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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두 발로 걷는 이유는?

시편 박신 목사............... 조회 수 2350 추천 수 0 2011.12.19 23: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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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시27:7-10 
설교자 : 박신 목사 
참고 : http://www.nosuchjesus.com/ 
인간이 두 발로 걷는 이유는?

사자 호랑이 같은 동물의 발은 몇입니까? 넷입니다. 사람의 발은 몇입니까? 둘입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왜 그렇게 했는지 그 이유를 아십니까? 이제 그 이유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저는 젊었을 때에 똑똑했고 공부도 썩 잘한 편이었습니다. 세상에서 내가 최고인줄 알았습니다. 정말 하늘 높은 줄을 몰랐습니다. 제가 지금은 목사이지만, 33살 때까지 예수님은 물론 하나님도 믿지 않았습니다. 아예 찾지도 않았습니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법 없이도 살 만큼 착하다는 칭찬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자들이 가끔 나쁜 짓을 하면 하나님을 아는 자가 어떻게 저럴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비겁한 위선자라고 욕했습니다.

또 신자들이 무슨 일만 생기면 기도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아주 게으르고 무능한 자라고 비방했습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최선을 다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또 그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도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것은 자기 약함을 감추기 위해 스스로 최면 거는 것이라고까지 간주했습니다. 항상 “예수가 밥 먹여주느냐? 차라리 내 주먹을 믿겠다.”고 큰 소리 쳤습니다.

그렇게 건방졌던지라 저는 30대 초반에 벌써 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내 좋은 머리를 동원해 당시로선 첨단 제품을 파는 것이니까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그러나 몇 년도 안 되어 완전히 쫄딱 망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소풍을 가는데 과자 사줄 돈마저 없었습니다. 그래도 자존심은 강해서 주위의 도움은 요청도 하지 않았습니다. 점차 사방이 완전히 다 막힌 절망 가운데로 빠졌습니다. 빠져나갈 출구가 도무지 없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사정은 오히려 더 꼬여져만 갔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찾을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어떤 교회의 주보를 보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저와 똑 같은 처지에 빠진 한 사업가의 이야기가 실려 있었습니다. 정말 모든 수단이 고갈되어 회생할 여지가 전혀 없어 자살하기 일보직전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크리스천 친구가 찾아와서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사방팔방이 완전히 다 막혔지 않느냐? 도와줄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지 않느냐?  이제야말로 하늘을 쳐다볼 때가 되었지 않느냐? 아무리 사방이 막혀도 하늘은 항상 열려 있으니까 말일세!”

모든 짐승 가운데 인간만 두 발을 가진 것은 원숭이로부터 진화 된 까닭이 아닙니다. 원숭이도 가끔 서서 걷습니다. 그러나 동물이나 인간이나 위급할 때에 본색이 드러납니다. 원숭이는 도망갈 때에 네 발로 기는데 서서 뛰는 것보다 훨씬 더 빠릅니다. 모든 원숭이의 팔이 다리보다 더 길고 튼튼한데 심지어 가만히 서있어도 땅에 대일 정도입니다. 네 발로 길 때에 팔을 더 많이 사용하라고 하나님이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전륜구동(前輪驅動) 자동차가 언덕 같은 험한 길을 갈 때에 더 힘이 좋듯이 말입니다.    

발 네게로 기게 되면 자연히 보이는 것은 땅 뿐입니다. 하늘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먹고 마시고 자는 문제만 목표로 살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것도 자기와 자기 식구들을 위해서만 말입니다. 실제로 모든 짐승들이 그렇게 살지 않습니까?

