다. 부자의 운명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는 영원토록 음부에서 형벌의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늦기 전에 세상에 살아있는 형제들이라도 더 이상 자신의 전철을 밟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 부자의 관심사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를 음부에서 구해 달라고 간청하는 대신 그의 살아있는 형제들을 위해 간청합니다. '저들만이라도 이곳에 오지 않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지옥에 오지 않는 방법은 오직 하나, 회개이니 그들이 회개할 수 있도록 나사로를 보내달라는 겁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말씀으로 변화되지 않는 자는 그 무엇으로도 변화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이 비유 속에서 어디에 위치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부자의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고 거지 나사로의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닌 '다섯 형제'의 위치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시자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이 비유를 통해서 아직 이 땅에 살아남은 인생들에게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하십니다. 여러분은 지난 한해를 어떻게 살아오셨습니까? 혹 음부에 간 부자처럼 살아오지는 않았습니까? 이 다섯 형제들처럼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더 늦기 전에 얼른 돌이키라는 겁니다. 죽음이 찾아오기 전에 회개하라는 겁니다. 늦기 전에 말씀을 가까이 하라는 겁니다. 늦기 전에 관계를 회복하라는 겁니다. 늦기 전에 겸손하고, 늦기 전에 섬김과 사명을 되찾으라는 말입니다. 늦기 전에. 구원은 타이밍, 때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오늘은 구원의 날'이라고 했습니다. 그 때를 놓쳐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겁니다.

보십시오. 부자는 너무 늦게 나사로에게 관심을 보입니다. 진즉에 관심을 보였더라면 좋았을 것을 이미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부자는 건널 수 없는 지옥과 천국의 구렁을 너무 늦게 보았습니다. 좀 진즉에 보았더라면 삶이 달라 졌을 텐데. 부자는 너무 늦게 말씀을 깨달았습니다. 진작 깨닫고 그 말씀에 순종했더라면 이런 운명에 처해지지 않았을 텐데. 몸이 이상해서 병원엘 찾았는데 '너무 늦었군요'하는 이 말만큼 절망적인 말이 또 어디 있습니까? 의사의 말이 그렇거늘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어쩔 것입니까?

한해가 가고 새해가 시작되려 합니다. 늦기 전에 회개하고 새로워지십시다. 늦기 전에 변화되고 온전해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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