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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잠1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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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남준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ullin.org |
원망과 자유
2005-12-28
Ⅰ. 본문의 배경
본문에서는 세 가지가 결합하여 사람을 곤고하게 한다고 하는데 바로 미련한 것, 고집스러운 것,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다. 살아 있다고 해서 살아있는 것이 아니며, 죽어 있다고 해서 죽어있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죽어도 이름이 남아 살아있을 수 있으며, 살아도 죽은 것과 같이 어둠속에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온 길이만큼 하나님을 위해 산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이바지하며 살았다면 그 삶이 하나님께 살았다 할 수 있다. 자신을 온전히 불태워 하나님을 섬겼다면, 짧은 생애였다고 해도, 많이 산 것이다. 그러나 원망하는 마음이 가득하고서는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 하나님께 기쁨도, 영광도 드리지 못했다면, 하나님께 원망하는 그것으로 인해 자기 자신조차 기쁘게 살지 못함이 자명하다. 원망함으로 인해 평안이 깨어지니 그 어떤 곳에서도 즐거움도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원망하는 사람은 곤고한 삶을 살게 된다.
Ⅱ. 원망이란 무엇인가
원망이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사물의 질서 속에 놓인 것에 대한 책임이 있는 누군가에게 미워하는 감정을 품는 것이다. 자기 자신과 관련된 질서 속에서 원망하는 마음을 품는 것이다. 각자 자신이 원하는 사물들의 질서가 있다. 자신에게 유익을 끼치도록 사물들이 자리 매기는 것에 우리는 행복해 하며, 이러한 질서를 얻는 것을 ‘소원’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자신이 원하지 않던 질서 속으로 들어가면 누구나 고통을 느낀다. 그리고 우리가 원치 않은 질서에 놓인 것에 대해 생각하면서, 진정한 원인을 생각하기보다, 가까이에 있는 원인(즉 근인近因)을 먼저 헤아려 본다. 따라서 원치 않은 질서 속에 자신을 들어가게 한 사람을 가장 원망하기 쉬운 것이다. 또한 그러한 질서 속에 들어가게 된 모든 책임을 자기 자신에게 찾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인간은 즉각적으로 주변의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원망하기 마련이다.
본문은 하나님께 향한 신자의 원망을 말하고 있다. 신자는 하나님을 인정하지만, 고통의 책임을 하나님께 전가하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적은 신앙으로도 가능하다. 이러한 신앙은 자신의 일이 순조로울 때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영광 돌렸을 리 없는 미약한 신앙이다.
Ⅲ. 원망과 자유
A. 원망하는 마음
1. 무지
원망하는 마음의 기초는 무지, 즉 미련함이다. 인간이 원하는 대로 사물들의 질서가 세워져 간다 해도, 그가 행복한 것은 아니다. 또한 우리가 바라는 대로 하나님께서 들어주시는 그것이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 아니다.
신앙의 유익은 흔들림 없는 평정과 기품, 안식에 있다. 그러나 현시대에 흐르는 기독교의 기류는 성공하는 그리스도인 되는 것에 있는 듯 여겨진다. 예수 믿고 성공한 인물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와 같이 되기를 꿈꾸는 것이다. 우리는 이들을 보고 들으면서 부러워하는 마음을 품고 있지 않은지를 주의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같은 분량까지 성공을 거두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되기를 꿈꾸며 바라는 이들은 영적 허영에 빠진 것과 다름없다. 바라고 꿈꾸기 이전에, 하나님께 기도하며 또 스스로의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이생의 영화보다도 신자가 추구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품격이다. 영원을 향해 의미가 있고 소용이 있는 품격을 갖추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축복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품격을 갖추기 위해 필요한 두 가지 요소는 지식과 지혜이다. 지식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하나님의 가르침을 아는 지식이며, 무엇을 믿으며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믿음의 규칙을 아는 지식이다. 세상의 학문을 아무리 많이 알아도, 무엇을 믿으며 살아야 하는지 모르는 눈 먼 지식인들이 차고 넘친다. 삶의 교훈과 믿음의 규칙들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지식적으로 많이 아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빛 바래지 않는 품격이다.