인간이 두 발로 똑바로 서서 걷게 된 것도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인간의 두 발은 땅으로, 두 팔은 하늘로 향하게끔 하셨습니다. 땅 대신에 하늘을 볼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살기는 살되 먹고 마시는 것만을 목표로 해선 안 된다는 뜻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을 찾고 경배하며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그분 뜻대로 거룩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을 받아서 살려면 인간은 반드시 하늘을 쳐다볼 수밖에 없습니다. 두 손을 하늘을 향해 크게 뻗어서 그분의 사랑을 받아 누려야 합니다. 세상은 도저히 줄 수 없는 그분의 사랑이 너무나 귀해 주위 사람들에게 증거하고 나눠주어야 합니다. 아니 참 사랑을 받았다면 자연히 그렇게 됩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네 발로 기면서 땅만 보고 사는 동물과 하나 다를 바 없습니다. 원숭이 우리에 바나나 하나를 던져 주면 어떻게 됩니까? 서로 먼저 먹으려고 싸우지 않습니까? 그 중에서 가장 힘센 원숭이가 빼앗아서 자기와 자기 가족만 나눠 먹습니다.

하늘을 향해야 할 두 팔이 하늘을 향하지 않으면 땅으로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 대신 사람을 향하게 됩니다. 결국 사람끼리 치고받는 데에 쓰일 수밖에 없습니다. 두 팔을 가장 많이 쓰는 운동경기가 권투이듯이 서로 누가 힘이 센지 경쟁하고, 서로 잘난 것을 자랑하며, 서로 잘 했니 못 했니 삿대질하기 바쁩니다.

오늘 저희들 장애우 사랑의 빛 교실이 시작한지 만 7년 되는 생일날입니다. 가장 먼저 우리를 낳아주시고 지금까지 보살펴 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또 그런 훌륭한 부모님을 주신 하나님께도 감사드려야 합니다. 지금 그런 감사의 표시로 부모님을 초청해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 맛있는 식사로 교제도 나눌 것입니다.

정말로 부모의 자식을 향한 사랑은 이 세상의 어떤 사랑보다 가장 순수하고 고귀합니다. 아무런 반대급부를 바라지 않습니다. 자식을 향해 일방적이고도 무조건적으로 베풉니다. 그러나 솔직히 이야기 하면 원숭이도 자기 자식은 끔찍이 아낍니다. 어쩌면 인간 부모의 사랑보다 더 강할 수 있습니다. 동물의 이 땅에서의 유일한 생존 목적은 자기와 가족이 잘 살고 평안하면서 자손을 번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네 발로 기어 다니는 짐승도 자식을 사랑한다면 인간은 그것으로 그쳐선 안 됩니다. 인간 부모는 인간 자식을 위해 동물보다 수십 배로 더 사랑, 정확하게는 본질적으로 다른 사랑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인간이 절대로 완전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허물과 약점이 많습니다. 항상 죄를 짓습니다. 부모도 인간입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데도 자신들의 자존심과 감정이 앞설 수 있습니다. 자기가 못다 이룬 꿈이나 욕심을 자식을 통해 대신 채우려 듭니다. 심지어 자식을 이용해 덕을 보려는 계산까지 합니다. 아무리 정상적이고 심지어 믿음이 좋은 부모로부터도 자식들은 알게 모르게 많은 상처를 받고 자라기 마련입니다.  

때로는 부모끼리 자식의 감정과 생각이 어떠하든 싸움을 하고 이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모 중 한 사람이 집을 나가거나 심하면 둘 다 자식을 버립니다. 또 의외로 많은 부모들이 자식을 학대합니다. 차마 남에게 말할 수 없는 심한 학대를 받은 자도 많습니다. 너무 부끄럽고 두려워 평생을 두고 혼자 속으로만 곪아 터집니다. 커서 어른이 되어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만큼 학대로 인한 상처와 분노와 큽니다.      

심지어 커서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이해해도 제대로 믿지 못합니다. 팔을 아무리 하늘로 뻗어도 주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아니 하늘로 향해 미처 팔이 펴지지도 않습니다. 내가 그렇게 어렵고 힘들 때에 하나님은 나를 본체만체 했다는 원망이 쌓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정말로 선하다면 나를 절대로 그냥 방치해두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숨어서 눈물 흘리며 잠을 못 이룰 때에 그대로 버려둔 하나님이라면 믿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적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언제 어디에나 계십니다. 영원토록 살아 역사하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특별히 두 발은 땅에 딛게 하고 두 팔은 하늘로 향하도록 만드셨습니다. 하늘을 향한 창은 항상 열려 있기에 인간이 두 팔을 하늘로 향하기만 하면 언제든 찾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언제든 찾기만 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주신다는 것은 인간의 상태가 어떠하든 인간을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때로는, 사람에 따라, 너무나 힘든 일을 겪게 만드는 이유가 있습니다. 잘 먹고 잘 사면 인간은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아무 어려움 없이 자기 힘으로 다 할 수 있다면 도움 청할 일조차 없지 않습니까? 부모에게조차 심한 학대를 당해도 하나님이 막아 주지 않은, 아니 그런 부모를 내게 붙여 주신 이유가 시편 27:10에 나와 있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소리로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 마음이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주의 얼굴을 내게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말고 떠나지 마옵소서.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시 27:7-10)

