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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잠2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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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남준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ullin.org |
욕망과 자유
2005-11-02
율법을 지키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요 탐식자를 사귀는 자는 아비를 욕되게 하는 자니라 (잠28:7)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사는 삶은 때때로 우리에게 희생을 강요하듯 느껴진다. 게다가 이 세상도 진리를 따라 살려는 사람은 가만히 두고 보고 있지는 않다. 진리를 따라 살기 위해서는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욕망들을 죽여야 한다. 이것도 형벌도 같이 여겨지며, 따라서 신자의 삶 자체가 고통이고 고난으로 생각된다. 반면에 하나님을 떠나 사는 사람의 삶은 매우 자유로워 보인다. 그러나 각각의 삶의 결과가 이생에서도 이생 이후에서도 드러난다. 즉 후자의 경우,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는 것 외에 가까이는 이생의 고난이 기다리고 있고 영혼이 파괴되어 영혼의 아름다움을 상실케 된다. 그의 마음은 적절히 더러움이 섞인 마음이 되어 그 마음을 지닌 신자는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가 없게 된다.
본문에서는 ‘율법을 지키는 자’와 ‘탐식하는 자’를 대구로 놓고 ‘지혜롭게 되는 것’과 ‘아버지에게 부끄러움을 끼치는 자가 되는 것’을 대치시키고 있다. ‘지혜로운’이란 단어의 어근은 ‘빈( @yBi )’으로, ‘분별하다’라는 분사이다. ‘지혜’는 사물을 분별해 내는 능력을 일컫는다. 한 사람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이 ‘지혜’이다. 따라서 성경은 지식보다 지혜를 더욱 높이 평가한다. 그러면 어떻게 율법을 지키는 자들이 지혜를 얻는가.
첫 번째로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게 되면,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난다. 즉 하나님께서 사물을 보는 그러한 시각으로 사물을 보게 되는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지혜가 있는 사람의 분별이란, 하나님의 판단에 근접한 판단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고 지키면, 실천적인 지혜가 생겨난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는 마음을 중심에 두고 삶에 적용하려 하면, 하나님께서 지혜를 부어주신다. 믿음 없는 이들은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하나님 중심으로 살려는 마음을 깊숙이 넣어두고 타협 먼저 하려한다.
‘탐식자를 사귀는 자는 아비를 욕되게 하는 자’란 말씀을 살펴보자. 히브리어‘잘랄(ll'z)’은 ‘방탕하다, 탐욕스럽다, 제멋대로 행동하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탐식자를 사귀는 자’란 엄밀한 의미로 ‘탐욕스러운 자들과 교제하는 자’ 이다. 방탕하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에 통제 받지 않는 모든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지, 특별한 악을 일삼는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율법을 지키는 것과 탐욕스러운 것이 반대의 의미로 사용된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본성 안에는 탐욕스럽게 살려는 욕망이 있다. 탐욕스러운 자란 자기 욕망대로 사는 자들이다. 그리하여 이런 이들과 사귀면, 그들의 행동하는 것, 자기 욕망대로 사는 그것을 보고 배우게 된다. 이 경우, 친구관계는 대등하지 않고 종속적이다. 그러나 경건한 사람은 세상 친구들에게 종속되지 않고, 그들에게 스승과 같은 친구가 된다.
욕망대로 사는 이들은 영혼의 아름다움이 파괴될 뿐 아니라 주변사람들의 영혼도 파괴하는 영향력을 가지며, 마지막 때에 영혼이 멸망당하는 것밖에 남은 것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자라나는 욕망들을 죽여야 한다.
욕망대로 사는 이유는, 욕망을 만족시킬 때 주어지는 즐거움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기대감이 계속하여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기대감이 생기면 그것에 의해 발생하는 부정적인 부분은 생각나지 않는다. 신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순간, 욕망대로 사는 것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으로 여겨야 한다. 세상에서 제공하는 즐거움들을 맛볼 수는 있지만, 그러한 즐거움들이 중심에 있어서는 안된다. 한 가지에 있어서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면, 모든 방면에서 욕망들이 들고 일어나게 된다. 그것을 한순간 즐거워하는 여흥과 같이 여겨야지, 인생의 즐거움을 주는 중심적인 즐거움이 될 수 없다.
우리 신자들이 추구해야 하는 즐거움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영혼이 끊임없이 순결해지며 하나님과 교통하는데서 오는 즐거움이어야 한다.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을 추구하는데서 기쁨을 공급받으며 살아야 한다.
아름다운 마음에서 아름다운 삶이 펼쳐진다. 순종하는 삶으로 은혜를 받을 때, 영혼의 자유함이 주는 행복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증진되며, 따라서 신령한 욕망이 커진다. 신령한 욕망이 채워지지 않으면, 마음속에서부터 간절함이 우러러 나온다. 이러한 신자들은 예수의 형상을 본받아 아름다워진다. 그리고 그 속에는 참다운 만족이 있다. 신자가 진정 쉴 자리는 예수 안에 있지, 세상의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행복의 원천이신 예수께 점점 가까이 다가가니 세상의 욕망들과 충돌하지 않는 참된 여유가 생겨난다. 이렇듯 영혼이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고 있을 때에 다른 이들에게 너그러이 관용을 베풀 수 있다.
세상이 알 수 없는 기쁨과 평안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야말로 율법을 사랑하며 그것을 지키는 이들인 것이다. 그러면 기도할 때에도 중언부언하는 기도, 사사로운 이익을 구하는 기도 대신에, 주님이 원하시는 기도의 제목들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하나님의 마음에 부합하는 기도로 간구하며, 더욱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에 다가가는 삶을 사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욕망대로 사는 자의 친구가 되어서도 안되며, 그런 삶을 부러워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욕망을 쫓아 부나비와 같이 사는 이가 모르는 행복과 기쁨의 근원을 우리는 누리며 살고 있으므로... 2005-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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