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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119: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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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남준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ullin.org |
영혼의 아름다움과 선한 의지
2005-12-04
I. 본문의 배경
시편 119편은 다윗의 시로 추정된다. 다윗은 온갖 역경과 시련으로 점철된 인생을 산 인물로, 그는 그 모든 고통을 말씀을 통해 얻는 기쁨과 위로로 이겨냈다. 시편 119편에는 진리를 통해 위로와 슬기를 얻는 삶의 모습이 드러나 있는데, 본문은 이러한 영광스러운 진술의 맨 앞부분이다. “행위 완전하여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라는 이 한 구절에는 이 다음부터 이어지는 모든 내용이 이 진술의 해설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시편119편 전체가 함축되어 담겨 있다. 여기서 행위 완전하다는 것은 흠이 전혀 없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안에서 충성스럽고 신실하게 행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Ⅱ. 은혜와 선한 의지
우리와 똑같은 연약함을 가졌던 시인이 행위 완전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비결은 선한 의지가 그에게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한 의지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은혜의 작용 때문이다. 은혜는 우리의 마음에 평강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귀한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깊은 곳에서 선한 의지를 끌어내어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에 귀하다. 한 사람의 존재의 가치는 그가 가진 선함에 달려 있고, 한 사람의 선함은 그 영혼 안에 있는 의지의 선함에 달려 있다. 인간은 하나님을 향한 선한 의지를 소유할 때 비로소 행복할 수 있다. 하나님께는 인간이 모두 소중하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하나님께 동일한 가치로 평가받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의지를 행사하지 않음으로 하나님이 주신 좋은 것들을 색욕거리로 바꾸며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끊임없이 은혜를 구하고 그 은혜로 선한의지는 북돋우고 악한의지는 십자가에 못 박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어찌 더 소중히 여기시지 않겠는가? 때로는 넘어져도 최후승리를 믿으며, 선한 의지를 발휘하며 사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III. 영혼 안에 있는 의지
영혼의 본질은 경향성과 힘이며, 영혼의 기능은 지성(파악하고 분별하는 기능)과 애성(사랑하거나 미워하는 기능)과 의성(의지의 기능)이다.
A. 영혼의 한 기능: 意性 - 의성은 의지를 발휘할 수 있는 능력과 그 의지 자체로 구성된다.
1. 의지 능력 : 창조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의지능력은 놀라운 것이었다. 이 능력이 있었기에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명령을 쫓아 창조의 목적에 기여하며 살아갈 수 있었다. 죄가 들어오면서 파손되기는 했지만, 그 능력 자체는 아직도 상당부분 건재하게 남아있다.,
a. 이행 능력 : 옳다고 판단한 것, 사랑하게 된 것을 이행할 수 있는 능력. 능력 자체는 타락으로도 심각하게 손상되지 않았다. 다만, 영혼의 파괴로 의지가 올바른 질서 속에서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지성의 판단이 틀리기도 하고, 애성이 옳지 못한 것을 사랑하기도 하는 질병적 현상 속에서 의성도 행해야 할 것을 행치않고 행치 말아야 할 것을 행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 것이다.
b. 저항 능력 : 하기 싫은 것을 안 하겠다고 버티는 능력. 아담과 하와는 저항능력이 무너진 가운데 죄를 지었다. 죄가 들어오면서 저항하여야 할 것에는 저항하지 않고, 저항하지 않아야 할 것에 저항하게 되도록 변질되었다.
2. 의지 자체
창조 당시 인간은 의지로 충만하였다.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따라, 하나님의 계획대로 섬기고자 하는 의욕에 불탔던 것이다. 그러나 죄가 들어오면서 이 의지는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나태하고 게으르며 하나님이 안 기뻐하셔도 얼마든지 행할 수 있는 오늘날의 완악한 인간 모습은 이 때문이다.
B. 마음과 의지의 사용
1. 마음과 의지
성경은 마음을 제어하는 일의 주체가 우리 인간인 것처럼 진술한다. 이것은 마음이 영혼의 상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혼은 마음을 사용하여 일한다. 그래서 영혼의 변화는 늘 마음에 영향을 미치고, 또한 마음의 상태에 영혼은 영향 받는다. 마음으로 수없이 결단해도 선한 의지가 없으면 그것은 이행되지 않는데, 이렇게 되면 그 마음도 이내 완고해져 간다.
2. 인간의 책임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다리를 부러트려서라도, 목을 비틀어서라도, 우리를 당신 곁으로 부르시기 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의지를 역행하거나 초월해서 역사하시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는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악한 의지를 강압적으로 꺾지 않으시고, 은혜를 주심으로 돌이키게 하신다. 따라서 자신의 악한 의지를 따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방편(예배, 기도..)들에 냉담한 사람들은 스스로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선한 의지의 충만함은 그렇게 살고 싶어 하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다. 자신이 그 선한 의지를 불러일으킬 수는 없지만 (그것은 오직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의 작용이지만), 은혜는 은혜에 목말라하며 은혜를 구하는 사람에게 부어지기에, 선한 의지가 없다면 그것은 은혜를 멀리한 자신의 책임이다. 바리새인이 못 만난 하나님을 세리가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세리에게는 은혜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은혜를 구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어여쁘게 여기시는 것은 그것이 다음 두 가지 사실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첫째, ‘나의 힘으로는 할 수 없다. 나는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라는 고백이고, 둘째, ‘선한 의지를 소유한 채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다’라는 고백이다.
IV. 아름다움을 보호하는 의지
영혼의 아름다움은 선한 의지 안에서 보호된다. 질그릇같이 연약하나, 사자와 같이 용맹스럽게 살았던 믿음의 사람들의 공통점은 “선한 의지”였다.
우리에게서 은혜를 앗아가려는 것들, 우리의 의지를 훼손하려는 것들에 대항하며, 주의 깊게 살아가라. 충만한 성령의 은혜의 작용이 선한 의지를 불러냈고, 선한 의지가 영혼의 아름다움을 보호한다. 2005-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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