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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빛을따라간사람들] 윌리암 캐리

영성묵상훈련 김귀춘............... 조회 수 4373 추천 수 0 2011.12.01 23:3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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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www.inbora.com/bbs/board.php?bo_table=board13&wr_id=63&page=64 
윌리암 캐리
현대 선교의 아버지

19세기는 유럽의 힘이 폭발적으로 팽창된 시기였다. 유럽은 물질적으로 번영하면서 식민지 정책에 온 힘을 기울였다. 그리고 미국은 19세기에 자선국가라고 부를 정도로 거의 모든 국민들이 구제와 선교에 열정을 모았다. 따라서 19세기 중반부터 말까지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구미 개신교 선교사들이 전세계를 누비고 다녔으며, 거의 모든 교단들이 이 사업에 참여했다. 그러나 초기에 이들은 많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이들 선교사들은 기독교의 복음보다는 현지인들과 섞이지 않고 끝까지 서구인으로 남아 서구문명을 전하는데 힘을 기울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19세기초 기독교는 미국과 유럽내에만 존재하고 있었다. 아시아는 거의 복음의 불모지였고, 아프리카 역시 이집트와 이디오피아의 콥트 신도들을 제외하고는 “암흑대륙”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19세기초가 지나면서 기독교는 암흑지역들을 향해 쭉쭉 뻗어가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19세기는 위대한 선교시대였다.
특히 국교회나 비국교회 구분할 것 없이 19세기 전 영국의 복음주의의 활기는 개신교의 선교열정으로 반영되었다. 영국 선교사들의 아버지역할이 윌리암 캐리에게 주어졌고, 많은 선교사들이 그의 뒤를 이었다. 영국 선교사들은 특히 조국의 영토권이 있는 식민지 세계로 갔다. 인도에는 국교파 복음주의자 핸리 마틴(Henry Martyn,1781-1812)이 젊은 나이로 선교활동에 헌신했다. 스코틀랜드 교회의 최초의 해외 선교사인 더프(Alexander Duff,1816-1878)는 특히 인도의 교육 사업에 몰두했다. 마스덴(Samuel Marsden,1764-1838)은 40년 이상이나 호주, 뉴질랜드, 태평양제도에 기독교를 전파했다. 스코틀랜드인 모팻(Robert Moffat,1795-1883)과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1813-1873)이 런던선교회에 소속되어 남아프리카에 복음을 전파했다. 또한 런던 선교회는 1807년 모리슨(Robert Morrison)을 개신교 선교사로는 최초로 중국에 보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 일본, 필리핀 등의 국가들도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선교사들은 이때 복음뿐만 아니라 서구문학과 교육 방법, 근대의학지식과 병원, 그리고 진보된 농업, 임업 기술등을 전했다. 한편 1865년 허드슨 테일러(J.Hudson Taylor,1832-1905)가 설립한 중국내지선교회(China Inland Mission)와 같이 비교파주의적 신앙선교사역도 있었다.

선교의 발자취
그렇다면 교회역사상 최초의 선교사는 누구일까? 물론 예수그리스도이시다. 기독교에 있어서 가장 처음이며 가장 위대한 선교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는 단지 그의 발자취를 좇고 본받으며 그를 알리고자 애쓰는 대리자일 뿐이다.
숱한 박해속에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사도바울의 선교는 지금도 많은 선교사들의 본이 되고 있다. 중세 유럽에 켈트족 선교사들과 베네딕트 선교사들의 희생적 삶, 그리고 16세기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중심이 되어 상업적 식민주의적 세계진출을 꾀할 때 아시아와 중남미에 선교사역을 펼친 예수회선교사들이 뒤를 잇는다. 그러다가 영국인들이 스페인 함대를 패배시킨 후(1588년), 네덜란드와 영국의 해군력 확장과 더불어 개신교 선교사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1649년 영국에 최초의 선교기관인 뉴잉글랜드 복음전파회가 결성되었다. 그리고 1701년에 독일 경건주의자들의 선교활동과 더불어 1732년 먼 곳의 원주민들을 위한 선교회를 모라비안들을 통하여 전개하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18세기! 절대적인 신앙보다 인간의 이성을 앞세운 계몽주의(합리주의)라는 거대한 사조에 맞서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영적각성운동이 일어난다. 그때까지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펼쳐진 기독교가 마침내 19세기 선교의 시대를 맞이하여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암흑의 지대까지 쭉쭉 뻗어나가게 된다. 그 사역의 중심부에 있었던 윌리암 캐리는 현대선교의 아버지라 불리울정도로 그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이다.

