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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서 일하시는 하나님

이사야 이한규 목사............... 조회 수 3006 추천 수 0 2011.12.21 12:3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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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사45:8-17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숨어서 일하시는 하나님 (이사야 45장 8-17절)

 

 <너무 투명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요새 투명해야 한다는 말이 많습니다. 그리고 투명함을 최고의 가치처럼 생각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그러나 투명함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투명하게 살려는 사람을 투명인간 취급하고 무시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또한 남에게는 투명하게 살라고 외치면서 정작 자신은 어둠 속에 숨어서 비난의 총을 쏘는 비겁한 사람도 얼마나 많습니까? 그처럼 아무에게나 투명하게 다 드러내 보이면 부작용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정신을 잘 컨트롤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투명하게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의 사생활까지 다 드러냅니다. 그러면 후유증이 큽니다. 일단 자신이 감당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말해버리고 나서 수치심에 싸여 공동체를 회피하고 사람을 회피하고 만남을 회피합니다. 그때 ‘우울함’이 ‘우울증’으로 심화되기도 합니다.

 어느 날, 우울증에 시달리는 한 여성도가 울면서 얘기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제가 왜 이렇게 고난을 당하는지 잘 알아요. 저는 정말 잘못을 많이 했어요. 저는 죄인이에요.” 거기까지는 좋습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너무 지나칠 정도로 투명하게 자기의 수치스런 과거를 다 드러냅니다. “목사님! 저는 옛날에 창녀였어요. 용산에서 3년 동안 그 생활을 했어요.”

 그렇게 자신의 수치스런 과거를 다 들춰내면 투명하고 솔직해서 좋은 것 같습니다. 언뜻 보면 그런 사람이 회개도 잘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할 때 나오는 회개는 진짜 회개라고 믿어주기 힘듭니다. 오히려 그런 말을 들으면 심히 염려가 됩니다. 왜냐하면 그런 말을 한 후에는 대개 그 교회를 떠나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신이 과거를 밝혀놓고 나서 수치심 때문에 자기 얘기를 들은 목회자조차 피하는 것입니다.

 목회자는 자신이 들은 비밀스런 얘기를 입이 무거운 아내 외에는 절대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목회자의 기본 윤리입니다. 특히 사생활의 수치스런 얘기는 더 주의해서 “기도해 달라!”는 명분이나 어떤 좋은 명분으로도 절대 그 얘기를 남에게 하지 않습니다. 그 면에 있어서 목회자는 국정원 직원보다도 더 입이 무겁습니다.

 심지어는 누군가 교회에 큰 어려움을 끼치고 나가도 그의 수치스런 얘기만은 비밀로 지켜줍니다. 그래서 각 교회마다 목회자만이 알고 있는 내밀한 비밀이 산더미같이 많습니다. 그처럼 100% 그 비밀이 지켜져도 본인이 피합니다. 그렇게 자기의 비밀을 최후로 지켜줄 사람까지 피하는 것은 이미 대인관계가 아주 힘들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면 점차 교회도 멀리하면서 불행의 길로 가게 됩니다. 결국 너무 투명했던 것이 문제입니다.

 물론 그렇게 과거의 수치를 드러내고도 자존심과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고 나가면 과거에 창녀였지만 나중에 성녀가 된 막달라 마리아처럼 인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그렇게 하지 못하고 불행의 길로 들어갑니다. 그것이 바로 어설픈 모습으로 자신을 너무 투명하게 드러낸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너무 투명한 것을 좋아하지도 말고 투명함을 너무 남에게 강요하지도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서는 늘 투명하기를 힘쓰되 사람 앞에서는 감춰야 할 것을 감출 줄 아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 스스로 숨어계시는 하나님 >

 물론 은밀하게 나쁜 일을 행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실 은밀한 대화나 은밀한 모임은 주의해야 합니다. 가끔 보면 이런 말을 듣습니다. “집사님! 집사님만 알고 있으세요!” 물론 좋은 의도로 그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상대가 지켜지기 원하는 비밀은 철저히 지켜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좋지 못한 의도를 가지고 그런 말을 할 때도 많습니다. 그때는 그 의도가 정말 선한 의도인지를 잘 살펴야 합니다.