지혜란 생각의 척도이다. 생각은 우리를 쉽게 속이곤 하는데, 변하고 흘러가면서도 늘 변치 않고 영원히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이러한 생각에 따라 좌우되지 않는 척도가 되는 것이 지혜이다. 사물을 정확히 재도록 해주는 것이다. 지식을 토대로 지혜가 생겨난다. 이때의 지식은 삶의 교훈들과 믿음의 규칙들을 지켜 행하는 지식이다. 적은 지식을 소유했더라도 꼭 필요한 지식을 가지고, 사유하며 그대로 실천한다면 잡다한 지식을 많이 소유한 사람에 뒤지지 않는 것이다.
본문의 원망하는 무지한 사람은 지식도 없고, 지식을 사유하며 실천하여 열렬한 신앙생활을 하지도 않으니 지혜를 얻지 못한 무지한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의 품격은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보다 삶의 교훈과 믿음의 규칙들을 아는 지식, 지식으로 사유하며 실천하는 삶, 그리고 흔들림없이 정확히 판단하는 지혜를 갖춘, 지적인 품격을 갖춰가는 데 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품격을 완성해가는 데 있는 것이지, 성공한 그리스도인, 유명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2. 고집
자신의 길을 굳게 한다는 것은, 잘못된 태도를 고치지 않기 때문이며, 이것이 바로 패역이다. 이것은 고집에서 비롯되는데 본성적으로 부도덕하도록 정착된 고집이다. 이러한 도덕적 고집은 우리를 새사람으로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계획과 정반대이다. 그렇게 굽은 본성을 바로 세우시려고, 주님은 우리에게 계속 말씀해주시며, 거듭 은혜를 부어 주셔서 우리를 다스리시고 통치하신다. 하나님께 고침받지 못한 사람은 본성적으로 굽은 고집을 부리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물의 질서가 자기 중심적이기를 바라며 살아간다. 어떤 이들은 극단의 방법인 자살을 택하는데, 이는 그 주변의 사물의 질서가 자신과 배치되는 것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의 고집이 그를 파멸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다면 생각해 보라. 무언가 여러분의 불순종으로 인해 벌을 받고 있는 상황인지, 혹은 일방적인 하나님의 계획으로 인해 고난을 당하는 상황인지를 분별하라. 전자의 경우에는 먼저 회개하며 자신의 잘못을 깨우쳐야 하고, 후자의 경우에는 하나님께 찬양을 돌려드려야 옳다. 자기만의 질서를 계속 고집하는 그것은 하나님을 계속 원망하게 만들 뿐이다. 자기의 질서를 고집 하려면 그러한 방향으로 힘을 가해야 한다. 자원에 대한 욕심으로 이러저러한 방법과 계획으로 행하면 그 과정에서 많은 죄를 짓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Ⅳ. 참된 자유 : 하나님의 질서를 받아들임
참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사물의 질서대로 세워주지 않으신다고 하나님을 원망하던 태도를 먼저 버려야 한다. 내 자신이 원하지 않은 질서에 놓여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이것이 시간을 버는 길이다. 원하지 않는 질서 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래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면, 먼저 회개하기 바란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하나님의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일방적인 고난을 받고 있다면, 자신도 알지 못하는 영혼의 질병으로 고쳐주시려고 쓰지만 효력 있는 약을 먹게 하시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오히려 찬양해야 한다. 하나님이 쓰시려는 자를 연단하시려고 고난을 주시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자신이 원치 않는 사물의 질서 속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면, 그가 자신의 죄 때문에 고난을 당한다고 치부할 문제는 아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참으로 사랑하시는 사람을 원석을 다듬어 보석으로 탄생시키듯이 그를 고난으로 연단하셔서 보석처럼 빛을 발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보고 싶어 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난 받는 것을 기뻐하시기 바란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특별한 방법으로 다루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도, 사람도 쉽사리 원망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을 원망할 수 없는 이유는 사람을 쓰셔서 우리에게 고난을 주셔서, 우리가 쉽게 깨닫지 못하는 우리의 약점을 알게 하시고 고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분의 수중에 있기 때문에 최후의 승리를 믿는다. 볼 수 없는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하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던 사물의 질서가 왜 그러한지 드러나고, 다시금 하나님의 질서 속으로 돌아간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이다. 하나님의 사랑에 훌륭하게 빚어지는 그리스도인들 되기 바란다. 2005-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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