제가 여기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18세기말 영국의 한 촌락에 허름하고 낡은 공작소 안에는 구두수선공 윌리암 캐리가 이웃의 신발을 수선하면서 여가를 이용하여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공부하고 있었다. 작업대 위에는 낡은 세계 지도가 붙어 있고, 그 위에 캐리는 제임스 쿡 선장이나 기타 탐험가들에 의해 전해진 세상 정보들을 적어 넣었다. 위의 모습들은 캐리가 얼마나 선교에 대한 열정이 강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 일평생 캐리를 움직였던 그의 좌우명이다. 1761년 영국 노담톤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출생한 캐리는 어린시절 할머니에게 사랑, 경건, 교회, 출석, 성경읽기 등 많은 것을 배우며 자라났다. 공부에 대한 욕구가 강했던 캐리는 구할 수 있는 책은 모조리 읽었다. 책을 사기 위해 끼니를 거를정도로 열렬한 학구파였다. 그의 집은 가난했으므로 14세때 캐리는 구두짓는 사람과 구두 수선하는 사람집에서 고용살이를 하였다. 18세기 웨슬리와 조지 휫필드가 이끄는 영적 부흥 운동이 전 영국을 휩쓸었고 그 여파로 1775년에는 감리교도의 수가 45,000명에 이르렀다. 캐리는 이들의 집회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샤클론에서 열리는 어느 기도회에 참석한 캐리에게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는 말씀이 그의 뇌리 깊숙이 꽂혔다. 이때 선교는 그의 관심의 영역을 넘어 현실 속에서 구체화되기에 이른다. 어느날 캐리는 “쿡 선장의 마지막 항해”라는 책을 읽고 있었다. 미지의 태평양 곳곳을 열심히 찾아다녔던 탐험가 쿡 선장의 항해기에는 ‘아무도 그들에게 기독교를 전해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명예도 이익도 뒤따르지 않기 때문이지요’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흥미진진한 책속을 항해하면서 그는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마케도니아인의 끈질긴 외침을 들었다. 특히 성경을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언어로 번역하여 그들의 언어로 성경을 가르친 데이빗 브레이너드(David Brainerd)와 존 엘리옷(John Eliot)의 전기는 그의 영혼의 눈을 뜨게했다. 그는 조용히 대답했다. “주여, 제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선택의 기로에 서서
“이방선교를 위한 침례교 특수 선교회”가 조직되었고, 캐리는 선교사 토마스의 조언으로 인도에 대한 관심을 나타낸다. 캐리는 히브리어, 이탈리어, 화란어, 불어 공부를 더 깊이있게 했고 복음전달을 위해서라면 땅끝까지 가겠다는 열렬한 의지로 부단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캐리의 동료 토마스는 인도의 가난, 비인도적이고 잔인한 관습, 우상숭배에 대해 들려주었고, 캐리는 인도 사람들에 대한 연민으로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그러나 유난히 아내를 아끼고 사랑했던 캐리는 걱정이 앞섰다. 아내는 태어나서 자란 마을에서 50킬로미터이상 나가본 적이 없는 시골여자였다. 그녀가 아무리 남편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죽을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항해와 평생 인도라는 야만적이고 낯선 땅에 가서 살겠다고 나설만큼 과연 남편을 사랑할까? 