 그처럼 은밀하게 행하는 것이 나쁜 경우도 있지만 은밀하게 좋은 일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은밀하게 선한 일을 하는 것은 사실상 가장 하나님을 닮은 모습입니다. 이 땅에서 은밀하게 선행을 하면 천국에서의 상급은 엄청난 상급이 될 것입니다. 본문은 은밀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잘 보여줍니다.

 본문 8-9절 말씀을 보면 이사야는 하나님을 ‘위대하신 창조주 하나님’으로 묘사하면서 사람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저항할 수 없음을 토기장이와 진흙의 비유를 들어서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하나님의 섭리에 의문을 가지는 것은 질그릇 한 조각이 자기를 만든 분에게 대드는 것과 같고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따지는 것과 같고 자녀가 부모에게 “왜 저를 낳았나요?”라고 불평하는 것과 같습니다(10절). 그러면 결국 화가 미치게 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장래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하나님께 불평하지도 말고 의문을 가지지도 말아야 합니다(11절). 왜냐하면 하나님이 땅과 사람을 창조했고 하늘조차 주관하고 하늘의 모든 군대조차 절대 명령으로 다스리기 때문입니다(12절).

 그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이방왕 고레스를 통해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고 예루살렘을 재건시키실 것이란 약속의 말씀을 전해줍니다(13절). 더 나아가 회복의 때가 되면 애굽과 구스와 스바 사람들과 같은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무릎을 꿇고 이렇게 고백할 것입니다. “이제야 저희들은 하나님이 당신들과 함께 하는 살아계신 하나님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음을 이제는 저희도 믿습니다(14절).”

 그처럼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신데 왜 하나님의 역사를 속 시원하게 보지 못합니까? 하나님이 모든 일을 은밀하게 행하실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깜짝 놀랄만한 일을 진행시키십니다. 그 사실을 깊이 깨닫고 이사야는 감격과 감탄과 감동 가운데 고백합니다. 본문 15절 말씀을 보십시오.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

 하나님은 대개 사람에게 직접 나타나시지 않습니다. 그래도 천지만물과 지나온 역사를 보면서 하나님의 오묘한 손길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손길을 느끼며 자신의 왜소함을 깨달아야 비로소 축복의 역사는 시작됩니다. 욥은 고통 중에 친구들과 논쟁하다가 나중에 천지만물을 예로 들며 말씀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때 그는 자신의 유한성을 깊이 깨닫고 자기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너무 말을 많이 했다고 회개합니다(욥 42:3). 그때부터 그의 삶에 극적인 회복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고난에 처하면 고난의 이유를 알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고난의 정확한 이유를 알려주기보다는 고난을 통해 자신의 유한성과 연약성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그 유한성과 연약성을 깨닫고 “하나님! 저는 잘 몰라요.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이 가장 잘 하시는 줄 믿습니다.”라고 나갈 때 그에게는 지극한 위로와 평강이 넘치게 될 것이고 그때부터 인생의 진정한 목적과 해답과 보람과 만족도 찾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숨어계시는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의 속성을 따라 때로는 감추고 때로는 숨어계십시오. 그리고 숨어서 일하고 숨어서 돕는 법을 배우고 즐기십시오. 그때 만족과 보람은 커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숨어계셔도 그 영광이 찬란하게 나타나듯이 하나님의 속성을 닮아서 숨어서 일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영광의 때가 찾아올 것입니다.

 성숙함이란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이 너무 적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또한 스스로 숨어계시는 하나님처럼 자신도 숨기를 즐겨하고 넉넉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도 성숙함입니다.