기자는 먼저 세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님을 찾겠으니 나를 만나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이유는 부모마저 자식을 버릴 수 있을 만큼 인간은 죄에 찌들고 연약하며 불완전해 절대 나의 구원처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삶의 근원이자 능력이신 하나님만 찾고 또 찾고 의지하겠다고 합니다.      

인생살이의 고통은 죄 많은 인간끼리 서로 잘 났다고 뽐내거나 좋은 것을 먼저 많이 차지하려 싸우느라 생긴 것입니다. 부모마저 자식을 버리고 학대하는 것도 자기 욕심과 감정에, 때로는 사단에 사로잡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기 몸에서 난 자식마저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란 존재입니다. 인간에게 도움을 바라는 것은 아무 소망이 없다는 반증입니다. 아무리 이해 안 되는 힘든 일이 생겨도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 아니 유일한 방책은 하나님을 찾는 것뿐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만드신 분입니다. 우리에게 아버지 되는 분입니다. 우리를 낳으시고 지금껏 길러주신 훌륭한 부모님도 지으신 분입니다. 모든 인간에게 영원토록 아버지 되는 분입니다. 우리가 슬퍼서 울 때에 그분은 더 크게 우십니다. 우리가 한숨지을 때에 그분은 땅이 꺼지도록 한숨 쉬십니다. 또 우리가 기뻐하면 그분은 아주 크게 웃으시며 우리가 즐거워하면 그분도 더 크게 흐뭇해하십니다.    

나아가 그분에게는 인간과 달리 죄라고는 없습니다. 당신의 욕심과 자존심을 결코 채우지 않습니다. 영원토록 신실하십니다. 그분을 배반하고 심지어 저주까지 했던 인간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당신이 직접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셔서 모든 죄를 사해 줄만큼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세상에선, 인간들 사이엔 참 사랑이 없습니다. 모든 인간이 평생을 두고 가장 시급히 구하고 누려야 할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뿐입니다.

반면에 인간은 서로 사랑할 자질도 능력도 전혀 없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대할 때마저 그러합니다.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하기 원하면 주님께 자식을 완전히 맡겨야 합니다. 먼저 그들의 아픔, 상처, 분노 등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을 내가 씻어주는 대신에 예수님의 신실하신 긍휼이 자식에게 직접 미치도록 간구해야 합니다.  

쉽게 말해 부모부터 예수님을 제대로 믿고 그분의 십자가 사랑을 온전히 받아 누려야 합니다. 형제, 친구, 이웃 등 다른 모든 인간관계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으로 남을 안타깝게 여긴다면 주님의 사랑부터 먼저 자신에게 채워지고 또 그 채워진 사랑이 나를 통해 남에게 전해지도록 소원해야 합니다.

재삼재사 강조하지만 사방이 막혀도 하늘을 향하는 문은 항상 활짝 열려 있습니다. 인간은 짐승과 달리 언제 어디서든 하늘을 바라 볼 수 있습니다. 그분께 두 팔을 뻗어 기도하여 그분의 사랑을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부모마저 우리를 버릴지라도 그분은 절대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나 대신에 죽으신 사실이 바로 그 사랑을 증명하지 않습니까? 또 바로 그것이 인간이 짐승과 달리 두 발로 똑바로 서서 걷게 된 진짜 이유입니다.

6/29/2008
지난 일요일(6/29) LA 지역 Pasadena 소재 사랑의 빛 선교교회의
장애인부 7주년 기념예배에서 설교한 내용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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