게다가 세 아들과 또 태어날 아이가 있지않는가? 아내는 지적능력이 부족하고 언어를 배우는데 아주 느린데, 그런 그녀가 과연 자기와 의사소통도 안되는 사람들 속에서 살려고 할 것인가? 그러나 그녀없이 간다는 것은 행복끝 불행시작을 의미했다. ‘하나님을 택할것인가 아내를 택할 것인가’ 자식을 놓고 고민하던 아브라함의 잔인한 선택이 그에게 다시 주어진 것이다. 정말 모질고 잔인해야 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후손 캐리는 선조의 선택을 좇았다. 인간 편에서는 잔인하지만 하나님편에서는 ‘선’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가능했다. 생각대로였다. 아내의 반대는 완강했다. 그녀는 만일 캐리가 꼭 가야만 한다면 자기는 남편과 헤어져서 아이들과 영국에 남아있겠다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또한 아들을 정신병자 취급했다. 문제는 첩첩산중이었다. 실제적인 재정문제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인도에서 처음 얼마간 사용해야할 돈과 또 영국에 남아 있는 가족 생활비도 마련해야 했다.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캐리의 평생 좌우명이었던 이 말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그를 안심시켜 평온을 주었다. 여호와 이레! 시험을 통해 아브라함의 믿음을 확인한 하나님은 캐리의 믿음도 인정하셨다. 결국 아내의 여동생이 동참하는 조건으로 아내를 비롯한 온 가족이 인도행을 결심하고 돈문제도 해결되었다. 인도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이후 그는 한번도 영국을 찾지 않았다. 인도에서 자신의 뼈를 묻고 생명을 바치기로 굳게 결심한 이상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장애속을 뚫고
영국을 떠난지 다섯달이 되어서야 항해가 다 끝났다. 그 동안 배는 폭풍우에 이리저리 흔들리기도 했고, 열대의 태양열에 그을리기도 했고, 급류 때문에 벵갈에서 약 32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거의 한달간 머물기도 했다. 결국 그는 5개월을 항해하고 지친 상태로 1793년 마침내 인도의 캘커타에 도착했다. 그들의 삶은 고통 그 자체였다. 가족은 병에 걸려 신음하고 아들 하나는 전염병으로 죽었다. 캐리의 아내는 정신이상이 되었고 죽을 때까지 정신이상자로 살아야 했다. 그가 오랜생활동안 기도하고 비전을 닦아왔던 인도선교에 대한 꿈이 사라져가는 듯했다. 절망의 나날속에서 캐리는 농장의 지배인으로 일하면서 말을 배웠다. 7년동안이나 불철주야 일하고 선교했지만 인도인 개종자는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큰 야망을 품고 도착한 인도에서 7년동안 한명의 성도없이 고독과, 자신과 싸웠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마음을 주관하는 이는 ‘그’가 아니었다. 절대자이시며 그의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이셨다. 1월 17일 캐리의 일기다. ‘저녁 무렵에 나는 하나님의 부요하심과 약속에 대한 신실하심을 느꼈다. 나는 모든 근심을 하나님께 내어 맡길 수 있었다. 설사 내 생명을 잃어버린다 할지라도 나에게 이런 일이 맡겨진 것으로 기뻐하고 기뻐하리라.’