 이제 모든 문제를 너무 정확하게 해석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문제와 고난에 대한 해석이 많아지면 인생은 복잡해지고 고난은 심화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에 감탄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그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에 감탄하며 하나님을 ‘스스로 숨어계시는 하나님’이라고 묘사했습니다. 겉으로는 아무런 일이 이뤄진 것 같지 않고 시간만 낭비한 것 같고 오히려 고난과 역경과 문제만 있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하나님이 물밑작업을 통해서 엄청난 일을 이루고 계신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우리도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에 감탄하고 “하나님! 그때 그래서 그렇게 하셨군요!”라고 탄복할 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왜 하나님이 다 드러내고 일하시지 않습니까? 고난과 역경과 문제 중에도 하나님을 꼭 붙잡고 믿음으로 사는가를 보시기 위해서입니다. 그 믿음의 시험에서 합격하면 조만간 하나님이 물밑작업을 통해서 준비하신 찬란한 축복을 우리에게 나타내어 보여주실 것입니다.

< 은밀하게 해야 할 일 >

 지금도 하나님은 깜짝 놀랄만한 선물을 주시려고 숨어서 준비하시면서 그 선물을 주실 결정적인 날과 시간만 꼽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속성을 닮아 숨어서 은밀하게 멋진 일을 하십시오. 은밀하게 어떤 일을 해야 합니까?

1. 은밀하게 기도하십시오

 내가 기도하는 것을 누가 알아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진심으로 기도하면서 가끔 “집사님! 제가 매일 기도하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기도를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통해 조금이나마 그분에게 살아갈 힘을 보태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말을 해줄 필요도 있지만 사실상 안 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은밀하게 기도해주는 것입니다. 그 은밀한 기도 때문에 얼마나 큰 역사가 일어납니까?

 저는 설교할 때마다 누군가 저를 위해 기도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느낍니다. 어떤 때는 너무 피곤해서 설교를 잘할 수 있을지 염려합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기관지가 약해서 시커먼 가래가 나오는 감기를 달고 살았습니다. 거의 매달 감기가 없을 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대도 약하고 성량이 풍부하지 못합니다. 그런 핸디캡을 가지고 매주 설교해야 하니까 저에게는 설교가 너무 힘듭니다.

 게다가 몸이 피곤하면 혀가 바짝 마르고 발음이 잘 안 됩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벌써 감을 잡습니다. “이번 주일에는 발음이 헛 나오고 설교를 죽 쑤겠구나!” 그런데 어떤 때는 그런 예상과 다르게 신기할 정도로 혀가 매끄럽게 잘 움직입니다. 그러면 그때 가장 먼저 이런 생각을 합니다. “누군가 이 설교를 위해 많이 기도했구나!” 그런 은밀한 기도를 느끼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은밀하게 드려지는 진실한 기도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미래의 축복을 예비하는 최고의 도구입니다.

2. 은밀하게 준비하십시오

 성도의 나중의 삶은 이전의 삶보다 찬란한 삶이 될 것입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일의 축복을 은밀하게 준비하는 것입니다. 지금 사업이 어렵고, 자녀문제로 고민이 되고, 재정적으로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 안에서는 그 모든 어려운 상황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축복을 향한 영적인 센서가 무뎌지지 않게 하십시오.

 현재의 상황만 보고 낙심하고 좌절하면 영적인 센서가 망가집니다. 그러나 피와 땀과 눈물로 내일의 축복을 준비하면 영적인 센서가 잘 작동해서 어려운 순간마다 오히려 이런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것입니다. “아무개야! 이제 모든 것이 다 잘될 것이다. 내가 축복의 때를 준비해놓았다. 이제 곧 상황은 바뀔 것이다. 지금 축복의 때가 오는 중이다. 이제 가장 적절한 때 그 준비된 축복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 하나님의 음성에 동의하면서 환경을 보고 낙심하지 말고 믿음을 가지고 일어서십시오. 진료 기록에는 자신의 건강이 좋지 않게 나와도 믿음을 가지고 “나는 지금 점점 건강해지고 있다!”고 지각하십시오. 사업이 부진하고 일이 지연되면 스트레스가 생기지만 그때도 믿음으로 선언하십시오. “나는 보이는 것으로 살지 않는다. 이제 하나님이 준비하신 축복의 역사가 내 앞에 곧 나타날 것이다.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

 찬란한 비전을 가지고 나갈 때는  재정적인 문제에 봉착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계산해도 그 부족함을 채울 길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인간적으로 염려가 되면서 이런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 일은 아무래도 안 될 것 같다.” 찬란한 비전을 향해 나가다 보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때가 바로 믿음을 보여주어야 할 때입니다. 그때 믿음을 잃지 않으면 마음 깊은 곳에서 여전히 이런 음성이 들릴 것입니다. “아무개야! 이제 모든 일이 잘될 것이다. 내가 여전히 이 모든 상황을 컨트롤하고 있다.” 그러면 머리에서는 “노 웨(No way)! 길이 없다!”라고 외쳐도 마음에서는 “예스 웨이(Yes Way). 반드시 길은 있다!”라는 외침이 생길 것입니다.

 이제 앞날에 대한 걱정 대신에 열심히 내일의 축복을 은밀하게 준비하며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이 비전을 주신 줄 믿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이 문제를 풀어주소서! 필요한 모든 것이 넉넉하게 채워지게 하소서.” 그런 믿음의 기도와 함께 계속 은밀하게 준비하면 하나님이 조만간 신비하게 재정 문제도 풀어주시고 가장 적합한 사람도 만나게 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꿈과 비전이 이뤄지는 내일의 축복을 위해서 은밀하게 준비하십시오. 하나님은 이미 모든 문제를 푸는 해결책을 마련해 두셨고, 꿈과 비전을 이루는데 필요한 사람, 재정, 기회, 상황, 지혜, 창조성, 아이디어 등도 다 마련해 두셨습니다. 그러므로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좌절하지 마십시오. 계속 은밀하게 준비해서 지금 오고 있는 축복을 감지하는 영적인 센서가 무뎌지지 않게 하십시오. 그러면 조만간 축복의 때가 반드시 펼쳐질 것입니다.

 얼마 전부터 저는 <네트영어 교육방송>의 비전을 위해 백만 불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 비전이 헛된 비전이 아니고 구체적인 비전임을 마음으로 호소하고 싶어서 쉽지 않은 일이지만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이한규 네트영어>라는 이름으로 칼럼을 집필해서 온라인 새벽기도 회원들에게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일 칼럼을 보내면서 “오늘에는 이 비전의 필(feel)이 누군가에게 꽂히는 역사가 있을까?”하는 설레는 기대를 하며 보냅니다. 물론 이제까지 큰 반응은 없었지만 왠지 <축복 예감>은 식을 줄 모릅니다.

 그처럼 내일의 축복을 예감하며 은밀하게 최선을 다해 준비하면 조만간 하나님도 준비된 우리 앞에 축복을 펼쳐주실 것입니다. 이 비전이 한국 젊은이들을 하나님의 거룩한 재목으로 키우는데 꼭 필요한 거룩한 비전이라고 믿고 나가면 하나님은 조만간 반드시 거룩한 커넥션을 맺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때까지 은밀하게 그러나 맹렬하게 준비하십시오. 축복은 환경과의 싸움에서 이길 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길 때 주어집니다.

3. 은밀하게 선행하십시오

 사람들은 보통 기적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기적을 내세우는 곳으로 기적을 얻으려고 우르르 몰려갑니다. 그러나 기적을 목표로 삼고 기적을 의도하고 기적을 얻으려고 우르르 몰리는 곳에는 하나님이 더 이상 기적을 주시지 않습니다. 만약 그곳에 기적이 있다면 그것은 자랑과 허영심과 욕심을 부추기는 사단이 주는 허무한 기적만 있을 뿐입니다. 그런 허무한 기적을 외면할 줄 알아야 진짜 하나님이 주시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기적을 광고하지 않았습니다. 기적을 일으키면 오히려 그 기적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하실 때도 많았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사람들이 기적의 관객으로 전락되는 것을 원치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기적을 얻으려는 목적을 우선에 두고 예수님을 우러러보고 추앙하기를 결코 원치 않습니다. 그것도 일종의 우상숭배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숭배 대상을 찾습니다. 그래서 스타들이 생깁니다. 종교계에도 그런 스타들이 있습니다. 스타가 되면 성전 꼭대기에 있으면서 힘과 권력이 주는 단맛에 길들여지고 인기에 영합하는 ‘스타(스스로 타락한 자)’가 될 때가 많습니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이 추종하기에 대중들에게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신비의 베일 뒤에 숨어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더 추종합니다. 접근이 어려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더 동경하는 심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위치가 높아지면 섬김과 비움을 통해 맑아지는 삶을 잃고 대접받고 지시하는 일에 익숙해질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타락입니다. 물론 그런 타락을 막겠다면서 윗사람이 앉은 자리를 부수고 윗사람을 가린 베일을 찢어버리란 말은 아닙니다. 그런 모습은 사단이 제일 애용하는 ‘사단의 정의’입니다. 자신의 실천적인 사랑이 빠진 손가락질로는 결코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중요한 것은 실천적인 사랑을 가지고 은밀하게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통해 세상은 조금씩 변화됩니다.