캐리에게 있어서 인도는 사랑스러운 자녀와 같았다. 그는 인도의 모습과 면적, 인구, 종교, 분쟁과 전쟁 등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 포르투갈은 인도내에서 힘을 잃어버린지 오래였지만 아직도 항구 몇 군데를 장악하고 있었다. 덴마크도 세력이 거의 쇠퇴해져서 남부 지방 트란퀘바 주변과 캘커타에서 북쪽으로 25킬로미터 떨어진 후글리 강변의 세람포르만이 덴마크 동인도 회사 영지로 남아 있었다. 남부지방은 영국의 세력권 내에 있었고 그중 벵갈은 영국 동인도 회사의 소유였다. 캐리는 인도 언어를 더 빨리 배우기 위해 동료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지려고 계속 노력했다. 캐리는 힌두와 이슬람의 세계관에 대해 더 명확히 알고 효과적인 선교를 위해서는 서구인의 태도를 버리고 그들 속에 흡수되어 온전한 인도인이 되어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던중 다섯 살짜리 아이가 열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노력 또 노력
환란속에서도 하나님의 일은 계속되었다. 그가 인도에 온지 1년이 안되어 벵갈어로 된 창세기, 마태복음, 마가복음, 야고보서 번역본과 벵갈어 단어집과 문법책을 완성했다. 캐리는 벵갈어 공부를 하면서 단어와 용어의 여러 상이한 의미도 철저히 익혀갔다. 주일이면 회교도들과 힌두교도들도 캐리의 설교를 들으러왔고 오후에 캐리는 인근 마을에 가서 노방 전도를 했다. 이때 캐리는 그들의 가진 문화와 신앙이 야만적이라고해서 무시하는 마음과 태도를 확실하게 버렸다. 그들이 가진것을 존중하고 인정하면서 점차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의 메시지로 이야기를 이끌어갔다. 그러자 서구인들에 대해 꽁꽁 닫혀있던 그들의 마음이 녹기 시작해 성경과 하나님에 대해 귀를 기울였다. 그는 성경을 번역했고 틈만나면 설교했다. 학교도 세웠고, 1795년에는 침례교회가 세워졌다.
무드배티에 온지 2년째 되던 해부터 캐리는 작업 시간의 삼분의 일 정도를 산스크리트어 공부에 할애했다. 산스크리트어는 인도 귀족 계급의 상징이자 인도에서 통용되는 모든 방언 가운데 단연 으뜸 언어였다. 인도의 모든 고전은 이 언어로 쓰여 있었다. 힌두어도 열심히 공부했다. 성경을 벵갈어로 번역할 때 벵갈어로 된 고전이 없기에 벵갈어 문체나 철자를 체계적으로 익힐 수 없어서 번역이 힘들고 느렸다. 그럼에도 인내심을 갖고 번역을 계속해 나가던 캐리는 1797년 초반 기쁨으로 팔딱팔딱 뛰었다. ‘드디어 신약성경이 벵갈어로 번역되어 나왔다. 이것은 다이아몬드보다 더 귀한 보물이다.’
선교사들을 향해 동인도 회사측의 방해는 끈질겼다. 캐리를 비롯한 선교사들은 한번도 자기가 선교사라고 공공연히 드러내 본적이 없었다. 아니 드러낼 수가 없었다. 1763년부터 실질적으로 인도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은 영국 동인도 회사(British East India Company)였다. 회사의 유일한 목표는 경제적 수익이었다. 백인으로서의 우월의식또한 인도인들을 멍들게하고 선교를 방해하는데 한몫했다. “우리들의 동방영토에 선교사들을 파송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미친 짓이며, 가장 낭비다. 이러한 계획은 죄악이며, 어리석고, 해롭고, 위험하고, 유익도 실현성도 없는 것이다”고 평가하고 있었다. 다행히 캐리는 인디고 공장 소속 사업가로 당국에 등록되어 있어서 벵갈 정부 지역행정관의 감시를 피할 수 있었다. 동인도회사가 캐리의 캘커타 정착을 허락하지않아 그는 덴마크령 세람포어에 정착하였다. 세람포르는 전세계의 온갖 족속들이 모여 있는 선교지였다. 세람포르에는 힌두교도들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브라만의 영향력이 아주 컸다. 1777년부터 1792년까지 모라비안 선교사들이 들어와 있었지만 구체적인 결실을 얻지 못했었다. 캐리는 선교과정에서 비용을 최소화하고 효율성을 높이고 교제를 돈독히 하기 위해 선교사들의 공동생활을 제안했고, 그렇게 그들은 공동생활을 통해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훈련을 통해 하나님나라를 더 확장했다. 3월경이 되어서 벵갈어로 된 신약성경 첫장이 인쇄되어 나왔다.

진짜 인도인
동역자 10명중 7명이 이질에 걸려죽자 선교사들에게 아주 인간적인 질문이 던져졌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당신들을 보냈다면 왜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가?”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선교사들조차 대답할 수 없었다. 남은 세사람 캐리와 워드와 마쉬만은 ‘세람포르의 삼총사’로서 그후 23년동안 팀을 이루어 사역하면서 서로간의 긴밀한 교제를 통해 새 힘을 얻곤 했다. 마침내 처음으로 크리쉬나 팔이라는 개종자가 생겼다. 이 사람은 수년전 모라비안 선교사들을 통해 복음을 듣고 이번에 확신을 얻게 된 것이다. 한 사람이 뿌리고 다른 사람이 물을 주고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신 것이다. 그렇지만 그당시 인도에서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새로운 개종자들이 뒤를 이어 계속 생겨났고, 이들은 자신들의 카스트 계급을 버리고 세례를 받았다. 그들은 그리스도 때문에 박해를 받았고 어떤 사람들은 목숨까지 잃었다. 1803년 브라만으로는 최초의 개종자가 생겨났고, 이로써 힌두인들은 심한 충격을 받았다.
그러던중 갠지스강에 아이를 제물로 바치고 남편의 장례식에서 부인을 산채로 함께 화형시키는 ‘사티’제도의 폐지를 건의했고,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후에야 ‘사티’ 제도의 폐지가 선포되었다. 그는 인도인의 삶과 문학에 나타난 모든 것을 깊이 사랑했고 인도인보다 더 인도를 사랑했기에 당연히 그의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1802년에서 1809년 사이에 벵갈어로 된 구약성경이 장별로 인쇄되어 나왔다. 이제 인도인들은 아브라함, 야곱, 요셉, 엘리야에 대한 이야기를 자기들의 언어로 읽을 수 있고, 아하수에로 왕과 에스더 왕비 이야기를 읽으면서 즐거워했다. 캐리는 마침내 성경을 동양의 주요 언어들로 다 번역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되어 마쉬만과 함께 신구약성경을 산스크리트어, 마하라티어, 힌두스탄어, 구자라티어로 번역했다.

수달피 가죽만큼의 사랑만 있다면
이러한 노력들이 가차없이 물거품되는 재난이 또 찾아왔다. 캐리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동양어, 헬라어, 히브리어, 영어 활자들이 화염에 휩싸였다. 헨리 마틴이 번역한 힌두어 성경 초판 수천여권을 비롯해서 귀중한 성경번역 초고, 문법책 등 여러 달 동안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불철주야 수고해서 이뤄놓은 것이 타들어갔다. 그러나 그들은 화재현장에서 다시 일어섰다. “잃어버린 것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길을 두번 가는 것이 고통스럽기는 하겠지만 처음보다 훨씬 더 확실하고 손쉽게 갈 수 있는 것처럼 결국에 가서는 아무것도 손해볼 것이 없으리라 확신합니다. 우리는 벌써 다시 시작했습니다.” 캐리는 불타 없어진 책들을 다시 쓰면서 내용이 전보다 더 충실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동양언어 활자들은 6개월내에 다시 만들어졌고, 그해 말경에는 세람포르 선교 출판부가 이전보다 더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1832년까지 신구약성경, 신약성경, 권별 성경이 44개 언어와 방언으로 출판되어 나왔다.
캐리는 “불신자들의 개종을 위한 방법들을 사용해야 할 기독교인의 의무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이방인의 땅에 복음전파하는 것을 반대하는 이들의 5가지 반대이유를 ‘먼거리, 이들의 야만성, 각종 위험, 지원 방도, 언어의 불통.’이라 말한다. 그러면서 캐리는 또 이렇게 반박한다. “상인들은 동일한 위험들을 무릎쓰고서도 먼 나라를 찾아가지 않는가. 만약 우리들이 몇장의 수달피 가죽을 향한 사랑만큼을 같은 인류 즉 죄인들의 영혼을 위해 가지고 있다면 이러한 모든 핑계들은 사라지고 말것이다.”
김귀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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