 바다는 낮은 곳에서 세상의 모든 물들을 받아들입니다. 다 받아들여서 ‘받아(바다)’란 단어가 생겼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바다처럼 예수님은 낮은 곳에서 은밀하게 생명을 살리셨습니다. 결국 기적은 ‘사람이 못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제 기적의 관객이 되지 말고 기적의 일부 혹은 기적의 주체가 되어 은밀한 사랑의 실천자가 되십시오. 그것이 진짜 기적입니다.

 이제 은밀하게 나누십시오. 나눔이 있는 곳에 기적이 있습니다. 대접받는 일이나 주목받는 일을 좋아하지 말고 자아와 자존심도 십자가에 못 박고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라고 늘 고백하며 하십시오(갈 2:20). 그리고 실천적인 사랑을 통해서 최선을 다해 나누고 나눔을 통해 자기 속에 생기는 충만한 기쁨과 자유와 축복의 예감 속에서 사십시오. 진정한 사랑은 나눔의 능력이 커지는 것이고 진정한 축복은 나눔의 여력이 커지는 것입니다.

< 하나님이 임하시는 곳 >

 가끔 어려운 선교사님들과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위해 은밀하게 헌신하는 분들을 봅니다. 그분들을 보면 이런 말을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목사님! 제가 한 사실을 남들이 모르게 해주세요.”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분들은 또한 거의 예외 없이 이런 말을 합니다. “목사님! 더 많이 못해서 죄송해요.”

 감동적인 헌신을 하고도 더 못해서 죄송하다니까 그 말이 더 감동을 줍니다. 그런데 더 못해서 죄송하다는 말이 결코 가식이 아닙니다. 힘들게 사역하는 선교사님들에게 몸으로 다가가지 못하는 죄스러움을 고백하고 또한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받고도 하나님의 거룩한 뜻과 비전에 몸으로 함께 하지 못하는 미안함을 진심으로 고백한 것입니다.

 어떤 분은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데도 그렇게 헌신합니다.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그렇게 헌신했을까요? 아마 그들 마음에는 이런 고백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제가 어떻게 갚겠습니까? 몸밖에 드릴 것이 없어 이 몸을 드립니다. 그리고 저의 생명의 일부분을 떼어내는 심정으로 이 물질을 드립니다.” 아마 그런 심정이 아닐까요?

 사람들은 가끔 이런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 어디에 계십니까? 왜 숨어계십니까?” 그 질문에 하나님은 이렇게 대답하실 것입니다. “아무개야! 내가 숨어서 일하는 이유는 숨어서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함이란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은 은밀한 사랑의 통로가 되고 거룩한 비전의 통로가 되는 사람이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은밀하게 기도하고 은밀하게 준비하고 은밀하게 나누는 곳에서 역사하십니다. 은밀한 기도와 준비와 선행은 사람을 바라보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삶의 대표적인 삶입니다.

 이제 자신이 선 자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이 역사하는 자리가 되도록 은밀하게 기도하고 은밀하게 준비하고 은밀하게 선행하십시오. 외형신이나 숫자신이나 물질신에도 빠지지 말고 숨어서 우리의 미래를 위해 멋지게 일하시는 하나님만 바라보며 사십시오. 그러면 이 땅에서 결코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하는 일이 없게 될 것입니다(17절). 항상 하나님만 바라보며 은밀한 기도와 준비와 선행으로 숨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와 임재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내밀한 사랑을 받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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